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와 정서, 보리타작
실학사상
조선시대에, 실생활의 유익을 목표로 한 새로운 학풍. 17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융성하였으며, 실사구시(實事求是)와 이용후생(利用厚生), 기술의 존중과 국민 경제 생활의 향상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1. 주제와 정서
1)개념
** 주제
- 시인이 궁극적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생각이나 의미
- 시의 내용을 이루는 가장 본질적 요소
- 시대 및 사회 변천에 따라 변화함 →시대나 사회상이 시에 반영되기 때문에
** 정서: 어떤 사물이나 상황에 부딪쳐 일어나는 기쁨, 슬픔, 노여움, 괴로움, 사랑, 미움 등의 모든 감정
과 마음속에 일어나는 생각, 또는 그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기분이나 분위기
2) 시의 주제 파악을 위한 방법
- 시적 상황을 정확히 이해해야 → 시적 상황을 구성하는 요소: 시적 화자, 시적 대상(제재)
- 시적 상황에 대한 화자의 반응이 어떠한가를 분석하여 화자의 정서나 태도를 짐작함.
- 화자의 태도나 정서에 집중적으로 반영되어 있는 의식을 파악하면 그것이 곧 주제가 됨
2. 보리타작
새로 거른 막걸리 젖빛처럼 뿌옇고
큰 사발에 보리밥, 높기가 한 자로세 => 과장법
→‘막걸리’. ‘보리밥’: 질 좋은 음식은 아니지만, 요기로서는 손색이 없는 음식들
밥 먹자 도리깨 잡고 마당에 나서니 => 곡식의 알을 떠는 농구의 하나
검게 탄 두 어깨 햇볕 받아 번쩍이네 => 햇볕 아래에서 노동한 어깨의 빛깔
<노동하는 농민의 건강한 삶의 모습 - 기(起)
옹헤야 소리 내며 발맞추어 두드리니 => 민요의 후창 부분의 감탄사
삽시간에 보리 낟알 온 마당에 가득하네.
주고받는 노랫가락 점점 높아지는데 => 민요의 선후창
보이느니 지붕위에 보리 티끌뿐이로다. < 보리타작하는 마당의 정경- 승(承)>
그 기색 살펴보니 즐겁기 짝이 없어
마음이 몸의 노예 되지 않았네 => 육신과 정신이 조화를 이루고 있음
<정신과 육체가 합일된 노동의 기쁨- 전(轉)>
낙원이 먼 곳이 있는 게 아닌데
무엇하러 벼슬길에 헤매고 있으리요 =>화자의 내면의 변화: 화자가 벼슬길에 나서 정치적 억압을 받고
힘든 삶을 살아온 과정이 모두 부질없는 행위였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관직에 몸담은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 - 결(結)>
주제: 농님의 보리타작 노동과 거기에서 얻는 삶의 즐거운 모습
2) 표현상 특징
** 시상 전개방식
화자(관찰자) |
관찰(각성과 반성)
→ |
농민(노동자) |
마음이 몸의 노예가 됨 |
↔ |
정신과 육체가 합일 됨 |
벼슬길 |
↔ |
노동의 삶(낙원) |
** 선경후정(先景後情)
- 한시를 창작할 때 시상(詩想)을 전개하는 방식
- 먼저 자연 또는 사물을 묘사하고 나서 그것을 보고 느낀 시인의 간정이나 생각을 표출하는 것
새로 거른 막걸리 젖빛처럼 뿌옇고
큰 사발에 보리밥, 높기가 한 자로세.
밥 먹자 도리깨 잡고 마당에 나서니
검게 탄 두 어깨 햇볕 받아 번쩍이네.
옹헤야 소리 내며 발맞추어 두드리니
삽시간에 보리 낟알 온 마당에 가득하네.
주고받는 노랫가락 점점 높아지는데
보이느니 지붕위에 보리 티끌뿐이로다. <선경(先景) - 보리타작하는 모습(화자의 외적세계)>
그 기색 살펴보니 즐겁기 짝이 없어
마음이 몸의 노예 되지 않았네.
