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편지·반성문까지… 영역 확장하는 대필(代筆)서비스
인터넷사이트 70곳 성업 협박·불륜 편지는 '사절'
지난달 중순 결혼 5년차 A(32·개인사업)씨가 편지 대필업체 '사랑 메신저'에 전화를 걸었다. A씨는 "두달 전에 가출한 아내의 마음을 되돌릴 편지를 써달라"며 참고자료로 부인이 남기고 간 편지 전문을 보내왔다.
'신혼여행 때 혼자 숙소에 남겨두고 술 마시러 나가지 않나, 소주를 얼굴에 뿌리지 않나…. 이제 싫어.'
이 업체 대표 전남옥(여·46)씨는 "처음엔 '부인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어 의뢰를 거절할까 했지만 A씨가 '앞으로 잘 하겠다'고 해서 편지를 대신 써줬다"고 했다.
휴대전화와 인터넷 메신저가 보급되면서 편지 쓸 기회가 줄어 글짓기 경험이 적은 소비자들을 대신해 편지를 써주는 대필업체들이 늘고 있다. '말글 커뮤니케이션' 김재화(56) 원장은 "2003년만 해도 인터넷 사이트를 연 대필업체가 10여 곳에 불과했는데, 요즘은 60~70개 업체가 왕성하게 활동 중"이라고 했다.
업체들은 주로 인터넷 사이트와 전화로 영업한다. 업체별로 대필작가를 5~10명쯤 확보하고 의뢰가 들어올 때마다 일을 나눈다. 대필요금은 A4용지 한 장당 2만원선. 대개 업체와 작가가 반씩 나눈다.
대필작가는 주로 등단 경력이 있는 주부 문인이 부업 삼아 많이 한다. 2002년 한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지애주(여·51)씨는 "같이 문학 공부를 했던 후배 소개로 일을 시작했다"며 "부수입으로 애들한테 용돈도 주고 있어 짭짤한 수입원"이라고 했다. 이들은 일간지를 읽고 매주 2~3권씩 문학·교양서적을 섭렵하며 편지에 인용할 예화를 골라놓는다.
소비자들이 대필해달라는 사연은 단순한 '연애편지' 수준이 아니다. 주식 투자로 7000만원을 날린 부인이 남편에게 '나를 용서해 달라'고 보내는 편지, 은행 직원에게 '한번만 더 대출해 달라'고 간청하는 편지, 남편이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며 부인이 남편의 상사에게 '선처'를 호소하는 편지 등이다.
지난 4월 수도권 모 대학 공대 4학년 박모(26)씨는 '말글 커뮤니케이션'에 반성문 대필을 의뢰했다. 입사시험 준비하느라 전공 수업 중간고사를 빼먹은 게 화근이었다. 박씨는 담당 교수에게 "대기업에 합격해서 꼭 졸업해야 한다"며 "F학점만은 안 받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교수는 "A4용지로 40장 분량의 반성문을 써오라"고 했다.
김재화 원장은 용서에 대한 동서양 고사(故事)를 모아 반성문을 써줬다. 김 원장은 "꼬박 사흘이 걸렸다"며 "학생인 점을 감안해 40만원만 받았다"고 했다.
부업 삼아 대필작가로 활동 중인 김모(43·자영업)씨는 하루 두 통꼴로 편지를 대필한다. 그는 "의뢰인들이 '이런저런 사항을 넣어달라'고 알려주는 배경 설명 중에 내밀한 내용이 많아 '나 같은 제3자에게 이런 걸 알려줘도 될까' 싶을 때가 많다"고 했다. 그는 "한 남성 의뢰인으로부터 '편지 덕분에 청혼에 성공했다'는 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며 "한편으론 뿌듯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대 여성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김난도(46) 교수는 "심부름에서 이벤트까지 모두 전문업체 맡기는 '대행문화'가 개인의 속내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편지'의 영역까지 퍼진 것"이라며 "이는 현대인들이 인터넷이나 휴대폰의 등장으로 단문 위주의 커뮤니케이션만 하다 보니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져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 조선일보
이신영 기자 foryou@chosun.com 손장훈 기자 lustfo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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