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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공주의 '로맨스' 역사의 미궁속으로…

수로보니게 여인 2009. 1. 20. 14:19

선화공주의 '로맨스' 역사의 미궁속으로…

백제 미륵사지 유물 505점 발굴, '서동요'는 허구 가능성 높아져

 

 ▲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가 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 보수정비를 위한 해체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사리장엄.

    사리장엄은 백제 왕실의 안녕을 위해 조성한 것이다. /문화재청 제공

 

'서동왕자'로 알려진 백제 제30대 왕 무왕(武王·재위 600~641)과 신라 선화공주의 설화가 깃든 전북 익산 미륵사(彌勒寺)는 선화공주가 아니라 좌평(佐平·백제 관등의 하나) 사택적덕(沙 積德)의 딸인 백제왕후에 의해 창건됐음이 19일 확인됐다. 이것은 삼국유사의 '서동요'가 전하는, 서동왕자(백제)·선화공주(신라)의 국경을 넘은 로맨스가 사실이었을까 의심하게 만든다. '서동요'는 백제의 서동(무왕의 어린 시절 이름)이 신라 26대 진평왕 때 지었다는 향가다. 진평왕의 셋째 딸이 절색이라는 소문을 들은 서동이 스님으로 변장해 서라벌에 잠입한 뒤 아이들에게 부르게 했다. '선화공주님은…맛둥 도련님을…밤에 몰래 안고 간다.' 이어 삼국유사는 무왕·선화 커플이 미륵사를 창건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1400년을 이어온 '그들의 로맨스'는 이번 주 월요일에 금이 갔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가 19일 "미륵사지 석탑 해체 보수 과정에서 백제 왕실의 안녕을 위해 조성된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사리를 담은 용기)를 1370년 만에 발굴했다"며 현장에서 유물 505점을 공개한 것이다.

◀ 익산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금제사리 호. 높이 13cm 어 깨 폭 7.7cm로 아담 한 크기에 전체적으로 황금빛이 감돈다. 뚜껑과 목, 바닥 은 연꽃잎을, 몸체는 인동 당초를 형상화했다. 우아하면서도 정밀한 세공기법을 자랑하는 이 사리호는 찬란했던 백제 후기 문화를 보여주는 국보급 유물이다. 게재 된 사진의 높이는 17cm. /문화재청 제공 

 

김 소장은 "지난 14일 석탑 1층 심주(心柱·중심 기둥) 윗면 중앙에서 사리공(舍利孔·사리장엄을 안치하는 공간)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금으로 된 사리호(舍利壺·사리를 담은 병)와 석탑 조성 내력을 적은 금판(金板)인 사리봉안기(舍利奉安記), 원형 사리합 6개, 장식용 칼로 보이는 단도 2점, 은으로 된 관식(冠飾), 유리구슬 등 총 505점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건무 문화재청장 등 전문가들은 "이 중 사리호와 사리봉안기는 국보 중의 국보" "무령왕릉 이후 백제 최고의 발굴"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사리봉안기는 15.5㎝×10.5㎝ 크기의 금판에 한자 194자를 새겼는데, "백제 무왕의 왕후(사택씨의 딸)가 재물을 희사해 가람(절)을 창건하고 기해년(639년)에 사리를 봉안함으로써 왕실의 안녕을 기원했다"는 내용이다. 선화가 미륵사를 지었다고 쓴 일연은 삼국유사를 집필할 때 무슨 근거를 갖고 있었을까. 백제의 마지막 왕이자 무왕의 아들인 의자왕은 선화공주의 아들인가, 사택씨의 손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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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1.20 03:05 / 수정 : 2009.01.20 10:48 익산=허윤희 기자 ostinato@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