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³οοШёlСомЁοο /´˝˚³οο골방 글쓰기

글쓰기의 기초/ 박태상

수로보니게 여인 2009. 8. 23. 11:09

 

 

 

 

[글쓰기의 기초] 제 1강>

글쓰기의 절차

국문학과 교수 박 태 상


글을 쓰는 행위는 건축물을 창조하는 행위에 비유할 수 있다. 하나의 건축물을 창조하려면 우선 그 동기나 목적에 따라 건축의 양식이 결정되어야 하고 설계도가 작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설계도에 따라 건축재료를 조립해 나가되, 먼저 건축물의 기초와 뼈대를 구축하고, 이어서 최종 마무리를 짓는다.

한편의 글을 완성하는 데에도 대체로 이와 비슷한 과정과 절차를 밟아 나가기 마련이다. 우선 글을 쓰려는 의도나 목적(‘주제’)이 확정되면, 그러한 의도를 가장 적절히 드러낼 수 있는 양식을 선택하고, 이어서 그러한 의도와 양식을 드러내기에 적절한 소재와 자료를 마련하고 정리하면서 그것을 기초로 하여 글의 뼈대를 엮어 짜게 된다. (‘구상’)

그리고 이에 따라 구체적인 세부 작업으로 들어가서 글의 각 부분을 실제로 작성해 나가게 되는데, 이때 설득력 혹은 공감을 최대한으로 획득하기 위해 수사상의 장식과 형식 장치 및 표현 기교를 적절히 이용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성립된 글(‘초고’)은 다시 마무리 작업으로서 글다듬기(‘퇴고)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비로소 완성을 보게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야기 거리, 곧 제재를 일정한 양식과 구도로 기술하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제재란 주제, 소재, 화소 등을 총칭하는 것이다. 제재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하고도 우선적으로 설정해야 할 것이 주제다. 주제란 한 마디로 글 속에 구현된 필자의 의도 또는 이념이라고 요약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주제는 글 속에 담겨진 필자의 핵심적인 구상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네 가지 조언

어떻게 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여기에는 단 하나의 법칙만 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으면 자주 글을 써봐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1. 두려움을 없애라

글을 쓰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리는 것이다. 글을 시작하기란 어렵다. 문학이론 중에는 작품들의 첫 단락만을 연구하여 작품의 특징을 밝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누구든지 글을 시작하기가 가장 어렵고 모든 정성을 다하는 만큼, 그 안에서 작가가 앞으로 전개할 문체와 내용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특히 학교에 있다 보면, 글에 담을 내용은 있으면서도 미처 글로 작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견된다. 그것은 바로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논문을 작성하려는 학생들의 경우도 시작을 못하고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학생들에게 일단 글을 시작하라고 충고한다. 나중에 히 수정하고 불필요한 부분을 삭제하게 되더라도 글 혹은 논문이라는 결과물을 효과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일단 글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생각하기

우리 모두는 할 말도 많고 생각도 많지만, 막상 조이를 주고 쓰라고 하면 당황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를테면 출석강의 중에 A4용지 다섯 장씩을 주고 오늘 배울 강의 주제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여 써보라고 하면, 모두들 당황하는 기색을 보인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1장도 채우기 어려운 판에 5장을 나눠주다니, 다들 한숨만 쉬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우리는 종이에 우리의 생각을 적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아주 중요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글을 쓰는 동안 더 많은 생각이 생긴다는 사실이다. 즉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난다.


3. 수정하기

누구나 글을 쓰지만 초고에서 멋진 글을 완성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우선 먼저 글을 쓰고 다음에 시간을 두고 수정을 하게 마련이다. 수정의 이유는 명확한 문장을 쓰기 위해서다. 우리는 위대한 작가가 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어려운 말을 쓰려고 할 필요도 없고, 어려운 문체와 복잡한 문장을 사용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단지 분명하게 우리가 말하려고 하는 바를 말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글을 읽을 독자들이 우리의 생각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를 제안하자면 간결하고 분명한 문장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가장 유려한 문장을 구사한다는 우리나라 작품을 외국어로 옮기다 보면, 동어반복이 너무 많고 문장에도 오류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형용사와 부사를 다양하게 사용하여 겉으로는 웅장해 보일지 모르지만, 찬찬히 읽어보면 결국은 의미의 집약성이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신문기사나 사설도 예외는 아니다. 너무 과도하게 복잡한 문장은 혼란만을 야기한다.


4. 능동적 글쓰기

좋은 글을 쓰려면 능동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글을 쓰는 순간 수많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왜 내가 여기에 이런 문장부호를 쓰는 것일까 맞춤법은 맞을까 이런 것을 어떻게 다른 식으로 말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다른 문단을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앞생각과 뒷생각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등등을 생각해야 한다. 

 

글을 쓰다보면, 전체적인 내용과 맞지 않더라도 너무나 좋은 말이라 글 속에 삽입하려고 애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경우 과감하게 삭제하라고 권하고 싶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전체적인 내용에 어긋난다면, 해가 될 뿐이다.



1)주제 설정의 요건

주제는 우선 명확하고, 호소력있는 것이어야 한다. 주제가 불분명하거나 지나치게 광범위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글을 시작해야 할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따라서 명확한 주제를 설정하는 것이 주제 선택의 일차 관건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가 잘 알고 있거나 관심을 갖고 있는 제재 가운데서 주제를 설정하되, 그 주제를 되도록 좁혀서 설정해야 한다.

주제를 선택할 때는 몇 가지 주의할 사항이 있다.

첫째, 자신이 많이 알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를 선택해야 한다. 즉 지식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테마를 정하는 것이 요구된다는 말이다. 주제선택에서 글 쓰는 이가 가장 잘 알고 가장 깊이 있게 느끼고 있는 것을 택할 때 가치가 있게 된다. 지식과 정보가 풍부하면 할수록 또 신념이 깊으면 깊을수록 글쓰기의 효과는 크게 증대될 것이다. 따라서 글 쓰는 이의 교양과 전문지식이 가장 중요한 저장고가 된다. 다른 말로 한다면 글 쓰는 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를 택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 되겠다.

글쓰기는 우리를 편안하게 한다. 또 자신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 글을 쓰면서 문제점을 정리하고 결정을 심사숙고하며 새로운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가끔 글쓰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수도 있다.

어떤 원인에 따라 우리는 상황에 보다 정확히 대처하려는 욕구를 갖는다.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것이 글쓰기이다. 그러나 막상 글을 쓰기 위해 사물을 관찰하고 시간을 투자하는 일에는 머뭇거린다. 아니면 용기를 내 써야 할 것에 대해 잡다하게 생각하지만 펜을 들면 더 이상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글을 쓰지 않거나 조금 긁적이면서 진부한 이야기를 쓰다가 결국 체념한 채 펜을 놓게 된다. 우리가 쓰려는 주제는 목구멍에 걸려있는 덩어리처럼 조금도 풀리지도, 줄어들지도 않는다. 대신 새로운 문제점이 부각된다. 바로 글쓰기의 어려움이다.

이러한 글쓰기의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은 바로 자신만이 잘 알고 관심이 많은 분야에서 테마나 소재를 구해서 글을 쓰기 시작하라는 충고이다. 

둘째, 풍부한 자료를 가지고 있는 분야를 주제로 선택해야 한다. 글 쓸 때는 그것이 실험적인 글이 되었든지 연구결과를 보고하는 것이 되었든지 간에 항상 자료가 충실한 경우에만 글쓰기를 해야 한다. 특히 리포트 등의 경우 참고문헌의 풍부한 수집이 제일 우선되어야 한다. 자료가 충분하지 못하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글이 되기 어렵다. 즉 그런 경우는 아주 피상적인 글이 되기 쉽고, 글쓴이 주변의 신변잡기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같은 역사 분야를 다뤄도 신라시대나 고려시대 같은 고대사를 다룬다면, 참고할 자료가 극히 한정적일 것이다. 반면 현대사나 당대사를 다룰 경우 자료가 차고 넘친다. 다만 제대로 된 자료 소장처를 찾아내는 일이 중요하다. 혹자는 이 시대를 일러 ‘노하우’ 가 아닌 ‘노웨어 know-where’의 시대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료는 도처에 있다. 문제는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를 몰라서 사용하지 못하는 것 일뿐이다.

