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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口碑文學의 槪念

수로보니게 여인 2009. 9. 13. 15:31

제1장 口碑文學의 性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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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비문학은 구비전승(oral tradition)의 문학이기에 문학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미적 형상이나 인식을 갖추어야 한다.

단순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말이나 단편적인 욕설, 의미 없는 말장난 등이 구비문학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구비문학은 말로 전승되는 문학이기에 기록문학과 다른 개별성을 갖는다.

구비문학이 모든 문학의 원천이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속되는 문학임을 이해하고, 구비문학의 기본적인 특징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1. 구비문학의 개념을 이해한다.
2. 구비문학의 범주를 파악한다.
3. 구비문학과 기록문학과의 관계를 이해한다.
4. 설화의 개념과 특징, 그리고 범주를 이해한다.

 

 

수이전 
한국의 첫 설화집으로 책은 전해지지 않고, 수록되었던 설화 가운데 10편이 《국유사》를 비롯한 후대의 다른 여러 책들에 각각 실려 전해진다. 저자가 최치원(崔致遠)이라는 설이 있으나 본문 중에 최치원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아닐 가능성이 크다. 김척명(金陟明) 혹은 박인량(朴寅亮)이 저자일 것이라는 설도 있으나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바가 없다

서사무가
‘본풀이’라고도 한다.무속신의 이야기로, 무속의식에서 구연(口演)되므로 무속신화이며, 반주에 맞추어 노래식으로 사연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구비(口碑) 서사시이다. 말과 노래가 교차된다.

지명전설
지명의 유래를 설명하는 전설을 말한다. 

인물전설
역사적 인물을 등장시켜 그 인물의 특별한 행적, 사건 등을이야기하는 전설이다.

각편(Version)
한편의 설화 작품을 지칭하는 용어이다.여러 각편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묶여지면‘類型(Type)’이라 한다.
 
 
구비문학의 전반적인 성격과 그 범주


1. 구비문학의 전반적인 성격


口碑文學이란 문자로 기록되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口傳되는 문학을 가리키는 말이다.  문자로 기록되지 않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시공 속에 나타났다가 살아지는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그것을 만들고 즐기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 지속적으로 저장되고 변화하면서 존재해왔기 때문에 구비문학은 사라지고 생성되는 변화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는 과정을 기본으로 하는 문학이다. 이러한 성격을 지니는 구비문학의 발생과정을 보면 노동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발생 시기는 언어의 발생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보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의사를 전달하는 매체로 생겨난 언어는 먹이를 얻기 위한 노동과정에서 필요에 의해 생겨났을 가능성이 큰데, 의사전달과 신호음으로 노래가 함께 발생했을 것이고, 그것이 바로 구비문학의 모태가 되기 때문이다.

  신호음 같은 것으로 시작되었을 노래는 점차 내용을 가지는 사설이 붙여지게 되었을 것이고, 그것이 민요라는 노래로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설화나 다른 구비문학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쳐 성립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기록을 거부하는 구비문학의 성격 때문에 오래된 자료는 남아있지 않지만, 구비문학은 지금도 생겨나고 있으며 끊임없이 변화하기 있는데다가 기록문학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구비문학이 가지는 중요성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구비문학은 구연되는 현장에서만 살아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올바른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장을 조사해야하며, 이러한 현장성이 사라진 상태에서 하는 연구는 제대로 된 연구라 하기 어렵다는 점이 있다. 따라서 구비문학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는 현장조사가 필수적이 된다. 이번 지상강좌에서는 구비문학의 현장조사 방법에 대해 학습해보도록 한다.


(1) 구전되는 문학이다.

