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³οο ı ĿØЦЁ УØЧ/´˝˚³οο ı Łονё 피플

[만물상] 6·25는 살아있다

수로보니게 여인 2009. 6. 25. 21:23

[만물상] 6·25는 살아있다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tjoh@chosun.com

입력 : 2009.06.24 23:46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 민통선 너머에 울진촌이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경북 울진 말을 쓰고 울진식 '덤벙김치'를 담가 먹는다. 6·25로 쑥대밭, 지뢰밭이 돼버린 벌판에 울진 사람 66가구 300여명이 옮겨온 것은 1960년 봄. 태풍 사라에 모든 것을 잃은 뒤 정부 말만 믿고 이주해왔다가 모진 삶에 빠졌다. 지뢰를 밟아 목숨이나 발을 잃은 이가 한둘 아니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피땀으로 '조국강산의 중심 농토'를 일궜다는 자부심으로 살았다.

▶양구 '단장(斷腸)의 능선' 931고지엔 프랑스 노병의 유골이 깃들어 있다. 나바르 일등병은 1951년 이 격전지에서 유탄에 맞아 귀국했다. 치료가 끝나자 1953년 다시 와 여러 고지 쟁탈전에서 활약했다. 그는 2004년 세상을 뜨며 "단장의 능선에 유골을 뿌려달라"고 했다. 춘천의 언론인 함광복씨가 30년 가까이 비무장지대 일대를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 듣고 모은 얘기들이다. 그에게 6·25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역사다.

경기도 양평의 지평리 전투를 기리는 '지평리를 사랑하는 모임'이 그제 전투 현장에 미군 참전용사를 초청해 생생한 증언을 들었다. 미군과 프랑스군이 중공군을 막아 반격의 계기가 된 지평리 전투를 재평가해오면서 지난 2년 미국에 수소문해 찾은 생존자다. 프랑스군과 중공군 참전자도 초청할 것이라 한다. 모임 대표인 변호사 김성수씨는 "중요한 역사적 순간을 누군가는 기록하고 기념해야 한다"고 했다.

영국 기자 앤드루 새먼은 임진강 전투를 얼마 전 책으로 재현해냈다. "6·25가 잊혀져 가는 게 안타까워서" 2년 동안 영국군 참전용사 50여명을 인터뷰해 쓴 '마지막 총알'이다. 저명한 미국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40년 취재 끝에 2007년 남긴 유작 '콜디스트 윈터'에서 6·25의 전모를 박진감 넘치는 다큐멘터리로 풀어냈다. 그 역시 참전용사 수백명을 인터뷰했다.

▶정작 국내엔 6·25를 손에 잡힐 듯 재구성한 저술이 드물다. 대부분 기록과 숫자에 의존하고 정치 이념과 국제 정세로 재단하려 든다. 6·25가 왜곡되고 잊혀진 전쟁이 돼버린 큰 이유다. 증언을 채록(採錄)하는 구술사(口述史)는 이제 중요한 역사 연구방법으로 인정받는다. 사람들은 강렬한 사건은 놀랍도록 오래 정확히 기억한다. 그러나 6·25를 증언해줄 사람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6·25를 '살아 숨쉬는 역사'로 되살리려면 땀 냄새 밴 저술이 많이 나와야 한다.

일문으로 이 기사 읽기일문으로 이 기사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