대개의 아날로그 자료는 도서관에 제일 많다. 특히 서초동 언덕에 있는 국립중앙도서관이나 여의도 국회 안에 있는 국회도서관이 이들 가운데는 가장 유용하다. 두 곳 모두 자료 가운데 상당수가 이미 디지털화되었다. 데이터베이스 검색을 통해 이용이 가능하며, 어떤 자료의 경우 편집상태의 원문 그대로 PDF로 볼 수도 있다. 특히 이 두 곳의 경우 도서 자료는 물론 고신문 등 다양한 형태의 자료도 소쟁돼 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소장처는 대학도서관이다. 다만 대학도서관은 본교 재학생에게만 한정적으로 이용을 허락하고 있다는 점이 아쉬움이다.

자료수집에서 유념해야 할 또 한 가지는 수집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수 천 권의 책이 있더라도 창고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으면 제대로 된 한 권을 갖지 못한 것과 같다. 자료는 양보다는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분류, 가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셋째, 글 쓸 당시에 독자들의 흥미와 주의를 끌만한 테마를 정하는 것이 요구된다.

어떤 글이든 시의성과 흥미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글의 윤기는 흐려지기 마련이다. 글이란 언어의 본질을 활용하는 것이므로 항상 글을 읽는 사람의 상황도 인식해야 한다. 독자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 테마를 정할 경우는 흥미도와 신선도를 떨어뜨려 글의 생명성이 죽게 마련이다. 항상 독자를 고려한 주제의 선정은 글쓰기에 있어서 필요충분조건이 될 것이다.

넷째, 주제의 선정에는 반드시 한정적인 범주의 테마를 정해야 한다는 원칙이 요구된다. 글쓰기에 있어서 초보적인 사람일수록 주제의 범위를 너무 크게 잡아 자신의 능력을 초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되도록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글로 유도하게 되기도 한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테마의 범위를 좁게 잡아 생동감있고 짜임새있는 글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2) 주제 설정의 방법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주제를 설정해 나갈 것인가 이를테면 백일장이나 교양과목의 과제물에서 '남북통일 방안에 대해 설명해 보라’라든지, ‘인터넷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 말해보라’라는 주제를 주었다고 가상해보자. 첫 번째 테마는 2000년 6월 15일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후에 학계나 언론계에서 자주 거론되어온 테마이다. 하지만 위의 주제는 너무 범위가 넓다고 하겠다. 남북관계에 대한 접근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범주를 좁히는 것이다. 남북통일 방안 중에서 남북한 사람끼리의 이질성을 좁히는 방안에 대해 서술해 보는 것으로 범주를 좁히는 것이 필요하다. 이질성을 없애는 방안으로는 남북한 사람끼리 빈번한 접촉을 갖는 것이 최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스포츠나 문화예술 분야부터 접촉을 늘여 가는 방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으로는 100만 명에 이르는 남북 이산가족의 상봉을 추진하는 방안이 제기될 수 있다. 그 외에도 학술적인 교류의 확대를 가져오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이를테면 언어적인 이질성의 극복 방안 마련과 민족 동질성 확보를 위한 역사적인 배경연구 등이 있겠다.

‘인터넷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 말해 보라‘의 테마도 마찬가지이다. 이경우도 논의의 범주를 좁히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를테면 전자상거래 부문을 대상으로 잡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인터넷 검색기능을 검토할 것인가 그 외에 채팅 등 대화방의 기능에 대해 논의할 것인가를 먼저 정해야 할 것이다. 그중 최근에 가장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채팅 등 대화방의 기능에 대해 논의하기로 정했다고 한다면 이것이 바로 범주를 좁히는 단계에 해당한다.

즉 글을 쓸 때 필자는 우선 ‘내가 무엇을 쓰겠다’라는 결심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무엇’에 해당하는 것이 곧 막연한 주제이다. 이를 가주제라고 한다. 그러나 통일, 문민정부, 대학교육, 사랑, 계약결혼, 스와핑 등과 같은 막연한 주제를 가지고는 글을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때 우리는 막연한 주제에 대하여 일정한 태도나 가치평가를 끌어들여야 한다.

이러한 단계를 우리는 가주제에서 참주제를 선정하는 단계라고 말한다. 여러 가지 다양한 테마의 하위분야 중에서 한 가지를 정해 문제의 범주를 한정하고 글쓰기의 과정에서 구체적인 핵심내용으로 집약시키는 것이 바로 참주제를 정하는 단계인 것이다.

참주제를 정한 다음에는 주제문을 작성해야 한다. ‘남북간의 이질성을 극복하는 것이 남북통일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 주제문이 될 것이다. 후자의 경우 ‘인터넷 대화방에서의 상호에티켓을 지켜나가는 것이 요구된다’는 것이 또 다른 주제문이 될 수 있다. 또 주제문은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내용으로 흘러가서는 곤란하며 보다 구체적이고 정확한 표현이 요구된다. 그리고 글쓰는 이의 뜻과 방향이명확하게 드러나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주제문 설정시 유의할 점은 다음과 같다.


(1) 하나의 한 문장으로 진술되어야 한다.

(2) 표현이 정확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3)초점을 주제의 한정된 국면에 맞추어야 한다.

(4)필자의 의견이나 태도가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5)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자명한 이치나 의견이어서는 안 된다.

(6) 근거에 의해 증명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글쓰기는 창의적 생각과 노력의 산물이다

국문학과 교수 박 태 상


1. 괴로움인 동시에 거움

글쓰기는 괴로움이다. 하물며 글쓰기를 주제로 글을 쓴다는 것은 더욱 괴로운 일이다. 스티븐 킹Stephen King이 글쓰기에 관한 자신의 책 <유혹하는 글쓰기 on Writing>에서 말했듯이, “글쓰기에 대한 책은 대개 헛소리로 가득하다”. 그래서 스티븐 킹은 그 책을 짧게 썼다고 한다. “책이 짧을수록 헛소리도 줄어들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 쓰는 거움 또한 없을 수 없다. 글쓰기에 괴로움만 있다면 아무도 글을 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괴로움과 함께 거움을 동반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글쓰기의 이런 양면성은 문화의 본질적인 측면이기도 하다. 문화란 ‘합치고’ ‘잘라내며’ ‘베어버리고’ ‘짜맞추는’ 괴로운 과정 속에서 뭔가를 성취하는 거움을 만끽하는 것이며, 또한 창조 행위에서 얻어지는 쾌락에 내재한 고통의 본질을 음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글쓰기를 논하면서 문화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20세기 말부터 지금까지 ‘구켄베르크적 문화’에서 ‘디지털적 문화’로 이행하면서 글쓰기의 미래가 불투명하고 더 나아가 글쓰기 자체가 인간의 삶에서 사라질지 모른다는 예측들이 난무해왔다.

그렇다면 글쓰기의 문화 유전자와 지금 변화의 물결을 거쳐 앞으로 나타날 소통 양식의 유전인자에 일관된 공통점은 무엇인가. 바로 영상문화visual culture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 특히 문화 이론, 커뮤니케이션 이론 등의 전문가일수록 - 문자문화와 영상문화를 철저히 구분하여, 그 둘을 대립항으로 설정하기도 하고,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문명사적 변화를 문자문화에서 영상문화로의 이행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이 글에서 논의되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좀 엉뚱하게 비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자는 대표적인 영상문화이다. 사실 문자문화가 ‘넓은 의미’에서의 영상문화에 속한다는 설명을 굳이 덧붙일 필요는 없다. 문자문화는 청각문화를 시각화 또는 영상화하면서 인류 역사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월터 옹Walter J. ong이 간파했듯이, ‘쓰기’라는 행위는 말하기를 구술-청각의 세계에서 새로운 감각의 세계 즉, 시각의 세계로 이동시킴으로써 말하기와 사고를 함께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단순히 말하기에 첨가된 것이 아니다. 또한 “자연스럽게 구술로 말하기와는 대조적으로 쓰기는 히 인공적인 것”이다. 월터 옹의 관찰과 이론은 여기까지이다. 구술성과 문자성의 구분과 연관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글쓰기는 말하기와 달리 히 인공적이라는 데에 주목한다. 그 인공성의 본질은 ‘시각화’ 또는 ‘영상화visualization'이다. 그래서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의 대전환과는 달리, 영상화된 문자와 오늘날 전형적인 영상문화의 범주에서 다루어지는 사진,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및 다양한 디지털 이미지들은 전환 과정에서 서로 단절되어 있지 않다.

