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가요 '쌍화점'에는 회회아비가 떡의 일종인 쌍화를 사러 간 여인의 손목을 쥐더라는 구절이 있다. 고려시대엔 회회인(回回人·무슬림)들과 교류가 많아 그들 중 일부는 궁중에서 왕을 위해 연회를 열기도 했고 시장에서 장사도 했다. 그들은 조선 건국 후에도 그냥 남아 사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 태조는 설장수라는 회회인에게 '경주 설씨'라고 본관을 하사했는데, 실록에선 그를 '회골(위구르) 사람'이라고 했다.(이희근 '우리 안의 그들')
▶위구르 자치구는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을 합쳐놓은 크기다. 이 땅에 2100만명이 살고 있다. 1949년 인구가 400만~500만명일 때는 한족이 약 30만명, 6%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한족이 823만명, 39%나 된다. 중국 정부가 '서부대개발'을 통해 티베트, 위구르 개발에 나서고 한족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면서 위구르인들의 삶과 문화도 급격한 변모를 겪고 있다.
▶5일 위구르 수도 우루무치에서 일어난 유혈사태로 156명이 사망하고 8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표면적 원인은 한족·위구르족 노동자 간 충돌에 대한 경찰의 편파 수사로 알려져 있지만 그 밑에는 위구르인들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과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 고유문화 불인정에 대한 분노가 깔려 있다. 중국이 소수민족의 정체성을 인정 않는 정책을 고집하는 한 위구르와 티베트는 화약고로 남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