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³οο와플 에세이

[일사일언] 감자를 삶아 먹으며

수로보니게 여인 2008. 9. 1. 12:46

 

 

[일사일언] 감자를 삶아 먹으며 


고향에서 감자 한 포대가 택배로 배달되었다. 이제 막 추수한 것들이라서인지 모양과 색깔부터가 묵힌 것들과 달리 싱싱하고 풋풋한 것이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고마웠다. 매양 잊을 만하면 고향은 그렇게 나를 챙긴다. 한 포대를 어찌 값으로 셈할 수 있으랴.

한 포대는 우리 세 식구가 먹기에는 많은 양이다. 나 모르게 벌써 손 크기로 소문 난 아내는 자신이 다니는 교회 자매 몇에게 수다를 떤 모양이다. 그날 저녁 방문한 그녀들에게 나누어주고 남은 일부를 쟁여 냉장실에 넣고 우리 식구는 밥 대신 감자를 삶아 먹었다. 그런데 언뜻 보면 감자알들은 모두 고만고만하게 생긴 것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것들은 저마다 생긴 모양새가 천차만별이다.

바구니 속에 든 감자알 가운데 미끈하게 잘생긴 감자알보다 작고 못생긴 감자알에 먼저 눈이 가고 손이 간 모양이다. '꼭 저 닮은 것만 가려서 먹는다'는 아내의 핀잔을 듣고서야 나는 그걸 알았다. 감자를 먹다 보면 자주 목이 막힌다. 김치 국물이나 냉수사발을 벌컥벌컥 들이키지 않을 수 없다. 그럴 때마다 까닭도 없이 삶이 문득 서럽고 경건해지는 느낌이 든다.

경사가 심한 비탈밭 속 지하의 시간을 더듬거리며 스스로 길을 내 가까스로 동글납작한 몸을 완성했을 감자알들을 대하자니 꼭 내가 살아온 못난 생같이 여겨지는 것이다. 섭섭하게 혹은 서운하게 생긴 저 감자알들은 미끈한 것들보다 더 많이 울퉁불퉁한 요철의 시간을 더 가혹하게 견뎌온 것들이었으리라.

               2008.08.31 23:50 이재무·시인

비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