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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기능과 가치/ 江湖四時歌(강호사시가)

수로보니게 여인 2008. 3. 31. 18:37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 

 

                                                                     맹사성

 

 

강호(자연)에 봄이 찾아오니 깊은 흥이 절로 일어난다.
막걸리를 마시며 노는 시냇가에 싱싱한 물고기가 안주로다.
이 몸이 이렇듯 한가하게 노니는 것도 역시 임금님의 은덕이시도다.

강호에 여름이 찾아오니 초당에 있는 이 몸은 할 일이 없다.
신의가 있는 강물결은 보내는 것이 시원한 바람이로다.
이 몸이 이렇듯 시원하게 지내는 것도 역시 임금님의 은덕이시도다.

강호에 가을이 찾아오니 물고기마다 살이 올라 있다.
작은배에 그물을 싣고 가 물결 따라 흐르게 던져 놓고
이 몸이 이렇듯 소일하며 지내는 것도 임금님의 은덕이시도다.

강호에 겨울이 찾아오니 쌓인 눈의 깊이가 한 자가 넘는다.
삿갓을 비스듬히 쓰고 도롱이를 둘러 덧옷을 삼으니
이 몸이 이렇듯 춥지 않게 지내는 것도 임금님의 은덕이시도다.

 요점 정리

 작자 : 맹사성(孟思誠;1360-1438)
연대 : 세종 때
성격 : 풍류적, 낭만적
갈래 : 평시조, 연시조(連時調)
명칭 : 강호가(江湖歌),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사시한정가(四時閒情歌)
구성 : 계절에 따라 한 수씩 노래하였고, 각 수는 '江湖'로 시작하여 '亦君恩이샷다'로 끝을 맺는다.
제재 : 사시(四時)의 강호 생활(江湖生活)
주제 : 유유자적한 강호에서의 삶, 강호에서 자연을즐기며, 임금의 은혜에 감사함.
의의 : 우리 나라 최초의 연시조로 꼽히는 작품이며, 강호가도의 선구로 이후에 이황, 이이의 연시조 작품에 영향을 미쳤고, 조선 건국의 정치적 안정에 대한 찬양과 충의를 고취하는 당시의 시조풍을 따르고 있으며, 매 수마다 반복되고 있는 것이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
출전 : 청구영언

 내용 연구

강호(자연)에 봄이 찾아오니 깊은 흥이 절로 일어난다.
막걸리를 마시며 노는 시냇가에 싱싱한 물고기가 안주로다.
이 몸이 이렇듯 한가하게 노니는 것도 역시 임금님의 은덕이시도다.
춘사/ 강호에서 즐기는 봄의 흥취

강호에 여름이 찾아오니 초당에 있는 이 몸은 할 일이 없다.
신의가 있는 강물결은 보내는 것이 시원한 바람이로다.
이 몸이 이렇듯 시원하게 지내는 것도 역시 임금님의 은덕이시도다. 
하사/ 초당에서 한가로이 보내는 생활

강호에 가을이 찾아오니 물고기마다 살이 올라 있다.
작은배에 그물을 싣고 가 물결 따라 흐르게 던져 놓고
이 몸이 이렇듯 소일하며 지내는 것도 임금님의 은덕이시도다. 
추사/ 고기잡이의 한가로운 즐거움

강호에 겨울이 찾아오니 쌓인 눈의 깊이가 한 자가 넘는다.
삿갓을 비스듬히 쓰고 도롱이를 둘러 덧옷을 삼으니
이 몸이 이렇듯 춥지 않게 지내는 것도 임금님의 은덕이시도다.
  동사/ 눈 쌓인 가운데 안분지족하는 생활