영상문화는 빛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므로 그 안에는 빛의 황홀함에 대한 지향성이 내재되어 있다. 인간은 지난 수천 년 동안 시각화 또는 영상화의 기쁨을 발견해왔고, 앞으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발견해서 길 것이다. 바로 이 측면에서 글쓰기의 거움을 영상 문화적 차원에서 논해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 글쓰기의 거움은 분명히 뭔가 눈에 보이는 것을 ‘남겨놓을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즉, 가시적으로 보존될 수 있는 그 무엇을 창조하고 생산한다는 데에 있다. 모든 영상문화에는 눈에 보이는 ‘내 것’을 만들었다는 기쁨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구술문화가 전혀 보장해주지 못하는 것이다.

구술문화는 반드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을 전제한다. 즉, 구술성은 그 자체가 상호적이다. 반면 문자문화에서는 글 쓰는 사람이 반드시 읽는 사람을 전제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개인적인 글’이 생겨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가지나 이론일 따름이다. 영원히 자기만 보기 위해서 쓰는 글은 사실상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에 일기를 예로 들어 반론할 수도 있다. 일기는 쓰는 사람을 위한 기록이고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사람들이 간과는 것이 있다. 일기를 남이 보지 못하도록 잘 간수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남이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응한 행위라는 것이다. 개인적인 메모와 같이 남에게 읽힐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 글응 대단히 적다. 그리고 그나마 완성되지 않은 글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일단 완성된 글은 어떤 형태로든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것으로 보아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글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좀 다르게 표현하면, 글은 어떤 형태로든 ‘자기를 노출시키는’ 창窓이다. 그 창을 통해 아주 개인적인 것도 타인에게 읽혀지면서 노출되게 된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노출의 고통을 수반한다.


2. 훌륭한 글쓰기 위해 지적 훈련 필요

자연 과학은 물론 인문, 사회 과학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주장과 뜻을 논리적으로 명확하게 개진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어야만 한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사람이 아무리 무엇을 많이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논리적으로 타인에게 정확히 전달할 수 없으면, 그의 지식은 사장되어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된다.

훌륭한 글을 쓰는 능력은 단순한 연습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치열한 명상과 끊임없는 독서 및 사물과 현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직관적인 통찰력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명상과 독서 그리고 직관적인 통찰력은 서로 독립된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 밀접하게 유기적인 관계를 지니고 있다.

명상이 단순한 몽상이 되지 않으려면 지적인 자극이 있어야만 한다. 지적인 자극은 독서와 그 밖의 다른 학습에서 얻을 수 있다. 직관적인 통찰력 역시 명상이나 독서 같은 지적인 자극을 통해서 얻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글을 쓸 수 있기 위해서는 글쓰기의 연습은 물론 독서를 비롯하여 기타 여러 방면의 학습을 통한 지적인 자극을 계속해서 사고의 영역을 확대하고 감수성을 세련시키며 판단력을 길러야만 한다.

그러면 훌륭한 글은 어떠한 것을 말하는가 훌륭한 글은 한마디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훌륭한 글은 무엇에 대한 것이든지 간에 내용이 풍부하다. 내용이 없는 글이 어떻게 씌어질 수가 있을까 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용이 풍부하지 못하고 핵심이 없는 글도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다. 여기서 글의 내용이란 주관적인 것이 아니고 객관적으로 인식되는 보편적인 진실을 말한다.

둘째, 훌륭한 글은 창의성이 있어만 한다. 훌륭한 글은 독자들의 인식적인 과정에 있어서 하나의 발견과도 같은 것이 되어야만 한다. 창의적인 새로움이 없는 글은 묵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지루하고 진부한 글이 되기 쉽다.

셋째, 훌륭한 글은 그 뜻의 의미가 명확히 전해지도록 하기 위해서 명료해야만 한다. 글의 문체는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간결하게만은 쓸 수 없다. 그러나 문체가 어떻든 글이 전하려는 뜻을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글은, 그 내용이 아무리 풍부하더라도 훌륭한 글이 될 수 없다.

글을 자연스럽고 명료하게 쓰기 위해서는 주제와 내용이 투명해야 함은 물론 그것에 걸맞는 문체가 있어야만 된다. 문체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떠한 것이 좋은가는 단적으로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표준에서 벗어난 어휘와 문자를 사용해서 문장을 지나치게 길게 만들어 독자의 이해를 어렵게 하거나 지연시키는 문체는 그렇게 바람직한 것이 될 수 없다.

훌륭한 문체는 참신한 감수성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말의 경제성과 논지의 일관성, 그리고 치밀한 구성의 틀 속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러면 어느 정도 지적인 훈련을 받고 사고의 폭을 넓힌 사람이, 주어진 토픽을 가지고 논설문을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논설문은 어떤 문제나 주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논리적으로 서술하고 전개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뜻과 같이하도록 이해시키거나 설득하는 글이다.

그래서 논설문은, 논문처럼 서론과 본론 그리고 결론 등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뚜렷이 구분지어 기술하지는 않지만, 내적으로 논문과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다.

보통, 머리 부분에서 필자는 자기가 논의해야 할 명제나 가설을 명확히 밝히고, 다음에 그것을 논리적으로 치밀하게 전개시킨 후 결론을 맺는다. 논설문에 있어서 논지를 제기할 때는 보통 길지 않은 짧은 문장으로 그것을 명확히 기술하여야 한다.

처음부터 문장이 길어지면 논지가 초점을 잃고 흔들리기 쉽다. 그러나 논지를 설명하는 부분으로 내려오게 되면 문장이 어느 정도 길어질 수 있다. 단, 언어의 선택에 있어서는 정확해야 된다.

논지를 전개할 때는 그 방법이 항상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함은 물론 가설과 논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가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결론 부분은 본론에서 논의한 결과를 단순 명료하게 요약해서 핵심적으로 기술해야만 한다. 여기에 쓰는 문장도 너무 긴 복문보다는 적당한 길이고 된 단문이 좋다.


