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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의 이해

수로보니게 여인 2009. 10. 3. 15:10

판소리의 이해 상(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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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 판소리의 개념에 관하여 이해한다.
2. 판소리의 기원과 형성 과정을 이해한다.
3. 판소리의 문학사적 위치를 이해한다.
4. 판소리의 전개 과정을 이해한다.
5. 판소리의 구성에 대해 이해한다.

 

 

용어 

 

모찌기 노래: 우지희(俳優之戱)·창우지희(倡優之戱)라고도 한다. 시사적 사건을 우스개로 표현한 풍자극으로 배우들이 시사 풍자나 사회 비판 내용을 소학지희에서 보여주었다. 고려시대에 다른 사람을 조롱 또는 희롱한 즉흥극인 조희(調戱)의 전통을 이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 양반이나 파계승을 풍자한 민속놀이 가면극인 산대도감극 형성에도 참여하였다.


육자배기/육자배기調 :전라도지방을 중심으로 한 남도잡가(南道雜歌). 원래 농요(農謠)의 갈래이며, ‘육자배기’라는 이름은 이 노래의 장단 진양의 1각인 6박을 단위로 하는 노래라는 뜻에서 생긴 듯하다. 이 진양은 민요에서는 보기 드문 장단이며 그 박자가 매우 느려서 한스럽고 서정적인 느낌을 주나 억양이 강하고 구성진 멋이 있다.
그리고 그 선율이 유연하면서도 음의 폭이 넓고 장절의 변화가 다양하여 그 예술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성음은
계면조(界面調)와 같은 미 ·라 ·시의 3음으로 구성지고 슬픈 느낌을 준다. 남도의 무속음악(巫俗音樂)과 《육자배기》 《남도흥타령》《강강수월래》《농부가》 《진도아리랑》 등 민요 ·시나위 · 판소리 등이 이 선율형을 쓴다.


遊街 :과거 급제자들이 시가를 행진하던 풍습을 말한다. 원래는 당나라 풍습으로 고려시대에 행하여졌고, 친척·선배·친지들을 방문하며 3일 동안 시가를 행진하였다. 이때 말을 탄 급제자들을 천동(天童)이 전도(前導)하고 악수(樂手)가 음악을 울리며, 광대가 춤추고 재인(才人)이 온갖 재주를 부리며 길을 누볐다. 악수는 세악수(細樂手:장구·북피리·저·해금의 악수)였고, 광대는 비단옷에 황초립(黃草笠)을 쓰고 채화(綵花)·공작우(孔雀羽)를 꽂고서 난무(亂舞)하며 익살을 부렸으며, 재인은 답삭(踏索)·곤두박질 등 재주를 부렸다. 이 행사 뒤 급제 축하연으로 문희연(聞喜宴)이라 하여 급제자들이 자기 집에 친척·친지를 초대, 성대한 자축연을 베풀었으며, 회문례(回門禮)라 하여 선배의 집을 찾아다니면서 평소의 지도에 보답하였다. 또 국초에 은문연(恩門宴)이라 하여 시관(試官)을 초대, 감사하는 연회를 베풀었으나 뒤에 폐지하였다


  

판소리의 이해 하(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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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 판소리의 연행방식을 이해한다.
2. 판소리의 사설구성 방식을 이해한다.
3. 판소리 각 마당의 사설 형성 과정에 대하여 이해한다.
4. 판소리 사설의 주제 구현 방식을 이해한다.
5. 판소리의 근대문학적 성격을 이해한다.

 

 

용어 

 

무숙이타령 : 판소리 열두 마당의 하나로 《왈자타령(曰者打令)》이 무숙이타령이라는 설과 《오유란전(烏有蘭傳)》이 무숙이타령과 같다는 설 등 이설이 있으나 사설(辭說)은 전하지 않는다. 오입쟁이들이 좋아하는 기생을 어른다는 내용이다.