문자로 정착되면 이미 그것은 구비문학이 아니고 기록문학이다. 문자로 정착되는 순간에 구비문학은 그 생명을 다하게 되고 기록문학으로서의 성격만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수많은 기록들에서 보여지는 여러 종류의 구비문학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더 이상 구비문학이 아니다. 그것을 더 이상 구비문학으로 간주하기 어려운 것은 구비문학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현장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구비문학에 있어서 구연 현장이라고 하는 것은 발생, 변화, 소멸의 모든 과정을 포함하고 있는 곳이며, 구전의 주체인 구연자들이 갖는 삶의 현장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구연현장을 떠난다는 것은 구비문학 자체가 생명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생명과 분리된 구비문학은 더 이상 구비문학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구비문학이 구전된다는 것은 인간의 인식 속에서 살아있음을 의미하는데, 이는 사회성을 지니는 공통적 언어 인식이라고 할 수 있는 랑그(langue)를 통해 전해진다. 누군가에 의해 처음 불려지거나 말하여진 민요나 설화 같은 것은 초기에는 파롤(parole)처럼 한 사람에게만 인식된 개별적인 언어현상(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밖으로 표현되어 누군가에게 전달되고(意), 그것을 들은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하여 머리 속에 공통적으로 인식(義)하게 되면 그 순간 그것은 살아있는 언어현상인 동시에 하나의 구비문학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구비문학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에 의해 우선적으로 인정을 받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 하나의 구비문학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들이 삶 속에서 가지고 있는 인식 중에서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으며, 인정될 수 있는 내용으로 꾸며지지 않으면 안 되는 제약 조건을 갖게 된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통으로 지닌 인식의 틀을 벗어난 경우 구비문학 존재의 필수요소라고 할 수 있는 구성원들의 외면을 당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작품은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구비문학의 내용 중에 사랑과 이별, 그리고 성에 대한 것이 중심을 이루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인간이란 존재로 삶을 영위해 가는 사람 중에 이 세 가지를 경험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성적인 내용은 사람뿐만 아니라 식물이나 동물에게도 유용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노래나 이야기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구비문학의 핵심적인 내용이 될 수밖에 없었다. 구전되는 성격을 지녔다는 말이야말로 구비문학의 핵심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현장성이 강조된다.

구비문학은 구전되는 것이기 때문에 구연되는 현장이 매우 중요하다. 중요하다기보다는 구비문학의 본질이 바로 구연 현장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구연현장을 떠나서는 더 이상 구비문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의 절대적 지배를 받는 언어의 제약 때문에 구비문학은 나타나는 순간 사라져 버리는 양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일단 한번 구연된 구비문학은 두 번 다시 같은 형태로 재현될 수는 없게 된다. 따라서 구비문학의 현장성이라고 하는 것은 구비문학이 일회성을 지닌 존재라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구비문학이 일회성을 지니기 때문에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오래 시간에 걸쳐서 남아있을 수 없게 된다. 즉, 구비문학은 보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비문학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그것을 보존하면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나타났고 그 결과 현장성을 최대한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보존하려는 방법들이 속속 나타나게 된다.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이 문자로 기록하는 것이었는데, 앞에서도 서술한 바와 같이 구비문학은 기록문학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화석화된 것으로만 간주해서는 안되는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변형되고 화석화되기는 했지만 현장 정보들을 어느 정도는 담고 있는데다가 녹음이나 녹화 등의 기술이 없었던 시대에는 기록하는 수단이 문자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문자가 담을 수 있는 현장성이 크지 않기 때문에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했는데, 이것은 과학의 발달을 기다려야만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한자로 기록했기 때문에 구비문학의 현장성을 현저히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는데, 우리 문자가 일반화되면서 구비문학의 현장성을 보존하면서 기록하는 것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그 후 현대 사회에 이르러서는 언어를 재생할 수 있는 녹음과 움직이는 동작까지 재생할 수 잇는 녹화 기술이 발달하면서 구비문학을 그대로 조사하고 보존하는 방법이 매우 다양해지게 되었다. 녹음과 녹화야말로 구비문학을 현장 그대로 보존하고 재현하는데 획기적인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3) 삶의 意識을 對象化한다

