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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후의 문학(2)/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수로보니게 여인 2009. 2. 1. 01:20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광복 이후의 문학(2)/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5시가 이미 넘었는데도 어두웠다. 여느 때면 내방 창에 첫빛이 와 닿고 커어튼이 그 빛을 올 사이사이로 빨아들여 방안의 어둠을 밀어 버릴 시간이었다. 나는 침대 머리맡의 수화기를 들고 주방으로 이어진 단추를 눌렀다. 아직 잠이 덜 깬 듯싶은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떨림판을 흔들어 왔다. 커피를 시키고 일어나 커어튼을 젖혔다. 창문을 덮었던 안개가 스멀스멀 밑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늙은 개가 안개 속에서 움직이는 것을 나는 내려다보았다. 돌아간 할아버지의 개는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느릿느릿 안개를 헤쳐 흐트려뜨렸다. 숙부가 독일의 어느 기업인에게서 선물로 받았다는 개였다.

숙부는 자기가 받은 선물을 다시 할아버지께 바치면서 족보를 밝혔는데, 개의 계보가 그 나라의 호엔쫄레른 왕가까지 들먹이게 했다.

늙은 개의 가까운 선조들은 2차 대전에 참가해 노르만디 해안을 순찰하고, 아프리카의 사막도 횡단했다. 그 이야기가 나를 흥분시켰었다.

지도자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늙은 개의 선조들은 주인과 함께 참전해 그들에게 할당된 참호를 지키고 보초를 섰다.

전진의 명령은 지도자가 내렸다.

“나는 언제나 옳다. 나를 믿고, 복종하고, 싸우라.”

고 지도자는 말했다. 강력한 교육을 받은 유럽 국민답게 그들은 총력을 기울여 싸웠다. 나는 그들의 역사를 좋아했다.

할아버지의 개는 연못가에 앉아 있다 먹을 것을 찾아 내려앉는 참새를 앞발로 쳐 잡았다. 아버지는 그렇게 영리하고 민첩한 사냥개를 아직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냥을 나갈 때마다 피묻은 짐승들을 차에 싣고 왔다. 할아버지는 그 짐승들을 거실로 끌어들이게 해 카페트를 버려 놓으며 큰 소리로 웃고는 했다. 그 때 할아버지 앞으로 할아버지가 쏠 짐승을 꼼짝없이 몰아붙였던 개는 저의 집으로 들어가 적당한 양의 갈비를 뜯었다. 젊었을 때의 이야기다. 늙은 개는 천천히 움직였다. 나는 두꺼운 책을 뽑아 그 개를 향해 내리 던졌다. 빗나간 책이 풀장으로 이어진 보도 타일 위에 떨어졌고 늙은 개는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할아버지가 돌아갔을 때 개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숙부가 그 개를 가져가라고 했다. 아버지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 개는 이미 장년기를 지나 늙기 시작한 때였지만 아버지는 자기가 할아버지의 모든 권한을 물려받았다는 것을 숙부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 숙부가 은강공장에서 올라온 공원의 칼을 맞고 숨졌을 때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숙모와 사촌들 옆에 선 아버지가 눈가에 차서 넘칠 듯 글썽해진 눈물을 손수건으로 찍어냈던 것이다.

나는 숙부를 죽인 공원을 법정 방청석에 앉아 보았다. 늙은 개는 보이지 않았다. 소리를 듣고 안개를 헤치며 온 아버지의 경호원이 내가 늙은 개를 죽일 마음으로 던진 두꺼운 책을 집어 들었다.

여자아이가 책과 커피를 받쳐 들고 들어왔다.

“작은댁 사모님께서 아드님하고 오셨어요.”

여자아이가 아직도 잠이 덜 깬 듯싶은 목소리로 말했다. 엷은 하늘색 원피스에 흰 앞치마를 둘렀다.

“함께 온 사람이 있지?”

내가 물었다.

“변호사를 데리고 오셨어요.”

나는 웃옷을 벗고 잤다. 그래서 여자아이는 나를 바로 보지 못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해 열다섯 살 계집아이로 왔는데 이태만에 몰라보게 자란 것을 새삼스럽게 알았다. 가슴 부분이 유난히 볼록해 보였다. 나가려는 아이를 잡아 세웠다. 나는

“너희 방 텔레비전에는 이런 것이 없지.”

라고 말하면서 카세트 테잎을 골라 VTR 장치의 작동 단추를 눌렀다.

여자아이의 몸에 간밤의 잠이 그대로 붙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나의 커피잔을 그 아이의 입에 대주었다.

“전 쫓겨나요.

아이가 말했고, 화면에서는 베를리오즈의 음악이 화면 안 여자아이의 금발을 흩날리게 했다. 지금의 유럽 쪽 사람들은 알 수가 없었다. 나라면 이런 종류의 테잎에 베를리오즈의 음악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열여섯 살>이라는 제목의 테잎이었다. 빨간 스웨터를 걸친 열여섯 살짜리 여자아이가 친구들과 헤어지면서 손을 흔들었다. 나는 테잎을 빠른 속도로 회전시켜 뒷부분에 놓았다. 놀라운 일이 화면 안에서 벌어졌다. “내가 널 어떻게 했니?”

나의 물음에 여자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아이의 몸이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여자아이는 화면에서 눈을 돌려 비난에 찬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손을 빼었다.

새벽같이 아버지를 만나러 온 세 사람은 2층 응접실 소파에 그림처럼 앉아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직도 그들 방에서 자고 있었다. 숙모가 데려온 변호사는 눈을 감았다. 두 사람을 보는 순간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사촌은 그들 맞은편에 앉아 신문을 뒤적였다.

“형.”

내가 불렀다.

“이리 와.”

“넌 일찍 일어났구나.”

숙모의 말을 나는 묵살했다. 눈을 뜬 변호사가 안경을 올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숙부가 돌아간 날부터 그는 숙모의 변호사로 일했다.

사촌은 나선형 층계를 돌아 내가 서있는 곳으로 걸어 올라왔다. “너무 일찍 왔어.”

내가 말했다. 우리는 복도 끝으로 가 비상계단으로 내려섰다. 안개가 걷혔다. 아침 첫 햇살은 우리가 돌아 내려가는 층계참의 모서리와 흰 벽, 그리고 키 큰 나무들 잎 위에 떨어졌다. 사촌은 까만 양복에 까만 넥타이를 맸다.

“형까지 올 줄 몰랐어.”

사촌은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잠을 더 자두는 게 낫지. 변호사를 데리고 와서 어쩌겠다는 거야?”

“우린 그런 이야길 하지 말자.”

숙부가 돌아갔을 때 그는 미국에 있었다. 나의 친형 둘도 그곳에 유학 중이었으나 그들은 숙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갔다면 허겁지겁 돌아왔을 것이다.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나의 형들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자기들이 차지할 아버지의 유산을 빨리 확인하고 싶어 조바심을 쳤을 것이다. 그들을 생각하면 잠이 안 왔다. 둘이 터무니없이 차지해 나의 몫 은 바싹 줄어들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장미 밭을 지나갔다. 아버지의 경호원이 늙은 개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내가 던진 두꺼운 책이 아주 빗나가지는 않았다. 머리에 상처가 났다면서 경호원이 늙은 개를 끌어갔다.

“빨리 미국으로 돌아가.”

나는 풀장 가에서 신발을 벗어 던졌다. 사촌은 등나무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너도 나를 귀찮게 생각하니?”

우울한 목소리로 사촌이 물었다.

“아니.”

나는 말했다.

“형을 귀찮게 생각할 사람은 없어. 난 형을 위해 하는 말야.”

“고맙구나.”

사촌의 다음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스프링보오드를 몇 번 구르다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풀 깊은 바닥은 아직도 어두웠고 물은 아주 차갑게 느껴졌다. 나는 일 분 가량 잠수해 있었다. 풀 밑바닥 모퉁이에 몸을 오그리고 앉아 느끼는, 일 분 동안의 숨막힘, 일분 동안의 거짓 절망이, 나중에 잃게 될 내 세계와 지금 멀어져 버리는 괴로움으로 변해 나를 조여 왔다. 발을 놀려 물 위로 떠오르면서 나는 빛의 굴절이 일으키는 파면의 진행 방향 끝에 앉아 있는 사촌을 보았다. 나는 수면 위에 엎드려 물장구를 치며 손을 번갈아 움직여 물을 긁었다. 물장구는 다리 관절의 힘을 빼고 쳤다. 얼굴을 돌려 물 밖으로 내놓는 순간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숨은 물속에서 쉬었다.