한글소설 <개우사>가 무숙이타령의 사설 정착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강릉매화전/강릉매화타령 : 12마당 중의 하나. 1810년대에 간행된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觀優戱)》에 당시 널리 불리던 판소리 12마당의 하나였다는 기록이 나와 있는 점으로 보아 1810년 이전부터 전승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관우희》의 <왈자타령>
<가짜신선타령> <강릉매화타령> 등은 내용이 외설스럽고 조잡하여 가까이할 수 없다 하였는데 지금은 모두 자연도태되어 불리지 않는다. 신재효(申在孝)의 《오섬가(五蟾歌)》 1절에 “강릉 책방 골원을 매화가 속이랴고 백주에 산 사람을 거짓되이 죽었다고 활신벽겨 앞세우고 상예 뒤를 따라가며 이 사람도 건드리고 저 사람도 건드리며 자지예 방울차고 달랑달랑 노는 것이 그도 또한 굿실네라”라는 대목이 있어 그 내용이 위선적인 사람을 풍자한 것이었음을 짐작할 뿐이다.  
      

가짜신선타령 : 12마당 중의 하나이다. 송만재(宋晩載)가 1810년에 펴낸 《관우희(觀優戱)》에 실린 점으로 미루어 그 이전의 곡으로 추측된다. 한 어리석고 못생긴 선비가 신선이 되려고 금강산에 들어가 노선사(老禪師)에게 가짜 천도(天桃)와 천일주(千日酒)를 얻어먹고 신선이 된 줄로 착각하여 온갖 추태를 부린다는 이야기다. 현실에서 도피하여 무릉도원에 일신을 맡기려는 당시 지식인들을 풍자한 작품으로 지금은 불리지 않는다.        

하도낙서 : 《하도(河圖)》는 복희(伏羲)가 황하(黃河)에서 얻은 그림으로, 이것에 의해 복희는 《역(易)》의 팔괘(八卦)를 만들었다고 하며, 《낙서(洛書)》는 하우(夏禹)가 낙수(洛水)에서 얻은 글로, 이것에 의해 우(禹)는 천하를 다스리는 대법(大法)으로서의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만들었다고 한다.

관우희 : 조선 순조대의 문인 송만재가 엮은 연희시. 간행 연도는 정확하지 않으나 1810년(순조 10)에서 1834년(헌종 9)으로 추정된다. 주요 내용은 판소리 12마당을 밝혀 놓았으며, 이 외에도 광대들의 재주 부리는 모습과 생활상 등을 종합적으로 읊었다. 이 책은 판소리 12마당에 관한 최초의 문헌으로 판소리를 연구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료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판소리 개관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가짜 신선 타령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강릉 매화 타령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만고강산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무숙이 타령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배비장 타령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변강쇠 타령 (가루지기 타령)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수궁가 (토끼 타령)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숙영낭자타령 (백상서가)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심청가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오유란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옹고집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왈자타령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장끼 타령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적벽가 (화용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춘향가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흥보가 (박타령)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으로 가자

                 