구비문학은 삶의 일부를 이룬다고 할 만큼 삶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삶을 잘 반영하고 있음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 구비문학이 삶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것은 구비문학이 인간의 삶을 잘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구비문학이 민중의 삶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구비문학이 그만큼 민중의 삶과 밀착되어 있으며 삶을 어떤 형태로든 반영할 수밖에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구비문학은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고 변모되는 것이기 때문에 삶을 존재의 근거로 삼을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어떤 형태로든지 구비문학 속에서 요리하여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구비문학이 인간의 삶을 바탕으로 하여 그것을 형상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것은 구비문학이 가진 성격을 잘 나타내주는 말이기도 하다. 구비문학은 인간의 삶을 반영한다고 했는데, 반영이라고 하는 말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인간이 가지고 있는 意識 속으로 끌어들여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意識 속에서 다시 재구성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녹아서 나타날 수밖에 없게 되는 데, 이것을 우리는 작품에 반영되는 意識이라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구비문학은 인간의 삶을 예술적인 모습으로 對象化하여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어떤 방법을 통해서 對象化하느냐 하는 문제는 차후에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구비문학이 삶을 어떻게 對象化 하고 있는가 하는 것에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對象化라고 하는 것은 인간과 일정한 관계 속에 있는 것을 자신의 意識 속에 수용하여 그것을 다른 모습으로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즉, 對象化는 인간의 意識과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들이 결합하여 그것이 새로운 모습으로 만들어져서 감각적인 모습으로 표현되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모든 사물들을 이와 같은 對象化를 통하여 상대에게 전달하고 의사소통을 하게 된다. 어떤 것을 어떤 방법에 의하여 對象化 하느냐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인간의 모든 행위는 무엇인가의 對象化일 수밖에 없다. 즉, 기계를 만드는 사람은 기계를 만드는 재료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결합하여 하나의 기계를 만들어내는데, 이 때 그 기술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기계는 기술자가 가지고 있는 기술이 對象化 한 것이다. 즉 對象化는 인간이 가진 정신적인 어떤 것을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모습을 가지는 것으로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구비문학은 인간이 살고 있는 삶을 소재로 하여 그것을 인간의 意識과 연결시켜 意識에 반영된 것으로 對象化 함으로써 삶을 形象的으로 반영한다. 그러므로 구비문학은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연결시켜 하나의 구체화된 모습으로 나타내는 존재인 것이다. 구비문학은 이런 의미에서 意識의 對象化物이고, 그 속에는 구비문학을 구연하는 민중의 意識이 반영되어 있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4) 삶의 藝術的 反映物이다

구비문학은 민중의 삶 속에서 구연되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민중의 삶과 그 운명을 같이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구비문학은 민중의 삶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항상 그 속에서 생겨나고 사라지는 운명을 가진 존재이다. 구비문학은 삶을 사실적으로 반영하기 때문에 삶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구비문학이 삶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바로 민중의 삶 속에서 구비문학이 어떠한 모습으로 구연되는가 하는 것도 삶의 현장에서 의해서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구비문학의 형태는 삶의 모습에 영향을 받아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비문학의 형태가 삶의 모습에 영향을 받아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구비문학이 삶의 어떠한 현장에서 불려지는가 하는 것에 따라 그 모습이 결정된다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구비문학이 삶을 반영한다고 하여 그것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구비문학은 예술의 한 갈래이기 때문에 삶을 반영함에 있어서 예술적으로 반영한다. 예술적으로 반영한다는 말은 삶의 여러 모습들이 그대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지닌 변형을 통해 반영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것을 예술적 반영이라고 하는데, 좀더 쉽게 설명하자면 뼈만 있는 몸에 살을 붙이고 옷을 입혀서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 바로 구비문학이 삶을 예술적으로 반영한다는 말이다. 슬픔을 슬픔 그대로 반영하고, 쾌락을 쾌락 그대로 반영한다면 굳이 예술이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슬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 의식을 정화하고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바로 예술이기 때문에 인류는 오래 전부터 예술을 통해 울고 웃으며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구비문학을 통해 반영되는 인류의 삶은 바로 아름다움으로 승화된 모습이 되는 것이다. 구비문학이 삶을 예술적으로 반영한다는 것을 작품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상주모심기노래에서 보면 이런 대목이 불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모시야 적삼 안섶 안에 연적같은 젖좀 보소, 많이야 보면 병난단다 담배씨 만치만 보고가소” 남성과 여성이 서로 주고받는 형식으로 구연되는 이 노래의 주제는 물론 성(性)이다. 그러나 성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예술적으로 변형시켜 표현함으로써 부르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남성들이 여성의 가슴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연적과 연결시켜 나타내고, 여성들이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담배 씨 만큼만 보고 가라는 말로 받음으로써 여기서 보여지는 남녀의 성은 적나라하여 추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미소를 머금게 하는 아름다움으로 보여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삶을 반영하는 방식이 예술적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삶을 더욱 풍부하고 살찌게 할 수 있는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되는 것이다.

