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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칼럼거리 찾아다니는 어부/ 조용헌 살롱 500회 돌파 인터뷰

수로보니게 여인 2008. 3. 3. 12:31
  • "나는 칼럼거리 찾아다니는 어부"
  • 조용헌 살롱 500회 돌파 인터뷰 
        "숭례문 현판 떨어졌으니 예가 땅에 떨어졌고, 
    대문이 불탔으니 글로벌한 사회가 될 것"
  •  매일 아침 활어를 내놓는 어부의 심정으로 글 써
  • 박해현 기자 hhpark@chosun.com  2008.03.03 00:13 / 수정 : 2008.03.03 06:49
    • 조선일보의 인기 연재물 '조용헌살롱'이 지난주 연재 500회를 돌파했다.

      "2004년 9월 처음 시작했을 때는 한 100회 쓰고 끝날 줄 알았는데 여기까지 왔다"는 동양학자 조용헌(47)씨는 전국 방방곡곡에 숨은 우리시대의 '강호제현'(江湖諸賢)을 만나고 산하의 풍수를 음미하면서 연재 원고를 쓴다. "운전이 무관심한 분야라 면허를 안 땄다"는 그다. 그러나 직접 발품을 팔기 때문에 "내 글은 설탕물이 아니라 벌의 몸에서 나오는 꿀과 같다"고 자신 있게 내세운다.

      숭례문 화재 사건으로 시작한 올해의 나라 운세를 물었다. 그는 "숭례문 현판이 떨어졌으니, 예(禮)가 땅에 떨어졌다"면서, "(걱정스러운 쪽으로는) 유교식 삼강오륜이 몰락하고 약육강식의 자본주의가 강화될 것이지만, (다행스러운 쪽으로는) 대문이 불탔으니 글로벌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대의 패러다임 변화와 관련, 조씨는 "화(火)의 시대가 가고 환경·영성(靈性)·여성을 뜻하는 수(水)의 시대가 왔다. 대운하 건설은 할 만하겠다. 다만 치수(治水)를 위해서 조령(鳥嶺)을 뚫는 것은 위험하다"고 신중한 입장을 내놓았다.
    •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과 일본 등 한자문화권으로 집필 대상을 넓히고 싶다”고 밝힌 동양학자 조용헌씨. /전기병 기자 giboing@chosun.com
    • "내 칼럼의 주독자층은 40~50대"라고 한 그는 "산에 가서 바위에 앉아 인생얘기나 해보자는 남성 독자들을 만나보니, 고도 성장 사회에 나름대로 성취를 이뤘지만 인생이 '허' 하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칼럼 집필의 3대 원칙 중 첫째로 '독자를 안심시키자'로 정했다.

      그는 "인생이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하는 중·장년 독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사주, 풍수, 관상에 담긴 전통의 지혜를 풀어서 소개한다"고 말하고, "전통의 지혜가 너무 '기복'(祈福)으로만 가면 문제가 있지만, 삶의 지혜로 참고하면 유익함이 있다"고 강조했다. 독자가 '맹신'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약간 웃음기 섞인 '재미'와 현실적인 '정보'가 나머지 집필 원칙이다.

      새 정부의 인사정책이 영남 편향이라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이건 인과사관(因果史觀)으로 풀어야 한다. 영남은 인조반정 이후 300년 동안 다른 지역에 밀려 벼슬에 한이 맺혔다가 박정희에서 김영삼 정부 동안 잠시 숨이 트였다.
      여전히 집단 콤플렉스가 있다. 이제 화합의 차원에서 대승적으로 했으면 좋겠다."

      지난 주 500회 칼럼을 쓴 소감을 물었다. "처음엔 밤안개처럼 실체도 없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쥐여 짜이는 치약과 같았다. 좀 지나니까 조각배 타고 칼럼거리 찾아다니는 어부가 됐다. 그런데 냉동창고에 보관했던 고기가 아니라 매일 아침 활어를 입맛 까다로운 독자들 앞에 내놓아야 하니 힘들다. 궁극적으로
      내 바람은 글쓰기가 놀이가 되는 '농필(弄筆)'의 경지까지 가는 것인데, 아직 내공이 부족하다."

      직접 만나자고 성화인 독자들에게 드릴 부탁의 말씀도 있다. "이메일로 문의하시면 제가 다 답변을 해드린다"고 한 그는 "저는 관상을 보지도, 진맥을 잡지도 않으니 제발 저에게 그런 부탁 하지 마시라"고 말했다.
    • 500회를 돌파한 조선일보 "조용헌살롱"의 필자 조용헌씨가 자신이 글을 쓰는데 가장주안점을 두는 세가지를 말합니다. /전기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