9강 : 판소리 변강쇠가 중에서

부엌에 토정(土鼎) 걸고, 방 쓸어 공석(空石) 펴고, 낙엽을 긁어다가 저녁밥 지어 먹고, 터 누르기 구(三三九)를 밤새도록 한 연후에 강쇠의 평생 행세(行勢) 일하여 본 놈이냐. 낮이면 잠만 자고, 밤이면 배만 타니, 여인이 할 수 없어 애긍히 정설(情說)한다.
“여보 낭군 들으시오. 천생만민필수지직(天生萬民必授之職) 사람마다 직업 있어 앙사부모하육처자(仰事父母下育妻子) 넉넉히 한다는데 낭군 신세 생각하니 어려서 못 배운 글을 지금 공부할 수 없고, 손재주 없으시니 장인(匠人)질 할 수 없고, 밑천 한푼 없으시니 상고(商賈)질 할 수 있나. 그 중에 할 노릇이 상일밖에 없으시니 이 산중 살자 하면 산전을 많이 파서 두태(豆太), 서속(黍粟), 담배 갈고, 갈퀴나무, 비나무며 물거리, 장작(長斫)패기 나무를 많이 하여 집에도 때려니와, 지고 가 팔아 쓰면 부모 없고 자식 없는 단 부처(夫妻) 우리 둘이 생계가 넉넉할새, 건장한 저 신체에 밤낮으로 하는 것이 잠자기와 그 노릇 뿐. 굶어 죽기 고사하고 우선 얼어죽을 테니 오늘부터 지게 지고 나무나 하여 옵소.”
강쇠가 픽게 웃어,
“어허 허망(虛妄)하다. 호달마(胡達馬)가 요절(腰折)하면 왕십리 거름 싣고, 기생(妓生)이 그릇되면 길가의 탁주(濁酒) 장사, 남의 말로 들었더니 나 같은 오입장이 나무 지게 지단 말가. 불가사문어타인(不可使聞於他人)이나 자네 말이 그러하니 갈밖에 수가 있나.”
강쇠가 나무하러 나가는데 복건(복巾)쓰고, 도포(道袍) 입었단 말은 거짓말. 제 집에 근본(根本) 없고 동내(洞內)에 빌 데 있나. 포구(浦口) 근방 시평(市坪)판에 한참 덤벙이던 복색(服色)으로 모자 받은 통영(統營)갓에 망건(網巾)은 솟구었고, 한산반저(韓山半苧) 소창의(小창衣)며, 곤때 묻은 승(三升) 버선 남(藍) 한 포단(布緞) 대님 매고, 용감기 새 미투리 맵시있게 들멘 후에, 낫과 도끼 들게 갈아, 점심 구럭 함께 묶어 지게 위에 모두 얹어 한 어깨에 둘러 메고, 긴 담뱃대 붙여 물고 나뭇군 모인 곳을 완보(緩步) 행가(行歌) 찾아 갈 때, 그래도 화방(花房) 퇴물(退物)이라 씀씀이 목구성이 초군(樵軍)보다 조금 달라,
“태고(太古)라 천황씨(天皇氏)가 목덕(木德)으로 즉위(卽位)하니 오행중(五行中)에 먼저 난 게 나무 덕이 으뜸이라. 천‧지‧인(天‧地‧人) 황(三皇)시절 각 일만 팔천세를 무위이화(無爲而化) 지내시니, 그 때에 나 낳았으면 오죽이나 편켔는가. 유왈유소(有曰有巢) 성인 인군 덕화(德化)도 장할씨고. 구목위소(構木爲巢) 식목실(食木實)이 그 아니 좋겠는가. 수인씨(燧人氏) 무슨 일로 시찬수교인화식(始鑽燧敎人火食) 일이 점점 생겼구나. 일출이작(日出而作) 요순(堯舜) 백성 어찌 편타 할 수 있나. 하‧은‧주(夏‧殷‧周) 석양 되고, 한‧당‧송(漢‧唐‧宋) 풍우 일어 갈수록 일이 생겨 불쌍한 게 백성이라. 일년 사절(四節) 놀 때 없이 손톱 발톱 잦아지게 밤낫으로 벌어도 불승기한(不勝飢寒) 불쌍하다. 내 평생 먹은 마음 남보다는 다르구나. 좋은 의복, 갖은 패물(佩物), 호사(豪奢)를 질끈 하고 예쁜 계집, 좋은 주효(酒肴), 잡기(雜技)로 벗을 아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살쟀더니 층암절벽(層岩絶壁) 저 높은 데 다리 아파 어찌 가서, 억새폭, 가시덩굴 손이 아파 어찌 베며, 너무 묶어 온짐 되면 어깨 아파 어찌 지고, 산고곡심무인처(山高谷深無人處)에 심심하여 어찌 올꼬.”