 江湖(강호) : 은사(隱士)가 숨어 사는 시골. 강화, 호수. 자연의 대유법
濁료(탁료) : 막걸리.탁주. 탁료계변은 막걸리를 마시며 노는 시냇가
錦鱗魚(금린어)가 : 싱싱한 물고기가, 금린어는 쏘가리
草堂(초당): 은사들이 즐겨 지내던 별채, 초가 
有信(유신)한 : 신의가 있는.  
江波(강파) : 강의 물결.
小挺(소정) :작은 배.
소일해옴도 : 소일하게 됨도
흘리띄여 더져 두고 : 흐르게 띄워 던져 두고
자히 : 한 자가
남다 : 넘는다. 더 된다
빗기 : 비스듬히
누역 : 도롱이, 띠풀 등으로 엮어 만든 비옷
칩지 아니해옴도 : 춥지 아니해옴도. 칩다>춥다로 경상도 지방 방언에 아직 남아 있다.
이 몸이 閒暇(한가)해옴도 亦君恩(역군은)이샷다.
: 이 몸이 한가함도 역시 임금님의 은혜이시도다. 즉, 자연과 더불어 안빈낙도(安貧樂道)와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가운데 임금님의 은혜를 잊지 못하는 신하의 정(情)을 읊은 것이다.이처럼 자연의 찬미와 함께 충의(忠義) 이념을 가미(加味)한 노래를 '강호가도(江湖歌道)'라고 한다.'역(亦)'이란 '전에나 다름없이'라는 의미를 간직하는 것으로 시적 자아는 강호에서 한가롭게 자연을 즐기기 전에도 임금의 은혜를 입었음을 알 수 있다.
小艇(소정)에 그물 시러 흘리 띄여 더뎌 두고, : 작은 배에 그물을 흘려 띄워 던져 두고. 즉, 화자가 어부로 설정되어 있지만,그물을 던져 두는 것은 고기를 잡고자 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종장 둘째 구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소일(消日)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으므로 이는 자연과 혼연 일체를 이루고자 하는 심정의 발로로 볼 수 있다.
 

두 작품(강호사시가, 도산12곡)에서 공통으로 소재로 삼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서로 다른 시대에 살던 작가들의 작품에서 공통점을 발견함으로써 조선 시대 사대부들의

                보편적인 가치관을 탐색해 보기 위한 활동이다. '강호(江湖)'라는 것이 자연을 대유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점을 본문의 학습 과정에서 미리 설명해 주어야 한다.

 

풀이  :  자연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는 연시조의 효시로 알려진 작품으로, 춘하추동 계절별로 한 수씩

 모두 4수로 이루어졌다. 자연을 벗삼아 사는 흥취와 함께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는 내용을 노래했다.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유학자인 퇴계 이황의 작품이다.

모두 12수로 이루어진 연시조로, 전 육곡의 ‘언지(言志)’와 후 육곡의 ‘언학(言學)’으로 나눌 수 있다.

자연을 벗삼아 사는 즐거움과 함께 후학(後學)들에게 학문에 정진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을 노래했다.

1. 본문에 수록된 '강호사시가'의 두 수에서 각각 읊고 있는 계절은 무엇인지 말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강호사시가'의 형식적 특성을 이해하기 위한 활동이다. 교과서에 인용된 두 수가 모두

           '강호에 ∼이 드니'로 시작하여 '역군은이샷다'로 끝난다는 점에 유의하여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한다.

풀이  :  가을과 겨울

2. '도산십이곡'의 [언지 1]에 드러난 화자(話者)의 삶의 태도를 정리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작품에 형상화된 작가의 삶의 태도를 파악해 봄으로써 문학의 가치 지향적 성격을 이해하기 위한 활동이다. 특히 '초야 우생', '천석 고황'이 의미하는 바를 중심으로 삶의 태도를 정리해 보도록 지도한다.

풀이  :  번잡한 속세의 명리(名利)를 떠나 자연을 벗삼아 사는 삶

도우미

- 초야 우생 : 시골에 묻혀 사는 어리석은 사람
- 천석 고황 : 자연 속에 살고 싶은 절실한 마음

- 탐구 / 시조의 시대적 가치

시조는 고려 시대에 유교적 이념을 신봉하던 신흥 사대부들에 의해 지어지기 시작하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도 유교적 가치관은 물론, 남녀간의 사랑, 자연의 아름다움, 소박한 생활의 여유와 멋 등의 다양한 가치관을 다룬 작품들이 지어짐으로써 양반과 평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문학 갈래로 폭넓은 사랑을 받아왔다.