“밖으로 나가자.”

사촌이 수건을 던져 주었다. 햇살은 이른 아침부터 따갑게 느껴졌다. 정장을 한 사촌의 이마에 땀이 내배었다. 아버지의 운전기사가 자기 차를 타고 와 내리는 것이 사철나무 사이로 보였다.

“숙모가 뭔가 잘못 생각하시는 것 같아.”

내가 말했다.

“형도 숙모가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계신지 알겠지?”

“난 모르겠어.”

사촌이 말했다.

“네 말대로 미국으로 돌아가 하던 공부나 계속해야겠다.”

“이따 아버지를 뵙게 될 때 그 말씀부터 드려. 숙모가 하는 대로 따라 해서 이로울 건 하나도 없다구.”

“그래야 큰아버지가 흡족해 하시겠지.”

“형이 은강 그룹의 일원이라는 걸 강조하실 거야. 형도 우리 회사들이 우리나라 전체 세금의 4%를 내고, 매상액이 국내 시장의 4.2%, 수출은 5.3%를 기록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돼.”

“대단하구나.”

“대단하지!”

나는 사촌에게 말했다.

“어리석은 경영을 할 권리가 아버지에게는 없어. 숙부가 돌아 가셨다고 그 분의 몫을 당신 앞으로 빼달라는 숙모의 말씀이 통할 것 같아? 형이 공부를 끝내고 돌아와 일을 익혀 경영에 참여하는 게 제일 자연스럽지. 아버지가 인정하는 건 형뿐야. 나쁘게 들리겠지만, 숙모는 이제 우리 집안사람이 아니라구.”

“어째서?”

사촌은 아주 기분이 나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것 같아.”

내가 말했다. 사촌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내 위의 두 형에 비하면 선량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은강에서 올라온 젊은이가 왜 날카로운 칼을 뽑아 살인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사람들에게 묻고는 했었다. 선천적으로 착한 사람이었다. 칼을 맞고 숨을 거두는 순간에 숙부가 아픔을 느꼈을까 하는 것도 그는 알고 싶어 했다. 살인범이 노렸던 사람은 숙부가 아니라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침묵했다.

사촌은 범인을 이성과 감정, 의지와의 조화를 잃은 정신분열증 환자로 보았다. 그를 재판하면 안 된다고 그는 말했다. 재판정에 나가 보고서야 피고가 정상인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그의 아버지를 죽인 자의 계획 살인을 정당방위라고 우겨 주위 사람들을 갑갑하게 만들었다.

법정 방청석은 공장 노동자들로 꽉 찼다. 아버지의 젊은 비서가 가방을 들고 들어서는 것이 똑같은 사철나무 사이로 보였다. 아버지의 승용차가 햇빛을 받아 번쩍거렸다. 독일 사람들이 만든 최고급 승용차였다. 같은 독일제였지만 나의 것은 차체가 작고 앙증한 흰색 국민차였다.

사촌이 다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미국의 노동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고 그는 말했었다.

“한국 섬유 노동자의 임금은 얼마?”

그 곳 노동조합 대표가 선창하면 노동자들은 “시간당 19센트!” 라고 외쳤다는 것이다.

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크게 외치면서 한낮의 광장을 돌 때 사촌은 그들이 우리 제품의 수입을 규제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한달 임금으로 45.6달러를 지급하고 일을 시킬 경영 집단이 있을 것으로는 믿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은강 방직에서 올라온 젊은이가 칼을 뺀 것은 당연하다는 사촌의 주장이었다. 우리의 제도는 이제 안에서부터 파괴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3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칼을 품었던 사람과 그의 동료들, 그리고 그들의 식구들은 2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현실이 한 차원을 빼앗아 버렸다는 것이었다. 2차원이라면 일정한 한도와 경계가 있다. 사촌에게는 자신을 너무 분석하고 구속하는 습관이 있었다.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갑갑한 사람이었다.

“변호사가 가잖아?”

그가 물었다.

“아버지의 비서가 쫓아내고 있어.”

내가 말했다.

“아버지의 변호사를 찾아갔어야 될 사람이야. 숙모를 믿고 실수를 했어.”

“법률가는 사태를 똑바로 본다. 문제의 핵심을 보통 사람들보다 빨리 파악해. 나는 그를 믿었어. 어머니가 새벽같이 전화를 해 불러냈어. 어머니는 한잠도 못 잤어. 저 사람이 없으면 말 한 마디 못할 거야. 사실을 정연하게 제시할 능력가가 가버렸으니 큰아버지를 뵈올 필요도 없겠어.”

“몇 해만 기다리면 형은 자동적으로 중역이 돼.”

웃으며 나는 말했다.

“들어가. 아버지가 일어나셨어.”

“나는 돈이 많은 것도 싫어.”

피로한 목소리로 사촌이 말했다. 그에게는 괴로운 날이었다. 숙모는 응접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내가 방으로 올라가 옷을 입고 내려 왔을 때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숙모가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북쪽 벽에 은강조선 현장을 돌아보는 할아버지의 큰 그림이 걸려 있었다.

할아버지는 기분 좋은 표정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변화를 무서워했다. 할아버지는 오래 전 기술과 기계로도 많은 제품을 만들어 팔아 높은 이윤을 얻었다. 몇 개의 소비재 생산 회사와 무역상사의 철저한 경영으로 그는 주주들의 투자를 보호하고 기업의 재정을 안정시키며 부를 쌓아올리는 데 성공했다. 할아버지에게는 사회의 수요변화에 꼭 앞장서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돈을 계속 벌어들이고 있는 이상 모르는 방법과 기술에 매달려 머리를 쓸 필요가 전혀 없다고 할아버지는 생각했다. 아버지와 숙부가 합세해 변화에 대한 할아버지의 저항을 깨뜨려 버렸다. 우리는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우리가 지금까지의 경영 방법을 고수한다면 1년 후에 우리의 이익은 줄어들 것이고, 2년 후에는 현상유지도 어려울 것이며, 3년 후에는 선두 그룹에서 탈락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어렸지만 아버지가 옳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늙어 손자를 갖게 된다면, 나의 손자들은 그들의 증․고조부 대의 터무니없는 시절 이야기를 듣고 낯을 붉히게 될 것이다. 일종의 경제 발작 시대로, 윤리, 도덕, 질서, 책임이 모든 생산행위의 적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을 그 아이들은 알아 지금 사람들이 내세울 업적을 형편없이 깎아 내리려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버지는 머리를 썼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그 구조가 고도화함에 따라 기업의 행동 양식도 달라져야 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경공업 분야에 머물러 있는 할아버지의 기업 그룹을, 머리와 지원만으로, 기계, 철강, 전자, 조선, 건설, 자동차, 석유화학 등 중화학 공업을 망라한 체제로 끌어올렸다. 말년의 할아버지는 그 무서운 성장 속도를 대하고 현기증이 난다고 말했다. 그가 황금기로 안 60년대를 아버지가 숙부와 함께 뛰어든 격변기에 견주어 보면 소꿉장난 시절 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의 접빈실에서 숙모와 사촌을 맞았다.

“넌 아주 귀국해 버린 거냐?”

아버지가 사촌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사촌이 말했다.

“돌아가 공부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아버지 장사를 모셨으면 됐지, 왜 얼른 돌아가지 않고 몇 달씩 허송하고 있는 거냐? 너도 내가 어머니 앞으로 회사를 떼어 드려야 한다고 믿고 있니?”

“전 잘 모르겠습니다.”

숙모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걸 알아야지.”

아버지가 말했다.

“너의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용서받을 수 없는 일야. 나도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시아주버님.”

숙모가 겨우 입을 뗐다.

“아버지의 권리를 이어받을 사람은 바로 너야.”

아버지는 얼굴도 돌리지 않고 조카에게 말했다.

“공부를 끝내고 와 아버지가 하던 일을 해야 돼. 잠시도 쉴 수 없는 상태가 어떤 건지 너도 알게 될 거다. 우리에게 지켜야 할 게 많아. 지키면서, 실제로 행동이 가능한 변혁을 늘 생각해야 돼.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근거 없이 성공한 걸로 믿고 있고, 기회만 있으면 때려부수려고 하는데, 우리는 그들을 설득하든가 안 되면 반대로 밀어붙일 힘을 가져야 된다. 저희들을 위해 우리가 하는 고마운 일은 생각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너의 아버지 일을 나는 눈을 감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거야. 이렇게 큰 희생을 우리가 치러 본 적은 없었어. 나라와 나라 사이의 일이라면 전면전쟁이 일어났을 거다. 이 이상으로 신성한 전쟁 이유는 있을 수가 없어.”