 

구비문학론 인터넷 보충학습자료 1


◉ 서나라의 서언왕 신화

☞ 동명(주몽) 신화와 견주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박물지>

  徐偃王志云 (A) 徐君宮人 娠而生卵 以爲不祥 弃之水濱 獨孤母有犬 名鵠蒼 獵于水濱 得所弃卵 㗸以東[來?]歸 獨孤母以爲異 覆煖之 遂沸成兒 生時正偃 故以爲名 徐君宮中聞之 乃更錄取 長而仁智 襲君徐國 後鵠蒼臨死 生角而九尾 實黃龍也 偃王又葬之徐界中 今見云狗襲[壟?] 偃王旣主其國 仁義著聞 欲舟行上國 乃通溝陳蔡之間 得朱弓矢 以已得天瑞 遂因名爲弓 自稱徐偃王 (B) 江淮諸侯 皆伏從 伏從者三十六國 周王聞之 遣使乘驛[駟?] 一日至楚使伐之 偃王仁 不忍鬪[聞?]害其民 爲楚所敗 逃走彭城武原縣東山下 百姓隨之者 以萬數 後遂名其山爲徐山 山上立石室 有神靈 民人祈禱 今皆見存

  (<博物志> 第7卷)


  <박물지>

<서언왕지>에 이렇게 쓰여 있다.

(A) 서나라의 궁녀가 잉태하여 알을 낳자, 이를 상서롭지 못하다 여겨 물가에 내다 버렸다. 홀로 사는 여자에게 곡창(鵠蒼)이라 부르는 개가 있었는데, 그 개가 물가에 사냥을 나갔다가 버려진 알을 주워서 입에 물고 돌아왔다. 그녀가 이상하게 여기며 알을 따뜻하게 덮어주니, 마침내 (알에서 깨어나) 아이가 되었다. 태어나면서 반듯이 누운 까닭에 이름을 언(偃)이라고 불렀다. 서나라 궁중에서 이 소식을 듣고, 다시 관계를 인정하여 데려갔다. 그 아이는 커서 어질고 슬기로워 서나라의 왕위를 이었다. 나중에 곡창이 죽음에 이르자 뿔이 나고, 꼬리가 아홉 개나 나왔다. 사실은 황룡(黃龍)이었던 것이다. 언왕이 이 개를 서나라 땅에 묻어 주었다. 지금도 그곳에 구롱(狗壟)이라는 개무덤을 볼 수 있다. 언왕이 그 나라를 다스림에 이미 어질고 의리가 있다고 소문이 높았다. 배로 상국(上國)을 가려고, 진(陳)나라와 채(蔡)나라 사이에 운하를 파서 왕래하였다. 붉은 활과 화살을 얻었는데, 이제는 하늘의 상서를 얻었다고 하여 드디어 이름을 궁(弓)이라 이름짓고, 스스로 서언왕이라 불렀다.

  (B) 강수(江水)와 회수(淮水) 부근의 제후들이 모두 복종하였으니, 복종하는 나라가 서른 여섯이나 되었다. 주(周)나라 임금이 이 일을 듣고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에 사신을 태워 하룻만에 급히 초나라로 들어가게 해서, (초나라에게 명하여) 서나라를 정벌하게 하였다. 언왕은 어질어서 그 나라의 백성들이 초나라에 의해 패했다는 말을 차마 들을 수 없다며, 팽성 무원현 동산(東山) 아래로 도주하였다. 이에 백성들도 왕을 따르니 수만 명이나 되었다. 후에 그 산은 서산(徐山)이라 불려졌다. 산 위에는 석실(石室)이 세워졌는데, 신령함이 있어서 사람들이 그곳에서 기도하였다. 지금도 모두 그대로 있다.

  (<박물지> 제7권)


  ◈ <수신기>

古徐國宮人 娠而生卵 以爲不祥 棄之水濱 有犬名鵠蒼 銜卵以歸 遂生兒 爲徐嗣君 後鵠蒼臨死 生角而九尾 實黃龍也 葬之徐里中 見有狗壟在焉

 (<搜神記> 卷14)


  <수신기>

  옛날 서(徐)나라의 궁녀가 잉태하여 알을 낳자, 이를 상서롭지 못하다 여겨 물가에 내다 버렸다. 그런데 곡창(鵠蒼)이라 불리우는 어떤 개가 그 알을 물고 다시 돌아왔다. 드디어 그 알에서 아이가 태어나 결국 서나라의 사군(嗣君 ; 곧 태자)이 되었다. 나중에 곡창이 죽음에 이르자 뿔이 나고, 꼬리가 아홉 개나 나왔다. 사실은 황룡(黃龍)이었던 것이다. 이를 서나라 땅에 묻어 주었는데, 지금도 구롱(狗壟)이라는 개무덤을 볼 수 있다.


