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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문학의 이해

수로보니게 여인 2017. 10. 6. 01:38

1강 한국한문학이란 무엇인가?

우리 민족 최초의 기록문학인 한국한문학은 역사적, 문학사적, 자료적 가치 등의 측면에서 가장 중요하며, 가장 방대한 자료로 구성되어 있다.


漢字

하나의 글자에 음과 뜻을 모두 가지고 있는 문자로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면서 동아시아 공통의 표기 수단이었던 글자.


鄕札

한자의 訓과 音을 사용하여 우리말을 표기하던 수단, 향가가 향찰로 표기되어 있다.


國學

682년(신문왕 2)에 설치하였다. 당시에는 국학이라 했다가 경덕왕 때 태학감(太學監)이라 했고, 혜공왕 때 다시 국학으로 고쳐 불렀다. 예부(禮部)에 속하였다. 이 국학은 고려, 조선시대까지 지속되었다.


四六騈儷文

중국 六朝 시대에서 당나라에 이르기까지 유행한 한문문체의 하나.
주로 4자와 6자의 句를기본으로하여 對句를 쓰며, 典故를 교묘하게 배열하는 화려한 문체를 이른다.


東文選

1478년(성종 9) 성종의 명으로 徐居正 등이 중심이 되어 편찬한 우리나라 역대 시문선집.
당시 대제학이던 서거정이 중심이 되어 盧思愼 · 姜希孟 · 梁誠之 등을 포함한 纂集官 23인이 작업에 참여하였다.


우리 민족 최초의 기록문학인 한국한문학은 역사적, 문학사적, 자료적 가치 등의 측면에서 가장 중요하며, 가장 방대한 자료로 구성되어 있다.

전국 한문학 연구 인력의 절반 정도가 몰려 있는 지역은 어디인가?(영남지역)
안동을 중심으로 하는 경상 북부지역은 안동, 예천, 영양, 영주 등을 중심으로 하여 안동문화권역으로 묶어
한문학에 대한 연구가 매우 활발한 지역이다.


한문학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것 중 산문과 운문이 공존하는 성격을 지닌 것은 무엇이라고 하는가?( 詞賦)
사부는 노래와 시와 산문이 혼재된 형태의 문학이다. 詞는 노래이면서 시이기 때문에 韻이 달리는 형태이고, 賦는 작자의 생각이나 눈앞의 경치 같은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는 것으로 諷諭에 목적을 둔다. 산문과 운문이 병행해서 존립할 수 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한문학의 문체 중에서 한 사람의 평생의 행적을 기록한 것은 무엇이라고 하는가?(行狀)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사람이 살았던 평생에 대해 중요한 것들을 중심으로 서술하여 기록한 글을 말한다.
한문학 문체의 하나이다.



2강 한국한문학의 원류로서의 중국 고전

四庫全書

1773년 (건륭 38년) 중국 청나라 건륭제의 명으로 1781년 (건륭 46년)에 편찬 및 완성된 중국 최대의 총서이다.
전 3,503부 79,337권에 달한다.

1773년 (건륭 38년) 중국 청나라 건륭제의 명으로 1781년 (건륭 46년)에 편찬 및 완성된 중국 최대의 총서이다.
전 3,503부 79,337권에 달한다.
四書
유교의 네 가지 기본 경전인 "大學" · "論語" · "孟子" · "中庸" 을 총칭하는 말이다.
'四子書' 라고도 하며, 단순히 '學庸論孟' 이라고도 하는데 五經에 상대되는 말이다.
유교의 네 가지 기본 경전인 "大學" · "論語" · "孟子" · "中庸" 을 총칭하는 말이다.
'四子書' 라고도 하며, 단순히 '學庸論孟' 이라고도 하는데 五經에 상대되는 말이다.
五經
유교의 다섯 가지 기본 경전. 일반적으로 "易經" · "書經" · "詩經" · "禮記" · "春秋"를 이른다.
그러나 班固의 "白虎通義" 에서는 "춘추" 대신 "春秋公羊傳" 을 넣기도 하였으며,
宋代 王應麟의 "小學紺珠" '藝文類' 에서는 "주역" · "서경" · "毛詩)" · "예기" · "春秋左氏傳"을 오경이라고 하였다.
유교의 다섯 가지 기본 경전. 일반적으로 "易經" · "書經" · "詩經" · "禮記" · "春秋"를 이른다.
그러나 班固의 "白虎通義" 에서는 "춘추" 대신 "春秋公羊傳" 을 넣기도 하였으며,
宋代 王應麟의 "小學紺珠" '藝文類' 에서는 "주역" · "서경" · "毛詩)" · "예기" · "春秋左氏傳"을 오경이라고 하였다.