“큰아버님 말씀 알아듣겠습니다.”

사촌이 말했다.

“그러니까, 공장에서 일하는 그들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가만있으면 안 된다는 그 신성한 이유를 똑같이 들겠죠.”

“그 이야기는 나중에 또 하자. 미국에서 필요한 돈은 그곳 지사에서 갖다 쓰거라.”

그리고 아버지가 숙모를 바라보았는데, 사촌의 지적대로 숙모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했다. 아버지는 일을 완전하게 끝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몇 장의 사진이 든 봉투를 넘겨주면서 동생 무덤의 풀이 마르기도 전에 무슨 일을 했느냐고 물었고, 숙모는 사촌의 시선을 받는 순간 얼굴을 돌렸다, 숙모로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주 쉽게 숙모와 사촌을 떼어놓았다. 숙모는 숙부의 죽음을 해방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제 회사 하나를 경영하는 손아래 남자와 엉뚱한 일을 저지르려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숙모가 남자와 자는 사진만은 볼 수 없었다. 그 사진을 들여다보는 숙모의 눈썹은 아래로 처졌고, 순간적으로 까맣게 탄 입술에서는 짧은 숨소리가 새 나왔다. 면담은 간단히 끝났다. 숙모는 혼자 돌아갔다.

나는 사촌과 함께 식당으로 가 아침 식사를 했다. 사촌이 너는 날마다 이른 아침에 수영을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요트를 한 대 건조해 달라고 조르고 있으며, 그것이 실현되면 모험 항해를 떠나 보고 싶다는 것과 먼 바다로의 단독 항해에 대비해 지구력 훈련을 쌓는다고 말해 주었다. 사촌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치체스터가 탔던 것과 같은 요트를 우리 기술로 건조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과 내가 모험 항해라는 말을 거침없이 써도 될 단계가 정말 온 것인지 알고 싶어 했다. 물론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형도 잘 알고 있겠지만 미국은 세계 인구의 8퍼센트 미만으로 전 세계 자원 소비의 반을 차지하고, 잘사는 그들 중 한 사람이 하루에 섭취하는 열량은 못 사는 아프리카. 아시아 빈민들 중 한 사람이 형편없는 식사를 통해 1주일에 취하는 열량보다 못할게 없다고 말했다. 강자가 약자에게 주는 이런 종류의 충격이 인정되는 이상 우리의 상태도 인정을 받아 마땅하다고 나는 주장했다. 우리가 도입해 온 기술에 대해서도 열심히 설명했다. 그러나 내 말을 못 알아듣겠다고 사촌이 말했다. 그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투였다. 그래서 집안에 해결해야 될 일이 있을 때 모험을 생각할 사람은 없다고 나는 말했다. 자연적 인성의 차별에 대해서도 말했다.

“나는 내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욕정을 자주 느껴. 그리고 계집애들과의 그 해결 횟수도 몇 배나 많은 편이야.”

사촌은 나를 쳐다보았다.

“넌 참 이상하구나. 말의 갈피를 못 잡아.”

“이상한 건 그렇게 느끼는 형야.”

“나도 정상은 아니야, 머리가 아파. 어머니는 무엇이 불만이었을까? 어머니의 그 사진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겠지?”

“몰라.”

사촌에게 나는 말했다.

“내가 형이라면 숙부를 찌른 자의 선고 공판을 보고 미국으로 가겠어. 그 다음엔 모든 걸 잊고 그곳 생활에 젖어 버릴 거야. 가만있어도 형 앞으론 이익배당이 나와 쌓이게 돼 있어.”

“그렇겠구나.”

사촌이 일어나면서 말했다.

“너는 정말 빈틈이 없구나.”

사촌에게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그는 차로 태워다 주겠다는 것도 거절하고 걸어 나갔다. 밖은 무척 더웠다. 한여름 햇볕이 고민하는 사촌의 몸에 떨어졌다. 내 사고와 체질, 습성이 점점 국적 불명이 되어간다고 그가 말한 적이 있다. 이 관찰 하나만은 그가 옳았다. 나에게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을 그가 인정한 셈이었다.

나는 종종 미래의 일들에 대해 상상하고는 했다. 멀지 않은 장래에 형들과 함께 일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아버지가 돌아가기 전에는 사촌도 함께 일하게 될 것이다. 나는 사촌을 문제 삼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친형 둘을 나는 어렸을 때부터 무서워했다. 둘 다 머리도 좋고 힘도 세었다. 장난감을 놓고 벌이는 작은 욕망의 저울질이었지만, 그들에게 나는 늘 지기만 했다. 증기기관차. 탱크. 장갑차. 비행기. 대포. 기관총. 권총에 꼬마 병정들까지 빼앗기고 계집애 동생과 함께 인형의 집, 인형의 침대에 인형들을 재우면서 놀았다. 아빠, 불 좀 꺼주세요, 우리 아기가 자요, 동생이 속삭이듯 말하면 콩알만 한 전등의 스위치를 조심스럽게 돌려 불을 끄면서 두 형이 대포를 쏘아 대고 병력을 투입해 인형 나라의 평화를 깨뜨려 버리지나 않을까 가슴을 조이고는 했다. 그러자 형들은 나더러 오줌을 앉아서 누라고 말했고, 어머니의 친구들이 어쩌다 오면 경훈이는 예쁘기도 하구나, 계집애보다도 예뻐, 참 예뻐. 나의 몸을 안고 수없이 입을 맞추었다.

나는 공부로만은 이기고 싶었지만 형들은 교사를 골탕 먹일 생각만 하고 책하나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으면서도 좋은 점수를 얻어 나를 납작하게 눌러 버렸다. 내가 이 세상에 나 눈물로 드린 최초의 기도는 악마 같은 둘이 천당으로 가도 좋으니 제발 죽어 내 옆에서 없어지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큰형이 자라 차에 계집애를 태워 몰고 다니다 교통사고를 냈을 때 나는 두 번째 기도를 올렸다. 큰형의 차가 가로수를 들이받아 박살이 나는 바람에 큰형을 따라 다니며 알몸으로 더러운 정액을 빨아들였던 계집애는 그 자리에서 숨졌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은 큰형은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나의 기도는 다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큰형은 보름도 안 되어 퇴원했다. 입건도 되지 않았다. 큰형이 사고를 낸 한밤중 그 시간에 보일러공과 함께 기사들 방에서 잠을 잔 어머니의 운전기사가 큰형 대신 경찰을 찾아갔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불러 죽은 계집애네 부모에게 상당한 액수의 돈을 지불하라고 일렀다.

할아버지가 돌아갔을 때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평생을 두고 되뇌인 말은 <희생>이었는데, 그의 이 말은 그의 생애와 하나도 상관이 없었다. 형들이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나는 아버지의 인정을 받아 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었다. 내가 아버지의 일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과 빨리 자라 일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아버지는 몹시 기뻐했다. 아버지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전쟁이었다. 이상하지만 사회적인 여러 변화도 아버지에게는 같은 의미를 지니었다. 이것들은 한 순간에 아버지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릴 수 있었다.

그것을 나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긴 설명을 할 필요는 없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나는 두 형을 제일 무서워했다. 사촌은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는 약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와 함께 법정 방청석에 앉아, 남쪽 공장에서 올라온 한지섭이라는 사람이, 숙부를 찌른 살인범에게 죄가 없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쁜 자식!”

그는 반란을 꾀하는 반도와 같았다.

“누가?”

사촌이 물었다.

“변호인 측 증인으로 나왔던 자식 말이야.”

“그렇게만 보지 마.”

“형은 정신이 있어? 누굴 어떻게 한 자의 재판인데 이러지?”

“자기 생각을 말했을 뿐야. 그리고 방청석을 메운 공원들은 그가 옳다고 믿고 있었어. 그들은 왜 그가 옳다고 믿었을까?”

사촌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나는 지섭을 용서할 수 없었다. 일부러 초라한 옷을 입고 나타난 그는 심한 편견과 오만에 악의까지 갖고, 진실은 덮어 버린 채, 우리를 죄인으로 몰아붙였다.