3. 글쓰기의 전개과정

인간은 감성적인 동물인 관계로 자신의 주변 환경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흔히 인간을 자아나 주체라고 한다면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세계나 대상이라고 부른다. 물론 사회과학분야에서는 이것을 사회현실이라고 하거나 역사적 상황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연과학분야에서는 자연이나 우주라고 명명하고 있다. 인간은 이러한 주변 환경인 사회현실로부터 엄청난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작가라고 부른다. 많은 업적을 남긴 작가들도 사실은 자신의 자아와 당대 사회현실과의 부조화나 갈등을 주로 묘사하여 그것을 작품으로 완성하게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주변환경에 대한 주체적 인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을 경험하고 글을 써 나가는 과정을 설정해 보기로 하자. 만일 한국문학사의 중요한 어느 작가의 고향이나 생가를 방문하고 가족이나 친지를 만나 그 작가에 대한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전기적 생애를 정리하는 글을 쓴다고 가정해 보기로 한다. 우선 먼저 요구되는 것은 그 작가에 대한 많은 자료의 수집이 될 것이다. 그러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제일 먼저 작가의 전기적 생애에 대한 기획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문학대사전 등을 뒤져 작가에 대한 기초적인 자료를 수집하여야 한다. 작가의 출생과 사망, 학력, 사회적인 경력, 친교범위, 질병에 대한 조사, 가족관계와 애정편력 등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조사를 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고향이나 생가를 방문하기 위한 문학사지도의 작성과 완성이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준비과정을 거친 다음에 생가를 방문하고 주변 마을을 뒤져 작가의 가족이나 친지를 탐문하여 찾아내고 구체적으로 작가의 전기적 생애에 대한 비평적 전기를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즉 이러한 집필단계에 이르면 주제의 작성과 자료의 분석,정리 등 취사선택 그리고 개요작성과 구체적인 집필에 착수하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경우를 설정해 보기로 하자. 어떤 문제점이 발생하여 분쟁이 일어났을 때의 해결방안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우선 ‘가’와 ‘나’가 심하게 다툴 때를 상정해 보기로 하자. 가장 쉬운 것은 감정적인 대응으로 폭력적인 방법에 직접 부딪혀 욕설을 하거나 물리적인 방법을 취하게 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음으로는 이성적인 방법에 호소하거나 정서적인 방법에 호소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우선 두 사람은 서로 대화 자체를 회피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중재자가 필요하게 된다. 법정다툼까지 가게 될 경우 변호사가 필요하게 되고 변호사가 바로 중재자가 될 것이다. 변호사를 통한 방법은 바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법정 다툼이 아닌 사소한 분쟁이라고 할 경우에도 문제는 마찬가지이다. 우선 당사자끼리 감정의 응어리가 남아 있어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쟁점이 되고 있는 예민한 문제점은 서로 피해나가는 것이 요구된다.

문제의 해결에서 감정적이거나 물리적인 폭력에 의존하지 않을 경우에는 결국 누구나 언어적인 방법에 의존하게 된다. 우선은 분쟁 당사자끼리 서신이나 호소조의 문건을 주고받게 된다. 사과를 요구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문서로 만들어서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방법도 병행하게 될 것이다. 예컨대 민원당사자가 관공서를 찾아가서 호소하거나 그것도 안 되면 농성을 하고 자기 주장을 담은 문건을 뿌리거나 벽보로 이곳저곳에 붙이는 방법 등이 있을 수 있다. 70 - 80년대에 자주 보았던 대학가의 운동권학생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사항도 마찬가지로 분출되었다. 학생들은 대개 대자보라는 벽보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확산시켜 나갔다. 흔히 이러한 구호나 벽보를 통한 주장은 일방적인 소통방법으로 여론의 환기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기 쉽다. 하지만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논리성과 선정성과 폭로성으로 대응하는 이러한 원시적인 방식은 젊은 학생들의 뜨거운 가슴에 의존하는 방법인 관계로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즉 1명의 문제가 10000명의 문제로 확산되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요구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언어가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발견하고 해결을 하기 위한 실마리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언어는 항상 문제발견과 해결을 위한 단서가 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몇 가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글에서 논리를 펴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을 잘 파악하고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주체적인 인식이 있어야 한다. 즉 문제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며, 그 다음이 문제점에 대한 상항판단 즉 문제의식에 대한 구체적인 글쓰기의 단계가 요구된다. 이에는 주제 설정, 자료수집과 정리, 구성과 개요 작성, 집필, 퇴고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

 

 


 

제 12장 글쓰기의 기능

한국방송대 교수 박 태 상(문화평론가)


I. 글쓰기의 기능

글쓰기의 기능을 구분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설명, 묘사, 논증, 서사의 네 가지로 나누는 방식이 있다. 또 설명, 설득, 보고, 정서적 기능의 네 가지로 나누는 구분방법이 있다. 우선 전자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자연현상의 변화를 보고 느낀다든가 아름다운 사연을 듣는다든가 하는 것은 생존하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숙명적인 체험이다. 이 체험은 단순히 보고 느끼고 하는 결말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에 관한 상상적 체험도 있다. 이러한 다양한 인간체험을 정리해서 언어를 통하여 정신적인 사생을 하는 기술양식을 '묘사'라고 하는 것이다. 묘사는 그리는 것의 대상으로 사생의 의미를 가질 뿐, 테마나 줄거리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고 현상이나 체험이 무엇인가, 어떠한 성질을 가진 것인가, 그리고 어떤 인상을 주는 것인가 하는 점을 사생하는 것이다. 또한 묘사는 라만상의 모양을 그려내는데 있어 사물의 부분, 세부의 열거에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전체와 부분, 부분과 부분의 조화, 관련을 유지하면서 작자의 반응을 통일성 있게 그려내야 하는 것이다. 논증은 아직 명백하지 않은 사실이나 원칙에 대하여 그 진실 여부를 증명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독자로 하여금 필자가 증명한 바를 옳다고 믿게 하고 그 증명하는 바에 의거 행동하게 하도록 기도하는 기술양식이기도 하다.
또 논증은 엄격히 말해서 독자의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에 호소하는 설득에도 논증이 원용되는 수가 있다. 설득은 표현의 사실성과 필자와 독자 사이의 심성의 공감에 의존하는 바 크다. 논증은 이해력에 작용하여 독자로 하여금 믿어지게 하도록 하자는데 그 목적이 있다. 논증은 반드시 갈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관념적인 것이든 또는 어느 행동양식에 관한 것이든 간에 그에 대해서 우리가 회의적이거나 반대 입장에 서 있을 때 그것을 갈등의 지양을 위해서는 강제나 비약은 금기다. 차례로 사실과 윈칙의 진실 여부를 증명해 보이고 그를 통해 독자를 이해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서사는 활동하는 생활 속에서의 행동과 관련된 기술양식의 하나이다. 이 기술양식은 "무엇이 발생하였는가" 하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따라서 스토리, 즉 설화의 형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서사라고 하면 이 설화의 형식 때문에 소설작가의 독특한 영역에 속하는 스토리-텔링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허구의 이야기는 설화의 한 종류에 속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서사가 사건을 다루는데 있어 세 가지의 기본적 요소가 있는 바 그것은 움직임, 시간, 의미이다. 묘사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주어진 순간에 고정된 세계의 화상을 우리에게 제시하는 스냅사진과 같은 것이다. 그에 비해서 서사는 움직이는 생명감을 가진 계획적으로 마련된 대상 속에서 생동하는 화상을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사건의 움직임은 한 시점에서 다른 시점에까지 이르게 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서사의 시간은 단순한 시간의 단편이 아니고 시간의 단위로서 존립하는 것인데 이 단위라는 말은 그 자체로서 성을 가진 독자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사의 사건은 단순한 일련의 사건이 아니라 유의적인 일련의 사건인 것이다. 그런 견지에서 사건은 단순히 변화를 내포할 뿐만 아니라 의미있는 변화를 내포하여 하는 것이다. 즉 움직임의 각각의 과정이 한 요점을 중심으로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움직임의 각 단계가 어느 요점을 중심으로 이루게 되는 포괄성과 그에 따라 생겨나는 통일성이 사건의 유의성에 중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후자의 견해에 입각하여 글쓰기의 기능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즉 글쓰기의 기능에는 설명의 기능, 설득(논증)의 기능, 보고의 기능, 정서적 기능의 네 가지 기술방식이 있다. |