紀傳體
역사를 군주의 정치관련 기사인 본기(本紀)와 신하들의 개인 전기인 列傳, 통치제도·문물·경제·자연 현상 등을 내용별로 분류해 쓴 志와 年表 등으로 기록하는 편찬 체재. 역사 기록을 연·월·일순으로 정리하는 편년체와 사건의 시말을 기록하는 방식인 기사본말체와 더불어 역사 서술방식을 지칭하는 3체의 하나이다.
역사를 군주의 정치관련 기사인 본기(本紀)와 신하들의 개인 전기인 列傳, 통치제도·문물·경제·자연 현상 등을 내용별로 분류해 쓴 志와 年表 등으로 기록하는 편찬 체재. 역사 기록을 연·월·일순으로 정리하는 편년체와 사건의 시말을 기록하는 방식인 기사본말체와 더불어 역사 서술방식을 지칭하는 3체의 하나이다.
諸子百家
현상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百家爭鳴으로도 불리는 이 용어는 중국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221)의 여러 사상가들과 그 학파들을 지칭한다. 이 시기에 다양한 사상이 전개됨으로써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철학체계를 완비했다.

사부분류는 사고전서로 이어지면서 중국 고전의 분류 방법으로 정착한 것인데, 經史子集을 가리킨다.

기전체 역사서술의 시작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史記
司馬遷이 지은 史記는 기전체 역사서술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문헌이다.
중국의 역사기술 방식은 기사본말체, 편년체, 기전체가 중심을 이루는데, 이것을 3체라고 한다.

중국 고전의 분류를 처음으로 시도한 사람은 劉向과 劉歆 부자였다. 이들이 분류한 것은 몇 가지였는가? 
7가지
 유향과 유흠 부자는 저서인 七略에서 문헌을 여섯 개로 분류한 다음, 총론적인 성격을 가지는 集略을 넣어 일곱 가지로 분류했다.

중국의 역사에서 왕조별로 문학적 특성을 가진 장르 중, 당나라 때 확립되어 현재까지도 그 형식이 유지되는 것으로는 詩가 있다.
사륙변려문의 시대는 六朝, 송나라는 詞, 원나라는 曲, 명,청시대는 小說, 兩漢은 文章을 특징으로 한다.


3강 국문학과 한문학의 관계

구전문학의 시대에서 기록문학의 시대로 이행하면서 민족문학의 형식이 형성될 때의 모든 기록은 한자와 한문으로 이루어졌다.
그때까지 우리 문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문학은 기록문학과 민족문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傳文學

언어예술의 하나로 문자화되지 않고, 말로써 傳承된 것을 말하며, 고대 여러 나라에서 행해져 왔다.
민요 · 民話 · 옛이야기 · 전설 · 설화 등이 포함된다.


黃河文明

중국의 황하 중하류 지역에 성립한 옛 문명의 총칭이다.
문명의 성립이란 일반적으로 국가 · 청동기 · 문자의 성립 등이 요소가 되는데, 이런 의미에서 황하 문명의 成立期는, 오리엔트나 인도보다 늦은 기원전 2000년경이라 말하였지만 훙산 문화 발견 이후로는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세계4대 문명으로 분류되었지만, 현재는 장강 문명 등 다양한 문명이 중국 각 지역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4대 문명에 황하 문명만을 채택하지는 않으며, '황하 및 장강 문명'이라 한다.


漢族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민족으로 2000년의 인구 통계에 의하면, 1,137,386,112명으로서 중국 총인구수의 91.53%를 차지한다. 한족은 중국의 전국 각지에 널리 분포하여 거주하고 있으며, 이러한 분포적 특징은 통일된 다민족국가인 중국이 형성 및 발전하는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확립된 것이다.
한족은 황하 유역의 중하류에서 발원하였으나, 전쟁, 인구이동, 각 민족 간 교류에 의한 민족 융합으로 인해, 南宋 시기에 이르러 회하 이남에 한족들이 증가하면서 점차 북방을 초과하는 국면이 형성되었다.


宿衛學生

중국 당나라의 국자감에서 수학한 유학생으로 渡唐留學生 · 遣唐留學生이라고도 일컬어지는데, 대개 당나라의 賓貢科에 합격한 신라의 문인들을 가리킨다.


