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공주의 '로맨스' 역사의 미궁속으로…
백제 미륵사지 유물 505점 발굴, '서동요'는 허구 가능성 높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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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을 이어온 '그들의 로맨스'는 이번 주 월요일에 금이 갔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가 19일 "미륵사지 석탑 해체 보수 과정에서 백제 왕실의 안녕을 위해 조성된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사리를 담은 용기)를 1370년 만에 발굴했다"며 현장에서 유물 505점을 공개한 것이다.
◀ 익산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금제사리 호. 높이 13cm 어 깨 폭 7.7cm로 아담 한 크기에 전체적으로 황금빛이 감돈다. 뚜껑과 목, 바닥 은 연꽃잎을, 몸체는 인동 당초를 형상화했다. 우아하면서도 정밀한 세공기법을 자랑하는 이 사리호는 찬란했던 백제 후기 문화를 보여주는 국보급 유물이다. 게재 된 사진의 높이는 17cm. /문화재청 제공
김 소장은 "지난 14일 석탑 1층 심주(心柱·중심 기둥) 윗면 중앙에서 사리공(舍利孔·사리장엄을 안치하는 공간)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금으로 된 사리호(舍利壺·사리를 담은 병)와 석탑 조성 내력을 적은 금판(金板)인 사리봉안기(舍利奉安記), 원형 사리합 6개, 장식용 칼로 보이는 단도 2점, 은으로 된 관식(冠飾), 유리구슬 등 총 505점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건무 문화재청장 등 전문가들은 "이 중 사리호와 사리봉안기는 국보 중의 국보" "무령왕릉 이후 백제 최고의 발굴"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사리봉안기는 15.5㎝×10.5㎝ 크기의 금판에 한자 194자를 새겼는데, "백제 무왕의 왕후(사택씨의 딸)가 재물을 희사해 가람(절)을 창건하고 기해년(639년)에 사리를 봉안함으로써 왕실의 안녕을 기원했다"는 내용이다. 선화가 미륵사를 지었다고 쓴 일연은 삼국유사를 집필할 때 무슨 근거를 갖고 있었을까. 백제의 마지막 왕이자 무왕의 아들인 의자왕은 선화공주의 아들인가, 사택씨의 손자인가.
입력 : 2009.01.20 03:05 / 수정 : 2009.01.20 10:48 익산=허윤희 기자 ostinato@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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