1)설명의 기능

주제를 선정하고 재료를 수집한 후 구체적인 구상이 끝나면, 바로 글의 기술에 들어간다. 글의 기술과정을 '집필'이라고도 한다. '설명'은 주제에 대해 해설해 나가거나 해명을 가하는 기술방식을 말한다. 이 방법은 가장 널리 쓰이고 또 그런 만큼 가장 보편적인 기술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어떤 단어에 대한 개념정의, 주소에 대한 지시, 생물의 구조에 대한 해설, 컴퓨터의 소프트웨어에 대한 보충적인 기술, 역사적 사건의 의미 규정, 사건의 계기와 현상에 대한 해명, 철학적 이론체계의 의의와 전개양상에 대한 분석 등 사물과 현상의 전개양상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과 구체적인 서술을 통한 이해 돕기에 두루 사용되는 기술방식이 '설명'의 글쓰기이다. 설명이란 독자에게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리는 것으로 그 지름길을 는 기술양식이다. 즉 필자의 주된 의도가 무엇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문제의 성격이나 상황은 어떤 것인가 용어나 개념 등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가 등을 이해 분석하고 자침을 주는 것이 설명이다. 그만큼 직선적이고 논리적인 기술양식이라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설명(exposition)은 일정한 사물, 곧 과제를 쉽게 풀어서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는 것으로서 논리적으로는 "S는 P이다"식으로 진술되는 기술양식이다. 따라서 설명은 과학적 의도에 따른 객관적 기술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설명은 '무엇인가', '어떠한 것인가'에 대하여 응답하는 담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설명의 기능의 글쓰기의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사이버공간의 고유한 특성으로는 어떠한 것들이 있으며 왜 유해정보가 전파되기 쉬운가 고유한 특성으로는 우선 사회적 지위단서의 결핍이 있다. 사이버공간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현실세계에서는 자신의 정체의 노출과 사회적 지위의 상실을 우려하여 불법적인 행동을 가는 사람들조차도 사이버공간에서는 아무런 죄의식 없이 비윤리적 언행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둘째, 공동체적 유대감의 결핍을 들 수 있다. 사이버공간에서의 사회적 관계는 개인의 필요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에 공동체적 유대감을 형성하기 어렵고 이러한 사회적 유대의 부재는 개인의 행동에 대한 사회적 통제의 약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또 하나 사이버공간은 시공을 초월하며 무규제성을 갖는 공간이기 때문에 역사상 어떠한 매체보다도 유해정보를 전파하기 쉽다. 요즈음 이렇게 인터넷이 전세계적으로 빨리 퍼져나갈 수 있었던 가장 주요한 원인은 포르노 같은 음란성 유해정보의 전파력 때문이라는 냉소적인 주장도 제기되고 있을 정도이다.
어찌되었든지 사이버공간은 점차적으로 혼탁하고도 왜곡된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다. 따라서 범죄와 일탈행위가 횡행하고 있는 공간이 된 것이다. 최근 용어만 다르지 사이버범죄, 컴퓨터범죄, 정보통신범죄 등의 명칭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파아커(Parker)는 사이버범죄를 "사이버공간에 대한 특별한 지식을 사용한 범죄"(1998)라고 모호한 정의를 내렸고, 토마스와 로더(Thomas & Loader)는 그것을 "컴퓨터와 전세계적인 전자 네트워크를 매개로 한 불법적이거나 불법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행위 또는 활동"으로 정의하였다. 한편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백광훈은 인터넷은 상호접속된 컴퓨터의 국제적 네트워크(international network of interconnected computers)라고 파악하고 인터넷은 1969년 ARPANET(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에 의하여 발전된 네트워크)으로 불린 군사프로그램이 진화한 것이며, ARPANET은 이후 수많은 민간네트워크 특히 인터넷을 가능케하는 모태가 되었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러한 인터넷이라는 배경을 고려하여 개념을 파악해본다면, 정보통신범죄(cybercrime)라 함은 "정보통신공간(사이버공간)과 관련하여 일어나는 모든 범죄행위를 말한다"고 개념정의를 내리고 인터넷범죄라는 용어와 거의 동일하다고 하였다.

 

2)설득의 기능

설득이란 글쓰는 이가 독자에게 자신의 의도대로 행동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설득의 목적은 글에 대한 지적 이해뿐만 아니라 '행동하게 한다'로 요약된다. 설득에 의한 행동화는 정신적인 행동화와 신체적인 행동화로 구분된다. 어떤 사상에 동조하는 것은 정신적인 행동화이며 납득과 동시에 글쓴이의 요구대로 움직이는 것은 신체적인 행동화이다. 이러한 행동화가 발생하는 것이 설득의 목적이다. 설득은 상대편 마음에 호소해서 행동을 불러일으켜야 하므로 지적인 이해만 가지고는 안된다.    

3)보고의 기능

보고란 경험자, 전문가, 관찰자가 어떤 사실이나 인상, 경험 등에 대해서 정리된 형식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보고의 기능에서는 전문가의 현장의 체험이 가장 중요하다. 아울러 전문가는 현장에서 얻는 자료에서 '가치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관건이 된다. 따라서 보고의 글쓰기를 하는 사람에게는 높은 통찰력과 역사의식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일반적으로 설명과 보고는 차이점이 있다. 특히 분명하게 사고하고 바르게 추리하며 내용을 논리적으로 정확히 표현해야 하는 보고는 다음의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1)보고해야 할 사항을 분명히 이해하고 정확히 전달되도록 한다.
2)보고에 사용될 재료를 신중하게 선택한다. 문제가 적절한가, 신뢰도가 있는가, 권위있는 것인가 등에 기준을 두면서 주의해야 한다.
3)보고에 쓰이는 재료는 사실이나 실제로 있었던 일, 가치있는 것으로서 구체성을 띠어야 한다.
4)보고하고자 하는 문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5)전문가의 이론이나 관점과 자신의 의견을 확실히 구별한다.
6)독단을 피해야 한다.
7)설득을 구할 수 있으나 의견의 일치를 강하게 요구하지 않는다.
8)수집한 재료에서 당연히 귀결되는 결론, 그것에서 예상되는 앞으로의 전망, 문제 해결 방안 등도 제시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보고의 기능의 글쓰기의 사례로 글을 말미에 <현장 연구 방법론>을 제시하기로 한다.


4)정서적 기능

게오르그 루카치는 예술은 일상적 사고나 과학과 달리 현실을 미적으로 반영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미적 반영의 특징은 예술이 지닌 정서의 환기적 성격과 관련된다. 예술은 감정, 정서, 정열 등에 일정한 환기 작용을 불러일으킨다. "예술적 환기의 진정한 위력과 심도는 무엇보다 인간의 내면을 지향하는 데 있다"는 것이 루카치의 생각이다. 한마디로 과학적 의도에 따른 객관적 기술 양식이 '설명'이라면, 예술적 의도에 따른 주관적인 기술 양식이 '정서적인 가능'의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정서적 기능의 글쓰기의 예를 아래에 들기로 한다.

 

 

II. '보고 기능의 글쓰기'로서의 현장조사방법론

1. 현장연구(field study)의 개념과 의의

현장연구란 곧 사라질 수밖에 없는 인류의 문화적 유산을 유물이나 유적이 있는 현장을 찾아가서 원초적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여 기록으로 남겨두는 연구방법을 의미한다. 현장연구는 매우 오래되었다. 현장연구는 주로 문화인류학이나 고고학 그리고 생물학의 연구에서 많이 사용되는 방법론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면, 그 중에서도 문화인류학의 구비문화 자료를 수집할 때 학자들이 겨 애용하는 방법이 현장연구이다. 인류문명 중 기록문화의 자료보다도 더 오래된 것이 구비문화자료이다. 인류가 글을 쓰기 훨씬 오래 전부터 말로 자신들의 생활문화를 정리하여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어느 민족이나 글보다는 말로 된 구비문화의 자료가 선행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구비문화의 자료는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은 것들은 일정 시기를 지나면 소실되고 만다. 물론 상당수의 구비문화의 자료들은 인류의 말을 통해 후손들에게 전수되고 있기는 하다. 대표적인 경우가 조선조 후기의 판소리나 그 훨씬 전부터 존재하였던 설화문학이다. 구비문화는 말로 된 문화이다. 문자로 정착된 문학인 기록문학은 문헌 자체로 존재하지만, 말로 된 문학인 구비문학은 구전자료로 존재하며 구전자료를 다루기 위해서는 현장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현장조사를 해야만 구비문학과 만날 수 있고 구비문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생한 경험을 할 수 있고,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할 수 있다. 문헌자료를 다루지 않는 기록문학 연구를 생각할 수 없듯이, 현지조사를 통하지 않는 구비문학 연구를 생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구비문학 연구는 현장연구가 되어야 생동감이 살아날 수 있다. 