낙원이 먼 곳이 있는 게 아닌데
무엇하러 벼슬길에 헤매고 있으리요. <후정(後情)- 깨달음과 반성(화자의 내면세계)>
**지은이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경기도 광주 출생,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 호는 다산(茶山) 또는 여유당
(與猶當)> 정조 13년에 남인(南人)의 불리한 처지를 극복하고 대과에 급제하여 정조의 총애를 받기도
한 실학자이다. 저서에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흠흠신서(欽欽新書)』등
이 있다.
- 실학적 가치관이 드러나는 시: 조선 후기에 이르러 이념주의 성리학적 세계관을 비판하면서 실사구시
의 태도로 현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지식인이 출현하였다. 이들은 조선 후기 사회에 대한 반성과 비판
의 시각으로 현실의 모순을 지적하였다. 정약용의 한시는 이러한 실학적 가치관을 드러내고 있다.
다산(茶山)의 중농(重農) 사상과 현실주의 시 정신을 잘 나타내는 작품이다. 즉 정약용은 새롭게 가치
있는 삶을 평민의 세계에서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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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追億)에서, 가을날
추억(追億)에서
진주(晋州) 장터 생어물(生魚物)전에는 => 공간적 배경. *토속적
바다 밑이 깔리는 해 다 진 어스름을 => 시간적 배경. *애상적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 방언. *토속적
빛 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 연상의 매개체
은전(銀錢)만큼 손 안 닿는 한(恨)이*던가 => 부, 풍요. *각운의 효과
울엄매야 울엄매 => 돈호법. 반복법
별밭은 또 그리 멀리 => 소망의 세계
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
손시리게 떨던가 손시리게 떨던가 => 촉각적 이미지. 반복법 *각운의 효과
진주 남강(晋州南江) 맑다 해도
오명 가명 => 오며 가며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 어머니의 고단한 삶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 어머니의 마음 비유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 눈물: 가난한 삶의 한 → 자식에 대한 사랑 *각운의 효과
2) 표현상 특징
** 심상
* 감각적(시각적)인 언어로 정서를 형상화: ‘어두움’의 이미지와 ‘밝음’의 이미지
- ‘어스름’, ‘남은 고기 몇 마리’, ‘골방’, ‘신새벽이나 밤빛’ - 어두움의 이미지
- ‘은전’, ‘별밭’, ‘맑다’, ‘반짝이던’ - 밝음의 이미지
** 운율: ‘~ ㄴ가' 가 반복되어 운율 형성
** 향토적이고 토속적인 시어(구체적인 지명과 토속적인 시어사용): ‘진주 장터’, ‘울엄매’,
‘오명 가명’, ‘진주남강’, ‘옹기전’
** 대상의 변화: 어머니(1, 2연)→오누이(3연)→ 어머니(4연)
<핵심 정리>
감상의 초점
어릴 적의 추억을 떠올리며 어려운 삶을 살아가던 어머니의 한스러운 모습을 회상한 시로서 넘치는 슬픔을 감정을 절제한 섬세한 말씨와 감각으로 처리했다.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운율 : 내재율(7.5조의 변형)
성격 : 회고적, 향토적, 애상적, 서정적, 정한적
제재 : 어릴 적 추억 속의 어머니 모습
주제 : 한스러운 삶을 살다 간 어머니에 대한 회상
표현상의 특징
- 섬세한 언어와 서정적 감각이 두드러짐-'어머니-오누이-어머니'로 서술대상이 변함
- 구체적인 지명과 토속적인 시어를 사용하고 있다.
- 시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슬픔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 시적 대상에 대한 깊은 애정을 은근하게 드러내고 있다.
- 영탄형이나 의문형 어미를 사용하여 정서 표출을 자제하고 있다.
- 유년 시절의 추억을 제재로 삼고 있다.
시구 풀이
바닷밑이 깔리는 해다진 어스름을 : 어스름 때의 어물전의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표현한 말.