신세 자탄(自歎) 노래하며 정처 없이 가노라니.
이 때에 둥구마천 백모촌에 여러 초군 아이들이 나무하러 몰려 와서 지게 목발 뚜드리며 방아타령, 산타령에 농부가(農夫歌), 목동가(牧童歌)로 장난을 하는구나. 한 놈은 방아타령을 하는데,
“뫼에 올라 산전방아, 들에 내려 물방아, 여주(麗州) 이천(利川) 밀다리방아, 진천(鎭川) 통천(通川) 오려방아, 남창 북창 화약(火藥)방아, 각댁(各宅) 하님 용정(용精)방아. 이 방아, 저 방아 다 버리고 칠야경(漆夜三經) 깊은 밤에 우리 님은 가죽방아만 찧는다. 오다 오다 방아 찧는 동무들아, 방아 처음 내던 사람 알고 찧나 모르고 찧나. 경신년 경신월 경신일 경신시(庚申年 庚申月 庚申日 庚申時) 강태공(姜太公)의 조작(造作)방아 사시장춘(四時長春) 걸어 두고 떨구덩 찧어라, 전세대동(田稅大同)이 다 늦어간다.”
한 놈은 산타령을 하는데,
“동 개골(皆骨)‧서 구월‧남 지리‧북 향산(香山), 육로(陸路) 천리 수로(水路) 천리 이 천리 들어가니 탐라국(耽羅國)이 생기려고 한라산(漢拏山)이 둘러 있다. 정읍(井邑) 내장(內藏), 장성(長城) 입암(笠岩), 고창(高敞) 반등(半登), 고부(古阜) 두승(斗升), 서해 수구(水口) 막으려고 부안(扶安), 변산(邊山) 둘러 있다.”
한 놈은 농부가를 하는데,
“선리건곤(仙李乾坤) 태평시절(太平時節) 도덕 높은 우리 성상(聖上) 강구미복(康衢微服) 동요(童謠) 듣던 요(堯)임금의 버금이라. 네 다리 빼여라 내다리 박자. 좌수춘광(左手春光)을 우수이(右手移). 여보소, 동무들아, 앞 남산(南山)에 소나기 졌다. 삿갓 쓰고 도롱이 입자.”
한 놈은 목동가를 부르는데,
“갈퀴 메고 낫 갈아 가지고서 지리산으로 나무하러 가자. 얼럴. 쌓인 낙엽 부러진 장목(長木) 긁고 주워 엄뚱여 지고 석양산로(夕陽山路) 내려올 제, 손님 보고 절을 하니 품안에 있는 산과(山果) 땍때굴 다 떨어진다. 얼럴. 비 맞고 갈(渴)한 손님 술집이 어디 있노. 저 건너 행화촌(杏花村) 손을 들어 가리키자. 얼럴. 뿔 굽은 소를 타고 단적(短笛)을 불고 가니 유황숙(劉皇叔)이 보았으면 나를 오죽 부러워하리. 얼럴.”
강쇠가 다 들은 후, 제 신세를 제 보아도 어린 것들 한가지로 갈키나무 할 수 있나. 도끼 빼어 들어 메고 이 봉 저 봉 다니면서 그 중 큰 나무는 한두 번씩 찍은 후에 나무 내력(來歷) 말을 하며, 제가 저를 꾸짖는다.
“오동나무 베자 하니 순(舜)임금의 오현금(五弦琴). 살구나무 베자 하니 공부자(孔夫子)의 강단(講壇). 소나무 좋다마는 진시황(秦始皇)의 오대부(五大夫). 잣나무 좋다마는 한 고조 덮은 그늘, 어주축수애산춘(漁舟逐水山春) 홍도(紅桃)나무 사랑옵고. 위성조우읍경진(渭城朝雨邑輕塵) 버드나무 좋을씨고. 밤나무 신주(神主)감, 전나무 돗대 재목(材木). 가시목 단단하니 각 영문(營門) 곤장(棍杖)감. 참나무 꼿꼿하나 배 짓는 데 못감. 중나무, 오시목(烏柿木)과 산유자(山柚子), 용목(榕木), 검팽은 목물방(木物房)에 긴(緊)한 문목(紋木)이니 화목(火木)되기 아깝도다.”

