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³οο윤용인 어록

[윤용인의 아저씨 가라사대] "아빠, 나 오늘 생리했어"

수로보니게 여인 2008. 9. 10. 15:42

 

 [윤용인의 아저씨 가라사대] "아빠, 나 오늘 생리했어"


'15세 이하 관람불가'는 극장에서만 볼 수 있는 경고문은 아니다. 아이들 스스로 그 말을 이해할 때까지 부모는 15세 이하 아이들의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성(性)에 관한 한 아이보다 더 순진한 부모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곱 살 아이가 어디서 들었는지 요상한 단어를 식탁에서 묻는 바람에 입 속 밥알이 튀어나올 뻔했다는 엄마도 있고, 아이와 연속극을 보다가 돌발적 야한 장면에 리모컨 화면 전환의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는 아빠도 있다.

대부분 딸의 성교육은 엄마가, 아들의 성교육은 아빠가 맡는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남자들의 술자리에서도 종종 성에 눈뜨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술안주로 등장한다. 어느 날 새벽 귀가 때 부쩍 혼자만의 시간을 원하는 아들 방을 열었다가 책상 위 책을 은폐물로 하여 혼자놀이의 삼매경에 빠진 아들을 보고 조용히 문을 닫았노라는 한 아빠의 경험담도 있다. 그 말을 듣고 다른 아빠들은 킬킬거리며 웃었지만 다음 말에서 웃음을 거두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아들과 소파에 앉아 있는데, 아들은 자꾸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고, 나는 뭔가 멋진 말을 해야 하겠는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런데 문득 어떤 흐믓함과 슬픔이 교차하는 거야. 늘 아이로만 생각했던 내 아들이 벌써 이렇게 컸는가라는 생각과 함께 그만큼 내가 늙어버렸다는 것에 대한 확인. 허허."

남탕 여탕으로 성교육을 나누지 않았다는 한 아빠는 아들과의 경험담을 받아 딸의 이야기를 했다. 어렸을 때부터 성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랑비에 옷 젖듯 가풍으로 정착시켰다는 그 아빠의 주제는 딸의 생리였다. 아빠는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무렵부터 생리를 시작하면 파티를 열어주겠다는 약속을 자주 했다 한다. 아이가 올해 중학교에 들어갔고 얼마 전 밖에서 술을 먹는데 딸로부터 낭보가 들려왔다. "아빠, 나 오늘 생리했어." 생리라는 말을 단지 쿨(cool)한 성교육용으로 써먹었던 아빠는 막상 딸에게 그 말을 듣자 잠시 멍한 기분이 들었음을 고백한다. "축하한다고, 이제 내 딸이 진짜 여자가 된 거라고, 그렇게 말을 해줬는데 품 안에서 뭔가가 스르르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더라구. 출근길 쪼르르 려와 볼에 뽀뽀를 해주던 딸에게 들은 생리라는 단어는 준비했던 것보다 훨씬 낯설었어."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냐는 선배세대의 유행가는, 신세대 아빠라는 말을 들으며 마흔 고개를 넘은 지금의 아빠들에게도 애창된다. 그리고 그 가는 세월을 아이들의 성장을 통해 술자리에서 유통한다.
유치원과 초·중·고 졸업식에 학부모로 참석하는 것은, 자기 늙음을 다른 학부모의 얼굴을 통해 확인하는 시간이라고 가장 나이 많은 아빠가 마무리함으로써 그 술자리는 끝이 났다. 가을바람은 불어오고 아빠들은 이렇게 서정적이 된다. 벌겋게 취한 아빠는 집에 들어가 어른으로 입문하는 아들딸의 등짝을 대견하게 두드리겠지만 아빠의 알코올 냄새 속에도 가을은 그렇게 익어간다.

       

         2008.09.10 03:27 윤용인·노매드 미디어&트래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