어물전이 파장하고 해가 져 밀려오는 어스름이 마치 바다 밑의 어둠이 깔리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은전(銀錢)만큼 손 안 닿는 한(恨)이던가 : 은전(銀錢)의 문맥적 의미는 만져볼 수 없는 물질, 혹은 소유할 수 없는 부(富)를 상징하고 있다. 어머니가 팔다 남은 생선의 눈빛에서 은전을 연상하지만 그러한 연상은 속절없고 한스러운 것이다.
울엄매야 울엄매: '우리 엄마'의 경상도 사투리로, 토속적이며 향토적인 정감을 불러 일으키는 표현이다.
'울엄매'라는 단어의 발음은 '울고 있는 엄마'라는 의미를 연상시키기도 한다.(돈호, 반복법)
별밭은 또 그리 멀어 ∼ 손시리게 떨던가 손시리게 떨던가 : 실제로 '손시리게 떨던가'의 주체는 별이 아니라 오누이임을 짐작할 수 있는 구절로, 어린 시절의 가난과 외로움을 추억의 영상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 구절이다.(의인, 반복법)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 달빛 아래 옹기들의 반짝임에서 시적 화자는 남몰래 글썽이시던 어머니의 눈물을 연상한다. 보이지 않는 어머니의 슬픔을 옹기의 반짝임이라는 구체적 현상을 동원해 표현하고 있다. 즉, 한으로 채워져 글썽이며 울고 계시던 어머니의 마음을 형상화하고 있는 구절이다.
감상포인트
객관적 상관물 : 생선 몇 마리, 별밭, 옹기전의 옹기
시상전개 : 어스름(생활의 각박함이나 슬픔 등의 부정적 현상) → 별빛, 남강의 맑은 물, 반짝이는 옹기(분명하고 밝고 긍정적인 형상)
가난 : 눈깔과 은전의 거리에 놓여있던 삶의 조건
종결어미 : -던가, -던가, -것인가 (감탄 종지를 통해 화자의 감정을 하나의 에피소드마다 응결함)
시상의 전개
♠ 1∼6행: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던 어머니의 모습이 간결하게 드러난다. 그의 어머니는 진주 장터
의 생어물전에서 생선을 팔았다. 해가 다 지고 어둠이 깔리는 어스름 때 아직 다 팔지 못하고 남은 몇
마리 고기들의 반짝이는 눈알들…… 여기에서 그는 어머니의 손 닿을 수 없는 한을 생각한다. 어머니는
이러한 괴로움과 한을 어린 아들에게 내색하지 않을 터이지만, 그는 팔다 납은 고기 몇 마리의 반짝이
는 눈빛에서 갑자기 어머니의 깊은 한을 느끼고는 하였다.
♠ 7∼9행: 어머니가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며 어두운 방 안에서 손 시리게 떨던 오누이의 모습이 나타난
다. 날은 저물어 별이 총총한 밤, 추위에 떨며 머리를 맞대고 있는 오누이를 위하여 어머니는 먼 장터
로부터 밤길을 걸어 돌아왔을 것이다.
♠ 10∼15행: 다시 어머니의 모습에로 초점을 옮겨 간다. 그의 어머니는 진주 남강이 맑다고 해도 어슴푸
레한 새벽 또는 별빛에나 그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던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는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에서 어머니의 슬픔에 젖은 눈빛을 연상한다. 그것은 아무에게도 보
이지 않으려고 슬픔을 억제한, 그러나 소년 시절의 그에게 무엇보다도 가슴 깊이 들어와 박혔던 한스
런 눈빛이다.
<연구 문제>
가) 형식의 이해
(1) 이 시는 몇 연, 몇 행으로 되어 있나?=>연 15행
(2) 몇 음보 가락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대체로 3음보 가락으로 읽는다.
(3) 행별로 음보 배열을 다르게 함으로써 호흡에 미치는 효과는 무엇인가?
=>음보 배열을 다르게 함으로써 빠른 호흡으로, 또는 천천히 읽게 하고 시적정서를 다르게 느끼게 한다.
나) 내용의 파악
* 시적 화자는 누구인가? => 생선 팔러 간 어머니를 기다리던 유년 시절을 추억하는 어른이 된 나
* 향토적이며 토속적인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시어들을 찾아보자.
