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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위로해 - 독백

수로보니게 여인 2009. 8. 15.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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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라." " 말하는 것 걷기, 글 쓰는 것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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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8월 15일

아빠를 위로해 - 독백


 

그녀의 불평은 한 시간 동안 이어졌다.

아직도 끝낼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엄마가 소스가 되는 아빠의 불만……


아버지에게 

엄마로부터 때때로 가해지는 ‘뺨의 아픔’

그것을 쏟아내는 한강이 그녀였던 것이다.


그녀는 한강이 넘치면 내게 전화를 걸어온다.


아버지로부터 전이된 그 불만의 입자들이 그녀 안에 응어리져

도저히 

풀어내지 않으면

응어리가 덩어리로 부풀어오라 터져버릴 것 같을 때

그녀는 전화라는 매개를 통해 그것을 다시 입자 화 시킨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녀를 이루고 있는 강둑이 허물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나는

그녀의 읊조림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그녀를 위한 전부이기에.


웬만해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속담에 기대

그녀와 나는 전화를 잘 주고받지 않는다.

별일도 아닌 일상을 전화로 주고받는다는 것은

의미도 가치도 없는 ‘노닥거림’이라는 생각 또한

그녀와 나의 상통 부분이다.

그런 까닭에 그녀가 전화(문자)를 한다는 건

곧, 무슨 일이 있다는 말의 다름 아니다. 


“언니 잘 지내지?”

…… 

“언니 바뻐?”

……

“이번 주에 한 번 나올 수 있어?”

……

“언니 통화할 수 있어?”

……


급기야 통화를 요청하는 문자까지 해 왔다.


나는 공양주供養主의 임무 수행중인 숨도 가쁜 시간인지라,

그녀가 몇 번씩이나 보내오는 마음에 바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혹, 엄마에게 무슨 일이…?’라는 생각을 잘라내느라 더 가쁜 마음으로.

(며칠 전 어느 유명인의 칼럼 ‘공양주’에 대한 글을 읽고 내가 공양주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절에서 무보수로 밥 짓는 공양주의 그것은 아닐지라도)

 



일이 어지간할 때쯤에서야

‘무슨 일 있어?’ 라는 말로 나는 그녀의 마음을 두드렸다.


밑도 끝도 없이

“아버지에게서 전화 없었어?”

‘응, 무슨 일인데?’

‘그나저나 잘 지내지?’

 

“활을 당기어 콧물을 씻는다” 는 속담이

이런 날의 나를 위해 준비라도 된 것처럼,

그녀와의 소식 없었던 날들의 귀퉁이를 막 풀으려는데

 

“엄마가 집을 나가셨대”

‘언제?’

“아침에”

‘몇 시쯤?’

“전화 하신 때가 한 10시쯤인가 그래”

나랑 통화를 하던 시간이 오후 2시쯤 되었으니

네 시간쯤 지난 시간이다.


‘그러면 들어오시겠지’

‘그 일로 그렇게 숨 가쁜 전화를…?’

‘처음일도 아닌데 새삼스럽기는’ 이라는 내 생각을 멍석으로 깔고  

막 시작하려는 그녀의 한풀이.

오랜만에 펼치는 멍석인 만큼 결코 짧지 않을……  

그러나 시간이 시간인지라

또 휴대폰 통화료를 간과할 수 없는 나의 경제상황이

몇 막 몇 장이 될지도 모를 그녀의 한풀이 멍석위에 그냥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따가 집 전화로 다시 전화하자’라며,

오랜만에 펼치려던 그녀의 멍석 깔기를 저지해야했던 것이다.

“몇 시쯤?”

‘통화가능 시간’을 확인하는 물음이,

서늘한 그녀의 눈망울에 담겨 거기 전화기 속에서 나를 응시하는 것 같은 생각을 아프게 접으며.

 


손가락을 꿰맨 지 11일 째 되는 날이다.

공양주노릇을 시작한지 달포가 훨씬 지난 3일

피를 봤다.

채칼에 손가락 끝을 내어준 것이었다.

그 꿰맨 실을 풀고 돌아오는 길(운전 중)에

“지금 통화할 수 있어?” 라며 그녀가 또 문자를 보내왔다.

‘아니 지방에서 올라오는 중이라더니 벌써 왔나’라는 생각을 하며

‘집에 들어가는 중’이라는 답을 보냈다.

“몇 시쯤 전화 가능할까?”

‘한 시간 쯤 후’

집에 들어가 아침부터 흘린 땀을 닦아낸 후의 시간을 계산한 시각이다.

그런데 집에 막 발을 들여놓는 시간에, 어디서 보고 있기나 한 것처럼 벨이 울리기 시작한다.

아직 한 시간이 채 안된 시간인데 말이다.

‘에고 그 성격 급한 건 꼭 엄마를 닮았다니까,

아까 듣자하니 그리 숨넘어갈 일도 아니던데

제 조급한 성격을 못 이기고 전화를 해대고 있네.’

‘최하가 한 시간 이상인데 어떻게 할까?’란 생각이

샤워를 끝낸 후에 그녀의 한풀이를 듣고자하는 계산 쪽으로 기울며 

‘이 더하기 삼은 오’라는 개념으로 성립시키는 사이 신호가 멈췄다.

서둘러(내 딴엔), 샤워를 끝낸 후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자리를 잡았다.

그녀의 한풀이를 경청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이 그녀의 조급한 마음을 ‘같은 마음으로 받아주지 못한데 대한 예禮’라는 기론奇論을 휘장처럼 두르고.


