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터뷰] "촛불시위로 얻은 건 여론수렴의 중요성, 잃은 건 법치(法治)"
배용주 서울경찰청 제3기동대장
여론은 경찰에만 화살… 물대포 대신 차벽으로 바꿔
집회·시위 자유 있지만 약속된 시간·장소에서 해야
시위대 "놀아줘, 놀아줘" 의경 배경으로 사진 촬영도
공권력이 조롱당하는 지금의 분위기, 후유증 클 것
배용주 서울경찰청 제3기동대장(46·총경)은 5월24일부터 지난 3주간 사흘을 제외하고는 기동대 소속 의경들과 함께 거리에서 앉거나 선 채 밤을 새웠다고 했다. 그는 15일에도 새벽 4시까지 세종로 사거리에서 촛불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다가 5시쯤 송파구 문정동에 있는 기동대로 복귀했다. 아침 식사를 거르고 낮 12시까지 자고 일어나 점심식사를 막 마쳤다는 그를 기동대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오후 4시 또 출동해야 한다고 서둘렀다. 그의 휘하에는 12개 기동중대, 의경 기동대원 1150명이 있다.
―대원들이 많이 지쳤겠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다. 시위대와 충돌 과정에서 타박상과 골절상을 입어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대원이 20여명, 거리에서 매일 도시락으로 식사를 하다 보니 설사와 탈수, 탈진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던 대원이 또 20~30명쯤 된다. 식사와 잠자리가 불편하고 스트레스가 심해서인지 갑자기 맹장 수술을 받은 대원도 2~3명 발생했다. 그제는 신체적인 이상은 없지만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안정이 필요하다고 해서 대원 1명을 병원에 입원시켰다."
―시위 진압에 나선 전·의경들을 통솔하는 데 어떤 점이 가장 어렵나
"전·의경들은 20대 초반의, 아직 자기 통제력이 약한 '펄펄 끓는' 청년들이다. 이들이 시위 현장에서 겪는 모멸감은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다. 먹을 것을 던져주면서 '먹어봐라'고 하는 사람, '×××들아, 넌 아비 어미도 없냐'고 욕하는 사람…. 며칠 전에는 세종로 사거리의 신문로 방향 인도에서 열을 맞춰 앉아서 대기하고 있는데, 한 중년 남자가 지나가며 우리 대원 뒤통수를 '퍽' 소리가 나도록 갈겼다. 맞은 대원은 울컥 하는 심정에 일어나긴 했지만, 내가 지켜보고 있으니 딴 행동은 못하고 얼굴을 그 사람에게 들이밀면서 '더 때려보십시오'라고 대거리만 할 뿐이었다. 나는 그 순간에도 그 남자가 아니라 우리 대원에게 '대응하지 말고 가만히 앉아 있어'라고 야단을 쳤다. 그러니 얼마나 울화가 쌓이겠나. 잘 참는 대원들을 보면 정말 고맙다."
▲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새문안교회 뒷길에서 배용주 서울경찰청 제3기 동대장이 시위대의 움직
임을 전해듣고, 무전기로 기동대 소속 의경들의 대비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그것은 우리가 정말 잘못한 것이다. '시민들이 욕하거나 때려도 대꾸하지 말고 가만 있어라'고 반복해서 교육하지만 일부 전·의경들은 우발적으로 실수를 한다. 전·의경들은 계속된 조롱으로 감정적으로 예민해져 있다. 수만 명의 시위대 앞에 서면 겁도 난다. 그러니 우발적인 사고가 날 수 있다."
―'경찰이 과잉 진압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의 역할은 두 가지다. 시위대가 차도를 점거하지 않게 하고, 청와대로 몰려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위대는 '왜 시민의 도로를 경찰이 막느냐'고 한다. 미국에서는 불법시위에 대해 경찰이 세 차례 해산 경고를 했는데 응하지 않으면 총까지 쏜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는 경찰에 의한 강제력이 당연히 행사된다고 생각해야지, 그것에 대해 '과잉진압'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맞지 않다."
