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 써 놓은 공책을 뒤적거려 보니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라 제목한 이 시(詩)는 1969년 7월 15일 새벽 한 시에 쓴 것으로 되어 있으니, 이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관악산 밑으로 이사 오기 바로 한 해 전 일인데, 그 때의 공덕동 집에도 나무와 풀섶이 꽤나 짙어 모기가 많아서 그 때문에 짧은 여름밤을, 열어 놓은 창 사이로 날아드는 모기떼와 싸움깨나 하고 앉았다가 쓴 것인 듯하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것은 내 육체의 꼴이지, 마음만은 그래도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한밤중쯤은 할 수 없이 그 영생(永生)이라는 걸 또 생각해야 견딜 마련이어서 물론 이런 걸 끄적거리고 버티고 있었을 것이다.
영생이란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마치 가을 으시시한 때에 흩옷만 한 벌 입은 푼수도 채 안 되는 내 영생의 자각과 감각 그것에 그래도 그 속 팬츠 하나 몫은 너끈히 되게 나를 입힌 건 저 「대동운옥(大同韻玉)」이란 책 속의 것으로 전해져 오는 신라(新羅) 때의 저 석남꽃이라는 꽃 얘기다. 그래 으스스해 오는 싸늘한 이 가을날에 이런 흩옷, 이런 속 팬츠도 혹 아직 못 입은 사람들도 있을까 하여 먼저 그 애기를 옮기기로 하니, 싫지 않거든 잘 목욕하고 이거라도 하나 받아 입으시고 오싹한 신선(神仙)이라도 하나 되기 바란다.
신라사람 최항(崔伉)의 자(字)는 석남(石南)인데, 애인이 있었지만 그의 부모가 금해서 만나지 못하다가 몇 달 만에 그만 덜컥 죽어 버렸다.
그런데 죽은 지 여드레 만의 한밤중에 항은 문득 그의 애인 집에 나타나서, 그 여자는 그가 죽은 뒤인 줄도 모르고 좋아 어쩔 줄을 모르며 맞이해 들였다.
항은 그 머리에 석남꽃 가지를 꽂고 있었는데, 그걸 나누어서 그 여자한테 주며,
"내 아버지 어머니가 너하고 같이 살아도 좋다고 해서 왔다." 고 했다. 그래 둘이는 항의 집까지 가서, 항은 잠긴 대문을 보고 혼자 먼저 담장을 넘어 들어갔는데 밤이 새어 아침이 되어도 웬일인지 영 다시 나오질 않았다. 아침에 항의 집 하인이 밖에 나왔다가 홀로 서 있는 여자를 보고
"왜 오셨소?"
하고 물어, 여자가 항과 같이 왔던 이야기를 하니, 하인은,
"그분 세상 떠난 건 벌써 여드레나 되었는데요. 오늘이 묻을 날입니다. 같이 오시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했다.
여자는 항이 나누어 주어 자기 머리에도 꽂고 있었던 석남꽃 가지를 가리키며,
"그분도 이걸 머리에 틀림없이 꽂고 있을 것이다." 고 했다.
그래, 그런가 안 그런가 어디 보자고 항의 집 식구들이 두루 알고 따지게 되어, 죽은 항이 담긴 널을 열고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아닌게아니라 항의 시체의 머리에는 석남꽃 가지가 꽂혀 있었고, 옷도 금시 밤 풀 섶을 거쳐 온 듯 촉촉히 젖은 그대로였고, 벗겼던 신발도 다시 차려 신고 있었다.
여자는 항이 죽었던 걸 알고 울다가 너무 기가 막혀 금시 숨이 넘어가게 되었다.
그랬더니 그 기막혀 숨넘어가려는 바람에 항은 깜짝 놀라 되살아났다. 그래 또 서른 핸가를 같이 살아 늙다가 갔다.
이것이 「대동운옥」에 담긴 그 이야기의 전부를 내가 재주를 몽땅 다해 번역해 옮기는 것이니, 이걸 저 아돌프 히틀러의 비단 팬츠보담야 한결 더 좋은 걸로 간주해서 입건 안 입건 그건 이걸 읽는 쪽의 자유겠지만, 하여간 별 가진 것이 변변치 못한 내게는 이걸 읽은 뒤부턴 이게 몸에 찰싹 달라붙은 대견한 것이 되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 나는 이것을 읽은 뒤 10여 년 동안 이야기 속의 그 석남꽃을 찾아 헤매다가 겨우 올봄에야 경상도 영주(榮州)에서도 여러 날 걸어 들어가야 하는 태백산맥의 어떤 골짜기에서 나온 쪼그만 묘목 한 그루를 내 뜰에 옮기어 심고, 이것이 자라 내 키만큼 될 날을 기다리며 신선반(神仙班)의 영생의 마음속 연습을 계속하고 있다. 「대동운옥」이나 내 1969년 7월 어느 첫 새벽의 시에는 한 30년만 더 살기로 겸손하게 에누리해 놓았지만, 사실은 아무래도 영원히 살아야만 원통치 않을 이 석남꽃 이야기의 싱그러운 사랑의 기운을…….
서정주의 석남꽃에 나타나는 글의 갈래
해당 부분 |
하위 갈래 |
기본 갈래 |
머리에 석남꽃을 꽃고~서른 해만
더 한 번 살아볼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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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 |
서정 갈래 |
내 글 써 논 공책을~ 신선이라도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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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수필 |
교술 갈래 |
신라 사람 최항의 자는~ 서른 핸가를 같이 살아 늙다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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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설화 |
서사 갈래 |
이것이 「대동운옥」에 담긴 그 이야기의~ 싱그러운 사랑의 기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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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수필 |
교술 갈래 |
서정주의 석남꽃의 갈래
-교술 갈래: 이 글은 ‘석남꽃’에 얽힌 사연들을 소개하여 영생에의 소복한 소망을 피력한 글이다.
‘세계가자아의 주관적 입장에 변형되지 않고 그대로 작품 속에 등장한다.’ 거나
‘작품속의 자아와작가가 대체로 일치한다.’는 교술 갈래의 특징과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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