한여름 한낮의 햇볕이 건물과 가로수, 느릿느릿 달려가는 자동차들 위에 뜨거운 기운을 뿜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한 시 반의 짧은 그림자를 끌고 걷다 그늘이 나타나면 재빨리 들어가 이미 젖어 버린 손수건을 꺼내 얼굴과 목을 닦았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을 버리고 떠났다. 차도 많이 빠졌다. 법원 소송 관계인 휴게실 맞은편에 차를 대고 내리자 훅하는 열기가 숨을 막아 왔다. 휴게실에서 나온 회사 비서실 사람들이 공판정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들이 지나가는 왼쪽 나무 그늘 속에 공원들이 서 있었다. 숙모와 사촌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함께 새벽같이 왔다 각기 돌아간 뒤의 두 사람을 사흘 동안 보지 못했다. 내가 지나갈 때 나무 그늘 속의 공원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서서 보기만 했다.

완만한 비탈길을 올라서자 햇빛을 받아 늘어진 줄이 나타났다. 중간까지의 사람들만으로 공판정은 넘칠텐데 내가 올라가는 동안에도 줄은 자꾸 늘어났다. 대부분이 은강공장에서 올라온 스무 살 안팎의 공원들이었다. 아예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매점과 법정 건물 벽 그늘에 앉아 개정 시간을 기다리는 아이들도 많았다. 나는 매점 공중전화기 앞에 서있는 두 여공에게 다가가 피고인의 아버지가 난장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계속 조업 공장에서 밤일을 하느라고 잠을 못 잔 듯한 두 여공은 핏발이 선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머뭇거리던 한 아이가 모른다고 말했다. 그 옆의 여자아이는 달랐다. 그 아이는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그것을 왜 알려고 하는지도 몰라 말해 주고 싶지 않지만, 꼭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말해 주는데, 잠시 후에 판결을 받을 피고인의 아버지는 사실은 굉장히 큰 거인이었다고 단숨에 말했다. 내가 그 아이의 말을 듣고 있을 때 줄에서 나온 몇 명의 남자아이들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줄 밖 그늘에 있던 아이들까지 왔다. 그 중의 한 아이가

“형씨, 나 좀 봅시다.”

했다. “뭐요?”

내가 묻자,

“당신이 우리 회장님 아들이라고 아이들이 그러는데 사실이오?”

건방진 말투로 물었다. 내 안에서 무엇이 욱 치밀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누렇고 모가진 얼굴에 유난히 눈만 살아 움직이는 듯한 아이들이 나를 둘러쌌다. 그리고 적의와 반감을 나타내는 짧은 노랫소리를 나는 들었다.

우리 회장님은

마음도 좋지.

거스름돈을 쓸어

임금을 준대.

아주 짧았지만 상상도 못했던 노래였다. 나는 이 노래를 부른 공원을 돌아볼 수 없었다. 보나마나 나이보다 작은 몸뚱이에 감춘 적의와 오해 때문에 제대로 자라지 못한 아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앞에서 나를 둘러싼 아이들이 나의 표정을 뜯어보면서, 우.리.회.장.님.은.마.음.도.좋.지.거.스.름.돈.을.쓸.어.임.금.을.준.대, 같이 입을 벌렸다. 웃지도 않고, 나무 위 매미의 울음소리보다 작게. 그래서 법정 경고판 앞쪽 줄에 선 사람들은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지만, 그래도, 회사 비서실 사람들이 어디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마조마했다. 우리의 명예와 상관이 있는 일이었다. 아버지의 명예는 물론 나 자신의 명예도 지킬 수 없었다.

두 형이라면 달랐을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참담한 기분으로 몰아넣었다. 마음이 집으로 달려갔다. 내 마음은 아버지의 22소구경 권총을 주머니에 넣은 다음 연발 엽총에 작렬탄을 장전해 들고 뛰어왔다. 나는 그들을 겨냥했다. 쏠 필요는 없었다. 나를 둘러쌌던 공원들이 아들의 판결을 보기 위해 막 도착한 부인에게로 달려갔다. 숙부를 죽인 살인범이 부인의 큰아들이었다. 둘째아들과 딸이 부인 옆에서 있었다. 작지 않은 그 여자가 난장이와 어떤 성생활을 했을까 나는 상상했다. 공원들이 부인을 법정 문 앞으로 안내해 갔다. 숙모와 사촌은 아직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독재적인 아버지는 항상 그의 가족을 괴롭히고,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 못한 사람들일수록 명령하기를 좋아하며 복종을 요구한다. 나는 모르는 난장이를 생각했다. 그는 자식들의 작은 잘못도 결코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잘 때리고, 벌도 심한 것으로 골라 주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그는 잠을 안 자는 독재자였을 것이다. 그의 권력은 사랑. 존경. 믿음을 모르는 그 자신의 성격적 결함이 사용하게 한 무서운 매와 벌 때문에 바른 것이 못 되었을 것이다. 그가 죽었기 때문에 그의 큰아들은 공격목표를 잃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없게 길들여진 큰아들의 그 불확실한 공격성은 그대로 남아 있다 결국 숙부를 죽였다. 그 때 법원에 닿아 비탈길을 올라오는 사촌을 잡고 나의 생각을 말했는데 사촌은 제대로 듣지도 않고 손을 들어 저었다.

“아냐.”

사촌은 간단히 말했다.

“네가 틀렸어. 그가 공판정에서 한 말을 그대로 믿어야 돼. 아버지가 큰아버지를 도와 한 일을 난 알아.”

아버지가 돌아가기 전이라도 두 형이 사촌을 몰아낼 음모를 꾸민 다면 나는 기꺼이 형들 편에 가담하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사촌은 불볕 속에서 땀을 닦았다. 닫혔던 법정 문이 열리자 공원들은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우리는 다른 문으로 들어갔다. 법정 안은 시원했다.

“우리 아버지들이 뭘 어떻게 했다고 그랬지?”

내가 물었다.

“이들을 괴롭혔어.”

방청석 공원들을 돌아보며 사촌이 속삭였다.

“인간을 위해 일한다면서 인간을 소외시켰어.”

“형이 말하는 걸 들어보면 참 근사해.”

내가 말했다.

“사실은, 공장을 지어 일을 주고 돈을 주었지. 제일 많은 혜택을 입은 게 바로 이들야.”

사촌이 웃었다. 그 시간에 그 법정에서 웃은 사람은 사촌밖에 없었다. 피살자의 아들이 살해범의 선고 공판을 기다리며 웃는다는 것은 이유가 어디에 있든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은강공장 노동조합 간부인 듯한 여자아이가 내가 모르는 그 난장이의 부인과 아들. 딸을 피고석 뒤쪽 나무의자로 이끌어 앉혔다. 방청석은 이미 꽉 차버렸는데도 계속 들어오려는 바깥사람들로 문 쪽은 어수선했다. 정리가 방청인들을 헤치고 가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닫았다. 숙모는 오지 않았다. 한집에 사는 사촌도 사흘 동안 얼굴 한번 못 보았다고 말했다. 우리는 공판 결과를 아버지에게 보고하기 위해 나온 그룹 본부 이사와 비서실 사람들 사이에 앉았다. 뒤쪽 벽 밑에 놓여 있는 냉방기가 찬 공기를 내뿜었다. 방청인을 입정시키면서 화가 난 듯한 정리가 공원들에게 옷을 바로 입고 조용히 해 달라고 당부했다.

“저 뒷분, 웃옷 단추 좀 끼우세요.”

정리가 말했다.

“그리고, 지난번에 몇 사람이 소리를 내어 울었는데 오늘은 제발 그러지 마세요.”

“울 수도 없나요?”

쉰 목소리로 한 여공이 물었다.

“운다고 누가 뭐랍니까. 소리내 울지 말라는 거죠. 극장 구경을 온 것도 아니고, 울고불고하면 서로 곤란해요.”

“극장 구경이나 가 울 사람은 여기 없어요.”

“그럼 늘 울어요?”

“그래요. 분해서 날마다 울어요.”

정리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돌아섰다. 나는 쉰 목소리의 여공을 찾아보았다. 아주 못생긴 계집아이가 서 있었다. 대부분의 공장 작업자들이 그렇듯이 그 계집아이도 유난히 누런 피부에 평면적인 얼굴, 낮은 코, 튀어나온 광대뼈, 넓은 어깨, 굵은 팔, 큰 손, 짧은 하반신의 특징을 갖고 있었다. 열아홉 아니면 스무 살 정도였는데 여자로 보이지 않았다. 천 날을 고도에서 함께 보낸다고 해도 자고 싶은 생각이 안 날 아이였다. 공장 노동이 생명 유지를 위한 그 계집아이의 생업이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그 아이의 근육활동뿐이었다.

