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준 베이징특파원
독도의 영유권이 일본에 있다는 내용을 사실상 포함시킨 일본의 '중학교 사회과목 새 학습 지도요령 해설서' 내용에는 묘한 글자가 하나 끼어 있다. '우리나라(일본)와 한국 사이에 다케시마(독도)를 둘러싸고 주장에 차이가 있다는 점 등을 (학생들에게) 언급하여….' 여기에 얼핏 보아 불필요한 것처럼 보이는 '등(等)'이라는 글자는 왜 들어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 인터넷판은 16일 이런 보도를 했다. "문부과학성의 다카하시 미치야스(高橋道和) 교육과정 과장은 이 '등'이라는 글자에 센카쿠(尖閣)제도에 관한 사항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센카쿠제도란 중국어로 댜오위다오(釣魚島)군도(群島)라고 부르는 몇 개의 섬으로, 중국과 일본 간에 영유권 분쟁이 끊이지 않아온 곳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원래 일본의 중·고 교과서에 독도와 함께 센카쿠제도가 일본 영토임을 분명히 밝힌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마이니치 인터넷판의 16일 보도는 마이니치가 지난 15일 보도한 것을 재확인한 것이다. 마이니치는 독도문제가 한창 뜨겁던 15일 "문부과학성이 펴낸 지도요령 해설서에 따르면 앞으로 중·고 교과서에 센카쿠제도의 영유권도 명기한다는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발끈한 중국 상하이(上海)의 동방조보(東方朝報)가 일본 문부과학성 교육과정과(課)의 다나카(田中)란 관리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다나카는 "센카쿠제도의 영유권 명기에 관한 마이니치의 보도는 오보다"고 말해주었다. 동방조보 기자가 아무래도 미심쩍어서 "그러면 일본과 한국사이의 독도문제를 거론하면서 '등'자는 왜 넣었느냐"고 따져 물었다. 다나카의 대답은 "그 '등'자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마이니치의 16일 보도는 결국 다나카의 그런 대답에도 불구하고 그 '등'자는 그냥 끼어 들어간 것이 아니며, 지금은 중국의 국력이 강력해서 '등'자 한 글자로 쪼그라져 들어 있지만 이 '등'자가 바로 센가쿠제도를 의미한다는 점을 확인해준 것이다.
- "대마도도 원래 우리 땅"
- 정치권서 日의 독도 도발 대응론으로 제기
세종실록 등 사료 풍부… 19세기 日에 편입 - 정치권서 日의 독도 도발 대응론으로 제기
정치권에서 독도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대마도(對馬島) 영유권을 주장하자"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허태열 최고위원은 16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독도문제가 터질 때마다) 우리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면서 똑같은 대응으로 가는 것이 안타깝다. 대마도도 우리 땅이라고 대응해 나가는 것이 역사의 흐름에 보면 의미 있는 주장"이라고 했다.
실제 대마도가 오래 전 우리 땅이었다는 기록은 사료에 많이 등장한다. '세종실록' 1419년(세종 1년) 7월 17일조에는 "대마도라는 섬은 경상도의 계림에 예속했으니, 본래 우리 나라 땅이란 것이 문적에 실려 있어 분명히 상고할 수가 있다(對馬爲島, 隷於慶尙道之�林, 本是我國之地, 載在文籍, 昭然可考)"는 상왕 태종(太宗)의 말을 기록하고 있다. 태종은 이어 "다만 그 땅이 매우 작고 바다 가운데 있어서 왕래함이 막혀 백성이 살지 않았는데, 왜인(倭人) 중 그 나라에서 쫓겨나 갈 곳 없는 자들이 소굴을 삼은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책 1444년(세종 26년) 4월 30일조에는 "대마도는 본래 조선의 목마지(牧馬地)"라는 기록이 등장하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만든 '팔도총도' 등 많은 지도들에도 대마도는 조선 영토로 표시돼 있다. 고려시대부터 대마도 영주였던 종씨(宗氏)는 한·일 양국 사이에서 중계 무역의 이득을 취하면서 왜구의 본거지를 이루기도 했다.
입력 : 2008.07.17 03:04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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