性理學

중국 송나라 때의 유학의 한 계통으로, 性命과 理氣의 관계를 논한 유교철학.
유학을 발전사적으로 볼 때 先秦의 本源 유학, 漢唐의 訓詁 유학, 宋明의 성리학, 淸의 고증학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新儒學으로서의 성리학이 성립한 시기는 언제인가?

송나라 시대 

 性命과 義理를 중심으로 하는 성리학은 중국의 송나라 때 朱熹에 의해 크게 흥성한 학풍이다.       


노래와 이야기로 구분할 수 있는 것으로 민족문학인 국문학의 모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口傳文學

문자를 기록수단으로 하는 시대가 오기 전까지 우리 민족은 언어를 통한 문학을 창작하고 향유해왔다.
이것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다는 뜻을 가진 구전문학으로 불린다. 민족문학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민족시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上代詩歌의 형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무엇인가?

詩經體

중국 북쪽에서 발달한 詩體인 시경체는 4언4구체로 되어 있는데, 우리 문학사에서 남아 전하는 상대시가는 모두 시경체의 형식에 맞추어서 기록되어 있다. 중국 남방의 시체를 楚辭體라고 한다.


한문학을 본격적으로 발달시키기 시작한 사람들로 중국에 유학한 신라 사람들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宿衛學生

당나라와 신라에서 반씩의 비용을 대어 중국에 파견하여 선진문물을 배워오도록 한 제도에 의해 건너가 공부를 했던 사람들을 숙위학생, 견당유학생, 도당유학생 등으로 부른다.



4강 문집의 이해

集은 여러 마리의 새가 나무 위에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여러 가지 것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문집은 한 사람이 평생 동안 쓴 글을 하나의 자리에 모아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집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의 최치원 문집이 시초라고 할 수 있다.


‘꾸미다’는 뜻을 기본으로 하는 이것은 우주의 사물현상이 얽혀서 나타나는 文彩를 가리킨다.
문학에서는 글이나 말로 꾸며서 아름답게 나타낸 것을 가리킨다.


桂苑筆耕

신라 말기의 학자 · 문장가 崔致遠의 시문집.
85년(헌강왕 11) 중국 淮南에서 귀국하여 그 이듬해인 886년(정강왕 1) 그의 나이 서른 살이 되던 해에 당나라에 있을 때의 작품을 간추려 정강왕에게 바친 문집이다. 『계원필경』의 自序에 의하면, 『계원필경』 20권과 아울러 『私試今體賦』 1권과 『五言七言今體詩』 1권, 『雜詩賦』 1권, 『中山覆簣集』 5권을 함께 바친 것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문집이다.


國文集叢刊

『韓國文集叢刊』 은 역대 한국의 문집을 총망라한 한국판 四庫全書로 정편350책, 속편 150책으로 총 500책의 방대한 민족고전이다. 『韓國文集叢刊』 은 역사학, 철학, 국어국문학 등 인문학 분야와 한의학, 천문학 등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선현들의 총체적인 지식이 망라돼 있는 국가의 지식 보고이다.


文以載道

文藝는 道를 싣는 바탕이다. 바퀴와 끌채를 예쁘게 꾸미더라도 사람이 쓰지 않으면 쓸데없이 장식한 것에 불과하다. 하물며 텅 빈 수레는 무얼 더 말하겠는가? 문예의 수사는 기술이고 도덕은 실질이다.
도를 싣지 않는 문은 쓸모가 없다.


穆陵盛世

조선시대 宣祖, 仁祖년간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이 있어서 정치적으로는 매우 어려웠지만 문화적으로는 대단히 흥성했다. 이에 선조의 諡號를 따서 이 시대를 목릉성세라고 한다.


문집에서 책의 모양을 결정하는 板의 방식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版式

일반적으로 문집은 목판을 이용하여 만드는데, 활자를 고정하여 인쇄를 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형태를 갖추어야 했다. 이것을 판식이라고 한다.


문집에서 책의 내용을 어떤 순서에 따라 분류하여 배치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編次

한 사람이 평생 동안 쓴 글은 분량도 많지만 종류별로 매우 다양하다.
이것을 성격에 따라 분류하여 배치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것을 편차라고 한다.


문집의 내용 중 글쓴이가 나랏일을 하면서 의견을 왕에게 올린 것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奏疏

아랫사람의 심정을 윗사람에게 진상하는 글을 奏라 하고, 자신의 말을 진술하여 시비를 소통시키는 글을 疏라고 한다.