=>진주 장터, 울엄매, 별밭, 진주 남강, 옹기전의 옹기들, 오명 가명
* 의미 단락별로 볼 때, 시적 대상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1연에서는 세월의 흐름에도 변하지 않는 그리움의 대상인 어머니를 형상화하고 있다.
2연에서는 어머니가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며 어두운 방안에서 손 시리게 떨던 오누이의 모습이 나타난다.
날은 저물어 별이 총총한 밤, 추위에 떨며 머리를 맞대고 있는 오누이를 위하여 어머니는 먼 장터로부터
밤길을 걸어 돌아왔을 것이다.
3연에서는 다시 어머니의 모습에로 초점을 옮겨 간다. 그의 어머니는 진주 남강이 맑다고 해도 어슴프레
한 신새벽 또는 별빛에나 그것을 보았을 뿐이다. 그만큼 어머니의 삶은 어렵고 고달픈 것이었다.
* '울엄매야 울엄매'라는 독특한 말이 느끼게 하는 분위기는 어떠한가?
=>우리 마'의 경상도 사투리로, 토속적이며 향토적인 정감을 불러일으키며 더욱 근원적인 친근감을 느
끼게 한다. '울엄매'의 발음은 '울고 있는 엄마'라는 의미를 연상시켜 어머니의 삶이 한스러움을 나타
내고 있다.
* '빛 발하는 눈깔들이'는 어떤 마음과 대응되는가?
=>다 남은 생선 눈깔의 빛은 오누이를 둔 어머니의 마음이다. 그 마음이 감각화 되어 빛의 덩어리로
된 것이 빛 발하는 생선 눈깔의 인광이다. 생선 눈깔의 그것은 오들오들 떨면서 자기를 기다리는
아이를 가진 어머니의 다급한 마음과 대응된다.
* 시적 화자의 어린 시절의 가난함과 한을 표현하고 있는 시구는?
=>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은전만큼 손 안 닿는 한이던가', '손시리게 떨던가 손시
리게 떨던가',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 종결 어미와 정서 표현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 종결 어미가 '∼을', '∼가', '∼꼬'로 되어 있어 직설적인 단정인 '∼다'를 피하고 있다.
즉 영탄적인 분위기와 함께 일종의 가정이나 의문형으로 끝내고 있다. 이를 통해 시적 화자의 한스러
운 회상을 직접적으로 토로하지 않고 감정을 절제하고 있다.
* 달빛 받은 옹기들의 반짝임은 어떤 점에서 눈빛과 연관되는가?
=> 시적 화자는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에서 어머니의 슬픔에 젖은 눈빛을 연상한다.
한 번 생각하여 보자. 어두운 밤, 옹기전에 놓여 있는 옹기들, 그 반짝이는 표면에 비추는 달빛 ― 그
쓸쓸한 빛이 그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눈빛을 연상한다. 그것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으려고 슬픔을
억제한, 그러나 소년 시절의 그에게 무엇보다도 가슴 깊이 들어와 박혔던 한스런 눈빛이다. 어머니의
마음이 달빛 받아 반짝이는 옹기로 감각화 되어 나타날 때 그 한은 신선한 생명을 얻는다. 어머니의
생애가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으로 추억되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표현한 것이면
서 어머니의 강한 생명력에 대한 확인이며 사랑이다.
2. 「가을날」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 경탄, 감사, 기도조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 태양의 규칙적 회전 - 계절의 질서 있는 순환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 신의 은총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 성숙에 대한 소망 <전반부: 외적 세계의 풍성함>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 불완전한 상태에 있는 인간의 불안과 한계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 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 비애, 절망 같은 감성이 배제된 고독
/절망이나 비애가 아닌 수용하는 사랑의 고독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 고독한 인간의 근원적인 방황 <후반부: 내적 세계의 고독>
주제: 가을에 느끼는 인간의 근원적 고독
표현상 특징
** 심상
* 비유적 이미지
- 해시계: 계절을 비유함
- 남국의 날(햇볕): 신의 은총을 비유함.