- 시조의 내용과 형식의 시대별 변천

시대

작가계층

내용

형식

고려시대

신흥사대부

유교적 이념

평시조

조선전기

양반사대부

유교적 이념, 강호한정

평시조

조선후기,

평민, 여류

남녀간의 사랑, 소박 생활의 여유와 멋

엇시조, 사설시조

현대

다양함

다양한 주제의식

다양한 형식

지도 방법  :  물론 무수히 많은 시조들을 항목화하여 개괄적으로 소개한다는 것 자체에 무리가 따르기는 하지만 반드시 각 시대별로 시조의 내용과 형식이 어떻게 변천해 왔는가를 개략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이러한 개략적 고찰은 시조가 비록 짧은 형식의 노래이지만, 우리 민족의 가치관을 담아 내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고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사랑받아 온 갈래였다는 점을 확인해 보는 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강호사시가'와 '도산십이곡'이 조선 전기 양반 사대부들의 가치관을 대표하는 작품이라는 점도 확인해 보도록 유도한다.

3. '강호사시가'에 드러난 유교적 가치관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파악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작품에 형상화된 가치관을 파악함으로써 문학의 가치 지향적 성격을 확인해 보는 활동이

                다. '삿갓'과 '누역'으로 표현된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보도록 지도하고,

                '역군은(亦君恩)'에 담겨 있는 가치관에 주목해 보도록 유도한다.

가치 이해

윤리적 가치=> 안빈낙도, 군신(君臣)간의 의리 (충의)

심미적 가치=> 눈앞에 떠오른 영상. 음악적 아름다움.

 

 이해와 감상

 우리 나라 최초의 연시조로, 이황의 '도산십이곡'과 이이의 '고산구곡가'에 영향을 준 작품으로 강호에서 자연을 즐기며 임금의 은혜를 생각하는 내용을 춘(春),하(夏),추(秋),동(冬) 4계절로 나누어 각 한 수씩 노래한 연시조로,우리 나라 연시조의 효시가 되는 작품이다.자연을 즐기며 살아가는 풍류 속에서도 임금의 은혜를 잊지 않는 유학자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우리 나라 강호 가도의 줄기를 이루고 있는 내용이며,이 '강호사시가'는 그 전형적인 작품의 하나라 할 것이다.

 

 이해와 감상1

 국문학사상 최초의 연시조로 알려져 잇는 이 작품은 작가가 만년에 벼슬을 내놓고 고향에 돌아가 한가한 세월을 보내며 자연을 즐기고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는 내용을 계절에 따라 한 수씩 노래한 작품이다. 각 수는 '江湖(강호)에 ∼이 드니'로 시작하여 '亦君恩(역군은)이샷다'로 끝을 맺고 있으며, 특히 종장 첫 구 둘째 음보에 작가의 생활이 집약되어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적 통일성은 자연의 변함 없는 조화와 임금의 끝없는 은혜를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다.

 1연에서는 강호에 봄이 찾아와 시냇가에서 싱싱한 물고기를 안주 삼아 탁주를 마시는 흥겹고 한가로운 풍류 생활을, 2연에서는 여름날 한가로운 초당에서 시원한 강 바람을 쐬며 지내는 유유자적한 생활을 노래하고 있다. 3연에서는 가을날 강에 배를 띄어 고기를 잡으며 즐기는 생활을, 4연에서는 눈 내린 겨울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강촌 생활을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즐기고 있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자연 속에서 안빈낙도(安貧樂道)하며 유유자적하는 선비의 생활을 읊은 강호가도(江湖歌道)를 수립한 작품으로, 강호에서 자연을 즐기면서도 항상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은 것은 조선 시대의 유교 사상, 충의 사상의 반영이라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조선조 사대부들의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으며, 이황의 '도산십이곡'과 이이의 '고산구곡가'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김윤식외 4인 공저 '문학교과서')

 

 심화 자료

맹사성(孟思誠)

 1360(공민왕 9)∼1438(세종 20).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신창(新昌). 자는 자명(自明)·성지(誠之), 호는 동포(東浦)·고불(古佛). 아버지는 고려 수문전제학(修文殿提學) 희도(希道)이며, 최영(崔瑩)의 손서(孫淚)이다. 온양 출신.

