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 영웅들이 돌아왔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베이징올림픽에서 사상 최다 금메달을 획득하며 세계 7위(금13, 은10, 동8)에 오른 한국 올림픽선수단이 25일 귀국,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환영 축하행사가 열린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날 행사장에는 2만여 시민이 몰려 박태환(수영), 장미란(역도) 등 베이징을 빛낸 한국 스포츠의 영웅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위인전 30권보다 큰 효과… 아이에게 영웅 보여주러 왔다"
'영웅들의 귀환' 2만여명 환영인파
"선수들 투혼에 감동… 17일간 너무 행복"
이석호 기자 yoytu@chosun.com
김진명 기자 geumbori@chosun.com
"아이들에게 위인전 30번 읽히는 것보다 올림픽 선수들을 한 번 보게 해주는 게 교육효과가 높을 것 같아서 데려왔어요."(이충근씨) "왕기춘 선수를 응원하러 왔죠. 부상을 입었는데 끝까지 열심히 하는 모습에 감동 받았어요. 경기 끝나고 우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거
든요."(유자혜씨)….
▲ 자랑스러운 행진 박태환과 장미란이 태극기를 들고 앞장섰다. 25일 오후 한국 올림픽 선수단이 세종로 사거리를 지나 시청 앞 서울광장을 향해 행진하 고 있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25일 오후 6시25분 서울 세종로 사거리. 부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태극기를 든 장미란과 박태환을 앞세운 올림픽 선수단 200여 명이 도보 행진을 시작했다. 환호성과 함께 사방에서 플래시가 번쩍거렸다. "와! 박태환이다." "(이)용대 오빠!" "엄마, 금메달 선수들이야!" 연도에 선 시민들의 환호성에 선수들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윙크로 인사했다.
지난 17일간 베이징에서 '한여름 밤의 꿈'을 선사했던 선수들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태환이 오빠'와 '용대 오빠'를 보려는 여학생들이 이리 저리 몰려 다니며 사진을 찍었고, 가족 단위로 나온 시민들은 이야기 꽃을 피웠다. 아기를 태운 유모차에 태극기를 꽂고 나온 주부,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노부부, 인근 호텔의 일본인 관광객들까지 나와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
김현정씨는 "10대인 아들과 딸을 데려왔어요. 저는 야구 선수들을 응원하러 왔고, 딸은 수영선수 박태환이 좋아서 나왔어요. 물을 무서워하던 딸이 수영 배우고 싶다니 박태환이 대단하긴 대단하네요"라며 웃었다.
공항부터 이어진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에 선수들도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유도 '한판승의 사나이' 최민호는 "중국에서는 인기를 실감 못했다. 이렇게까지 해주실 줄 몰랐는데. 마음 다잡고 런던올림픽을 준비해야겠다"고 흥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배드민턴 혼합복식 금메달의 이용대는 "정말 어리둥절할 정도"라고 했고, 이효정은 "이렇게 많은 인파 사이로 걸어 본 경험이 없어 새롭다. 다음 올림픽 때도 꼭 금메달을 따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20여 분쯤 지나 선수단 행렬이 '2008 베이징올림픽 선수단 환영 국민대축제'가 마련된 서울광장에 도착하자 2만여 명의 인파가 환호성을 질렀다. 특설 무대에 오른 신세대 선수들은 연예인 못지 않은 끼를 자랑했다. 태권도 대표팀이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를 불러 흥을 돋웠다. 배드민턴 이용대가 닮은 꼴 가수 이승기의 노래 한 소절을 부르며 윙크를 날리자 사방에서 여학생 팬들의 함성이 들렸다.
오후 5시40분 선수단 해단식이 열린 세종문화회관 앞은 이미 인산인해였다. 고교생 정예진양은 "손태진 선수의 금빛 발차기에 한눈에 반했다.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달려와서 3시30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71세 이경원씨는 "올림픽을 평생 봤지만 이번 올림픽이 가장 좋았고, 서울올림픽보다도 더 좋았다. 죽기 전에 그 선수들을 직접 한번 보고 싶어서 나왔다"고 말했다.
해단식에서 이에리사 태릉선수촌장은 "이번 올림픽에서 종합 7위의 쾌거를 올렸다. 국민의 애정 어린 응원 감사드린다"고 인사말을 했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지난 17일 동안 즐겁고 행복했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메달을 땄다. 여러분의 투혼에 세계가 감동했다. 여러분은 전 세계에 가장 모범적으로 올림픽 정신을 보여줬다"고 축사를 했다.