  ◈ <후한서> 동이열전

博物志曰 徐君宮人 娠而生卵 以爲不祥 棄於水濱 孤獨母有犬 名鵠蒼 持所棄卵 銜以歸母 母覆暖之 遂成小兒 生而偃 故以爲名 宮人聞之 乃更錄取 長襲爲徐君 尸子曰 偃王 有筋而無骨 故曰偃也

  (<後漢書> 卷八十五 東夷列傳 第七十五)


  <후한서> 동이열전

<박물지>에 이렇게 쓰여 있다. 서(徐)나라의 어떤 궁녀가 잉태하여 알을 낳자, 이를 상서롭지 못하다 여겨 물가에 내다 버렸다. 홀로 사는 여자에게 곡창(鵠蒼)이라 부르는 개가 있었는데, 그 개는 버려진 알을 주워서 입에 물고 주인에게 돌아왔다. 그녀가 알을 따뜻하게 덮어주니, 마침내 아이가 되었다. 태어나면서 누운 까닭에 이름을 언(偃)이라고 불렀다. 궁녀가 그 소식을 듣고, 다시 관계를 인정하여 데려갔다. 그 아이는 커서 서나라의 왕위를 이었다. 시자(尸子)가 말하기를, ‘언왕은 근육은 있어도 뼈가 없었기 때문에, 언(偃)이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후한서> 85권, 동이열전 제75)

 

 

구비문학론 인터넷 보충학습자료 2


◉ 東北亞 <男妹日月起源傳承> 類型 읽기 : <남매혼>과 <해와 달이 된 오누이>

男妹婚과 일월의 생성이라는 측면에서 동북아시아의 관련 전승과 견주어 살필 단서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경우는 널리 알려진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전승된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1)


① (上略)

② 호랑이가 막내인 젖먹이를 잡아먹었다.

③ 오누이가 그 광경을 보고 나무 위로 올라갔다.

④ 호랑이가 올라가는 방법을 물으니 누이동생이 실수를 하여 위기에 처했다.

⑤ 오누이가 하늘에 기원하여 동아줄을 타고 올라갔다.

⑥ 호랑이가 썩은 동아줄을 타고 올라가다 떨어져 죽었다.

⑦ 하느님이 오누이에게 해와 달이 되어 일을 하라고 명했다.

⑧ 누이동생이 달이 되어 밤에 다니기가 무서워 오라버니에게 바꾸자고 했다.

⑨ 오라버니가 승낙하여 누이동생이 해가 되었다.

⑩ 누이동생은 사람들이 쳐다보아 부끄러워 강렬한 빛을 내어 사람들이 쳐다보지 못하게 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가장 큰 특징은 어머니의 不在와 日月의 不在 현상이다. 어머니의 不在는 오누이만의 일종의 ‘隔離’를 초래한다. 日月의 不在는 태초의 시절로 회귀한 양상이다. 인류의 대홍수가 있어서 인류가 모두 사라지고 오누이만 남게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혹은 신의 뜻을 얻은 후에 남매혼을 성립시키는 상황과 꽤나 近似한 측면이 있다.

다음의 滿族 資料를 하나를 보기로 한다.


<太陽和月亮的來歷(태양과 달의 내력)>2)

① 아득한 옛날에 하늘에는 해와 달도 없었고 지상에는 칠흑같이 어두워 하늘과 땅을 나누어 말할 수 없었으며, 사람의 두 눈으로 어느 것을 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② 사람들 가운데 親 兄妹가 있었는데, 사람들을 위하여 광명을 찾기로 결심하고 고난을 이기고 西天의 佛祖에게로 찾아갔다.

③ 佛祖는 兄妹에게 초롱등불(灯籠) 하나와 날아다니는 신발(飛鞋) 한 켤레를 주었다.

④ 누이동생이 飛鞋를 신고 날아다니는 듯 다니자 오빠는 아무리 해도 쫓아가지 못하고 누이동생을 찾는 소리만 질러댔다.

⑥ 그 소리가 佛祖에게 전해졌는데, 佛祖가 오빠에게 거울 하나를 보내주었다.

⑦ 오빠가 거울을 비추면 누이동생의 그림자가 나타나 쫓아갈 수 있었다.