 이리저리 생각하니 벨 나무 전혀 없다.
산중의 동천맥(動泉脈) 우물가 좋은 곳에 점심 구럭 풀어 놓고 단단히 먹은 후에 부쇠를 얼른 쳐서 담배 피어 입에 물고, 솔 그늘 잔디밭에 돌을 베고 누우면서 당음(唐音) 한 귀 읊어 보아,
“우래송수하(偶來松樹下)에 고침석두면(高枕石頭眠)이 나로 두고 한 말이라, 잠자리 장히 좋다.”
말하며, 고는 코가 산중이 들썩들썩, 한소금 질근 자다 낯바닥이 선뜻선뜻 비슥이 눈 떠 보니 하늘에 별이 총총, 이슬이 젖는구나. 게을리 일어나서 기지개 불끈 켜고 뒤꼭지 뚜드리며 혼잣말로 두런거려,
“요새 해가 그리 짧아 빈 지게 지고 가면 계집년이 방정 떨새.”
사면을 둘러보니 둥구마천 가는 길에 어떠한 장승 하나 산중에 서 있거늘 강쇠가 반겨하여,
“벌목정정(伐木丁丁) 애 안 쓰고 좋은 나무 저기 있다. 일모도궁(日暮途窮) 이내 신세 불로이득(不勞而得) 좋을씨고.”
지게를 찾아 지고 장승 선 데 급히 가니 장승이 화를 내어 낯에 핏기 올리고서 눈을 딱 부릅뜨니 강쇠가 호령(號令)하여,
”너 이놈, 누구 앞에다 색기(色氣)하여 눈망울 부릅뜨니. 남(三南) 설축 변강쇠를 이름도 못 들었느냐. 과거(科擧), 마전(馬廛), 파시평(波市坪)과 사당(寺黨) 노름, 씨름판에 이내 솜씨 사람 칠 제 선취(先取) 복장(腹腸) 후취(後取) 덜미, 가래딴죽, 열 두 권법(拳法). 범강(范彊), 장달(張達), 허저(許저)라도 모두 다 둑 안에 떨어지니 수족(手足) 없는 너만 놈이 생심(生心)이나 방울쏘냐.”
달려들어 불끈 안고 엇둘음 쑥 빼내어 지게 위에 짊어지고 유대군(留待軍) 소리 하며 제 집으로 돌아와서 문 안에 들어서며, 호기(豪氣)를 장히 핀다.
“집안 사람 거기 있나. 장작 나무 하여 왔네.”
뜰 가운데 턱 부리고, 방문 열고 들어가니 강쇠 계집 반겨라고 급히 나서 손목 잡고 어깨를 주무르며,
“어찌 그리 저물었나. 평생 처음 나무 가서 오죽 애를 썼겠는가. 시장한 데 밥 자십쇼.”
방 안에 불 켜 놓고, 밥상 차려 드린 후에 장작 나무 구경 차로 불 켜 들고 나와 보니, 어떠한 큰 사람이 뜰 가운데 누웠으되 조관(朝官)을 지냈는지 사모(紗帽) 품대(品帶) 갖추고 방울눈 주먹코에 채수염이 점잖으다. 여인이 깜짝 놀라 뒤로 팍 주잕으며,
“애겨, 이것 웬 일인가. 나무하러 간다더니 장승 빼어 왔네그려. 나무가 암만 귀하다 하되 장승 패여 땐단 말은 언문책(諺文冊) 잔주(注)에도 듣도 보도 못한 말. 만일 패여 땐다면 목신 동증(動症) 조왕(조王) 동증, 목숨 보전 못 할 테니 어서 급히 지고 가서 선 자리에 도로 세우고 왼발 굴러 진언(眞言) 치고 다른 길로 돌아옵소.”
강쇠가 호령하여,
“가사(家事)는 임장(任長)이라 가장(家長)이 하는 일을 보기만 할 것이지, 계집이 요망(妖妄)하여 그것이 웬 소린고. 진(晉) 충신 개자추(介子推)는 면산(면山)에 타서 죽고, 한 장군 기신(紀信)이는 형양(滎陽)에 타서 죽어, 참사람이 타 죽어도 아무 탈(탈)이 없었는데, 나무로 깎은 장승 인형을 가졌은들 패여 때여 관계한가. 인불언귀부지(人不言鬼不知)니 요망한 말 다시 말라.”
밥상을 물린 후에 도끼 들고 달려들어 장승을 쾅쾅 패어 군불을 많이 넣고, 유정(有情) 부부 훨썩 벗고 사랑가로 농탕(弄蕩)치며, 개폐문 전례판(開閉門 傳例板)을 맛있게 하였구나.
이 때에 장승 목신 무죄(無罪)히 강쇠 만나 도끼 아래 조각 나고 부엌 속에 잔 재 되니 오죽이 원통(寃通)켔나. 의지(依持)할 곳이 없어 중천(中天)에 떠서 울며, 나 혼자 다녀서는 이놈 원수 못 값겠다. 대방(大方) 전에 찾아가서 억울함 원정(原情) 하오리라.
경기(京畿) 노강(鷺江) 선창(船艙) 목에 대방 장승 찾아가서 문안(問安)을 한 연후에 원정을 아뢰기를,
“소장(小將)은 경상도 함양군에 산로 지킨 장승으로 신지(神祗) 처리(處理) 한 일 없고, 평민 침학(侵虐)한 일 없어, 불피풍우(不避風雨)하고, 각수본직(各守本職) 하옵더니 변강쇠라 하는 놈이 일국의 난봉으로 산중에 주접(柱接)하여, 무죄한 소장에게 공연히 달려들어 무수(無數) 후욕(후辱)한 연후에 빼어 지고 제 집 가니, 제 계집이 깜짝 놀라 도로 갖다 세워라 하되, 이 놈이 아니 듣고 도끼로 쾅쾅 패여 제 부엌에 화장(火葬)하니, 이 놈 그저 두어서는 동(三冬)에 장작감 근처의 동관(同官) 다 패 때고, 순망치한(脣亡齒寒) 남은 화가 안 미칠 데 없을 테니 십분(十分) 통촉(洞燭)하옵소서. 소장의 설원(雪寃)하고 후환 막게 하옵소서.”

