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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은 안락사하고 있는 중이다.

수로보니게 여인 2008. 6. 2. 11:37

 

원효대사는 서태지… 선덕여왕은 다이애너비… 신라인들의 엽기적인 사생활을 공개합니다
서라벌 사람들
심윤경 연작소설|실천문학사|272쪽|9800원
손홍규 소설가

한국소설은 안락사하고 있는 중이다. 고통을 느끼지 못한 채 몰락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적어도 어딘가에서 새로운 소생은 시작되고 있는 게 분명하다. 화석화된 역사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를 날것의 언어로 직조하는 소설가들이 서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심윤경도 그런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천년고찰의 단청 같은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가 네 번째 소설을 내놓았다. 책장을 펼치니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보다 발칙하고 다감한 신라시대 사람들이 튀어나온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그들을 이렇게 표현했다. "거인들을 왕으로 섬겼고, 큰 제사에는 당연히 화끈한 섹스가 있어야 한다고 믿었고, 별과 짐승들로 점을 쳤고, 화려하고 떠들썩한 연애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고대인들은 없다. 대신 "선덕여왕은 다이애너비, 화랑은 비보이, 무열왕은 카우치 포테이토, 원효대사는 서태지"로 다가왔다던 그의 말마따나 삼국유사에 잠들어 있던 고대인들이 신화적이고 영웅적인 면모를 잃지 않으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인물로 생생하게 돋을새김 되어 있다.
한 자 다섯 치의 양물을 지닌 지증제를 상대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인 연제태후와 법흥제 사이의 갈등(〈연제태후〉), 애혜 낭주와의 혼인을 앞둔 신라 제일의 미소년 준랑의 동성애 행각(〈준랑의 혼인〉), 거인족이었던 선덕제후를 모방하여 비대해지면서 죽어가는 무열황제의 비뚤어진 욕망(〈변신〉), 신라 영웅이었던 김유신의 인간적 면모와 원효대사의 흥법회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천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에게 낯익은 이야기는 이 소설에 담겨있지 않다. 계간 《실천문학》에 연재될 때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이 다섯 편의 소설은 세간의 평처럼 가히 '선데이 서라벌'이라 해도 좋을 만큼 농밀한 언어와 기발한 상상력으로 재탄생한 '삼국유사'다. 그들이 우리처럼 웃고 울며 부대끼던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으나, 이토록 생생하게 우리의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경우는 전례를 찾기 힘들 것이다. 이 다섯 편의 소설을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는 문제의식은 외래사상(불교, 유교)과 토착사상의 충돌이라는 세계관끼리의 대결이다.
▲ ▲삼국유사의 역사적 기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소설을 발표한 소설가 심윤경씨. /조선일보DB
그래, 상상력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리하여 소설가는 원효대사의 입을 빌려 이렇게 묻는다. "신국의 옛 풍습과는 다른 중국의 도리와 예절이 전래된 이후로 세상이 점점 더 비정하고 잔인한 곳으로 변했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그리고 그 풍조에 부모님과 형님이 희생되셨다는 말씀입니까?" 그러나 서라벌 사람들은 회귀할 수 없다. "혈육과 연인 사이에 흐르는 따뜻하고 자연스러운 친애를 버리고, 대의와 명분을 따라 희생도 마다하지 않으며 때로는 가장 가까운 육친조차 도구로 대하는 비정의 세계로 이주"해버린 그들의 고독은 오직 이 소설에서만 통절하게 되살아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의 고독이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심윤경은 역사를 써레질하는 소설가다. 켜켜이 쌓여 단단해져 버린 역사의 지층을 갈아엎고 숨구멍을 뚫어 그 안에 잠들어 있던 고대인마저 우리 옆에서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살아 움직이게끔 한다. 몰락의 고통을 응시하는 이 소설이 안락사 중인 한국소설에도 소생의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으리라 기대해도 좋은 이유다.
입력 : 2008.05.30 16:21 / 수정 : 2008.05.30 1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