공장 노동이 방청석을 메운 공원들에게 고통이 아닌 즐거움이 된다면 아버지도 아버지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들을 모두 잃게 될 것이다. 나는 지루했다. 장내 정리가 되고 시간도 되었지만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초조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서류 봉투를 든 변호사가 제일 먼저 들어왔다. 그는 내가 모르는 그 난장이의 부인에게로 다가가 몇 마디 말을 하고 손을 잡아 주었다. 부인이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변호사는 방청석을 한번 돌아본 다음 법대 아래 바른쪽 그의 자리로 가 앉았다. 안경을 쓴 젊은 변호사였다. 그는 방청인들이 자기에게 호의와 존경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믿는 모양이었다. 그를 본 순간 나의 속 밑바닥에서부터 부글부글 울화가 끓어올랐다. 중죄 재판에 변호인이 끼어들어 죄인을 싸고도는 법제도를 왜 그대로 두고 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처음부터 숙부 살해범에서 죄가 없는 것처럼 감싸면서 사건 성격을 아주 바꾸어 버리려고 했다. 담당 검사가 사태 파악을 잘못했더라면 그의 음모에 휘말려들 뻔했다.

검사는 훌륭한 사람이었다. 공익을 대표할 자질을 완전히 갖춘 사람으로 인상과 옷차림까지 깨끗했다. 재판장이 숙부 살해범인 난장이 큰아들의 이름, 나이, 본적, 주소, 직업을 확인해 인정신문을 끝내자 검사가 공소장에 의한 기소 요지를 진술했는데, 그는 거기서 살인, 소요, 특수 협박, 특수 손괴, 폭발물 예비 음모 등의 죄명을 들고 범죄의 일시, 장소와 방법까지 정확히 밝혔다. 직접 신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재판장이 피고인은 각개의 신문에 대하여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고 피고인 진술 거부권을 일깨워 주었지만 난장이의 큰아들은 검사의 모든 물음에 순순히 답했다.

“피고는 은강 방직공장 보전반 기사 조수로 있으면서 열다섯 개 의 서어클을 만든 것으로 밝혀졌는데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서어클의 회원은 같은 공장 근로자들이었고, 그 회원 수는 백오십 명 정도였죠?”

“그렇습니다.”

“그 백오십 명이 공장에서 동료 공원 열 명씩을 설득해 대화를 할 수 있었고, 피고는 각 서어클 책임자에게 전달 사항을 말하면 천오백 여명 명의 공장 종업원들은 짧은 시간 안에 그것을 알 수 있었죠?”

“그것이 무엇을 뜻하지는 모르겠습니다.”

“좋아요. 피고는 197x년 x월 x일 전 종업원은 작업을 중단하고 밖으로 나오라고 지시하지 않으셨읍니까?”

“했습니다.”

“모두 그대로 움직였죠?”

“네.”

“피고는 전 종업원의 단식을 종용했고, 나중엔 과격한 공원들과 함께 작업장으로 들어가 기계들을 파괴했습니다. 사실입니까?”

“사실과 다릅니다. 흥분한 몇 명이 직포과로 들어가 기계를 망가뜨리려고 한다는 조합 지부장의 말을 듣고 달려가 말렸습니다. 그 중의 한 명이 틀에 약간의 손상을 입혔습니다만 간단히 수리해 계속 가동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피고의 방에서 질산나트륨과 황, 그리고 목탄을 발견했는데 그것을 누가 구입한 것입니까?”

“제가 구입했습니다.”

“왜 필요했죠?”

“화약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래 만들었습니까?”

“중간에 포기했습니다.”

“그러니까, 질산나트륨, 황, 목탄을 이용하면 동일 조성에서 강도가 세어지고 흡수성이 있어 폭발물을 자가 제조하여 즉시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알았던 것 아닙니까?”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만들어 시험해 볼 장소가 마땅치 않았고 제조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 폭발로 엉뚱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것 같아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폭발물 제조를 포기하고 칼을 샀습니까?”

“네.”

“이것이 그 칼이죠?”

“그 칼입니다.”

“이제 197x년 x월 x일 오후 여섯 시 십삼 분, 은강그룹 본부 빌딩에서 한 일을 말해 주겠습니까?”

“사람을 죽였습니다.”

“이 칼로?”

“네.”

재판은 더 이상 계속할 필요가 없었다. 무서운 악당, 그 난장이의 큰아들은 뉘우치는 빛 하나 없이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그는 아버지를 살해할 마음으로 와 아버지를 너무 닮았던 숙부를 아버지로 잘못 알고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그 시간에 아버지는 그의 방에서 각 회사별 매출 실적을 확인하는 중이었고, 경제인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숙부는 경비원들이 경비를 소홀히 한 틈을 이용, 대리석 기둥 뒤쪽에 몸을 숨기고 있다 튀어나온 범인의 칼을 심장에 맞고 쓰러졌다. 찔린 부위가 너무나 치명적인 곳이어서, 사촌이 알고 싶어한 것이지만, 숙부는 아픔을 느낄 사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재판은 그것이 시작이었다. 우리는 악한 중죄인에게까지 관대한 법을 가지고 있었다. 내 식으로 하라면 자백과 증거가 일치하는 순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살해범의 목을 매어 달았을 것이다. 뼈를 부러뜨린 자의 뼈를 똑같이 부러뜨리지 않는다면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뼈가 부러진 불구자로 앓다 죽게 될 것이다.

숙부는 이미 땅속에 묻혔는데, 공원들이 일을 하러 공장으로 갈 때 볼 수 있도록 은강 공장지대에 달았어야 했을 난장이의 큰아들은 교도관의 보호를 받아가며, 계속 법정에 나와 섰다. 변호인의 반대 신문에 의한 피고인의 진술을 들어보면 은강 공장 근로자들의 이마에서 땀을 짜낸 사람, 그들의 심신을 피로하게 한 사람,결국 그들을 불행하게 한 사람은 바로 우리였다. 변호인의 물음 하나하나가 피고의 행동을 정당화시켜주기 위해 던져지는 것으로 나에게는 들렸다.

그들은 마치 발기발기 찢어 해부할 부정한 사회를 발견한 사람들처럼, 소송과 직접 관계없는 사항까지 끌어들여 검사의 이의, 재판장의 이의 인정과 제한을 받아가면서 신문, 진술을 계속했다. 변호인은, 자기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피고인은 집에서는 한집안을 이끌어 가는 장남, 좋은 형, 좋은 오빠였고, 공장에서는 책임감 강한 산업전사, 이해심 많은 동료, 어려운 사람들을 앞장서 도와 고통을 나누어지는 신의의 동지였고, 노동문제를 연구, 토론하는 모임에서는 언제나 서로간의 이해와 화해, 사랑을 주장한 학도요, 지도자였는데 이러한 피고인이 어느 날 갑자기 저 끔직한 살인을 생각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본다고 말하고, 그러니까 임금, 휴가, 부당해고자 복직 문제들을 놓고 회사와 개선점을 찾으려고 노력했으나 합의를 보지 못한 외에, 노조 대의원 및 임원 선거를 평화적으로 실시하려는 조합원들의 노력을 사용자가 힘으로 짓밟아 노. 사 협조를 일방적으로 파기함은 물론, 산업 평화까지 스스로 깨뜨려 노. 사의 불이익을 초래함을 묵도하는 순간 은강그룹을 이끌어 가는 총책임자, 즉 회장을 살해하겠다는 우발적인 살의를 품게 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난장이의 큰아들은 밭은기침을 했다. 밭은기침을 하며 머리를 떨어뜨렸다. 그가 머리를 떨어뜨린 것을 나는 처음 보았다. 그의 여동생이 울음을 참기 위해 입에 손수건을 대었다. 그의 여동생은 참았는데 뒤쪽의 몇 명이 못 참고 소리를 내었다. 정리가 여공들을 말렸다. 난장이의 큰아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우발적인 살의가 아니었다고 그가 말했다.

“미안합니다.”

변호인이 말했다.

“방금 한 말을 다시 해 주시겠습니까?”

“우발적인 살의가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변호인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그 당시의 심적 상태를 말해줄 수 있습니까?”

“이미 철도 들고, 고생도 많이 해본 공장 동료들이 울음을 터뜨려, 엉엉 소리 내어 우는 현장에 저는 서있어 보았습니다. 웬만한 고생에는 이미 면역이 된 천오백 명이, 그것도 일제히 말입니다. 교육도 받고, 사물에 대한 이해도 깊은 공장 밖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본 적이 있는데, 그럴 수 있을까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다는 말들이었습니다. 제가 말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아뇨. 내가 믿겠습니다.”