정치적으로는 어려웠지만 문화적으로는 매우 풍성한 결실을 거두었던 宣祖, 仁祖 년간을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穆陵盛世

선조의 諡號가 穆陵인데, 이것을 따서 부르는 명칭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이 있었던 선조, 인조 년간은 매우 어려웠지만 학문을 중심으로 한 문화사적으로는 매우 풍성하여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 이 시대를 목릉성세라고 한다.



5강 동아시아 한문학, 그 중의 한국한문학

아주 오래 전부터 동아시아는 漢字를 표기수단으로 하는 문화권을 형성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몽골 등의 나라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한자를 중요한 기록수단으로 사용했고, 그것으로 된 수많은 문헌들을 남기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 선조들이 남겨 놓은 수많은 한문학 자료들은 동아시아 문화사에서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으며, 중요한 사료적, 문예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접근하며, 이해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使行

사신이 되어 외국으로 가던 것을 일컫는 말, 우리나라에서는 중국과의 사행이 가장 중요했다.
이를 통해 여러 가지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일본, 유구, 베트남 등과도 사절단을 주고받았다


朝鮮王朝實錄

조선 태조로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편년체(編年體)로 기록한 책. 여기에는 동아시아 의 나라 사이에 교류한 내용이 많이 실려 있다.


漂海錄

바다에서 표류했던 경험을 기록한 것을 가리킨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1488년(성종 19) 崔溥가 지은 것으로 바다에서 표류한 기행록(漂海紀行錄). 현재 전하고 있는 표해록 중 가장 오래된 귀중한 자료이다.   


조선시대 청(淸)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온 사람들의 보고서 또는 기행문.
사신이 돌아오면 서장관(書狀官)이 임무수행 기록을 등록하여 보고하게 되어 있었다.
이 보고서 외에도 사행에 참가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기록한 글들이 상당히 많다.
燕行錄


조선 태조로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편년체(編年體)로 기록한 책. 여기에는 동아시아 의 나라 사이에 교류한 내용이 많이 실려 있다.


바다에서 표류했던 경험을 기록한 것을 가리킨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1488년(성종 19) 崔溥가 지은 것으로 바다에서 표류한 기행록(漂海紀行錄). 현재 전하고 있는 표해록 중 가장 오래된 귀중한 자료이다.
燕行錄


조선시대 청(淸)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온 사람들의 보고서 또는 기행문. 사신이 돌아오면 서장관(書狀官)이 임무수행 기록을 등록하여 보고하게 되어 있었다. 이 보고서 외에도 사행에 참가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기록한 글들이 상당히 많다.


宣和奉使高麗圖經

송나라의 사신 徐兢(1091년 ~ 1153년)이 1123년에 고려를 방문하여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보고서다.
원명은 송 휘종의 연호인 宣和(1119년~1125년)를 넣어 『宣和奉使高麗圖經』 이라고 하며, 이를 줄여서 《고려도경》이라고 한다.


바다에서 표류했던 경험을 글로 기록한 것을 漂海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표해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누구의 것인가? 崔溥 

세종 년 간에 부친상을 당해 제주로 가다 풍랑을 만나 표류해 왜구를 만나기도 하고, 중국으로 갔다가 북경, 의주를 거쳐 한양으로 돌아온 최부의 표해록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조선시대 청나라에 파견했던 使行을 燕行이라고 부르는데, 일본에 파견했던 사절단은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通信使 

통신사는 조선시대 조선 국왕의 명의로 일본의 막부장군(幕府將軍 : 足利 · 德川幕府 등)에게 보낸 공식적인 외교사절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조선통신사라고 한다.


연행록 가운데 박지원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문학적으로도 손꼽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熱河日記

조선 정조 때에朴趾源이 청나라를 다녀온 燕行日記. 1780년(정조 4) 저자가 청나라 乾隆帝의 七旬宴을 축하하기 위하여 사행하는 삼종형 朴明源을 수행하여 청나라 고종의 피서지인 열하를 여행하고 돌아와서, 청조치하의 북중국과 남만주일대를 견문하고 그 곳 문인·명사들과의 교유 및 문물제도를 접한 결과를 소상하게 기록한 연행일기이다.


사신이 남긴 기록 중에서 일본에 대한 첫 기록은 조선 전기 申叔舟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 문헌의 명칭은 무엇인가? 海東諸國記

1471년(성종 2) 申叔舟가 일본의 地勢와 國情, 交聘來往의 연혁, 使臣館待禮接의 節目을 기록한 책.
1443년(세종 25) 書狀官으로서 일본에 다녀온 신숙주가 왕명에 따라 撰進한 것이다.