⑧ 그 시절에는 사람들이 옷을 전혀 입지 않았기에 거울 속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⑨ 누이동생이 부끄러워 고개를 돌려 앞에서 달아나면 오빠가 뒤에서 쫓아가고 하면서 둘은 하늘로 올라갔다.

⑩ 누이동생의 손에 있던 등불은 태양이 되고, 오빠의 손에 있던 거울은 달이 되었다.


위의 신화에는 남매혼의 標識가 확인되지 않는다. 그런데 중국 내 소수민족들 사이에 빈번하게 확인되는 남매혼 전승 가운데 남매혼 성립의 요건으로 오라버니가 누이동생을 뒤쫓아 가는 방식을 설정한 것이 있다. 누이동생은 오라버니로 하여금 자신을 쫓아오게 하고 자신이 잡히면 결혼을 하겠다는 것이 남매혼 성립의 요건인 셈이다. 동생은 산이나 나무를 돌아서 달렸는데 오라버니는 누이동생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런데 오라버니가 거북이나 다른 동물의 계시에 반대 방향으로 쫓았더니 누이동생을 따라잡았으며 둘은 결혼하여 인류를 다시 잇게 하였다는 것이 그 대강의 내용이다.3) 滿族의 전승에서 아무런 이유없이 오라버니가 누이동생을 쫓아가는 행위는 男妹婚의 痕迹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하사크(哈薩克) 족의 신화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한다.


두 명의 男女가 있었는데 이름을 阿娼阿塔과 阿娼阿娜라 했다. 魔鬼가 그들의 결혼을 방해하는 바람에 그들은 하늘로 올라갔는데, 남자는 해가 되고 여자는 달이 되었다. 지금도 서로를 찾으러 다니고 있다고 하는데, 만날 수 없으니 항상 고통스러운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은 바로 눈과 비이다.4)


오라버니의 누이동생 따라잡기와 일월의 생성이 한 곳에 묶여 나타나는 양상을 남매혼의 결과 인류의 새로운 시작과 일월의 생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포괄적으로 다룰 수 있는 가능성으로 남겨두면서 차후 일반론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오누이 가운데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찾아다니는 양상이 한국의 사례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오누이가 日月이 되어 천상에서 그저 놀고먹을 수 없으니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으로 노동을 대신했다고 하는 설정은 일월의 순환을 달리 설명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볼 수밖에 없겠다. 오누이가 일월생성의 기원이 된 사정은 다른 방식으로도 전승된다. 손진태의 채록 자료 둘을 아래에 간략하게 소개한다.


【1】

① 옛날 하느님에게 두 오누이가 있었다.

오빠는 해가 되고 누이동생은 달이 되었다.

③ 누이동생이 오빠에게 달은 사람들이 다 보고 있으니까 싫다고 하면서 일월을 바꾸자고 했다.

④ 오빠는 해가 남자의 기상이라며 반대하고 누이동생의 눈을 굴뚝으로 찌르고 으깨 버렸다.

⑤ 오빠가 누이동생을 불쌍하게 여겨 해를 양보하고 자신은 달이 되었다.

【2】

① 옛날 두 오누이를 둔 어머니가 있었다.

② 오누이는 사이가 나빠 늘 싸움만 했다.

③ 오빠가 동생의 눈을 침으로 찔러 죽였다.

④ 어머니는 오빠를 감금하여 굶겨 죽였다.

⑤ 그 후 동생은 해가 되고 오빠는 달이 되었다.

⑥ 동생은 침으로 눈을 찔렸기 때문에 지금도 센 빛을 발하고, 사람들의 눈을 눈부시게 한다.5)


전자는 천신의 자녀로 설정되어 일월의 기원이 된 연유가 자연스럽게 해명될 수 있게 했다. 후자는 예사 사람의 자녀였다가 해와 달이 된 내력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두 자료에서 우리는 男妹婚을 감행한 오누이에서 가장 극단적인 대척점에 서 있는 오누이를 만나게 된다. 금기를 넘어선 결합과 극단적인 대립 사이의 거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의 天照大神과 月讀命의 관계가 다시 관심을 끈다. 전자는 太陽神이고 후자는 月神이다. 이 둘은 각각 伊獎諾尊의 三貴子 가운데 두 神인데, 각각 낮과 밤을 맡아 다스린 연유가 흥미롭다. 아래에 해당 부분을 제시한다.