“그분은, 인간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살해 동기입니까?”

“개새끼.”

나는 외쳤다. 내가 외치는 소리를 옆자리의 사촌도 듣지 못했다. 아버지가 왜 그 따윌 생각해야 된단 말인가. 아버지가 바쁜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그런 것 말고도 계획하고, 결정하고, 지시하고, 확인할 게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작은 악당은 몰랐다. 발육이 좋지 못해 우리보다 작고 약하지만 그 작은 몸속에 모진 생각들만 처넣고 사는 이런 부류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남다른 노력과 자본, 경영, 경쟁, 독점을 통해 누리는 생존을 공박하고 저희들은 무서운 독물에 중독되어 서서히 죽어 간다고 단정했다. 그 중독 독물이 설혹 가난이라 하고 그들 모두가 아버지의 공장에서 일했다고 해도 아버지에게 그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되었다. 그들은 저희 자유의사에 따라 은강공장에 들어가 일할 기회를 잡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마음대로 공장 일을 놓고 떠날 수가 있었다. 공장 일을 하면서 생활도 나아졌다. 그런데도 찡그린 얼굴을 펴본 적이 없다. 머릿속에는 소위 의미 있는 세계, 모든 사람이 함께 웃는 불가능한 이상 사회가 들어 있었다. 그래서 늘 욕망을 억누르고, 비판적이며, 향락과 행복을 거부하는 입장을 취하고는 했다. 이상에 현실을 대어 보는 이런 종류의 엄숙주의자들은 생각만 해도 넌더리가 났다.

그 중의 하나가 이제 살인까지 했는데 변호인은 그를 살려내기 위해 그와 같은 종류의 인간을 증인으로 불러냈다. 한지섭이었다. 그가 증언대로 올라가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한다고 했을 때, 나는 그가 조금 큰 악당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남쪽 공장에서 올라왔다는 그는 손가락이 여덟 개밖에 안 되었다.아버지의 공장에서 두 개를 잃었을 것이다. 콧등도 다쳐 납작하게 내려앉았고, 눈 밑에도 상처가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그의 말을 듣지 않기로 했다. 증인으로 나온 사람에게 손가락이 여덟 개밖에 없다는 것 자체가 기분 나빴다. 잃은 두 개가 사물에 대한 그의 이해에 끼쳤을 영향을 나는 생각했다. 그는 개관적인 눈까지 잃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두 사람의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내가 떠올린 것은 호수의 물빛, 뜨거운 태양, 나무와 들풀, 거기 부는 바람, 호수를 가르는 모터보트, 잔디 위에서의 스키, 이상한 버릇이 있는 여자아이, 그리고 아주 단 낮잠들이었다. 벌통과 사슴 사육장이 보였다. 낮잠 뒤에 대할 식탁도 떠올랐다. 나는 독서를 하기로 했다. 미래 공학과 경제사가 내가 읽어야 할 책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이런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뒤의 것은 이미 상당 부분을 읽었다. 월터스코트가 인용된 곳을 읽다가 나는 웃었다.

그는 가난한 노동자들을 혹사시키는 공장 지대를 돌아보고 이 나라는 언제 폭발할지 모를 폭발물로 꽉 차 있다고 개탄했다. 이런 허풍장이 도학자는 그 시대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의 말을 전해들은 공장주들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만체스터나 브래드포드의 초기 발전 사항이 도학자의 눈에는 사회적 폭발을 향해 치닫는 미친 짓거리로 보였을 뿐이다. 그러나 결국 궁금증 때문에 나는 졌다. 그 법정에 앉아 있는 한지섭이라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가 보기에 그것은 강요된 행위였다고 지섭이 말하고 있었다. 변호인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누가 강요했겠느냐고 묻고 그것을 좀 구체적으로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지섭은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자기 또는 친족의 생명, 신체에 대한 위해를 방어할 방법이 없는 협박에 의하여 강요된 행위의 증거로 삼남매가 은강공장에 나가 일해 버는 돈으로 살아가는 난장이 일가의 비문화적인 생활과 난장이의 부인이 써 온 낡은 가계부를 들었다.

나는 하도 화가나 그의 말을 잘 들을 수 없었다. 그는 콩나물 값, 소금 값, 새우젓 값에서 두통. 치통 약값까지 읽어 내려가더니 도시 근로자의 최저 이론 생계비, 생산 공헌도에 못 미치는 임금, 그리고 노동력 재생산이 어렵다는 생활 상태를 두서없이 주워 섬겼다. 물론 아버지를 정점으로 한 거대한 은강그롭의 부의 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으로 계속해 받는 지원과 보호, 뛰어난 머리들로 구성된 고학력의 경영 집단, 그들이 추구하는 저임금과 높은 이윤, 그래서 이젠 누구나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다는 인간 훼손, 자연 훼손, 거기다 신의 훼손까지 들어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아버지에 대한 난장이 큰아들의 말은, 슬픈 일이지만 정말 옳은 것이며, 그가 아버지를 어떻게 할 마음을 가졌던 것은 아버지가 쓴 억압의 중심지에 바로 그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변호인이 억압이란 말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산하 회사, 공장 종업원들에게 쓰는 억압은 언제나 생존비, 또는 생활비와 상관이 있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할 수밖에 없는 경제적인 핍박을 의미한다고 지섭이 말했다. 그는 계속해 이런 억압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은 있을 수 없으며, 그 억압을 정면으로 받는 중심에 있는 사람으로서 자기의 저항권 행사를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보이든가 생존을 포기한 자일 것이라고 말했다. 들을수록 화가 나는 말뿐이었다. 그의 말을 들어 보면 이 세상 최고의 악당은 반대로 우리였다. 우리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파괴해 버렸고, 법 앞에 평등한 사람들을 사회적 신분에 따라 차별하는 사회적 특수 계급을 인정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에게서 인간적인 생활을 할 권리를 빼앗았다. 나는 앉아서 화를 눌렀다. 변호인은 지섭에게 노. 사간의 첫 번 째 문제가 되었던 임금 인상과 부당해고자 복직 문제에 대해 알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물론 알고 있었고, 조합원들이 요구한 인상률은 회사가 올린 이익금과 물가 상승률, 근로자 생계비를 생각할 때 아주 정당한 것이었으며, 조합원이 조합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받고, 또 회사에서 지어 준 공장 안 교회가 아닌 공장 밖 교회에 나가기도 하고 찬송했다고 트집을 잡혀 해고당한 부당 해고자들의 복직 요구도 극히 정당한 것이었다 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동안 익힌 공장일 한 가지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해고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목적으로 한 근로기준법 제27조 제1항의 위반이었으니까.

“그리고 사용자측과 대화가 막힌 상태에서 지부 대의원 및 임원 선거를 맞게 되어 걱정이라는 말을 저는 들었습니다.”

지섭이 말했다.

“그래서 연기를 해보라고 말해 주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왜요?”

변호인이 물었다.

“회사에서는 빨리 치러버릴 생각이었답니다. 선거 관리 위원회까지 따로 구성해 놓고요.”

“본래 그것은 어디서 하게 되어 있습니까?”

“선거 관리 위원은 대의원 대회에서 선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불법이었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됐나요?”

“회사 쪽 사람들을 후보로 내세우고 입후보 등록 마감일을 앞당겨 버렸습니다. 그래서 지부장이 총회를 소집해 보고대회를 가지려고 했지만 회사에서 허락하지 않았던 거죠. 제가 은강으로 간 것은 지금 피고석에 서 있는 김영수군과 임원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폭력배들에게 구타를 당한 직후였습니다.”

“치료를 받다 말고 서울로 오려고 출발했다는데 그것도 알았습니까?”

“알았습니다.”

“왜 서울로 오려고 했을까요?”

“본사로 올라가 높은 분들을 만나 봐야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영수군은 공장에 나와 있는 사용자 측 사람들이 이미 이성을 잃었다고 판단했던 겁니다. 그러나 버스 터미널에서 예의 그 폭력배들에게 발각되어 뜻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모두 공장 원면 창고로 끌려가 또 한 차례 폭행을 당했다는 말을 영수군에게 들었습니다.”

“전 종업원이 작업을 중단하고 공장 마당으로 나왔던 것이 그 다음 날이었죠?”

“그렇습니다.”

