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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게/ 수필

수로보니게 여인 2008. 8. 9. 00:26

 

 

 

  수필은 글쓴이의 태도, 사고방식, 인생관 및 세계관이 잘 드러나는 장르이다. 글에서 다루는 대상이나 사실, 사건 등에 대해서 그것이 지니는 의이나 가치를 글쓴이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있는지를 잘 파악하며 글을 살펴보아야 한다. 

   

 김용준, 게 

  정소남이란 사람이 난초를 그리는데 반드시 그 뿌리를 흙에 묻지 아니하니 타족에게 짓밟힌 땅에 개결(慨潔)한 몸을 더럽히지 않으려 함이란다.

      붓에 먹을 찍어 종이에 환을 친다는 것이 무엇이 그리 대단한 노릇이리오마는 사물의 형용을 방불케 하는 것만으로 장기(長技)로 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을 빌어 작가의 청고(淸高)한 심경을 호소하는 한 방편으로 삼는다는 데서 비로소 환이 예술로 등장할 수 있고 예술을 위하여 일생을 바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란 사람이 일생을 거의 3분의 2나 살아온 처지에 아직까지 나 자신이 환장인지 예술가인지도 구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딱하고도 슬픈 내 개인 사정이거니와 되 든 안 되든 그래도 예술가답게 살아 보다가 죽자

고 내 딴엔 굳은 결심을 한 지도 이미 오래다. 되도록 물욕과 영달에서 떠나자, 한묵(翰墨)으로 유일한 벗을 삼

아 일생을 담박하게 살다가자 하는 것이 내 소원이라면 소원이라 할까.

이 오죽잖은 나한테도 아는 친구 모르는 친구로부터 혹시 그림장이나 그려 달라는 부질없는 청을 받을 때가 많다. 내 변변치 못함을 모르는 내가 아닌지라 대개는 거절하고 마는 것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할 수 없이 청에 응하는 수도 있고, 또 가다가는 자진해서 도말(塗抹)해 보내는 수도 없지 아니하니 이러한 경우에 택하는 화제(畵題)란 대개가 두어 마리의 게를 그리는 것이다.

  게란 놈은 첫째 그리기가 수월하다. 긴 양호(羊毫)에 수묵을 듬뿍 묻히고 호단(豪端)에 초묵을 약간 찍어 두어 붓을 좌우로 휘두르면 앙버티고 엎드린 꼴에 여덟 개의 긴 발과 앙징스런 두 개의 집게발이 즉각에 하얀 화면에 나타난다. 내가 그려 놓고 보아도 붓장난이란 묘미가 있는 것이로구나 하고 스스로 기뻐할 때가 많다.

그러고는 화제(畵題)를 쓴다.  


                滿庭寒雨滿汀秋 (만정한우만정추)/ 뜰에 가득 차가운 비 내려 온통 가을인데.

                得地縱橫任自由 (득지종횡임자유)/ 제 땅 얻어 종횡으로 마음껏 다니누나.

                公子無腸眞可羨 (공자무장진가선)/ 창자가 없는 게가 참으로 부럽도다.

                平生不識斷腸愁 (평생불식단장수)/ 한평생 창자 끊는 시름을 모른다네. 

    

  역대로 게를 두고 지은 시가 이뿐이랴만 내가 쓰는 화제는 십 중 팔구 윤우당의 작이라는 이 시구를 인용하는 것이 항례(恒例다.

왕세정의 ‘橫行能幾何, 終當墮人口(횡행능기하, 종당타인구

          => 옆으로 기어간들 얼마나 갈 것이냐, 끝내는 사람 입에 떨어질 것을)’ 하는 대문도 묘하기는 하나

               무장공자(無腸公子)로서 단장의 비애를 모른다는 대문이 더 내 심금을 울리기 때문이다. 이 비애

               의 주인공은 실로 나 자신이 아닌가. 단장의 비애를 모르는 놈, 약고 영리하게 처세할 줄 모르는

               눈치 없는 미물! 아니 나 자신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 중에는 이러한 인사가 너무나 많지 않은가.

  맑은 동해변 바위틈에서 미끼를 실에 매 달고 이 해공(蟹公)을 낚아 본 사람은 대개 짐작하리라. 처음에는 제법 영리한 듯한 놈도 내다본 체 않다가 콩알만큼씩한 새끼놈들이 먼저 덤비고 그 곁두리를 보아 가면서 차츰차츰 큰놈들이 한꺼번에 몰려 나와 미끼를 빼앗느라고 수 십 마리가 한 덩어리가 되어 동족상쟁을 하는 바람에 그때를 놓치지 않고 실을 번쩍 치켜 올리면 모조리 잡혀서 어부의 이(利)가 되게 하고 마는 것이다.

어리석고 눈치 없고 꼴에 서로 싸우기 잘하는 놈!

귀엽게 보면 재미나고 어리석게 보면 무척 동정이 가고 밉살스레 보면 가증(加增)하기 짝이 없는 놈!