 1386년(우왕 12)에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춘추관검열(春秋館檢閱)이 되었다. 이어 전의시승(典儀寺丞)·기거랑(起居郎)·사인(舍人)·우헌납(右獻納) 등을 역임하고, 외직으로 수원판관이 되었다가 다시 내직으로 내사사인(內史舍人)이 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뒤 태조 때 예조의랑(禮曹議郎)이 된 이래, 정종 때 간의우산기상시(諫議右散騎常侍)·간의좌산기상시가 되었다. 태종 초에 좌사간의대부(左司諫議大夫)·동부대언(同副代言)·이조참의를 두루 역임하였다. 1407년(태종 7)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이 되어, 진표사(進表使)로 명나라에 가는 세자를 시종관(侍從官)으로서 수행하여 다녀왔다.

 1408년 사헌부대사헌이 되어 지평(持平) 박안신(朴安信)과 함께 평양군(平壤君) 조대림(趙大臨:太宗의 딸 慶貞公主의 夫君)을 왕에게 보고하지 않고 잡아다가 고문하였다. 이 일로 태종의 큰 노여움을 사 처형될 뻔했으나 영의정 성석린(成石璘)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하였다.

 1411년 다시 기용되어 판충주목사로 임명되었다. 그러자 예조에서 관습도감제조(慣習都監提調)인 그가 음률(音律)에 정통하므로 선왕(先王)의 음악을 복구하기 위하여 서울에 머물게 하여 바른 음악을 가르치도록 건의하였다. 그 이듬해에도 그가 풍해도도관찰사(淵海道都觀察使)에 임명되자, 영의정 하륜(河崙)이 음악에 밝은 그를 서울에 머물게 하여 악공(樂工)을 가르치도록 아뢰었다.

 1416년 이조참판에 이어 예조판서가 되었다. 이듬해 생원시에 시관(試官)이 되어 권채(權採) 등 100인을 뽑았으며, 왕이 친림한 문과 복시에 독권관(讀卷官)이 되었다. 그 해 노부(老父)의 병간호를 위해 사직을 원했으나 윤허되지 않고, 역마(驛馬)와 약을 하사받았다.

 이어 호조판서가 되어서도 고향의 노부를 위해 다시 사직을 원했다. 그러나 왕은 그를 충청도도관찰사로 삼아 노부를 봉양하게 하였다. 1418년 공조판서가 되어 또다시 노부의 병간호를 위해 사직하려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419년(세종 1) 이조판서와 예문관대제학이 되고, 이듬해에 다시 이조판서가 되었다. 1421년 의정부찬성사(議政府贊成事)를 역임하고 1427년에 우의정이 되었다. 그는 우의정 재임시에 ≪태종실록 太宗實錄≫ 편찬 감관사(監館事)로서 감수하였다.

 ≪태종실록≫의 편찬이 완료되자 세종이 한번 보고자 하였다. 그러자 그가 “왕이 실록을 보고 고치면 반드시 후세에 이를 본받게 되어 사관(史官)이 두려워서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것”이라 하고 반대하니 세종이 이에 따랐다.

 1432년 좌의정에 오르고 1435년 나이가 많아서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났다. 그러나 나라에 중요한 정사(政事)가 있으면 반드시 그에게 자문을 구하였다. 사람됨이 소탈하고 조용하며 엄하지 않았다. 비록 벼슬이 낮은 사람이 찾아와도 반드시 공복(公服)을 갖추고 대문 밖에 나아가 맞아들여 윗자리에 앉히고, 돌아갈 때에도 공손하게 배웅하여 손님이 말을 탄 뒤에야 들어왔다.