―경찰도 '과잉진압'을 어느 정도 인정했기 때문에, 시위 초기 사용했던 '물대포' 등을 사용하지 않는 것 아닌가
"여론의 비판이 가장 큰 부담이 됐다. 우리 집시법에는 밤에는 아예 시위를 못하게 돼 있다. 더구나 차도를 점거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그런데도 시위대는 심야에, 차도를 점거하고 '청와대 진격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시위대를 경찰이 막은 것인데, 언론과 여론은 경찰에만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그래서 물대포나 사람으로 막는 대신 경찰 버스로 차벽을 만들어 막는 방식으로 물러섰다."
―공권력 행사에 법과 원칙, 여론… 무엇을 특히 중시하나
"여론은 공권력을 집행하는 경찰을 너무나 무시하고 있다. 무엇이 정당한지 따지지 않고 한때의 여론을 의식해서 경찰청장을 날린 적도 있었다. 그런 것에 대한 가슴 깊은 울분이 있다."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라고 수없이 발표하면서, 스스로 지켜야 할 선(線)에서 쉽게 후퇴하는 일관성이 없는 공권력을 시민들이 과연 존중할까
"공권력은 시민에 대해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부여해준 힘이다. 여기서 강제력이란 합법적인 힘이다. 경찰의 합법적인 힘은 시민들이 수용해야 한다. 우리도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하겠지만, 공권력을 인정하는 시민들의 눈높이도 더 높아져야 한다고 본다."
―시위 현장에서 보면 공권력은 조롱과 경멸의 대상인 것 같다. 경찰은 시위대에 '해산 경고 방송'을 하는 게 아니라, '애원'을 하더라.
"그런 측면이 있다. 우리가 방송을 하면 시위대가 앞쪽으로 더 모여든다. '놀아줘, 놀아줘' 하면서 전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다. 우리가 이런 상황을 계속 방치해야 하는지 고민이 있다."
―시위 현장의 최일선에서 보니 이번 촛불시위대는 어떤 사람들인가
"정말 다양한 시민들이 나오고 있다. 학생, 주부, 직장인이 망라돼 있다. 그러나 자정을 넘겨 새벽 4~5시까지 차도를 점거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군지 나도 궁금하다. 정상적으로 직장 생활을 하거나,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그 시간까지 도로를 점거하고 있기 힘들 것이다. 그들 중에는 술에 취해 있는 사람도 간혹 눈에 띈다."
―지금처럼 촛불시위가 지속되면 경찰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정부도, 경찰 지휘부도 그것이 고민일 것이다. 지금 경찰은 한 발 물러나 최대한 시민들과 충돌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시위대가 차도를 무방비 상태로 휩쓸고 다니는 걸 어느 수준까지 방치할 것인지 모르겠다. 집회·시위의 자유가 있지만, 약속한 시간과 장소에서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집시법은 완전 무용지물이다.
앞으로 사회적인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시위에 참가하는 시민들에게 바라는 것은.
"치안과 공공의 질서 유지는 '사회간접자본'이라는 인식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누구나 주의, 주장을 펼 수는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뜻일 것이다. 그러니 시위를 하더라도 우리 사회간접자본을 훼손하지 않고 한 단계 높이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그건 경찰에게 잘 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잘 되게 하는 것이라고 본다."
―촛불시위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게 있다면.
"정책을 결정할 때 각 단계를 투명하게 진행하고, 국민 여론의 저변을 꼼꼼하게 짚어봐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게 얻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잃은 것은 법치(法治)다. 경찰에게 '너희가 우리를 해산시키려고 도로에 나와 있는 것 자체가 도로 점거 아니냐'고 당당하게 말하는 지금 분위기는 후유증이 클 것이다."
배용주 총경
1962년생으로 경찰대학(2기)을 졸업하고 경찰에 입문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도 서울경찰청 기동대 48중대 소대장으로 시위 경비 업무를 맡았다. 이후 서울 도봉경찰서 수사·형사과장,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장·폭력계장, 부산경찰청 보안과장, 전남 보성경찰서장을 거쳐 지난해 7월 서울경찰청 제3기동대장에 부임했다.
중학생에게 "전경 이 거지놈아" 소리 들어야만 하나
2008.06.16 08:38 조중식 기자 jscho@chosun.com /박세미 기자 runa@chosun.com
알 수
7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