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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5만원권

수로보니게 여인 2009. 6. 23. 20:14

[만물상] 5만원권

김기천 논설위원 kckim@chosun.com

입력 : 2009.06.23 03:23

 

1972년 4월 한국은행은 국내 발권사상 최고액 화폐인 1만원권 발행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최고액권은 500원짜리였다. 한은은 1962년 2차 통화개혁 이후 국민총생산이 9배나 늘었는데도 최고액권은 500원권 그대로여서 상거래에 불편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고액화폐 대용으로 유통되던 1만원짜리 자기앞수표가 쉽게 위조·변조된다는 점도 꼽았다. 경제계는 즉각 환영했지만 물가를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문제는 조금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새 화폐 도안에 석굴암 석가여래상이 들어간 데 대해 "특정 종교를 두둔하는 처사"라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한은은 국사편찬위원회 등에 자문해 "민족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국보급 예술품 중에서 선정했다"고 설명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박정희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로 도안을 세종대왕으로 바꿔야 했고 1만원권 유통도 1년 늦춰졌다.

▶오늘부터 시중에 풀리는 5만원권도 비슷한 논란과 곡절을 거쳤다. 1만원권이 발행된 1973년 이후 36년 사이 물가는 12배 이상, 국민소득은 150배 넘게 뛰었다. 고액권 발행의 근거로 이렇게 경제규모가 커졌다는 사실과 함께 자기앞수표의 문제점이 거론되는 것도 그렇고, 과소비와 물가 상승의 부작용이 걱정되는 것도 비슷하다. 5만원권 도안을 놓고도 이런저런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고액권 발행의 가장 큰 문제는 뇌물 수수와 비자금 조성 같은 범죄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데 있다. 1만원권으로 5억원이 담긴 사과상자보다는 5만원권으로 5억원이 담긴 007 가방을 건네는 게 훨씬 간편할 것이다. 요즘 '박연차 게이트' 같은 뇌물 수사에서 100달러짜리 지폐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지난 2000년 캐나다 중앙은행이 "고액권을 이용한 자금세탁과 조직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최고액권인 1000달러짜리 발행을 중지하고 회수에 나섰던 게 남의 일만은 아니다.

▶주머니에 흔히 '배춧잎'으로 불리는 1만원권 한 장이 들어 있으면 든든하던 시절이 있었다. 1만원권이 처음 발행된 1973년 포항제철 기능직 1기로 입사한 직원들은 첫 월급으로 2만4000원을 받았다. 쌀 여섯 가마니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당시엔 월급 1만원도 적은 보수가 아니었다. 지금은 1만원으로 쌀 3~4㎏밖에 못 산다. 그래서 고액권 발행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불안과 걱정이 가시지 않는 게 대부분 국민의 심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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