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에 살고 있는 함민복 시인(47)이 동시집 《바닷물 에고, 짜다》(비룡소)를 냈다. 집게 소라 새우 숭어 돌게 짱뚱어 등 강화도 개펄과 서해 바다에서 살아가는 바다 생물들을 소재 삼아 쓴 동시 43편을 수록했다. 1988년 등단해 틈틈이 동시를 쓰고 발표도 했지만 동시집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방이 땅으로 둘러싸인 내륙(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함 시인은 1996년부터 거꾸로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강화도에서 살고 있다. 시 쓰는 틈틈이 배를 타고 나가 그물과 낚싯대를 드리우고 가끔은 뻘 깊은 곳으로 들어가 소라를 잡았다. 그 생생한 경험의 그물에 동시가 걸려 올라왔다. 특히 바다 생물이 살아가는 모습을 소개하는 시들이 많다. 수록시 〈멸치〉는 떼로 몰려다니는 멸치의 독특한 습성을 소재로 쓴 작품이다. 시인은 "도시에서 놀러 온 아이들이 바다 생물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어 놀랐던 경험을 떠올리며 동시를 썼다"고 말했다.
'새카맣게 멸치 떼가 왔다/ 샥// 그물이 물에 잠기는 소리 내며/ 멸치 떼가 방향을 자주 바꾼다// 멸치들아 너희들은 왜 단체로만 다니냐/(…)/ 달처럼 한 번 혼자 다녀볼래/(…)'
- ▲ 강화 개펄과 서해는 함민복 시의 샘이다. 개펄 생태를 관찰하기 위해 앉아 있던 바위를 찾아간 함 시인은“가끔 디카를 들고 나와 사진도 찍었다”고 말했다./강화=김태훈 기자
가난한 어머니가 덜어준 국밥 국물을 눈물 흘리며 마셨던 사연을 담은 산문시 〈눈물은 왜 짠가〉를 통해 눈물과 웃음이 함께하는 '가난의 휴머니즘'을 펼쳐보였던 시 세계도 동시로 재연했다. 시인은 올 초 모친과 사별했다. 어미새의 넉넉한 사랑을 표현한 수록시 〈저어새〉는 '함민복 시'의 뿌리였던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으로 썼다.
'물 빠진/ 갯골에서// 저어새가 젓가락 같은 다리로 서서/ 주걱 같은 부리로 뻘탕을 휘젓고 있다// 어미 저어새가 그만 먹으라고 해도/ 새끼 저어새는 아직 더 먹어야 한다고/(…)/ 턱 턱 턱, 철게를 먹고/ 꿀꺼덕, 갯지렁이를 삼킨다// 국물은 안 먹고 건더기만 골라 먹어도/ 혼나지 않는 저어새가 부럽다'
시인은 "물고기들의 습성만 아니라 자유·평등·박애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들도 시의 형식으로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제안도 그래서 했다. 다만 동시답게 어린이들 눈높이에 맞췄다.
'우리들한테/ 비린내 난다고 하지 마세요// 코 막지 마세요// 우리도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미끄러운 피부, 거친 피부/(…)/ 정성 들여 화장한 거예요// 이렇게/ 향기가 다양한 걸/(…)'(〈비린내라뇨!〉)
미래의 시 독자들에게 시 읽는 재미를 미리 알려주고 싶은 욕심도 담았다. 맨발로 들어간 뻘을 신발에 비유한 것은 미소를 짓게 한다. '말랑말랑한 뻘이 간질간질/ 발가락 사이로 스며들며/ 금방 발에 딱 맞는/ 신발 한 켤레가 된다'(〈지구 신발〉)
함민복 시인은 다음 동시집 구상도 이미 세워 놓았다. 함 시인은 "이번엔 서해안 물고기가 등장했는데 다음 동시집에서는 동해안 물고기들을 소개해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강화=김태훈 기자 scoop87@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09.06.16 0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