 효성이 지극하고 청백하여 살림살이를 일삼지 않고 식량은 늘 녹미(祿米:봉급으로 받은 쌀)로 하였다.

출입할 때에는 소(牛)타기를 좋아하여 보는 이들이 그가 재상인 줄을 알지 못하였다. 영의정 성석린은 선배로 서 그의 집 가까이에 살았는데, 매 번 그의 집을 오고 갈 때는 그 집 앞에서 말을 내려 지나갔다.

 그는 음악에 조예가 있어 스스로 악기를 만들어 즐겼다. 품성이 어질고 부드러웠으나,

조정의 중요한 정사를 논의할 때에는 과단성이 있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참고문헌≫ 太祖實錄, 太宗實錄, 世宗實錄, 國朝榜目, 海東名臣錄, 國朝名臣錄, 燃藜室記述, 海東雜錄, 大東奇聞.(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강호가도

  시가문학에서는 자연을 예찬하고 자연에 귀의하여 생활하는 것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사대부들이 창작하였다.

  이러한 특징적인 현상을 조윤제(趙潤濟)는 강호가도로 규정하면서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삶의 방식에서 그 형성 원인을 찾았다. 사화와 당쟁의 와중에서 벼슬길로 나서 자칫 거기에 휩쓸려 일신과 가문을 위기로 몰고 가기보다는 고향의 자연에 귀의하여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는 것이 보다 안전한 삶의 방식이었다. 이들에게는 사유지가 이미 확보되어 있었고, 향리에서도 토지나 명망을 기초로 한 독점적 지위가 가능하였기 때문에 경제적인 문제는 해결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연을 예찬하는 강호가도의 구현은 도학을 기반으로 한 그들의 문학관 ·세계관과도 합치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주로 영남출신의 문인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현보(李賢輔)를 꼽을 수 있다. 이현보는 영남사림으로서는 비교적 일찍 환로에 나서서 경상감사 ·형조참판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는데, 줄곧 자연으로 귀의할 것을 꿈꾸다가 마침내 귀향하여 그 기쁨을 《농암가(聾巖歌)》와 같은 시조로 노래하였다.

  그 후 이황(李滉)이 여러 편의 시조를 통하여 이현보가 표명한 자연에의 귀의를 이어갔고, 나아가 도학적인 이념과 교화 의도까지 노래에 포함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권호문(權好文)을 비롯한 퇴계 문하의 제자들에게 이어져 영남가단을 형성하였다. 그뿐 아니라 나이가 들어 벼슬을 사직한 치사한객(致仕閑客)이 그 유유자적한 심정을 자연에 담아 노래한 작품들도 강호가도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맹사성(孟思誠)의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가 대표적인데, 이 작품은 강호자연마저도 군주의 통치가 행해지는 공간으로 규정함으로써 세계와의 단절이 아닌 화합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현보의 《농암가》와는 차이가 있다.(출처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연시조(連時調)

 시조 형태의 하나로 '연형(連形) 시조'라고도 하며 한 제목 아래 두 수 이상이 엮어진 시조를 말한다.

 맹사성의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박인로(朴仁老)의 '입암가(立巖歌)',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 등이

 연시조에 속한다. 이 연시조는 현대에 와서 더욱 많아졌다.

                                                                           

도롱이

  짚, 띠 따위로 엮어 허리나 어깨에 걸쳐 두르는 비옷. 예전에 주로 농촌에서 일할 때 비가 오면 사용하던 것으

  로 안쪽은 엮고 겉은 줄거리로 드리워 끝이 너털너털하게 만든다. 비슷한 말로 녹사의, 발석, 사의가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으로 가자

  

시조의 발생: 일반적으로 고려 중엽에 발생하여, 고려 말에 완성되고, 조선시대에 유행한 시가 양식으로 본다.

                     또, 그것은 신라 향가에 분장체도 연시조의 형식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시조의 명칭: 본래는 시조를 단가(短歌)라 불러, 장가(長歌: 고려 가요, 경기체가 등)에 비해 짧은 형식의 노래

                     라는 뜻으로 호칭되었다. 시조란‘ 시절의 노래’, 즉 시절 가조(時節歌調)의 약칭으로서

                     시절가(時節歌), 신조(新調), 시조(時調)라고도 하였다.