* 상징적 이미지
- 지금 집이 없는 사람: 영혼의 완숙을 갈망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상징함
** 어조: 경건한 기도조의 목소리
** 심상: 비유적 상징적 심상
** 특징: 대조적 기법
전반부(1,2연) |
후반부(3연) |
자연의 가을 - 자연의 성숙 |
인간의 가을 - 성숙하지 못한 시적 자아 |
** 주제: 가을에 느끼는 인간의 근원적 고독
** 지은이: 릴케(R. M. Rilke, 1875~ 1926)
어머니의 대한 그리움을 소재로 한 시
「자모사(자모사)」- 정인보
1
가을은 그 가을이 바람불고 잎 드는데
가신 님 어이하여 돌오실 줄 모르는가
살뜰히 기르신 아이 옷 품 준 줄 아소서
2
부른 배 골리보고 나은 얼굴 병만 여겨
하루도 열두 시로 곧 어떨까 하시더니
밤송인 쭉으렁인 채 그지 달려 삽내다
3
동창에 해는 뜨나 님 계실 때 아니로다
이 설움 오늘날을 알았드면 저즘미리
먹은 맘 다 된다기로 앞 떠날 줄 있으리
4
차마 님의 낯을 흙으로 가리단 말
우굿이 어겼으니 무정할 손 추초(秋草)로다
밤이여 꿈에 뵈오니 편안이나 하신가
5
반갑던 님의 글월 설움될 줄 알았으리
줄줄이 흐르는 정 상기 아니 말랐도다
받들어 낯에 대이니 배이는 듯하여라
6
므가나 나를 고히 보심 생각하면 되 서워라
내 양자(樣子) 그대로를 님이 아니 못보심가
내 없어 네 미워진 줄 어이 네가 알것가
7
눈 한번 감으시니 내 일생이 다 덮여라
질 보아 가련하니 님의 속이 어떠시리
자던 닭 나래쳐 울면 이때리니 하여라
8
체수는 적으셔도 목소리는 크시더니
이 없어 옴으신 입 주름마다 귀엽더니
굽으신 마른 허리에 부지런히 뵈더니
9
생각도 어지럴사 뒤먼저도 바없고야
쓰다간 눈물이요 쓰고 나니 한숨이라
행여나 님 들으실까 나가 외워 봅니다
10
미닫이 닫히었나 열고 내다보시는가
중문 턱 바삐 넘어 앞 안 보고 걸었더니
다친 팔 도진다마는 님은 어대 가신고
11
젖 잃은 어린 손녀 손에 끼고 등에 길러
색시꼴 백여가니 눈에 오즉 밟히실가
봉사도 님 따라간지 아니 든다 웁내다
12
바릿밥 남 주시고 잡숫느니 찬 것이며
두둑히 다 입히고 겨울이라 엷은 옷을
솜치마 좋다시더니 보공되고 말어라
13
썩이신 님의 속을 깊이 알 이 뉘 있스리
다만지 하루라도 웃음 한번 도읍과저
이저리 쓰옵던 애가 한 꿈되고 말아라
14
그리워 하 그리워 님의 신색 하 그리워
닮을 이 뉘 없으니 어딜 향해 찾으오리
남으니 두어 줄 눈물 어려 캄캄하고녀
15
불현듯 나는 생각 내가 어이 이러한고
말 갈 데 소 갈 데로 잊은 듯이 열흘 달포
설움도 팔자 없으니 더욱 느껴 합내다
16
안방에 불 비치면 하마 님이 계시온 듯
닫힌 창 바삐 열고 몇 번이나 울었던고
산 속에 추위 이르니 님을 어이 하올고
17
밤중만 어매 그늘 세 번이나 나린다네
게서 자라날 제 어인 줄을 몰랐고여
님의 공 깨닫고 보니 님은 벌써 머셔라
18
태양이 더웁다 해도 님께 대면 미지근타
구십춘광(九十春光)이 한 웃음에 퍼지서라
멀찌기 아득케나마 바랄 날이 언제뇨
19
어머니 부르올 제 일만 있어 부르리까
젖먹이 우리 애기 왜 또 찾나 하시더니