흰색 상의 단복을 입은 선수단은 오후 3시20분쯤 인천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입국장에는 시민들과 취재진 약 1000여명이 대기하고 있었고, 선수들이 등장하자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박수 소리와 함께 "대~한민국"을 외치자 선수들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이연택 대한체육회장은 기자회견에서 "1948년 런던올림픽에 참가한 지 60년이 되는 2008년 대회에서 역대 최다 금메달을 획득해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선수단은 기자회견이 끝난 후 버스를 통해 세종문화회관으로 이동했다. 톨게이트 전광판은 이런 문구로 선수들을 반겼다. "올림픽 한국대표 선수 267명 모두가 금메달입니다" "한국 스포츠 G7 됐다" "여러분 덕분에 행복했던 17일". ▲ “와 박태환이다”수영 400m 금메달리스트 박태환이 선수단 해단식이 끝난 후 도보행진을 위해 걸어가자 시민들이 사진을 찍으며 환호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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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홍헌표 기자 bowler1@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양궁은 이번에 중국 등 경쟁국의 강력한 도전을 받아 남자단체전(박경모·이창환·임동현)과 여자단체전(박성현·윤옥희·주현정) 2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다. 개인전을 모두 내주긴 했지만 '영원한 1등은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는 점에서 실패작은 아니었다.
역도 여자 75㎏이상급 장미란은 세계를 다섯 번이나 들었다 놓았다. 인상(140㎏)과 용상(186㎏), 합계(326㎏)에서 5차례나 세계기록을 바꾸며 금메달을 딴 장미란을 로이터통신은 "바벨을 장난감처럼 들었다"고 묘사했다. 장미란은 남자 77㎏급에서 깜짝 금메달리스트가 된 사재혁과 함께 역도가 인기 스포츠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세계 1위 목표를 달성한 홈팀 중국에 맞서 선전을 펼친 대표적인 종목이 배드민턴이다. 한국은 이 종목에서 혼합복식(이용대·이효정) 금메달, 여자복식(이경원·이효정) 은메달, 남자복식(황지만·이재진) 동메달을 땄다. 배드민턴은 '꽃미남' 이용대라는 새로운 스타를 배출하며 올림픽 기간 내내 주목을 받았다.
4년 전 격발 실수로 금메달을 놓쳤던 진종오는 사격 50m 권총에서 자기 자신과의 피 말리는 싸움을 금메달로 보상받았다.
태권도(금4), 유도(금1, 은2, 동1)는 이번에도 전통적인 '효자 종목' 역할을 했지만, 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이 나왔던 레슬링은 동메달 1개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대회를 앞두고 내분을 겪었던 탁구(동메달 2개)와 체조(은메달 1개)는 '만리장성' 중국의 높은 벽을 절감해야 했다. '유럽 천하'인 펜싱에서 1m54의 '작은 거인' 남현희가 따낸 은메달(여자 플뢰레)은 금메달 못지않게 값진 것이었다.
육상에선 이정준이 110m 허들에서 한국신기록(13초55)을 세우며 1회전을 통과했을 뿐 남자 400m계주에서 동메달을 딴 일본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을 유치했지만,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는 한 영원한 '육상 삼류국'에 머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절감케 한 무대였다.
야구가 눈부신 금메달을 수확하고 여자핸드볼이 투혼의 동메달을 거두긴 했지만 나머지 구기 단체 종목은 역부족을 절감했다. 여자 농구는 8강이 한계였고, 남녀 하키와 남자핸드볼은 메달을 넘보기에 세계 수준과의 격차가 다소 컸다. 한국은 이번 베이징올림픽에서 1948년 처음 올림픽 무대에 선을 보인 이후 가장 많은 금메달(13개)을 땄다. 종합 순위 7위(은메달 10개, 동메달 8개)는 88 서울올림픽(4위) 다음으로 높은 것이다. 하지만 25개 종목 중 메달을 딴 종목은 14개에 불과, 메달 종목의 영역을 더 넓혀야 한다는 '과제'를 안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스포츠 선진국이라는 일본을 완전히 따돌리는 성과를 거뒀다. 아테네대회 때 금메달 16개, 은메달 9개, 동메달 12개를 땄던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9개, 은메달 6개, 동메달 10개로 8위를 했다.
▲ "런던에서 만납시다" 이제는 4년 뒤 2012년 런던 올림픽을 기약해야 할 시간. 베이징 올림픽 폐막식이 열린 국가체육장에 런던의 명물 빨간색 이층버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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