시조의 형식: ‘3장 6구 45자 내외’, ‘4 음보’. 각 구의 자 수가 약간씩 넘나드는 것은 무방하나 종정 처리에서만

                     은  종장 제 1 구의 3 자를 어기지 않는 것이 정도(正道)이며, 종장 제 2 구는 5 자 이상을 확보할

                     때 시조의 율격이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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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 이 황 -

       

 [현대어 풀이]

[1]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떻겠는가?  / 시골에만 묻혀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이 이렇게 산다고 해서 어떠

      하리오.  / 하물며 자연을 끔찍히도 사랑하는 이 병을 고쳐서 무엇하겠는가?

[2] 안개와 노을로 집을 삼고 풍월로 벗을 삼아  / 태평성대에 병으로 늙어 가네  / 이러한 가운데 바라는 일은

      허물이나 없고자 한다.

[3] 순풍(순박하고 좋은 풍속)이 죽었다 하는 말이 진실로 거짓말이로구나  / 사람의 성품이 어질다 하는 말이

       진실로 옳은 말이로구나  / 천하에 허다한 영재를 속여서 말씀할까.

[4] 그윽한 향기의 난초가 골짜기에 피어 있으니 자연히 좋구나.  / 백운이 산에 걸려 있으니 자연히 보기가

       좋구나.  / 이러한 가운데에서 저 한 아름다운 분(임금)을 더욱 잊지 못하는구나.

[5] 산 앞에 대(臺)가 있고 대 아래에 물이 흐르는구나.  / 떼를 지어서 갈매기들은 오락가락 하는데 / 어찌하

      여 새하얀 망아지는 멀리 마음을 두는가.

[6] 봄바람에 꽃이 산을 뒤덮고 가을 밤에 달은 누각에 가득차는구나.  / 네계절의 아름다운 흥이 사람과 마찬

      가지라  /하물며 천지조화의 오묘함이야 어느 끝이 있을까.

[7] 천운대를 돌아서 완락재가 맑고 깨끗한데  / 많은 책을 읽는 인생으로 즐거운 일이 끝이 없구나.  

       / 이 중에 오고가는 풍류를 말해 무엇할까.

[8] 벼락이 산을 깨쳐도 귀먹은 자는 못 듣나니  / 태양이 하늘 한가운데 떠 있어도 장님은 보지 못하나니 

       / 우리는 눈도 밝고 귀도 밝은 남자로서 귀먹은자와 장님같지는 말아라(학문을 닦아 도를 깨우치며 살

       자).

[9] 옛 훌륭한 어른이 지금의 나를 못 보고 나도 고인을 뵙지 못하네  / 고인을 뵙지 못해도 그분들이 행하시

      던 길이 앞에 놓여 있으니,  / 그 가던 길(진리의 길)이 앞에 있으니 나 또한 아니 가고 어떻게 하겠는가?

[10] 그 당시에 학문에 뜻을 두고 실천하던 길을 몇 해나 버려두고  / 어디에 가서 다니다가 이제야 돌아왔는

        가?  / 이제라도 돌아왔으니 다른 곳에 마음을 두지 않으리라.

[11] 청산은 어찌하여 항상 푸르며,  / 흐르는 물은 어찌하여 밤낮으로 그칠 줄을 모르는가  / 우리도 그치지

        말아서 오래도록 높고 푸르게 살아가리라.

[12] 어리석은 사람도 알며 실천하는데,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겠는가?  /  (그러나)성인도 못 다 행하니,

        그것이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 쉽거나 어렵거나간에 (학문 수양의 생활 속에서) 늙어가는 줄

        을 모르노라.

