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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짝홀짝… 막걸리 심부름의 추억

수로보니게 여인 2009. 8. 12. 20:58

 


[윤용인의 '아저씨 가라사대'] 홀짝홀짝… 막걸리 심부름의 추억

노매드 미디어&트래블 대표 www.nomad21.com  

입력 : 2009.08.12 03:06

노매드 미디어&트래블 대표
더운 나라에 살고 있는 가족을 보기 위해 '리빙 라스베이거스(Leaving Lasvegas)', 아니 '리빙 코리아'를 할 때면 늘 생각하는 것이 있다. '며칠 동안이라도 술을 안 마셔야지!'. 가족 방문의 시간만이라도 요양을 겸한 위장의 휴식을 주자는 기러기 술꾼의 다짐이다. 그러나 그것도 '작심 on 비행기'일 뿐이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그곳이 더운 나라여서 주종이 소주에서 맥주로 바뀐다는 것뿐이다. 더운 나라에서는 역시 맥주가 최고다.

자연스럽게 내 방문에 맞춰 우리 집 냉장고는 마치 오픈 전의 술집 냉장고처럼 수십 개의 캔 맥주가 채워진다. 당연히 아내가 준비하는 것인데, 아내를 부추기고 압박하는 것은 11살 아들놈이다. 녀석이 아버지의 술사랑 취향을 너무 존중하는 효자여서, 제 엄마를 닦달할 리는 없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풍경이 체류 기간 중 밤이면 밤마다 벌어지기 때문이다.

샤워를 하고 거실에 앉아 책을 보고 있으면 아들놈이 쪼르륵 달려와 내 옆에 앉는다. 소파 테이블에는 잘 냉동된 맥주 한 캔이 올려져 있다. 나는 책을 본다. 아들은 PSP 게임을 한다.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책을 본다. 잠시 후 또 한 모금, 그렇게 몇 차례. 내가 마시는 한 모금의 양을 계산한다면, 나의 이 반복 행위는 약 10여 차례를 계속해 줘야 한다.

그런데 늘 다섯 번 정도면 캔은 비어 버린다. 조금 전 상황을 되돌려보면, '내가 맥주 한 모금 마시고 책을 본다. 아들이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게임을 한다. 내가, 아들이, 내가, 아들이…'. 즉 열한 살 술꾼은 아버지의 방문과 함께 공개적이고 합법적인 음주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냉장고의 맥주 채움에 그렇게 적극적이었던 것이다.

제 엄마는 질색을 하며 아이를 야단치고, 그냥 웃기만 하는 나를 나무란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아이를 야단칠 자격이나 되나? 저나 나나 머리에 피도 마르기 전에,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내리신 막걸리 심부름의 끝에서, 찰랑대는 주전자의 술 소리를 귀로 듣고 솔솔 익는 술 냄새를 코로 맡으며, 한 모금 한 모금 그렇게 목을 축이며 술을 배웠으면서. 그때도 우리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볼 벌게지고 눈도 풀린 어린 주정뱅이의 모습을 보며 껄껄 웃는 것으로 적당히 부족해진 술 주전자를 받아주지 않으셨던가. 게다가 이 정도의 홀짝임에 아이의 뇌가 성장을 멈추거나 제 아비도 몰라볼 정도로 이성을 잃는 것이 아니라면 별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문제가 된다면, 내가 마실 술이 조금이라도 적어진다는 아까움뿐이지.

그리하여, 내가 술을 한 잔 할 때, 어느새 다가와 내 술을 홀짝거리는 어린 놈을 보고 있으면 특별히 안주가 필요 없이도 술 맛이 나서 나는 좋다. 그러니 내게 있어 녀석은 '술 먹은 안주'가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