게는 확실히 좋은 화제다. 내가 즐겨 보내고 싶은 친구에게도 좋은 화제가 되거니와 또 뻔뻔스럽고 염치없는 친구에게도 그려 보낼 수 있는 확실히 좋은 화제다.

  무장공자(無腸公子): 단장의 비애를 모르는 놈 => 글쓴이 자신을 포함

            해공(蟹公): 욕심 때문에 어부지리를 당하는 미련함, 어리석음 => 당시의 시대 상황 암시 

 

김용준(1904~1967) 호는 근원(近園), 선부(善夫), 검려(黔驢), 우산(牛山), 노시산방주인(老枾山房主人) 등 여러 가지가 있으며, 이 가운데 근원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1904년(고종 41) 경상북도 선산 출생. 1925년 경성 중앙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1년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 중학교 재학 중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할 정도로 일찍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으나, 대학 졸업 후에는 서화협회회원 전에만 몇 번 참가했을 뿐 서양화가로서는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다. 1938년 이후에는 전통 수묵화에도 손을 대기는 하였으나 활발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신문이나 잡지에 미술평론과 미술 관계 시론(時論) 등을 기고하면서 간결하고 호방한 필치로 문명(文名)을 얻었다. 1946년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창설에 참여해 동양화과 교수를 역임한 뒤, 1948년 동국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같은 해 30편의 수필을 묶어 『근원수필』을 출간하였는데, 예스럽고 담박하면서도 격조 높은 언어 구사로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금까지도 이 수필집은 '문학과 비(非)문학의 장르 구분을 넘어 광복 전후 남겨진 문장 가운데 가장 순도 높은 글', '한국 수필문학의 백미'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글쓴이가 생각한 ‘게’의 속성

 ‘게’를 재인식하는 과정

 과정

 

 내용

 명명 동기

 창자가 없다는 물리적 속성

 일반적 인식

 속이 없는 놈

 새로운 의미 발견

 창자가 없어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모름

 재인식

 평생 아픔을 몰라 부러운 존재

이 글에서는 게의 속성을 통해 인간의 어리석은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즉 창자가 없어 아픔을 모르는 게이지만 어리석고 싸우기 잘하는 속성이 있음을 제시하고 있으며, 또한 '난초'를 통해 필자 자신의 심경을 표현하는 것에 빗대어 자신도 게를 그리면서 자신의 심경을 표현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게'와 '사람'의 특성을 비교하여 인간의 삶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글쓴이는 세상사에 얽히기를 싫어해서, 또는 그리기가 수월해서 게를 자주 그려서 선물하는 것이 아니다.

      게를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고 또 인간의 삶에 대한 교훈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이 깨달 

      음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게를 화제(畵題)로 즐겨 사용하는 것이다.

  

      주제 : '게'의 생태를 통한 인간의 삶 풍자

      특징 : '게'와 인간의 특성을 비교함. 인용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강화하고 있음


 ※ 한우리민족 전체를 세태풍자 한 공도동망  

                                    

 

이별가(離別歌)

                    박목월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
           썩어서 동아 밧줄은 삭아 내리는데

           하직을 말자, 하직 말자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
           니 흰 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

           오냐, 오냐, 오냐.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이승 이니믄 저승에서라도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오냐, 오냐, 오냐.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이 작품은 죽음의 문제를 다루되 말하는 상대방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하지 않고 있다. 그는 어쩌면 어릴 적

터의 친구이거나, 이웃이었는지도 모르나 깊은 인연이었음은 분명하다. 삶과 죽음 사이의 간격은 강에 비유된다. 강의 저편이 저승이라면 강의 이쪽은 이승이다. 친구는 강 저쪽에서 이쪽에 뭐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 소리는 바람에 날려서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지금 강 위에 뜬 배를 타고 있다. 그것이 저승으로 가는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어떻든 저승과 이승이란 그리 먼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나' 역시 인생을 살 만큼 살고, 멀지 않은 죽음을 내다보는 사람이다.

동아밧줄이란 친구와 내가 살아서 맺었던 이 세상에서의 관계이다. 죽음 앞에서 그것은 오래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뇌까린다. '하직을 말자'라고. 그 이유는 나도 곧 저 세상으로 갈 터이기 때문이다. 멀지 않아 만날 친구에게 굳이 하직을 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비록 이 세상에서 맺은 여러 가지 관계는 죽음 앞에서 허무하게 썩어버린다 해도 인연이란 끈질기게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 6연에서는 저쪽에서 있는 친구의 말이 한 토막쯤 희미하게 들린다. 그래서 '나'는 대답한다. '오냐, 오냐, 오냐. / 이승 아니면 저승에서라도' 다시 만나자는 것이다. 죽음과 삶 사이의 강은 넓고 깊은 것이지만, 사람들이 맺은 인연의 바람은 그것도 넘어간다고 그는 노래한다. 그리하여 그는 죽음의 강 저편에 있는 친구에게 '오냐, 오냐, 오냐.'라고 답한다. 이 대답도 바람에 날려서 아마도 친구에게 잘 안 들리겠지만 그는 목청을 돋우어 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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