伊獎諾尊은 세 주(柱)의 자신(子神)에 칙명(勅命)하여, “天照大神은 高天原을 다스려라. 月夜見尊은 해의 신과 나란히 하늘을 다스려라. 素戔嗚尊은 靑海原을 다스려라”고 하였다. 이미 天照大神은 천상에 있어서, “위원중국(葦原中國)[아시하라노나가쓰구니]에 보식신(保食神)[우게모치노가미(食物)을 주재하는 신)이 있다고 듣고 있다. 月夜見尊, 네가 가서 보고 오너라.”고 하였다. 그래서 月夜見尊은 그 칙명을 받고 지상에 내려와 드디어 保食神이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그랬더니 保食神이 머리를 돌려 땅[國]으로 향하니 입에서 밥이 나왔다. 또 바다[海]로 향하니 지느러미[鰭]가 넓은 것, 좁은 것(大小의 漁獲物)들이 입에서 나온다. 또 산으로 향하니, 털이 거친 것, 털이 부드러운 것이 또 입에서 나온다. 그 여러 가지 물건을 다 갖추어서, 백개(百箇)나 될 많은 것을 책상 위에 쌓아 올려놓고 대접하였다. 이 때 月夜見尊은 노하여 얼굴을 붉히며, “참으로 더럽고도 천하구나. 이 나를 대접하는 데 어찌하여 입에서 토한 것을 쓰느냐”하고 칼을 빼어 죽여 버렸다. 그리고 나서 자세히 그 상황을 天照大神에게 보고하였다. 天照大神은 그 말을 듣고 크게 화를 내면서, “너는 악한 神이다. 다시 너를 만나지 아니하리라” 하고, 月夜見尊과 일일일야(一日一夜)동안 떨어져 살았다.6)


三貴子 가운데 둘이 父神이자 絶對神인 伊獎諾尊의 명에 의하여 日神과 月神이 되었는데, 월독명(月讀命/月夜見尊)의 행위로 인하여 日神과 月神이 각기 만나지 못한 결과 일월의 순환이 생겨났다고 하는 신화적 발상을 드러낸다. 앞의 자료와 견주어 보면, 일월이 된 두 신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어느 정도 표면에 드러내었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인정할 수 있다.

여기서 月讀命은 여신인가, 남신인가. 요시다 아츠히코는 여신으로 확정하고 논의를 전개하지만7) 여신이라는 명확한 증거는 찾기 어렵다.8) 우리가 주목할 점은 天照大神이나 月讀命 모두 地上 出處의 神들이라는 점인데,9) 인간 세상의 오누이가 천상의 일월이 된 사정과 상통하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伊獎諾尊라는 절대신이 있어 자신의 삼귀자 가운데 둘에게 일월의 신이 되도록 하는 설정은 신의 개입과 姉妹 혹은 姉弟의 日月起源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10)

그런데 “오누이 간의 대립”을 설정해 놓은 이면적 의미를 거듭 살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남매혼의 금기를 넘어서면서까지 누이동생에게 다가섰던, 그리고 죽음의 문턱에서 함께 생존하려했던 오라버니가 누이동생의 요구와 행위에 극단적인 대응을 한 사정을 통해, 동일한 결과를 놓고 전혀 상반되는 원인이 개재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굴뚝과 침으로 누이동생의 눈을 찔러 으깨어 버린 오라버니, 누이동생을 危害한 대가로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오라버니의 행적에서 우리는 오누이 사이를 격리시키려는 일종의 폭력을 감지하게 된다. 남매혼의 금기를 지속시키기 위한 또 하나의 방편일 가능성을 제기해 보는 것이다. 天照大神과 月夜見尊의 관계 역시 대립의 결과 일월의 순환이 생겨났다고 했는데, 중요한 점은 天照大神에 의해 악한 신으로 규정되어 버린 月夜見尊이 素戔嗚尊와 달리 더 이상 신적인 행위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다는 데에 있다.11)

  

구비문학론 인터넷 보충 1강


설화와 탐색 모티프


일반적으로 완결된 형식을 지니고 있는 설화들은 작중 인물이 서두 부분의 결여 상태를, 난제 해결 또는 시련 극복 따위의 과업을 수행함으로써 해소시키는 결과로 되어있다. 이때 과업 수행의 단계는 작중 인물의 여행 및 탐색의 형태로써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탐색 모티프는 본격설화의 가장 중심적인 모티프가 되는 셈이다.

