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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따르라/ 2022년 2월 20일 주일예배(1부)

수로보니게 여인 2022. 2. 20. 09:19

https://youtu.be/BPvF71XVN9w

예수를 따르라/ 손인규 목사님
날짜 : 2022년 2월 20일 주일예배
말씀 : 손인규 목사 
본문 : 마태복음 4장 18-20절
제목 : 예수를 따르라

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한 가지 어느 누구보다 단순한 삶이셨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따라 순종하여 이 땅에 오셨고 광야의 시험도 받으셨고 또 순종해서 십자가도 감당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사셨던 예수님을 높이셨다고 하신다.
 
그러므로 빌 29-10,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잇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라고 하신다.
 
모든 존재가 다 예수님 앞에 굴복하도록 높이셨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서 낮아지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높이신 것이다. 이것이 영적인 원리요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인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셨다고 손해 본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셨다고 말씀하신다. 지금도 하나님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 뜻에 따라 자신이 낮아지는 그 사람을 하나님은 높여주신다. 말씀을 들을 때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더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을 믿고 기대하자.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의미 없는 일도 우연히 일어나는 일도 없다.
 
본문은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의 과정을 말씀하신다. 광야의 시험을 통과신후 가버나움에서 사역을 시작하실 때 가장 먼저 하신 일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선포하시며 사역이 시작 된 것이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따라서 천국이라고 표현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시며 동시에 제자를 부르신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제자를 의미한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 어디든 제자들이 함께 했다.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훈련하시는 목적도 있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예수님이 강조하시는 것을 강조하고, 예수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셨으면 제자로 부름 받은 우리도 하나님나라를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행하신 그 일을 우리도 할 수 있음을 믿고 우리를 통하여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를 힘써야 한다.
 
교회 역사를 돌이켜보면 시대마다 어두울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영적인 각성과 부흥의 역사를 행하셨다. 그러나 부흥의 역사가 그냥 우연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부흥을 위해 준비되고 훈련된 하나님의 사람들, 훈련된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먼저 준비하신다. 그들을 통하여 부흥이 일어난다. 또 일어난다 해도 그 부흥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훈련된 사람들, 영적인 훈련과 양육할 수 있는 일꾼들과 조직이 있을 때 그 부흥은 조금 더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하나님의 역사에 놀라운 은혜와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고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 받고 인생이 변화되는 일이 일어나도 영적인 훈련이 빠지면 그 은혜가 오래가지 않는다.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는 환경, 건강한 가정을 만들어 아이를 잘 양육하는 것은 태어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이처럼 교회 사역에 있어서도 전도는 중요하다. 그러나 전도를 받아 믿음이 시작 되었을 때 누구를 만나느냐 어떤 전도를 받아도 어떤 전도자를 만나느냐 어떤 공동체를 만나느냐는 전도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한 번 은혜 받은 것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믿음을 지키고 영적인 싸움을 해서 마지막까지, 끝까지 이겨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의 훈련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를 훈련 받는 신앙을 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하나님 안에서 훈련 받는 믿음 생활하도록 불러주신 것이 은혜이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어떻게 제자를 부르셨는가? 의 첫 단계이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 자신이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 하나님 앞에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또한 주님이 불러주신 교회가 끝까지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를 세우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1. 제자들을 부르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는 것으로 사역을 시작하신다.
그런데 제자들을 삼을 때 그 시대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사람들이 볼 때 뭔가 있어보이는 사람들을 모집하지 않으신 것이다.
 
1) 두 사람을 보심
갈릴리로 가셔서 두 사람을 보신다. 그냥 우연히 보신 것이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주의 깊게 보셨다.
두 사람 시몬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를 사랑과 긍휼로 바라보신 것이다.
 
104,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목자 예수님은 그들을 아셨다(보셨다). 양이 목자를 아는 것처럼 예수님은 베드로와 안드레를 아신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던 때이다. 예수님과 아무 상관도 없이 여기던 때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과거를 다 아시고,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현재를 아시고,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어떤 인생으로 변화될지 다 알고 계시는 것이다. 그들이 어부로 태어나 갈릴리 바다에서 날마다 파도와 싸우면서 고기 잡고 날마다 밤을 새며 수고하고 땀 흘리고 등, 그들의 고단한 인생을 예수님은 다 아신 것이다. 소망 없이 하루하룰 살아가면서 스스로 인생의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그 문제를 벗어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알고 계신다. 그들의 문제를 알고 계시고 어떻게 하면 새 인생이 될 수 있는지 예수님은 아시고 보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모르시는데 우리를 불러주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살면서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나의 속마음을 깊이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음을 생각하게 된다. 부모가 자녀를, 부모가 자녀를, 부부도 서로를 이해하고 헤아리기는 어렵다. 그 뿐 아니라 자기도 자신을 모른다. 알 것 같은데 인생을 살면 살수록 자신을(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즉 내 문제가 무엇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신을 이해하기 어렵기도 한 것은 내 안에 두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믿음생활하고 은혜 받고 살고 싶은데 원하는 대로 잘 안 되는 또 다른 마음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을 하면서도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나보다 오래전부터 잘 알고 계시는 분 예수님이시다.
세상에서는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 뭔가 있어 보이는 사람을 주목한다. 남보다 잘하고 뛰어나야 주목을 받는다. 경쟁에서 이기고 성공해야만 사람들도 우러러보고 대우가 달라진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갈릴리의 두 어부를 아시고 보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믿기 전 오래전부터 나를 알고 계신다.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될지, 내 인생의 최대 만족과 가치가 무엇인지,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만 열정이 있고 인생의 의미가 있고 살아있는 것 같은 인생을 살 수 있는지 하나님은 우리를 알고 계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이 나를 아시고 찾아오신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나를 아시고 불꽃같은 눈동자로 살피시고 나를 다 아시는 그 분이 나를 싫어하지 않고 버려두지 않으시고 내 삶에 먼저 찾아와 주신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귀한 은혜인가. 그 은혜를 날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기뻐하고 기뻐해도 부족하다.
먼저 믿겠다고 노력한 것이 아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으려고 철학을 공부해서도 아니다. 예수님을 만나려고 기도원을 찾아다니는 노력을 했다 할지라도 그로 인해 믿게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전부터 알고 계셨고 나를 다 보고 계셨고, 그때 그 시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 장소에 가서 말씀을 듣고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은혜를 주신 것이다. 예수님이 만나주셔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시몬과 안드레를 아시고 찾아오신 예수님이 요한과 야고보를 예수님이 부르시는 내용도 이와 같다.
 