대방이 대경(大驚)하여,
“이 변이 큰 변이라. 경홀(輕忽) 작처(酌處) 못 할 테니 사근내(沙斤) 공원(公員)님과 지지대(遲遲臺) 유사(有司)님께 내 전갈(傳喝) 엿쭙기를 ‘요새 적조(積阻)하였으니 문안일향(問安一向)하옵신지. 경상도 함양 동관 발괄(白活) 원정을 듣사온 즉 천만고 없던 변이 오늘날 생겼으니, 수고타 마옵시고 잠깐 왕림(枉臨)하옵셔서 동의작처(同意酌處)하옵시다.’ 전갈하고 모셔 오라.”
장승 혼령(魂靈) 급히 가서 두 군데 전갈하니, 공원 유사 급히 와서 의례 인사한 연후에 함양(咸陽) 장승 발괄 내력 대방이 발론(發論)하니 공원 유사 엿쭙되,
“우리 장승 생긴 후로 처음 난 변괴(變怪)이오니 소임(三所任)만 모여 앉아 종용작처(從容酌處) 못 할지라, 팔도 동관 다 청하여 공론(公論) 처치하옵시다.”
대방이 좋다 하고 입으로 붓을 물고, 통문(通文) 넉 장 썩 써 내니 통문에 하였으되,
“우통유사(右通喩事)는 토끼가 죽으면 여우가 슬퍼하고, 지초(芝草)에 불이 타면 난초가 탄식(歎息)키는 유유상종(類類相從) 환란상구(患難相救) 떳떳한 이치로다. 지리산중 변강쇠가 함양 동관 빼어다가 작파(斫破) 화장하였으니 만과유경(萬과猶輕) 이 놈 죄상 경홀 작처할 수 없어 각도 동관전에 일체(一切)로 발통(發通)하니 금월 초 경야에 노강 선창으로 일제취회(一齊聚會)하여 함양 동관 조상(弔喪)하고, 변강쇠놈 죽일 꾀를 각출의견(各出意見)하옵소서. 년 월 일.”
밑에 대방 공원 유사 벌여 쓰고, 착명(箸名)하고, 차여(次餘)에 영문(營門) 각읍(各邑) 진장(鎭將) 목장(牧將) 각면(各面) 각촌(各村) 점막(店幕) 사찰차(寺刹次) 차비전(差備前) 차의(差議)라.
“통문 한 장은 진관천 공원이 맡아 경기 십사관(三十四官), 충청도 오십사관, 차차 전케 하고, 한 장은 고양(高陽) 홍제원(弘濟阮) 동관이 맡아 황해도 이십관, 평안도 십이관 차차 전케 하고, 한 장은 양주(楊州) 다락원 동관이 맡아 강원도 이십육관, 함경도 이십사관 차차 전케 하고, 한 장은 지지대 공원이 맡아 전라도 오십육관, 경상도 칠십일관 차차로 전케 하라.”
귀신의 조화(造化)인데 오죽이 빠르겠나. 바람 같고 구름같이 경각(頃刻)에 다 전하니, 조선 지방 있는 장승 하나도 낙루(落漏)없이 기약(期約)한 밤 다 모여서 쇄남터에 배게 서서 시흥(始興) 읍내까지 빽빽하구나. 장승의 절하는 법이 고개만 숙일 수도 없고, 허리 굽힐 수도 없고, 사람으로 의논하면 발 앞부리를 디디고 뒤측만 달싹 하는 뽄이었다. 일제히 절을 하고, 문안을 한 연후에 대방이 발론하여,
“통문사의(通文事意) 보았으면 모은 뜻을 알 테니 변강쇠 지은 죄를 어떻게 다스릴꼬.”
단천(端川) 마천령(摩天嶺) 상봉(上峰)에 섰는 장승 출반(出班)하여 엿쭙기를,
“그 놈의 식구대로 쇄남터로 잡아다가 효수(梟首)를 하옵시다.”
대방이 대답하되,
“귀신의 성기(性氣)라도 토풍(土風)을 따라가니 마천 동관 하는 말씀 상쾌(爽快)는 하거니와, 사단(事端) 하나 있는 것이 놈의 식구란 게 계집 하나뿐이로되, 계집은 말렸으니 죄를 아니 줄 테요, 강쇠라 하는 놈도 부지불각(不知不覺) 효수하면 세상이 알 수 없어 징일여백(懲一勵百) 못 될 테니 여러 동관님네 다시 생각하옵소서.”
압록강가 섰는 장승 나서며 엿쭙되,
“출호이자 반호이(出乎爾者 反乎爾)가 성인의 말씀이니 우리의 식구대로 그 놈 집을 에워싸고 불을 버썩 지른 후에 못 나오게 하였으면 그 놈도 동관같이 화장이 되오리다.”
대방이 대답하되,
“흉녕(凶녕)한 그런 놈을 부지불각 불지르면 제 죄를 제 모르고 도깨비 장난인가 명화적(明火賊)의 난리런가 의심을 할 테니 다시 생각하여 보오.”
해남(海南) 관머리 장승이 엿쭙되,
“대방님 하는 분부(分付) 절절이 마땅하오. 그러한 흉한 놈을 쉽사리 죽여서는 설치(雪恥)가 못 될 테니 고생을 실컷 시켜, 죽자해도 썩 못 죽고, 살자해도 살 수 없어 칠칠이 사십구 한달 열 아흐레 밤낮으로 볶이다가 험사(險死) 악사(惡死)하게 하면 장승 화장한 죄인 줄 저도 알고 남도 알아 쾌히 징계(懲戒)될 테니, 우리의 식구대로 병 하나씩 가지고서 강쇠를 찾아가서 신문(신門)에서 발톱까지 오장육부(五臟六腑) 내외없이 새 집에 앙토(仰土)하듯, 지소방(祗所房)에 부벽(付壁)하듯, 각장(角壯) 장판(壯版) 기름 결듯, 왜관(倭館) 목물(木物) 칠살같이 겹겹이 발랐으면 그 수가 좋을 듯 하오.”
대방이 대희하여,
“해남 동관 하는 말씀 불번불요(不煩不擾) 장히 좋소. 그대로 시행(施行)하되 조그마한 강쇠놈에 저리 많은 식구들이 정처 없이 달려들면 많은 데는 축이 들고 빠진 데는 틈 날 테니 머리에서 두 팔까지 전라, 경상 차지하고, 겨드랑이서 볼기까지 황해, 평안 차지하고, 항문(肛門)에서 두발(頭髮)까지 강원, 함경 차지하고, 오장육부 내복(內腹)일랑 경기, 충청 차지하여 팔만 사천 털 구멍 한 구멍도 빈틈없이 단단히 잘 바르라.”
팔도 장승 청령(廳令)하고, 사냥 나온 벌떼같이 병 하나씩 등에 지고, 함양 장승 앞장 서서 강쇠에게 달려들어 각기 자기네 맡은 대로 병도배(病塗褙)를 한 연후에 아까같이 흩어진다.
 