 

구비문화유산의 자료를 조사하고 그것을 보존하는 방법으로는 역시 문자를 사용하여 정리하는 것이 우선시 될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많은 영상매체들이 발달했으므로  디지털 카메라로 현장 자료들을 찍는 방법도 있고 캠코더나 6mm 카메라로 촬영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록을 저장하는 방법으로도 비디오카세트 테이프나 CD롬 타이틀에 담아두는 방법이 있다. 과거에는 사진자료는 주로 스틸 슬라이드 필름에 담아두는 방법이 많이 활용되었지만 최근에는 컴퓨터나 스캐너의 발달로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 자료보관 방법이 될 수 있다. 또 판소리나 이야기꾼의 음성자료 녹음에는 소형녹음기의 사용이 불가피 할 것이다.
 아무리 영상자료라 하더라도 현장 조사의 보고서는 역시 문자보고서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자료를 보고하는데 있어서 글로 쓰는 것 이상의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장연구를 문자로 기록 정리하는 작업에는 글쓰기의 '보고기능'이 활용될 것이다. 자료보고서를  쓸 때는 육하원칙에 따라 기술하면 되지만 중요한 것은 글 쓰는 기록자의 '가치 있는 것'에 대한 규준이다. 즉 '가치 있는 것'을 판단하는 데에는 현장연구자의 가치관과 역사관 그리고 통찰력 있는 자료해석의 안목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구비문화자료에서 현장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단 한 가지 때문이다. 문헌자료는 당장 연구하지 않아도 치명적인 결함은 없다. 그 이유는 후세의 누군가가 연구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비문화의 자료는 되도록 빠른 현장연구가 요구된다. 왜냐하면 그 시기를 놓치면, 원본에 가까운 자료가 훼손되거나 아예 기초자료가 소실되어 버릴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구비문학의 자료는 그 현장에 들어가서 듣고 보고 느끼면서 보고하지 않는다면 연구에 이용되기 어렵게 된다. 이야기를 허거나 노래를 부르는 구비문학의 구연상황은 대개 단 한번 이루어지는 속성이 있다. 나중에 그것을 듣게 되면 이미 변개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바뀌거나 없어져버리는 것이 본질적인 특성이므로 되도록 시급을 다투어 현장연구를 서둘러야 하는 것이다.

 북한의 현장연구도 마찬가지이다. 북한 연구의 경우도 되도록 북한의 유물이나 문화유산이 있는 현지를 방문하여 직접 조사나 연구를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현실의 여건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정신적인 문화유산이나 역사적 유물마저도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적이나 편의성 때문에 왜곡하거나 조작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현실이다.  발해유적이나 고구려의 창건 역사 그리고 단군왕릉의 발굴 자체도 철저하게 베일에 감싸면서 자신들의 정치적인 의도에 따라 역사를 왜곡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를테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이어지는 자신들의 부자간의 권력세습을 합리화하고 영웅화하기 위해 단군 ->주몽 ->왕건 ->김일성, 김정일로 그 정통성을 이어가려고 역사적 정통성 확보를 모색하고 있는 실정이다. 민족주의나 민족성의 문제나 심지어 우리 민족의 오래된 유산인 절기나 명절마저도 정치적인 편의성에 의해 폐지하거나 부활시키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추석이나 단오 그리고 구정 따위의 민족의 대 명절이 90년대 들어와 다시 부활되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역사왜곡의 현장을 보존해 두는 것도 민족통일 이후를 대비하는 하나의 현실적 방안이 될 수 있다.
또 NGO활동이나 경제적인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북한에 들어간다고 해도 북한의 현장을 마음대로 조사하거나 연구할 수 없다. 대개의 경우, 북한의 현지 가이더(여행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그들이 인도하는 공간만 살펴볼 수 있는 실정이다. 다만 남한에서 북한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므로 그전에 비해서는 다양한 장소를 공개하고 관광지역을 늘이고 있는 추세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의 정치적인 목적이나 의도가 바뀐 것은 아니기 때문에 궁극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북한 현장에서의 자유로운 활동은 근원적으로 불가능한 현실이다. 따라서 가능한 범주에서나마 직·간접적인 방법으로 현장조사나 연구 활동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현장연구는 한민족의 숙원인 통일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커다란 기여를 할 것이다.    
북한 현장에 대한 접근이 용이하지 않으므로 탈북자를 이용한 간접적인 현장연구나 북한을 직접 방문하고 돌아온 방문자들을 통해 연구하는 방법도 현명한 방법일수 있다. 최근의 추세는 북한방문자가 늘어나고 심지어 평양관광 사업 자체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어서 북한 현장연구의 길은 그전에 비해서는 상당한 정도로 용이해졌다고 할 수 있다. 북한 현장 접근의 용이성은 민속학이나 비교문화론 등의 학문적 성과물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연구될 개연성이 높아진 것이다.
아직 북한당국은 식량난 등 어려운 경제여건을 호전시키거나 자신들의 외화벌이의 목적에서만 북한방문을 허용하고 있다. 그래서 외국인이나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되도록 막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북한 지역을 마음대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게 될 시점까지는 북한방문 경험자들이 수집한 문화유산이나 정신적인 사료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북한당국이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 허용하고 있는 금강산이나 백두산 천지 등의 자연유산이나 천연기념물에 대한 자료는 거의 개방하고 실정이다 따라서 그러한 것들만이라도 체계적으로 현장연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현장조사의 사적 개관