“그 때 목격한 상황을 간단히 말해 줄 수 있겠습니까?”

“지부장이 조합원들에게 그때까지 있었던 일들을 보고하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보고가 끝나자 많은 조합원들이 임원들을 껴안고 울었습니다. 흥분한 사람들은 마구 외쳐대면서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고 한 쪽에선 조합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영수군이 그들을 진정시키고 조합을 빼앗으려는 사람들로부터 우리 노동자들의 유일한 단체이며 생명인 조합은 지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결의를 보여주기 위해 얼마 동안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도 하지 말고, 먹지도 말자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대로 했습니다.”

“김영수씨가 흥분한 조합원들과 함께 기계를 파괴했나요?”

“뭘 파괴한다는 것은 나쁜 짓입니다. 비싼 기계의 파괴란 더욱 말 이 안됩니다. 영수군이 이 세상에서 뭘 파괴했다는 소리를 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성급하게 결과를 물어 안되었습니다만, 그 뒤의 조합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속이 들여다보이는 우스운 짓거리의 연속이었다. 지섭은 물론 깨졌다고 대답했다. 그것은 정확한 표현이 못 되었다.아버지는 월례 사장단 회의에서 아무리 제한된 운동밖에 할 수 없게 되어 있고, 또 협조적인 사람이 이끄는 노조라고 해도 그것이 기업에 이익을 줄 리는 없으며, 어느 날 화로의 재속에서 불씨를 발견한 사람들이 그 불씨에 불을 붙여 일어나면 기업에 해롭고 우리 모두에게 해로울 게 뻔하기 때문에 현명한 경영자라면 조금 시끄러운 저항을 받아도 지금 해결하지, 노동자들에게 그것을 맡겨 두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나는 아버지의 방에서 아버지의 메모를 보았다. 그 이상의 말은 한 마디도 없었다. 아버지는 권위를 생각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늘 노조는 우리 전체의 구조를 약화시키는 악마의 도구라고 말했지만 이 말은 메모 속에 넣지는 않았다.

만약 아버지가 앞으로 우리의 어느 공장에서 노조가 결성될 경우 해당사 중역들은 문책을 당할 것이며, 혼란기에 이미 결성이 된 사의 경우는 그 노조를 접수해 본래의 기능을 바꾸어 놓으라고 곧이곧대로 지시했다면 스스로 권위에 손상을 입힌 모양이 되었을 것이다. 변호인은 끝으로 부연할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없을 리가 없었다. 난장이의 큰아들과 자기는 전부터 친교가 있었고, 노동운동을 하면서도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아 잘 아는데 난장이의 큰아들은 결국 자기가 가졌던 이상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고, 그가 지금 피고석에 서있는 것도 그가 가졌던 이상이 깨어지며 나타난 반대 현상으로 생각한다고 지섭이 말했다. 나는 이때부터 심증을 굳혔다. 지섭은 계속해 난장이의 큰아들이 상대한 것은 어떤 계층 집단이 아니라 바로 인간이었다고 말했다.

자기와 난장이의 큰아들은 처음부터 평범한 상식에 속하는 것이지만 일깨워 분명히 해둔 게 있는데 그것은 노동자와 사용자는 다 같은 하나의 생산자이지 이해를 달리하는 두 등급의 집단은 아니라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마디 한마디의 말을 또박또박 끊어 정확히 발음하려고 애썼다. 증언대 위의 두 손은 그때 떨렸다. 두 손의 손가락은 다 합해야 여덟 개밖에 안 되었다. 난장이의 큰아들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바로 뒤 방청석에서는 그의 어머니가 목까지 올라온 울음을 눌러 참고 있었다. 나의 심증에 틀림이 없었다. 난장이의 큰아들에게 빛줄기와 같은 깨달음을 준 사람이 지섭이었다. 저희는 사랑이 기본이 되는 같은 이상을 가졌다. 저희는 인간을 괴롭히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다. 저희는 피해자다. 그는 여덟 개의 손가락을 꼬부려 끌어들이더니 더러운 바지 주머니에서 더러운 손수건을 꺼냈다. 눈두덩의 땀을 그는 그 더러운 손수건으로 찍어내고 있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기다렸다.

“나는 모레 떠나기로 했다.”

사촌이 말했다.

“잘 생각했어.”

내가 말했다.

“나도 얼마 있다 독일에 갔다 올 것 같아.”

“왜?”

“크루프와 오거스스티센이 거기 있기 때문야. 가 견학을 해야지. 아버지의 꿈은 이제 제철소를 갖는 거거든. 형들이 귀국하면 나는 독일에 가 공부해야 돼.”

우리는 그룹 본부 이사와 비서실 사람들 사이에 앉아 기다렸다. 서기가 들어와 법대 아래 중앙 그의 자리로 가 앉았다. 공판 때마다 법대 아래 중앙 자리에 앉아 있는 그를 나는 보았다. 법정 안이 더워지기 시작했다. 창문을 모두 닫았기 때문에 공기가 탁했다. 촘촘히 들어찬 공원들의 몸에서 참기 어려운 냄새가 났다. 냉방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찬 공기가 공원들의 몸 열기를 이겨내지 못했다. 그들이 몸 냄새만 풍기지 않았더라도 참기가 쉬웠을 거였다.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사촌이 방청석을 돌아보았다. 지섭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가 말했다. 나도 돌아보았다. 정말 없었다. 공판 때마다 남쪽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왔던 그가 정작 선고 공판정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까닭을 나는 알 수 없었다. 난장이의 작은아들도 우리처럼 돌아보았다. 부인이 작은아들을 잡아 앉혔다. 겁을 먹었구나! 나는 단정했다. 한지섭은 비겁자다!

내가 공판을 보고 집으로 돌아갈 때 거리의 사람들은 길어진 그림자를 끌고 걸었다. 그림자는 길어졌으나 여전한 불볕더위였다. 싱싱한 여자아이들은 더위를 타지 않았다. 미처 못 떠난 여자아이들이 나른한 육체들만 남아 허위적거리는 서울을 지켰다. 그 아이들이 떠날 채비를 마치면 먼저 몸을 굴려 구릿빛이 된 아이들이 돌아와 서울을 지킬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여자아이들은 얇은 옷을 입었다. 우리가 여름에 생각하는 것은 그 얇은 옷 속에 감추어진 향락이다.

지난겨울에 뜨거운 햇볕과 짠 바닷물, 그 바닷물의 짠맛을 그대로 간직한 입맞춤으로 떠올려 본 여름의 향락은 한결같이 추상적인 것들이었다. 우리 동네로 들어서면서 내 작은 차의 유리문을 내리고 바람을 불러들였다. 꽃과 풀 냄새가 바람에 실려 들어왔다. 그 냄새는 법정 방청석을 메웠던 공원들의 몸 냄새와 아주 다른 것이었다. 그들은 너무 더러운 냄새를 풍겼다. 집에 닿자마자 샤워부터 했다. 어머니는 그들이 땀을 흘려 일한 다음 잘 씻지 못해 땀 냄새를 풍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모든 공장에 충분한 목욕 시설을 갖추려면 생산비 절감을 위한 획기적인 방법을 알아내든가. 그게 안 될 경우에는 공원들의 임금 인상폭을 낮추어야 한다고 말해 나는 웃었다. 육체를 떠나 영원히 사는 영혼이 정말 있다면 숙부의 영혼은 오늘 어떤 기분일지 모르겠다고 나는 말했다.

“그래 그 사람은 어떻게 됐니?”

어머니가 물었다.

“말씀 안 드렸어요?”

“아니.”

“사형 선고를 받았어요.”

그랬구나, 오, 하느님, 이라고 어머니의 입술이 말했다. 난장이의 큰아들이 교도관에게 이끌려 들어오고, 검사가 들어오고, 이어 판사가 들어와 그 재판의 마지막 부분은 아주 빨리 진행되었는데, 검사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 판사가 구형대로 사형을 선고했을 때 검사의 구형을 먼저 보고도 설마설마 믿지 않고 기다려 온 방청석의 공원들은 짧은 놀람의 소리를 질러 그 소리에 저희들을 묻었다. 몹시 부드러웠던 그들의 혀는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들은 정신을 차려 새삼스럽게 죄의 크기와 형벌의 크기를 생각했을 것이다. 난장이의 큰아들은 들었던 고개를 떨어뜨렸고, 그의 두 동생은 벌떡 일어섰다가 창자를 끊으며 주저앉는 그들의 어머니를 안았다. 난장이의 큰아들을 살려낼 마음으로 우리를 몰아쳤던 변호인은 천장만 보았다.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그는 판단력이 부족한 공원들에게 많은 혼란과 착각을 주었다. 마음이 좋아 보이는 검사는 온화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나는 이번 일들로 해서 매우 중요란 것을 알게 되었다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사람의 생명. 고통과 관련된 일이라 그렇다면서 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래요.”

