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³οο국어 바루기

영글다와 여물다

수로보니게 여인 2018. 11. 2. 13:10

쉬어 가는우리말

우리말 탐구

       

곡식은 영글기도 하고  여물기도 한다.


  봄철 이상 저온과 여름철 폭염으로 농부들의 한숨이 잦았던 한 해였지만, 깊어 가는 가을 속 오곡백과는 그간의 고생을 씻어 주듯 알알이 여물어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수확의 계절 가을에는 ‘과실이나 곡식 따위가 알이 들어 딴딴하게 잘 익다’를 뜻하는 ‘여물다’와 ‘영글다’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영글다’와 ‘여물다’는 옛말 ‘염글다’와 ‘여믈다’에 어원을 두고 있어, 어원적으로도 근거가 있으며 현실적으로도 널리 쓰여 모두 표준어로 인정받고 있다. 한때 ‘영글다’가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했던 탓에 간혹 ‘영글다’를 ‘여물다’의 잘못된 표현으로 알고 있는 이도 있지만, ‘여물다’와 ‘영글다’는 복수 표준어다. 그래서 곡식이나 과실이 잘 익었다는 뜻으로 사용할 때는 둘 중 어느 것을 써도 상관없다. ‘알차게 여문 벼’, ‘밤톨이 탐스럽게 여물었다.’는 ‘알차게 영근 벼’, ‘밤톨이 탐스럽게 영글었다.’라고 바꿔 써도 그 뜻이 같다.



  단, ‘여물다’가 ‘과실이나 곡식이 익다’가 아닌 다른 뜻으로 사용될 때는 ‘영글다’로 바꿔 쓸 수 없다. ‘여물다’는 ‘일이나 말 따위를 매듭지어 끝마치다’, ‘일 처리나 언행이 옹골차고 여무지다’ 등의 뜻도 있어, ‘감격에 겨워 말을 여물지 못했다.’, ‘일처리를 여물게 했다.’와 같이 쓰이기도 하지만, 이때에는 그 뜻이 달라 ‘영글다’를 대신 쓸 수 없다.
  ‘멍게’도 ‘영글다’처럼 비표준어였지만, 사람들에게 널리 쓰여 표준어가 되었다. 원래 ‘멍게’는 경상도 지역에서 쓰던 방언이며, ‘멍게’에 해당하는 표준어는 ‘우렁쉥이’였다. 그러나 ‘멍게’가 더 널리 쓰이게 됨에 따라 ‘멍게'도 표준어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방언이던 단어가 표준어보다 더 널리 쓰이게 된 것은, 그것을 표준어로 삼는다. 이 경우, 원래의 표준어는 그대로 표준어로 남겨 두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라는 표준어 규정 제23항에 따라 ‘우렁쉥이’와 ‘멍게’는 복수 표준어이다. 현재 ‘멍게’는 생활 용어로 널리 쓰이고 있으며, 조금 낯선 표준어 ‘우렁쉥이’는 주로 학술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비표준어를 기존 표준어와 함께 복수 표준어로 허용한 예는 또 있다. 예전에는 ‘출렁거리다/출렁대다’의 ‘-거리다/-대다’가 모두 널리 쓰임에도 불구하고 ‘-거리다’만을 표준어로 삼았지만, 지금은 모두 복수 표준어로 인정받고 있다. ‘무너뜨리다/무너트리다’의 ‘-뜨리다/-트리다’도 ‘-거리다/-대다’와 마찬가지로 둘 다 널리 쓰여 복수 표준어가 되었다.
  ‘가엾다/가엽다’는 활용형에서 ‘아이, 가엾어라.’와 ‘아이, 가여워.’가 다 쓰여 복수 표준어로 삼았다. ‘서럽다/섧다’나 ‘여쭙다/여쭈다’도 같은 이유로 복수 표준어로 인정되어 ‘서럽게 운다.’와 ‘섧게 운다.’, ‘여쭈워 보아라.’와 ‘여쭈어 보아라.’를 모두 쓸 수 있다.
  이처럼 방언이나 비표준어를 기존 표준어와 함께 복수 표준어로 허용한 것은 국어의 폭을 넓히고, 생활 속에 쓰는 언어와 사전 속 언어의 차이를 좁혀 표준어가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럽게 결정된다는 관념을 없애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