 
10강 : 판소리의 調 (손종)

판소리에는 악곡의 성질을 나타내는 '調'가 있는데, 여기에는 界面調, 羽調, 平調의 세 가지가 있는데, 중심을 이루는 것은 계면조와 우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계면조, 우조, 평조라는 명칭은 본래부터 판소리에서 쓰이던 것은 아니고, 조선시대부터 정악에서 사용하던 것들을 가져다 쓴 것이다. 계면조는 '설움조', 우조는 '호령조'라고도 하는데, 본래는 이처럼 순 우리말로 일컫다가 나중에 정악 창조의 명칭을 판소리에 들여다 빌어쓴 것으로 보인다. 판소리의 '調'는 구성음, 선율의 형태, 樂想 등과 같은 여러 가지 특성에 따라 결정되는데, 가장 일반적으로는 악상, 곧 창법적 개념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러한 성격을 지니는 정악의 調에 대해 <해동가요>와 <가곡원류>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平調의 성률은 정대하고 화평하다. 슬프되 편안하고, 웅심하며 화평하니 마치 정악의 12율 가운데 기초음인 황종이 한 번 울리니, 만물이 모두 봄을 만난 것 같다. 그리고 羽調는 맑고, 격하고, 씩씩하고, 거세다. 界面調 매우 슬프게 흐느낀다.