나는 말했다.

“그렇지만 지금 말씀드리고 싶은 건 그게 아녜요. 우리 공장 노동자들이 행복한 마음을 갖고 일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제가 알아냈어요.”

“경훈아.”

어머니가 웃었다.

“그런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아. 아무리 좋은 공장에서 일해도 그렇지,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똑같이 행복해질 수 있겠니?”

“약을 쓰면 돼요.”

“약이라니?”

“그들이 행복한 마음으로 일만 하게 하는 약을 만드는 거예요. 그들이 공장에서 먹는 밥이나 음료수에 그 약을 넣어야죠. 약은 우수한 연구진을 구성해 만들게 해야 돼요. 처음엔 경비가 많이 들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 이상 좋은 방법은 있을 수 없어요.”

“그만 둬라.”

어머니가 말했다.

“생각하는 게 맨 끔찍한 것뿐이구나.”

“끔찍한 건 제가 아녜요.”

나는 말했다.

“정말 끔찍한 건 이 세계라구요. 몇몇 나라들이 그들이 사회제도로부터 이탈하려는 사람들에게 이미 약물을 투여하기 시작했어요.”

“병이 난 사람들이겠지.”

“질병하곤 상관이 없는 일예요.”

“어쨌든, 너의 그런 생각을 아버지에게 말씀드리진 마라. 아버지는 작은 일 하나하나로 너희들을 판단하셔. 나는 네가 위의 형들하고 똑같은 기회를 갖는 걸 보고 싶어. 내 말 알아듣겠니?”

나는 한 번도 어머니의 사랑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자식들에게 주어지는 어머니의 사랑의 크기는 언제나 같았다. 아버지는 달랐다.

아버지는 경영자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여러 이질적인 것들을 조화하여 전체를 만드는 재능이라고 우리들에게 말하곤 했다. 그 재능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큰 권한을 넘겨줄 수 없다는 통보이기도 했다. 숙부가 돌아가기 전에는 공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가 집안까지 들어와 본 적이 없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어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기계공장 쪽에서 심상치 않은 문제가 일어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랬구나! 내가 혼자 말할 차례였다. 남쪽에 있는 공장이었다. 여덟 개의 손가락을 가진 사나이가 그곳에서 올라오고는 했었다.

그는 공원들보다 더 더러운 옷을 입고, 공원들 것보다 더 더러운 손수건을 썼다. 멍청한 사촌이 그의 소식을 들었다면 역시 그는 다르다고 말했을 것이다. 지섭이 먼 곳에서 나의 머리를 친 셈이었다. 그러나 그는 난장이네 식구들을 위로하러 올라올 수가 없었다. 그는 우리 반대쪽에 서 있는 사나이였다. 그는 자신을 분석하고, 동료들을 분석하고, 저희들을 경제 권력으로 억압한다는 우리를 분석하다가 불행해질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애국부녀봉사회의 불우이웃돕기 모금 집회에 나갈 준비를 했다. 젊은 여비서가 어머니를 도왔다. 나는 그 여자에게 바짝 다가서며 우리가 이 사회에 진 빚은 눈곱만큼도 없다고 말했다. 젊은 여자는 어색하게 웃으며 물러섰다. 얇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얇은 옷 속에 감추어진 쾌락의 작은 도구들을 나는 상상했다. 나의 정욕이 내 머리를 산란하게 했다. 방으로 올라가 어머니와 함께 출발하는 그 여자를 보았다.

수위가 철문을 밀어 제쳤다. 어머니의 승용차는 이팝나무 숲을 끼고 돌아 나갔다. 잠시 후에 집사가 물어왔다. 풀장의 물을 갈아야겠는데 물을 빼 버리기 전에 아이들이 들어가 좀 놀게 한 다음 청소를 시켜도 괜찮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먼저 며칠 후 친구들을 데리고 섬에 갈 생각이니까 연락을 취해 달라고 말했다. 이어서 풀을 깨끗이 씻어 내기 위해서라면 물론 좋다고 말하고, 그렇지만 한 아이는 올라와 나의 책 정리를 도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고맙다고 말하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나는 VTR 장치 에 베를리오즈의 음악이 들어 있는 테잎을 걸었다. 열여섯 난 금발의 여자아이가 두 팔로 남자의 몸을 안았다.

사흘 전 아침의 여자아이는 소리도 내지 않고 올라왔다. 인간공학이라는 책이 볼록한 가슴 부분을 눌렀다. 베를리오즈의 음악을 언제 처음 들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바로 밑의 여동생은 힌데미트를 좋아하는 나를 좋아했다. 나는 여자아이의 팔을 잡아채 책을 떨어뜨렸다.

금발 아이의 옷은 어깨선에서부터 풀어져 내렸다.

“봐!”

나는 말했다.

“너희 텔레비전하곤 틀리는 거야.”

여자아이는 시키는 대로 했다.

놀라운 일이 화면 안에서 벌어졌다. 여자아이는 꼼짝도 하지 않고 보았다. 그 아이는 어깨와 가슴으로 숨을 쉬었다. 내 손이 가 닿자 파르르 떨었다. 여자아이들이 그 작은 몸속에 생명의 강을 안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화면 안 남자가 금발 아이의 몸에 상처를 입혔다. 이제 너는 여자가 되었다고 남자가 말했다.

“그만 내려가.”

몸이 달아오른 여자아이에게 나는 말했다.

“물을 빼 버리기 전에 수영을 해.”

여자아이는 하얘진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 아이가 눈물이 핑 돌아 내려가자 나는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워 책을 읽었다.

아버지가 돌아올 때까지 나는 경제사를 읽을 참이었다. 한 경제학자가 장차 책임 범위는 넓어질 것이라고 쓴 것을 그 책의 저자는 인용했다.

나는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고, 깨기 직전에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물을 쳤다. 나는 물안경을 쓰고 물속으로 들어가 내 그물로 오는 살찐 고기들이 그물코에 걸리는 것을 보려고 했다. 한 떼의 고기들이 내 그물을 향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살찐 고기들이 아니었다.

앙상한 뼈와 가시에 두 눈과 가슴지느러미만 단 큰 가시고기들이었다.

수백 수천 마리의 큰 가시고기들이 뼈와 가시 소리를 내며 와 내 그물에 걸렸다. 나는 무서웠다. 밖으로 나와 그물을 걷어 올렸다. 큰 가시고기들이 수없이 걸려 올라왔다. 그것들이 그물코에서 빠져 나와 수 천 수 만 줄기의 인광을 뿜어내며 나에게 뛰어올랐다. 가시가 몸에 닿을 때마다 나의 살갗은 찢어졌다. 그렇게 가리가리 찢기는 아픔 속에서 살려 달라고 외치다 깼다. 서쪽 유리창에 황적색 저녁놀이 와 닿았다. 그것이 아름답게 느껴져 창가로 가 내다보았다. 대기 속 물질의 아주 작은 알갱이들이 빛을 운반해 오는 것을 나는 볼 수 있었다.

흰 벽이 저녁 놀빛을 숲 쪽으로 받아 던졌다. 돌아간 할아버지의 늙은 개가 그 숲에서 기어 나왔다. 달아오른 몸으로 나를 받아들이려고 했던 여자아이가 늙은 개를 불렀다. 개밥 그릇을 개집 앞에 놓아 준 여자아이가 늙은 개의 목을 껴안았다. 난장이의 큰아들이 끌려 나갈 때 난장이의 부인이 그런 몸짓을 했었다. 공원들은 밖으로 나가 울었다. 지섭은 올라올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사랑이 나를 슬프게 했다. 그때 수위가 철문을 밀어붙이는 것이 보였다. 이팝나무 숲을 끼고 돌아온 아버지의 승용차가 미끄러지듯 들어와 섰다. 내일 아무도 모르게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보자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약하다는 것을 알면 아버지는 제일 먼저 나를 제쳐놓을 것이다. 사랑으로 얻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밝고 큰 목소리로 떠들 말들을 떠올리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끝.  

 

 

    글쓰기는 고달픈 현실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그것을 다른 이와 공감하기 위해 설득력 있게 제안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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