황천(黃泉)이 아득하건만 혼자 불러 봅내다
20
연긴가 구름인가 옛일 벌써 희미(熹微)해라
눈감아 뵈오려니 떠오느니 딴 낯이라
남없는 거룩한 복이 언제런지 몰라라
21
등불은 어이 밝아 바람조차 부는고야
옷자락 날개 삼아 훨훨 중천 나르과저
이윽고 비소리나니 잠 못 이뤄 하노라
22
풍상(風霜)도 나름이라 설움이면 다 설움가
오십년 님의 살림 눈물인들 남을 것가
이저다 꿈이라시고 내 키만을 보서라
23
북단재 뾰죽집이 전에 우리 외가(外家)라고
자라신 경눗골에 밤동산은 어디런가
님 눈에 비취던 무산 그저 열둘이려니
24
목천(木川)집 안방인데 누우신 양 병중이라
손으로 머리 짚자 님을 따라 서울길로
나다려 말씀하실 젠 진천인 듯하여라
25
뵈온 배 꿈이온가 꿈이 아니 생시런가
이 날이 한 꿈되어 소스라쳐 깨우과저
긴 세월 가진 설움 맘껏 하소 하리라
26
시식(時食)도 좋건마는 님께 드려 보올 것가
악마듸 풋저림을 이 없을 때 잡숫더니
가지록 뼈아풉내다 한(恨)이라만 하리까
27
가까이 곁에 가면 말로 못할 무슨 냄새
마시어 배부른 듯 몸에 품겨 봄이온 듯
코끝에 하마 남은가 때때 맡아 봅내다
28
님 분명 계실 것이 여기 내가 있도소니
내 분명 같을 것이 님 가신지 네 해로다
두 분명 다 허사외라 뵈와 분명하온가
29
친구들 나를 일러 집안 일에 범연타고
아내는 서워라고 어린아이 맛없다고
여린 맘 설움에 찢겨 어대 간지 몰라라
30
집터야 물을 것가 어느 무엇 꿈아니리
한 깊은 저 남산이 님 보시던 옛 낯이라
게섰자 눈물이리만 외오 보니 설워라
31
비 잠깐 산 씻더니 서릿김에 내 맑아라
열구름 뜨자마자 그조차도 불어 없다
맘 선뜻 반가워지니 님 뵈온 듯하여라
32
마흔의 외둥이를 응아하자 맏동서께
남없는 자애렸만 정 갈릴가 참으셨네
이 어찌 범절만이료 지덕(至德)인 줄 압내다
33
찬 서리 어린 칼을 의로 죽자 내 잡으면
분명코 우리 님이 나를 아니 붙드시리
가서도 계신 듯하니 한 걸음을 긔리까
34 어느 해 헛소문에 놀라시고 급한 편지
네 걸음 헛디디면 모자 다시 안 본다고
지질한 그날 그날을 뜻 받았다 하리오
35
백봉황(白鳳凰) 깃을 부쳐 도솔천궁(兜率天宮) 향하실 제
아득한 구름 한점 옛 강산이 저기로다
빗방울 오동에 드니 눈물 아니 지신가
36
엽둔재 높은 고개 눈바람도 경이랏다
가마 뒤 잦은 걸음 얘기 어이 그쳤으리
주막집 어둔 등잔이 맛본상을 비춰라
37
이 강이 어느 강가 압록(鴨綠)이라 엿자오니
고국산천이 새로이 설워라고
치마끈 드시려 하자 눈물 벌써 굴러라
38
개울가 버들개지 바람 따라 휘날린다
행여나 저러할라 돌이고도 굴지 마라
이 말씀 지켰다한들 누를 향해 사뢸고
39
이만 사실 님을 뜻조차도 못받든가
한번 상해드려 못내 산 채 억만년을
이제와 뉘우치란들 님이 다시 오시랴
40
설워라 설워라해도 아들도 딴 몸이라
무덤풀 욱은 오늘 이 살붙어 있단 말가
빈 말로 설운 양함을 뉘나 믿지 마옵소
- '담원시조집'(1948)
A story void of meaning 의미[뜻] 없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