그리곤 기억 되는대로 버튼을 눌렀다.

이상한 신호음이 수화기 저쪽에서 흘러나왔다.

에고 저장되지 않은, 아니 얼마나 전화를 하지 않는 일상이면,

조금은 미안한 마음으로 ‘寶庫(블로그 메뉴)’, 이름 하여 ‘축복의 통로’를 열어 번호를 확인,

사돈어르신과 안부 인사로 막은 열리고 주인공 등장,

이윽고 시작된 몇 달 묵은 그녀의 한풀이.

그녀는 화자話者

나는 청자聽者. 


언제나 희곡적인 그녀의 독백스러운

그 독백에 행여 쓸쓸까하여 던지는 나의 추임새스러운,

아니 추임새라기보다

그녀를 이루고 있는 강둑이, 한의 출렁거림으로 인해 힘겨워 할 때

출렁거림을 잔잔케 하는 신의 은총이 그 강위에 머물기를 기도하는 것 같은.

대략    

그런 구성으로 이어가는 희곡 한 편……

 


“이제 왔어?”

야속함이 묻어있는 투의 말로 그녀는 서막을 연다.


‘응,  퇴근해서 병원엘 들러오느라 어쩌고저쩌고’

“퇴근?”

“병원은 또 무슨?”

일상을 주고받음이 노닥거림이라는 나와 그녀의 지론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달포도 훨씬 넘는 공양주의 일상을 알리가 없는 그녀는

걱정이 묻어있는 물음을 던져온다.

 

대충, 요 얼마간의 내 일상도 배경으로 끼워 넣고……   

 

‘아버지에게서 전화 왔었어?’

“아니…”

‘그러면 엄마 들어오신 거 아니겠니?’

“아휴 몰라, 들어오셨던지 말았던지 궁금하지도 않아,

아니, 궁금해 하지 않을 거야”

단단히 화가 났나보다.

그녀 안에

미처 정화시키지 못한 강물이 너무 많아

둑을 지탱하기가 힘겹다는 속울음소리일 것이었다.


제 자신을 다스리느라

나름의 철학으로 꽤 깊이 있는 심연深淵을 확보하고 있는 그녀임에도 불구하고



“집은 왜 팔아가지고,

그렇게 팔지 말라고 말씀 드렸는데,

팔아서 작은 아들(목사, 필리핀거주)에게 가셨으면 거기서 사실일이지

살지도 못하고 오실 거면서 집은 팔아 없애고,

오셨으면 또 그게 뭐야?

오빠한테도 못가시고,

그 이해치 못할 성격을 가지고 오빠한테는 가실 수 있기는 해?


오빠는 오빠대로

과묵한 성격이라 말은 없지만

자신에겐 한마디 상의도 없이 하신 일이라며 제게 불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집 판돈 일부를 지들이 사용한 것에 대한 불편함의 표현 아니겠느냐?” 


어찌어찌 그리됐으면

그것도 자식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하신일이니

자신들의 책임 아니냐며,

“날 보고 어떻게 하라고?”


매번 

생활비 명목으로 보내드리는 돈이 넉넉지는 않겠지만

합당한 명분도 근거도 없는 송금 요청에

“도대체 내가 어떻게 뭘 더할 수 있겠느냐고?”

가끔 제집에 들러 바람도 쏘이시고 하시면

덜 무료하시지 않겠느냐?

답답하게 집에만 계시지 말고

두 노인네 손 꼭 잡고 지하철 바람이라도 쏘이실 겸 오시라고 해도

대쪽 같은 자존심에

“거길 내가 왜 가니?” 라며 거절하신단다.   

그럴 줄 알았으면 은행 빚을 놔두고 아버지 돈을 안 쓰는 건데.


유구무언이라 했던가?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아버지를 향한 그녀의 애증의 깊이가

오빠나 나의 그것보다 훨씬 더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미 그녀의 강은

수문水門도 제 기능을 잃은 지경이라는 걸 나는 안다.

홀 사돈어른을 모시고 사는 마음도 그리 녹녹치 않을 버거움에


오빠에 대한

또, 동생 목사에 대한

누구보다 

엄마 아빠에 대한

에고

‘그 마음이 오죽하면 여북할까?’


내게는 서운하심 때문인지

아니면 안쓰러움 때문인지

그 날 이후 전화를 안 하신다.


효孝의 개념을 다시 정립

‘찾아뵈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지내는 날의 연속인 나는

아직도 찾아뵐 용기 없음으로 인해

아니 ‘상황 불가’라는 이유 아닌 이유를 앞세워

별로 위로가 되지 못할 추임새 몇 마디를 던져주고


‘아빠를 이해해’

늘어진 테잎의 말로

또 미안함이 적층된 마음으로

아니 그녀를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한 카오스모스의 마음으로 건네야 했다.

‘누르지 않은 다시듣기단추는 언제쯤 튕겨 오르려나?’ 하는 생각에 마음을 내어준 채. 


그리곤

밤이라도 새울듯하던 그녀의 마음에 누름쇠를 눌러야 했다.

 

…… 

 

(가슴 찢기는 막내의 환영이,

벽이 있어 이디인들 이르지 못할까!

그 환영에서 벗어나기 위한 엄마의 도피 행각이,

그로 인해

아빠에게 가해지는 ‘뺨의 아픔’이

이쯤에서 멈춰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빠를 위로해……’  


무겁게 내려앉은 어둠속에서

독백을 읊조리는 것은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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