나를 위해서 하늘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다른 사람을 찾지 않고 아무도 몰라주고 관심 갖지 않는, 나도 내 인생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그때에 예수님은 나를 귀히 여기셔서 나를 아시고 바라보시고 불러주셨다.
내가 할 일은 간단하다.
나를 찾아오셔서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실 때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환영하고 영접하여 주님을 따라가자.
 
2) 말씀으로 부르심
 
먼저 보셨고 말씀으로 부르신다.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약속하시고 명령하신다. 제자들과 흥정하지도 계약하지도 않으신다.
제자들도 이 말씀 앞에 나를 언제 봤다고 부르는지 따지지 않는다. 따라가면 책임지실건지도 묻지 않는다. 이 말씀은 설득이 아니다. 내 인생 전체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요 놀라운 인생의 변화를 위해서 초청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믿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남을 위해서 신앙하는 것이 아니다. 남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아니고 남을 위해서 수고하는 것도 아니다. 남을 위해서 예수를 믿을 필요가 없다. 예수님은 나를 따라와라 협상하거나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과 함께하고 따르는 것이 인생에 다른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귀한 보물이고 축복인데 무슨 의미가 필요하겠는가. 불러주면 예수그리스도를 따를까말까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고민하는 것뿐이다. 말씀을 들을 때 순종할까 말까 고민하고 생각할 여지가 필요치 않은 것이다. 말씀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고민하겠으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할 때 무슨 고민할 것이 있겠는가. 지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가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초청하시는데 무슨 고민할 이유야 있겠는가. 무지하고 알지 못하여 고민하는 것이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사람에게 주목 받고 영광을 받으실 때는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하고 싶어 했다. 그들이 종교인들의 선동에 넘어가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때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며 예수님께 등을 돌린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아무 조건이 없다.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시던지 십자가를 지실 때도 그 때 내가 예수님과 함께 가는 것이다. 그때 내가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시는 그곳에 함께하기를 원한다는 믿음의 고백을 하고 기도가 되어야 한다.

하루 내가 잘 되는 인생이 아니라 오늘도 주님이 있는 그곳에 주님이 가시는 그곳에 나도 가기를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이 계획대로 잘 되고 큰 어려움이 없을 때는 예수님을 잘 따라가고 있는지 모른다. 사건이 있고 십자가라는 고난이 있을 때 어디에 있는지 예수님을 바로 따르고 있는지 드러난다. 그냥 유행을 따라 예수를 보려고 군중의 신앙을 하는지, 예수님을 이용하려고 따르는지 기회가 오면 예수를 팔고 배반하려고 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정말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해서 따라 가는 것인지 아니면 나를 따라가는 것인지 사건을 통해서 드러난다. 따른다고 해도 믿음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면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 장소에 상관없이 가는 것이다. 모든 것에 예수님과 함께하는 자가 예수님의 증인이요 예수의 제자이다. 매일 내 뜻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지혜를 구해야 한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지 지혜를 구해야 하는 이유는 본능적으로 내가 편한 것과 따라 나의 익숙함을 따라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육체의 소욕을 거절하고 불편하고 낯설고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예수님의 원하시는 것을 묻고 따라가야 한다. 나를 따르라는 말씀에는 권위가 있고 권세가 있다. 말씀으로 온 천지를 창조하신 것처럼, 나를 따르라는 말씀 안에 우리를 제자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말씀을 들을 때 부담이 아니라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겠다고 말씀하신다. 믿고 따라가는 것은 주님과 하나로 연합되는 것이다.
내 인생이 따로 있고 예수 믿는 것이 따로 있는, 내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의 원하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나를 따르라고 하며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는 약속을 하신다. 저들은 지금까지 고기를 잡아먹고 살며 가족을 부양하며 먹고 살기 위한 인생을 살았다. 벗어날 수 있는 능력도 없으니 자신들의 삶을 운명처럼 여기며 그렇게 그냥 살아왔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 하신다. 말씀을 먹고 영적인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 속한 육체는 영원하지 않다.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나를 위해 육체를 위하여 어부로 살다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는 말씀으로 나를 따라오라고 하신다 이 말씀을 아멘으로 취하여 천국의 그물을 던져 세상 가운데서 죄에 빠져 멸망당할 영혼을 구원해내는 삶, 수많은 사람들을 건져내는 새 인생을 살라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부르심을 기억하자. 내가 어떤 직업을 가졌든 어떤 재능을 가졌든 어떤 형편과 상황에 있든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 나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불러주신 것을 믿고 받아드려 살 때 우리 인생을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 나아가자.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하늘 영광을 버리고 오셔서 하신 일은 나와 같이 볼품없는 한 사람, 죄와 상처로 얼룩진 한 사람을 찾아 말씀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에 이 말씀을 믿고 반응해서 따라가는 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 다른 사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군중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디로 몰려가는지 분별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온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새로운 기술을 발명하고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니다. 죄인인 한 영혼을 바라보시고 변화시켜 따르도록 불러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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