현장연구 방법론을 모색하기 위한 한가지 방법으로 구비문학의 현지조사 사례의 역사를 케이스 스터디하기로 한다. 구비문학의 현지조사는 유럽에서 낭만주의 시대에 시작되었다.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서 유럽사람들은 희랍, 로마의 문학이 영원한 기준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서 각기 민족문학의 전통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민족문학의 전통을 한편으로는 중세의 기록문학에서 또 한편으로는 당시까지 전승된 구비문학에서 찾고자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낭만주의가 일어난 나라에서는 어디서나 볼 수 있었지만, 특히 독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원래 희랍·로마 문화권에서는 변두리 지역이었던 독일은 이웃 불란서에서 마련된 고전주의적 규범을 극복하고 자기의 민족문화를 수립해야겠다는 열의가 대단했다. 빌헬름 그림(Wilhelm Grimm)과 야콥 그림(Jacob Grimm)형제가 설화를 조사 연구하면서 독일 민족정신의 오랜 연원, 아름다움, 풍부함을 입증하고자 한 것이 이러한 열의의 구체적인 표현이었다.
산업혁명 또한 구비문학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산업혁명을 겪으면서 전통적인 사회가 파괴되는 과정에서 구비문학 또한 심하게 변질되거나 소멸하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이 점을 아쉽게 여기는 사람들은 구비문학의 조사, 연구가 시급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영국을 선두로 여러 선진국에서 민속학이라고 하는 학문이 생겼고, 구비문학도 민속의 하나로 다루게 되었다.
그런데 영국이나 불란서와 같은 나라에서의 민속학은 절실한 이념적 요청이 없기 때문에 그리 긴요하지 않은 취미 위주의 학문으로 머물러 있다가 제국주의 시대에 와서는 사정이 아주 달라졌다. 수많은 해외 식민지를 지배하게 된 선진국은 식민지 주변에 사는 이른바 미개 민족의 생활이나 습속에 관심을 가져야만 식민지 통치를 지속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요청 때문에 자기 문화를 다루던 민속학에서 전세계의 미개 민족을 두루 다룬다고 하는 민족학(ethnology)이나 인류학(anthropology)이 독립했다. 다루는 대상의 범위도 정치, 경제, 생산기술, 종교까지 두루 포괄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방향에서는 구비문학에 관한 조사, 연구도 연구대상으로 은 사회를 이해하고 그 사회를 통제하기 위한 것으로 바뀌었다.
인류학은 구비문학에 대해서 적극적인 관심을 갖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구비문학을 기록문학과 함께 문학으로 다루려는 의도를 갖지도 않는다. 인류학을 발전시킨 선진국에서는 문학이라고 하면 바로 기록문학이라고 하는 것이 이미 오래된 관례였으므로 구비문학을 문학으로 다루어야 할 필요성도 인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유럽에서도 후진국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독일의 경우만 해도 후진국의 예라고 할 수 있는데, 독일보다도 더 후진국이고 더욱이 외래문화의 압력 때문에 민족문화가 위기에 몰린 나라의 경우에는 사정이 자못 판이했다. 가장 두드러진 예를 든다면 레와 핀랜드이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레나 러시아의 식민지였던 핀랜드는 오랫동안 기록문학이 영어나 러시아어로 이루어졌으므로 민족문학을 구비문학에서 찾아야만 했고 구비문학을 조사하고 연구함으로써 새로운 민족문학을 수립해야 하는 절박한 사정 때문에 구비문학의 현장조사와 연구에서 가장 적인 전례를 보여주었다.
핀랜드의 경우를 자세히 살펴보자. 러시아의 압제를 받던 핀랜드 사람들은 민족문화 운동의 정열을 구비문학의 조사 연구에 쏟았다. 일찍이 1831년에 핀랜드 문학협회를 결성해서 러시아어가 아닌 핀랜드어로 된 문학의 개발을 제창했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엘리아스 뢴로트(Ellias Lonnot)같은 학자로 하여금 구비문학의 자료를 수집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뢴로트는 구전되던 민족서사시 칼레바라(Kalevara)를 위시해, 설화, 민요 등을 광범위하게 수집했다. 이러한 노력은 율리우스 크론(Julius Krojn)과 그의 아들 카를 크론(Laarle Krohn)으로 계승되고 핀랜드가 독립한 후에는 더욱 활발해졌다. 조사한 자료는 1935년에 133,000편에 이르렀고, 1947년에는 275,000편에 이르렀다. 독립후의 조사, 연구는 헬싱키 대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국가의 적극적인 뒷받침을 얻어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도 앞서는 성과와 방법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핀랜드 자체의 자료에만 관심을 보이다가 국제적인 비교 연구에 착수해 카를 크론과 그의 후계자 안티 아르네(Anti Aarne)가 역사지리학파(the historical-geographical school)를 창설하기에 이르렀고, 이 학파의 방법은 스티스 톰슨(Stith Thompson)에 의해 멀리 미국에까지 전파되었다.
구비문학의 조사, 연구는 이처럼 유럽에서 먼저 시작되었으나, 오늘날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더욱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구비문학을 통해서 민족문학의 연원을 찾고 외래문화의 도전을 극복할 수 있는 민족문화를 수립하고자 하는 과업이 유럽의 후진국에서는 어느 정도 해결된 단계에 이르렀지만, 제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지금 절박하게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후진국의 각성은 1차대전 이후의 일이었고, 유럽이 아닌 다른 지역의 피 민족의 해방은 2차대전 이후의 일이었으므로 구비문학의 조사, 연구에서도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구비문학의 조사, 연구에 관해서는 그 성과를 알아보기 어려운 것이 우리 학문의 기형적인 편향탓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자료센터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지도 출판도 계획된 바 없다. 일제 통치 기간 동안에는 두 가지 방향의 자료 수집이 있었다. 한 방향은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벌인 조사 사업이었다. 그 목적은 말할 것도 없이 식민지통치를 위한 것이었고, 영국 같은 데서 배워 온 방식을 적용했다. 그런데 일제의 조사에는 구비문학은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한 방향은 민간학자들의 조사사업이었다. 손진태, 송석하, 임석재, 최상수, 고정옥 같은 분들은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구비문학에 정열을 쏟았다.
 
 
3. 현장조사 방법 개관

현장조사의 방법은 누가, 어디서, 언제, 무엇을, 어떻게, 왜 조사하는가에 따라서 세분하여 고찰할 수 있다. 이러한 사항을 고려하여 현장조사의 종류를 대체적으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1)산발적 조사
2)개괄적 조사
3)집약적 조사


1)산발적 조사
 
 일정한 계획과 목적 없이 자료가 보이면 조사를 하는 것을 말한다. 조사결과는 정리, 보고되지 않는 경우가 흔하고 정리, 보고된다고 해도 단편적인 자료를 제공하는 데 그치고 체계적인 연구와 연결될 수 없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하는 산발적 조사는 취미를 살리는 정도의 구실을 한다. 전문가가 하는 산발적 조사는 개괄적 조사나 심층적 조사를 위한 탐색으로서의 의의를 가질 수 있고, 오랫동안 되풀이되고 결과가 누적된다면 방대한 자료집을 이루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 일제 통치하의 민간학자들은 물론 해방 후의 조사자들도 산발적 조사를 해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산발적 조사는 일정한 계획이 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자료를 보고할 때 갖추어야 할 항목을 두루 갖추지 않고, 자료 자체도 소홀하게 표기하는 결함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


2)개괄적 조사
 
 일정한 계획에 따라서 비교적 광범위한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체계적인 사이되, 자료에 대한 대체적인 파악을 목적으로 하고 특정한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는 연결되지 않는 것이 예사이다. 개인의 힘으로는 하기 어려운 것이고 여러 사람이 조사단을 구성해서 공동으로 해야 하는 대규모의 조사이다. 대체적으로 누가, 어디서, 어떻게 조사하는가에 따라서 다음과 같이 다시 구분할 수 있다.


(1)현지의 비전문가에게 의뢰해서 하는 조사
(2)전문가의 계획과 지도에 따라서 비전문가가 다수 참가하는 조사
(3)전문가로 이루어진 조사단의 조사
 
 
(1)현지의 비전문가에게 의뢰해서 하는 조사로는 설문지에 의한 방법이 우선 있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응답을 작성할 수 있는 설문지를 현지에 보내서 자료 상황의 개략을 보고하게 하는 조사는 본격적인 조사에 이용할 정보를 얻는 데 필요하고 광범위한 지역에 걸친 자료의 분포를 짧은 기간 내에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질문지를 이용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자료의 유무, 전승 여부 등에 관한 정보에 그치고 구비문학 작품에 대한 온전한 채록을 기대할 수 없다. 즉 현지의 비전문가에게 구비문학의 작품 채록을 기대할 수 없다.

(2)전문가의 계획과 지도에 따라서 비전문가가 다수 참가하는 조사의 대표적인 예가 대학에서의 조사이다. 교수가 계획을 할 뿐만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 현지에 나가서 학생들을 직접 지도하는 조사는 잘 추진된다면 아주 효과적인 것이다. 이 조사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강의와 현지 훈련을 통해서 전문가로 양성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수도 많고 출신 지역도 다양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한 조사 성과를 올릴 수 있다. 스웨덴의 웁살라대학에서 하는 조사가 이 방면의 본보기로 알려져 있다. 우리의 경우에도 성균관대학교의 안동문화권 및 동해안 문화권 조사, 서울대학교의 충청북도 소백산맥 서록 지역 조사, 계명대학교와 영남대학교의 경북지방 조사 등이 시도되었거나 지금 시도되고 있다.

(3)전문가로 이루어진 조사단의 조사는 가장 바람직한 것이지만, 추진하는데 어려움도 가장 많다. 우선 조사를 담당할 수 있고 조사에 참가하고자 하는 전문가가 다수 확보되어야 하고 조사단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경비가 마련되어야 한다. 구비문학 현지조사의 전문가는 수가 많지 않고 조사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는 형편이므로 전문가의 증원은 물론 전문가가 이 일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한 과제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연구 기관의 전임연구원이 조사를 담당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전문가로 훈련된 대학원 학생이라도 많아야 한다.