1) 계면조와 우조

이러한 성격은 판소리에 그대로 적용되는데, 계면조는 판소리의 가장 기본이 되는 가 된다. 계면조는 전라도 지방의 민요인 ‘육자배기’나 ‘남도 흥타령’같은 기본을 이루기도 하는데, 전라도 민요의 가락을 판소리화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슬프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기 때문에, 슬픈 장면이나 여자의 거동을 묘사하는 데 흔히 사용된다.

우조는 가곡, 시조와 같은 정악의 가락을 판소리화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웅장하고 씩씩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장엄한 장면, 남성다운 장면, 유유한 장면 등에 쓰인다.

평조도 우조와 마찬가지로 가곡, 시조와 같은 노래의 가락을 판소리화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명랑하고 화창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기쁜 장면, 흥겨운 장면에 주로 쓰인다.

2) 경드름과 반경드름, 설렁제

위에서 말한 세 조와 함께 경드름, 반경드름(반드름), 설렁제 등을 조에 포함시키기도 하는데, 이들은 대체로 평조의 하위 갈래에 들어갈 수 있는 것들이다. 경드름은 19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경기도 여주 출신 소리꾼 염계달이 만들어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을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송만갑(1865-1939)이 발전시킨 것으로, '경조'라고도 한다. 이것은 주로 경기도 민요의 선율을 판소리화한 것으로 보면 된다. 경쾌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서울 사람이나 왈자(건달)들의 행동을 그리는 장면에 주로 쓰인다. 「춘향가」에서 이별을 하면서 이도령이 춘향을 달래는 대목이나, 춘향이가 매를 맞았다는 말을 듣고 남원골 한량들이 사또를 욕하는 대목 등에 주로 나타난다.

반경드름은 '반드름', 혹은 '목'이라고도 하는데, 이것 역시 19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경기도 출신의 소리꾼 염계달이 만들었다고 한다. 이것도 경기도 민요의 가락을 판소리화한 것으로 경쾌한 느낌을 준다. 「춘향가」 중에서 방자가 춘향의 잘못이라고 하면서 그 까닭을 따지는 대목이나, 「수궁가에서 용왕이 수궁의 풍류를 베푸는 대목, 세상으로 살아나온 토끼가 자라를 욕하는 대목 등에 주로 쓰인다.

설렁제는 '덜렁제', '권마성조', '드렁조'라고도 하는데, 가마꾼이 가마를 모는 소리인 권마성을 판소리화한 것이라고 한다. 19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 소리꾼 권득이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경쾌하고 씩씩하고 호탕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경박한 인물이 거드럭거리며 외치고 나가는 대목에 주로 쓰인다. 「춘향가」에서 군노 사령이 춘향을 잡으러 가는 대목이나, 「심청가」에서 남경장사 선인들이 처녀를 사려고 외치는 대목, 「흥보가」에서 놀보가 제비를 후리러가는 대목 등이 대표적인 쓰임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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