 

* 초야우생 → 시골에 묻혀 사는 어리석은 사람(겸손의 표현)

* 천석고황 → 세속에 물들지 않고 자연에 묻혀 지내고 싶은 마음의 고질병

* 순풍 → 예부터 내려오는 순박한 풍속.  특히 뒷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도의나 윤리를 가리킴

* 교교백구 → 현인이나 성자가 타는 새하얀 망아지

* 머리 마음하는고? → 멀리 마음을 두는가?  멀리 가려고만 하는가? 

                              여기를 버리고 딴 데 뜻을 지니는 것을 경계하는 의미를 지님.

* 어약연비 → '고기는 뛰고 솔개는 난다'는 말로 <시경>에 나오는 말. 천지 조화의 묘함을 이름.

* 운영천광 → 구름의 그림자와 밝은 햇빛.  만물의 천성을 얻어 조화를 이룬 상태

* 소쇄한데 → 기운이 맑고 깨끗함.

* 만권생애 → 만 권이나 되는 많은 서적을 쌓아 두고 그것을 읽고 연구하는 데 한평생을 바치는 일

* 이목총명 → 눈도 밝고 귀도 밝음.  여기서는 학문을 닦아 도를 깨달은 상태를 의미함.

 [창작 배경]

 퇴계 이황이 관직에서 물러나, 안동에 도산서원을 건립하고 후진을 교육하여 양성시키고 있을 때,

 1565년(명종 20년)에 지은 작품이다.  

 [이해와 감상]

12수로 이루어진 연시조로 이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때를 만나고 사물에 접하여 일어나는 감흥을 읊은 전 6수는 "언지(言志)"이고,

학문과 수덕(修德)의자세를 노래한 후 6수는 "언학(言學)"이다. 

전후 각 6수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도산 전후 육곡' 또는 '도산 육곡'이라고도 불리는데,

지은이의 친필로 된 목판본이 도산서원에 전해진다.

[1]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천석고황)

      아름다운 자연에 순응하면서 순리대로 살아가려는 마음을 노래함

[2] 자연에의 동화

      아름다운 자연을 벗하여 살며 태평성대 속에 병으로 늙어 가는 작자의 모습, 이는 마치 한 폭의 동양화 속

      의 신선과 같은 모습으로 연상된다. 사실 이 병(病)은 이 작품이 작자의 만년(晩年)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노병(老病)으로 풀이할 수도 있겠으나 초장에서의 천석 고황(泉石膏 )의 상태나 앞 시조로 미루어 보아

      자연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병으로 해석을 하고 보면, 이 작품의 내용과 분위기가 더더욱 운치

      가 있을 것이다.

[3]후덕하고 순박한 풍습 강조

      순자의 성악설을 반대하고 맹자의 성선설을 지지하는 성리학적 입장이 나타나 있다. 또한 세상의 많은

      영재들에게 성선설의 옳음을 말하며, 순박하고 후덕한 풍습을 강조하고 있다.

[4]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연군지정)

     벼슬 자리를 떠나 자연에 흠뻑 빠져 지내면서도 임금을 잊지 못해 그리워하는 정을 노래함.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난초와 흰 구름은 인간의 영욕 성쇠(榮辱盛衰)로 점철이 된 속세와는 무관한 것들로

     탈속(脫俗)한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는 비유어들이다

[5]자연을 멀리하는 현실 개탄

     산 앞에는 낚시터가 있고 대 아래에는 맑은 물이 있으며 여기에 또한 갈매기들까지 내 벗이 되어 오락가락

     하는 이 좋은 곳을 놓아 두고 왜 먼지 낀 속세만을 그리워하고 갈망하는가 하고 세속인들을 나무라고 있다.

     '교교 백구(皎皎白駒)'는 본래 '현자(賢者)가 타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현자의 뜻으로 새기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결국 종장에서는 글이나 좀 읽고 수양을 쌓았다는 자들이 입신 양명에만 눈이 어두워 아름다운 자연

     을 등지는 안타까운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6]대자연의 웅대함, 오묘함 예찬

     초장에서 꽃피는 봄, 달뜨는 저녁의 경치를, 그리고 종장에서는 물 속의 고기떼와 하늘의 소리개,

     구름이 흐르고 해가 비치는 대자연의 모습을 그려서 한없이 아름답고 끝없이 흥겨운 대자연의 조화를

     무척 로맨틱하게 얘기하고 있다. 한마디로 대자연의 웅대함에 완전히 도취된 작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7]독서하는 즐거움

     일생을 학문의 연구에만 전념한 석학(碩學)인 작자가 독서 면학(勉學)의 즐거움과 그 여가에 산책하는

     여유 있는 생활을 그린 작품이다.