 매우 복잡한 모티프들의 결합으로써 이루어진 설화의 중심 모티프는 ‘탐색’이라 할 수 있다. 탐색은 인간의 경험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고 흥미를 자아내는 ‘이야깃거리’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이야기, 즉 서사문학 속에서 늘 반복 표현되어 왔다.

오오든은 전형적인 탐색담의 필수적 요소로서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를 들고 있다.

① 귀중한 물건이나 인물 ② 여행 ③ 영웅 ④ 시련 ⑤ 파수꾼 ⑥ 원조자들이 그것이다.

탐색담은 일반적으로 ‘영웅이-결실물을 찾아-여행하는 도중-시련을 겪게 되나-원조자의 도움으로 결국은 성공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다만 모든 탐색의 대상이 반드시 파수꾼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파수꾼의 요소는 차라리 영웅이 흔히 부딪히게 되는 ‘장애자’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다.

 탐색담에서 탐색의 주체자는 인간이거나 비인간이다. 탐색의 주체자는 결핍되고 고립된 상태에 처하여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이 그들에게 결핍이나 고립의 해소를 요구하게 되고, 탐색으로 나아가게 하는 계기가 되게 한다. 탐색담에 나타나는 원조자는 대체로 초인적인 존재이다. 그들의 원조의 유형은 ① 길 안내 등의 정보 제공 ② 탐색에 필수적인 물건 제공 ③ 동반자로써의 동행 등으로 나타난다. 탐색의 성공은 대체로 영웅이 지닌 품성이나 재능, 지혜의 탁월함 때문에 이루어지게 되는데, 앞의 경우는 응보의 형태를 취하는 예가 많고, 뒤의 경우는 싸움이나 경쟁의 형태를 취하는 예가 많다. 때로는 영웅의 성공이 ‘우연의 행운’에 의해 이루어지는 수도 있다. 탐색의 출발은 ① 괴물 추적 ② 축출 ③ 자진 ④ 이들의 혼합 형태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오오든은 탐색담의 전형적인 예로서 그림 동화 중의 「생명수」 이야기를 들고 있다. 주인공인 셋째 왕자는 부왕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생명의 물’을 가져오기 위하여 온갖 난관을 극복하여야만 하는 긴 여행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찾아야 할 대상물은 종종 지하계 즉 저승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지역을 통과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불사성을 획득하는 것이 된다. 이계로의 여행은 전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셋째 왕자는 지팡이를 두드려 성문을 열고 빵을 던져 문을 지키던 사자들을 달래었다. 물론 저승 탐색이 반드시 성공으로 끝난다는 법은 없다.

 오오든이 탐색담의 전형적인 예로서 「생명수」 이야기를 들고 있는데 비하여, 프로프는 「용퇴치자」 이야기를 들고 있다. 괴물 탐색담과 아울러 또 하나의 대표적인 탐색담은 가족 탐색담이라 할 것이다. 가족 중에서도 부친 , 남편, 아내 찾기가 일반적으로 나타난다. 괴물 탐색, 가족 탐색 외에 탐색담의 주요한 것으로는 약물 탐색과 실물 탐색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설화에 나타난 탐색 모티프를 요약·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탐색이란 결여된 사물을 찾기 위해 온갖 시련을 겪어야 하는 여행을 함을 뜻한다.

② 탐색담의 필수적인 요소로는 귀물이나 인물, 여행, 영웅, 시련, 장애자, 원조자들이다.

③ 탐색담은 일반적으로 영웅이 결실물을 찾아 여행하는 도중 시련을 겪게 되지만 원조자의 도움을 얻어 마침내 성공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④ 탐색담에서, 탐색의 주체자는 인간이나 비인간이다.

⑤ 영웅이 탐색의 과정 중에서 만나게 되는 장애자는 탐색의 대상 자체, 또는 그 대상의 약탈자, 이익을 가로채려는 동반자, 상층 계급, 마음씨 나쁜 가족 등으로 나타나는 반면 원조자는 대체로 초인적 존재들로 되어 있다.

⑥ 탐색담에 등장하는 탐색의 대상은 인물, 사물, 공간, 운명 등이다.

⑦ 탐색의 출발은 괴물 추적, 축출, 자진, 혼합 형태의 양상을 띤다.

⑧ 대표적인 탐색은 괴물 탐색 및 가족 탐색이며, 그밖에 약물 탐색과 실물 탐색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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