3)집약적 연구
 
 구비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하는 것이다. 산발적 조사와 다른 점은 일정한 지역을 엄밀하게 선택하고 제기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문제를 분석해서 얻은 창의적인 방법에 따라서 조사를 진행하는 데 있다. 개괄적인 조사와 다른 점은 자료의 윤곽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연구하고자 하는 목적에 따라서 특정 자료를 깊이 있게 조사하자는 데 있다. 개괄적인 조사와 다른 점은 자료의 윤곽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연구하고자 하는 목적에 따라서 특정 자료를 깊이 있게 조사하자는 데 있다. 산발적 조사 결과는 정리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집약적 조사의 결과는 반드시 정리되고 발표될 뿐만 아니라 그 결과가 자료 보고에 그치지 않고 연구논문이나 연구 저서에 활용된다. 개괄적 조사는 연구가 따른다 하더라도 그 연구는 일반적인 문제를 다루는 데 그치지만 집약적 조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연구는 구비문학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개척하는 의의를 가져야 마땅하다. 구비문학 연구사의 중요한 업적은 거의 다 집약적 조사를 근거로 해서 이루어졌다. 개괄적 조사는 여러 사람이 참가하는 공동조사여야 하지만, 집약적 조사는 개인의 조사일 수 있다. 전국적인 규모의 개괄적 조사가 이루어진다 해서 구비문학 조사는 끝나는 것이 아니고 개인이 하는 집약적 조사는 언제까지나 계속되어야 한다. 집약적 조사가 계속되면서 구비문학 연구는 발전을 거듭할 수 있다.
다음으로 조사 자료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데 따라서 조사 방법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말은 조사의 대상과 자료의 기술방법을 한꺼번에 지칭한다. 구비문학을 구연하는 현장을 히 조사해서 히 기술해 보고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조사자는 보고 듣고 느낀 것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서 조사 내용으로 지 않을 수 없는데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이에 따라서 조사의 종류를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다.


(ㄱ)작품의 개략을 보고하는 조사
(ㄴ)작품의 원문을 보고하는 조사
(ㄷ)작품의 원문을 다각도로 보고하는 조사


작품의 개략을 보고하는 조사는 산발적 조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청취한 작품의 원문을 그대로 보고하지 않고 그 줄거리만 정리하며 작품의 말을 방언 그대로 보고하지 않고 표준말로 바꾸어 보고하는 경우이다. 녹음기가 없던 시대에는 원문을 보고하기 어려웠으니 작품의 개략만 보고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녹음기를 사용해서 조사를 하게 된 후에도 이러한 조사가 계속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작품의 원문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 있다.
특히 구비문학의 작품이 기록문학 연구를 위한 보조 자료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에 예컨대 소설의 근원 설화를 알기 위해서 설화를 조사하는 경우에는 구비문학의 원문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갖기 어렵다. 또한 녹음한 자료를 충실하게 받아쓰는 것이 힘든 일이라는 이유에서도 개략만 보고하는 태도가 청산되지 않고 있다.
작품의 원문을 보고하는 조사는 당연히 요청되는 방법이다. 녹음기 사용이 일반화되었으므로 이렇게 하는 것이 기술적으로도 가능하게 되었다. 전승·창조자가 말한 그대로 적어야 원문일 수 있다. 설사 말이 틀리고 순서가 뒤바뀌었어도 말한 그대로의 것이 원문이다.
작품을 원문으로 보고하는 것만으로 온전한 조사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밖에도 더 요구해야 할 사항들이 있으므로 작품의 원문을 다각도로 보고하는 조사가 필요하게 된다. 다각도로 보고한다는 것이 조사한 지역, 조사 일자를 명시한다는 뜻만은 아니다. 지역과 일자 명시는 어느 조사에서나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다. 그 다음 필요한 사항이 전승·창조자 또는 제보자를 명시하는 것이다. 제보자의 성명, 연령, 직업, 교육 정도 등도 밝혀야 하지만, 이에 머무르지 않고 성격, 경력, 구비문학에 관한 관심과 견해, 구비문학을 알고 있는 범위까지도 조사해야 할 것이며 이러한 조사는 관찰조사로만 이루어질 수 없고, 면담 조사를 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해낼 수 있다. 제보자와 함께 보고해야 할 것이 구연 상황과 구연방식이다. 어떤 청중이 모인 자리에서 어떤 반응에 따라서 구연을 했으며 구연이 자연적 조건에서 이루어졌는가 인공적 조건에서 이루어졌는가 하는 등에 관한 보고가 있어야만 작품이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작품의 기능, 구연할 때의 음악이나 억양까지도 조사해야만 다각적인 조사가 될 수 있다. 이 점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다음의 도표를 그려보자.



제보자 가락


작품

기능 구연

구비문학 연구는 작품을 그 대상으로 는다. 작품이외의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작품을 자료로 는 연구가 구비문학 연구와 구별될 수 있는 기준이 바로 여기에 있다. 구비문학은 민속학에서도 다룰 수 있고, 인류학에서도 다룰 수 있지만, 구비문학은 문학이며, 문학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주장의 최종적인 근거는 작품은 문학연구의 문제의식과 방법에 따라서 고찰해야 마땅하다는 데 있다. 작품에 관한 문체론적 연구, 구조적 연구, 주체론적 연구가 모두 이러한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구비문학은 전승·창조자가 청중과 만나서 일정한 기능, 음악 또는 음악적 억양에 맞도록 구연함으로써 존재하는 문학이다.
그런데 구비문학 현장 조사의 이론은 구비문학을 다루는 기본적인 이론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가)전파론적 이론
(나)형식론적 또는 구조주의적 이론
(다)현장론적 이론


전파론적 이론 특히 카를 크론이 개발하고 스티스 톰슨이 계승한 역사지리학파의 이론에서는 작품을 유형과 화소로 분석해서 원형을 추정하고 원형으로부터의 전파를 연구하는 것을 특히 중요한 과제로 는다. 이러한 연구를 하는 데 있어서는 작품을 화소를 빠뜨리지 않을 정도의 개략만 보고하면 된다. 화소는 어차피 요약된 내용으로 논의하고 언어표현을 그대로 다 따질 것은 아니다. 그리고 작품 이외이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야기가 물결 퍼지듯이 퍼져 나갔다고 하면, 제보자는 전파의 전달자로서 소극적인 구실만 한다고 이해되고 구연상황 같은 것도 그리 문제되지 않는다. 전파되면서 생긴 변화를 살피기 위해서는 문화적인 상황은 알아야 하겠지만, 문화적인 상황이 구연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나라 또는 어느 문명권의 설화를 유형과 화소로 분류하고 정리하는 작업은 작품의 요약된 개략을 자료로 으면 되고 그 이상 자세한 것까지 다룰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형식주의적 또는 구조주의적 이론이 대두하면서 사정이 자못 달라졌다. 엑셀 오르릭(Axl Olrik)의 형식론도 작품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했고, 블라디미르 프로프(Vladimir Propp) 또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에서 시작된 구조주의적 이론은 작품을 화소로 해체하지 않고 유기적인 질서에 따라서 이해해야 한다고 하면서 작품의 의의를 더욱 강조했다.
현장론적 이론은 아직 생소한 말일 수 있다.

 

린다 데그(Linda Degh) 같은 사람의 이론이 미국에 소개되면서 새로운 이름을 내세워 유행을 만들기 좋아하는 미국에서 그런 용어가 나왔다. 주장하는 바는 구비문학을 구연의 현장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역사지리학파의 이론은 물론 구조주의적 이론까지 비판하고 나선 점에서 다소 획적인 데가 있다. 린다 데그는 제보자의 창조적인 능력을 주목하면서 이 능력이 청중과의 관계, 구연의 기회와 조건에 따라서 또는 사회적인 상황에 따라서 어떻게 발휘되고 구체화되는가 하는 것을 연구의 중요한 과제로 았다. 뿐만 아니라 구비문학의 종류도 구연에 따라서 구분하자고 제안해서 민담은 한 사람이 계속하는 이야기라면 전설은 여러 사람이 논란을 벌이면서 하는 이야기라는 등의 논의를 폈다.

 

11567

 

                                                                      영어사전홈   

      

                                                              Write It Down Make It Happen 


 

'—…³οοШёlСомЁοο > ´˝˚³οο골방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획서 쓰기   (0) 2009.08.29
<< 보고서 쓰기 >>  (0) 2009.08.24
<< 칼럼 쓰기 >>   (0) 2009.08.16
<< 스토리텔링 글쓰기 >>   (0) 2009.08.09
<< 인터뷰를 통한 글쓰기 >>   (0) 2009.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