[8]진리 터득의 중요성

     여기서 '우뢰'나 '해'는 '진리', 곧 도(道)를 지칭하고 '귀머거리'와 '소경'은 '진리'를 터득하지 못한 자,

     곧 '속세의 일에만 연연하여 인간의 참된 도리를 망각한 자'를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진리를 깨닫지 못하

   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경계하며 반드시 '진리의 길'을 걸어야하는 인간의 참된 도리를 밝히고 있다.

[9]옛 성현의 도리를 본받고자 함

     옛 성현들의 인륜지도(人倫之道)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니, 우리도 그 길을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는 것을 대구법과 연쇄법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10]학문 수양에 대한 새로운 다짐

      퇴계가 23세 때 등과하여 치사 귀향(致仕歸鄕)한 것은 69세 때였다.

      젊을 때 학문에 뜻을 두었다가 수양의 정도(正道)를 버리고 벼슬을 지낸 자신을 후회하면서,

      이제 깨달음을 가졌으니 늦지 않게 학문 수양에 힘쓰리라는 다짐을 하고 있다.

[11]학문 정진에의 의지

     청산과 유수라는 자연의 영원 불변성을 소재로 하여, 그러한 자연을 닮아 변치 않는 지조와 인품으로 살아

     가겠다는 다짐과 아울러 교훈적인 의미를 전하고 있다. 정신적인 학문 수양을 꾸준히 그침없이 나아가

     한결같은 마음으로 '만고상청'하는 우리의 삶을 이루어 보자는 내용이다.

[12]학문에의 영원한 정진

     학문에 뜻을 둔다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도 쉽게 알며 행하려고 하지만, 막상 그 실천의 과정에서는 성인이

     라도 끝없는 학문의 길을 못 다 이룬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학문 수양의 길이 쉽든 어렵든 간에 실천해 나

     가고 있는 중에는, 몰입하고 있는 자신이 세월이 흘러 늙어가는 것 또한 모를 정도라고 하면서 영원한 학문

     수양의 길을 강조하고 있다.

 [정 리]

▷성격 : 연시조(12수), 교훈가

▷구성 및 주제

     前(1 ∼ 6) : 언지(言志).  자연에 대한 감흥

     後(7∼12) : 언학(言學).  학문 수양의 자세

▷주제 :

 [참고]

※ 도산십이곡 발(跋)

[우리 동방의 가곡(歌曲)이 무릇 음란한 노래가 많아서 이야기할 만하지도 못하다.

<한림별곡>같은 것들은 문인의 입에서 나왔지만 으스대며 마음대로 하고, 게다가 외람되고 버릇없이 하니

더욱 군자가 마땅히 높일 바가 아니다. 오직 근세의 이별(李鼈)의 <육가(六歌)>가 세상에 널리 전해지고 있는

바이라 오히려 그것이 이것보다 나은 바 되나, 또한 안타깝게도 그것에 세상을 놀려 대며 삼가지 아니하는 뜻

이 있고, 따사롭고 부드러우며 도탑고 두터운 탐스러움이 적으니라. (……)

그러므로 일찍이 대략 이 별의 <육가>를 본떠서 <도산 육곡> 둘을 지으니 하나는 언지(言志)이고 하나는

언학(言學)이다. 아이들로 하여금 아침 저녁으로 익혀서 부르게 하고, 궤석에 비기어 듣는다.

또한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노래부르고 스스로 춤추며 뛰게 해서 비루한 마음을 거의 다 씻어 버리고, 느낌

이 일어나 마음이 녹아 서로 통하게 한다. 노래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서로 유익함이 없을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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