금지된 장난 로망스-Alexandre Lagoya
조지훈의 ‘승무’의 시작 과정
** 초고(草稿)에 있는 무대 뒤의 묘사를 뒤로 미루고 직입적(直入的)으로 춤추려는 찰나의 모습을 그릴 것.
** 무대를 약간 보이고 다시 이어서 휘도는 춤의 곡절(曲折)로 들어갈 것.
** 움직이는 듯 정지하는 찰나의 명상의 정서를 그릴 것.
** 관능(官能)의 샘솟는 노출을 정화 시킬 것.
** 유장한 취타(吹打)에 따르는 의상의 선을 그리고
마지막 춤과 음악이 그친 뒤 교교(姣姣)한 달빛과 동 터오는 빛으로써 끝막을 것.
이것이 그 때의 플랜이었으니 이 플랜으로 나는 사흘 동안 퇴고를 거듭하여 스무 줄로 된 한 편의 시를 겨우 만들게 되었다.
퇴고하는 데에도 가장 괴로웠던 것은 장삼(長衫)의 미묘한 움직임이었다.
나는 마침내 여덟 줄이나 되는 묘사를 지워버리고 나서 단 두 줄로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올린 외씨 보선이여
라 하고 말았다. 이리하여 나는 전편 십오 행의 다음과 같은 시 하나를 이루었던 것이다.
승무
조지훈
얇은 사(紗) 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腦)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오래 앓던 작품을 완성하였을 때의 즐거움은 컸다 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처음 의도에 비해서 너무나 모자라는 자신의 기법에 서글픈 생각이 그에 못지않게 컸던 것도 사실이다. 어떻든 구상한지 열한 달, 집필한지 일곱 달 만에 겨우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로써 나의 승무의 비밀은 끝난다.
써 놓고 보니 이름 모를 승무의 춤과, 김은호의 그림과 같으면서도 다른 또 하나의 승무를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이 춤은 내가 춘 승무에 지나지 않는다. 춤추는 승무는 남성이었는데 나는 이승(이僧)으로, 그림의 여성은 장삼(長衫) 입은 속녀(俗女)였으나 나는 생활과 예술이 둘 아닌 상징으로서의 어떤 탈속한 여인을 꿈꾸었던 것이다.
이것이 곧 승무는 나의 춤이 되는 까닭이다. 그 때 어떤 선배는 나의 시에서 언어의 생략을 충고하였으나, 유장한선을 표현함에 짧고 가벼운 언어만으로는 도저히 뜻할 수 없어 오히려 리듬을 위해서는 부질없는 듯한 말까지 넣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한 해조(諧調)를 이루는 빈틈없는 부언은 생략보다도 어렵다는 것을 나는 여기서 절실히 느낀다.
- 조지훈, ‘시의 비밀’에서. 『글쓰기 기초, (퇴고- 퇴고의 방법)』
이름 모를 승무: 승무에의 호기심을 일으키게 하여 기녀가 추는 승무에까지 몇 번을 이끌어갔던 최초의 모멘트
김은호의 그림: 한 마다의 언어, 한 줄의 구상도 찾지 못한 채 막연한 괴로움에 쌓여 있던 그에게 비로소 종이 위에 초고를 올릴 수 있게 한 동양화
종 목: 시도무형문화재 제15호 (동구)
명 칭: 승무(僧舞)
분 류: 무형유산 / 전통연행/ 무용/ 민속무용
지 정 일: 2004.04.30
소 재 지: 대전 동구 구도동 150-1
상 세 문 의: 대전광역시 동구 문화공보실 042-250-1225
승무는 조선 중엽 포교수단으로 승무를 추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황진이가 지족선사를 유혹하려고 춤 춘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춤사위가 다양하고 춤의 기법이 독특하며 춤의 구성 또한 체계적인 품위와 격조가 높은 예술형식을 지니고 있는 승무는 절에서 추어지는 의식무가 아니라 살풀이와 함께 민속춤으로 분류된다. 장에다 어깨에 붉은 가사를 두르고 고깔을 눌러 쓴 불교적인 색채가 짙은 승무의 세찬 장놀음과 빼어난 발디딤새, 장관을 이루는 북의 울림이 가히 한국춤의 정수라 할 수 있다.
대전 출생으로 1974년 불가에 입문한 송재섭은 조계종 스님으로부터 작법과 범패를 배우기 시작하여 중요무형문화재 영산재 보유자인 박송암스님에게서 바라춤, 법고무 등 불교의식과 의식무를 사사받았다. 이후 이매방으로부터 중요무형문화재 승무와 살풀이춤을, 영산재보존회로부터 영산재를 각각 이수받았다.
송재섭의 춤은 매우 여성적이나 약하지 않고, 섬세하나 큰 결이 있으며, 결코 화려하지 않은 소박함이 깃들어 있다. 발끝에서 손끝까지 잔잔한 생명력이 있는 움직임이 표출되는 춤사위를 통해 한과 숙명을 풀어내고 있다. 그 몸짓은 억지로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절제된 감정으로 내면에서 희열을 끄집어내고 있으며 결코 경직되지 않는 모습의 춤사위를 펼쳐 보인다. 잔잔한 호수에 동심원을 그리며 물살이 퍼져 나가는 듯한 애잔한 느낌을 준다. 구도의 정신에서 묻어 나오는 그만의 춤 세계와 겸허한 마음자세가 숙명적으로 춤을 추기 위해 태어난 자의 몸부림이라 표현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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