6강 한국한문학의 역사적 전개 1

구전문학의 시대에서 기록문학의 시대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 한국한문학이다.
고유의 문자 발달이 늦었던 탓에 국가의 발생과 더불어 필요해진 문자의 사용에 있어서 한자를 표기수단으로 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한문학은 단순한 의미의 한문학이 아니라 민족문학의 역사와 그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鄕札

한자의 音과 釋을 빌려 국어 문장 전체를 적은, 신라시대에 발달한 국어 표기법을 가리킨다.
향가의 표기에 이용되었기 때문에 향가식 표기법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문장 전체를 적었다는 점에서 고유명사 표기법과 한문 문장의 끝에 토로 쓰이던 이두와 구별하여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향찰이 명사 · 동사 · 어미를 비롯한 국어 문장 전체를 표기했다고는 해도 차자 방법은 의미부가 새김을, 형태부가 음을 빌려오기 때문에 고유명사 표기법이나 이두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詞章

문사를 통칭하는 말로 辭章이라 쓰기도 한다. 주로 성리학 · 도학의 상대적인 명칭으로 詞章學이라 불렀다.
사림파의 상대적인 명칭으로 사장파라 불리기도 하였다. 사장이 문학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은 고려 후기에 무신란을 계기로 당시 지식인들이 문사에 힘쓰면서부터이다.


詩賦

중국 시체의 한 종류로 둘 다 韻文으로 되어 있다. 詩는 화자 내부의 정서를 중시하여 그것을 표현을 중심으로 하는 데 비해, 賦는 외부의 사물현상에 대한 묘사를 중심으로 하는 특징은 가지고 있다.


新興士大夫

고려 전기 이래 지방 향리로 머물던 중소 지주들이 고려 후기부터 과거에 급제하여 중앙의 관리로 진출하는 경향이 뚜렷해졌으며, 고려 말에 이르러 이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조선을 건국하였는데, 이들을新興士大夫라고 한다. 사대부란 士와 大夫를 합친 말로 전근대 중국과 한국에서 문무 관료 전체를 가리키거나 문반 관료만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지만, 역사 용어로는 중국에서는 송나라 때, 한국에서는 고려 후기에 등장한 중소 지주 출신의 學者 관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특히 한국사에서는 고려 후기에 새로이 진출하여 조선을 건국한 학자 관료들을 신흥사대부 또는 新進士大夫라고 하여 다른 시기의 사대부와 구별한다.


列傳

역사편찬 방식의 하나인 기전체(紀傳體) 사서의 한 편목을 가리킨다. 주로 인물의 사적을 기록하여 실었으나, 외국 및 변경 소수 민족들의 역사나 특정 주제에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하여 넣기도 하였다.



紀傳體 역사 서술 방식의 한 篇目으로 인물의 사적을 기록한 것은 무엇인가? 列傳 

사마천의 사기에서 비롯한 것으로 기전체 역사서에서 중요한 인물의 평생에 대해 기술한 것이다. 이것은 소설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禪雲山歌, 井邑詞, 方等山歌, 無等山歌 같은 노래는 어느 나라의 것인가? 백제 

백제는 漢詩文에 대한 조예가 매우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륙변려문으로 되어 있는 사택지적비나 일본에 전한 한문과 학자의 활동을 보면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이 노래들은 모두 백제의 작품이다.


고구려에 쳐들어온 隋나라 장수를 조롱한 한시 작품인 與隋將于仲文은 누가 지은 것인가? 乙支文德 

을지문덕은 고구려에 쳐들어온 수나라 군대와 싸우는 과정에서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에서 상대 장수를 조롱한 한시를 지어 보냄으로써 고구려인의 기상을 드높였다. 그것이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주는 시다.


동아시아의 중심국이 된 唐이 문호를 개방하여 외국인들을 받아들인 과거제는 무엇인가? 賓貢科

외국 사람들을 선발하여 당나라의 관료로 쓰는 과거제도를 가리킨다. 신라 후기의 숙위학생들이 주로 빈공과에 합격하여 이름을 떨쳤다.


신라 후기에 薛聰이 지은 寓言으로 꽃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은 무엇인가? 花王戒 

꽃의 왕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군주의 덕목을 강조한 寓言의 이야기로 소설의 발달과정에서 나타난 대표적인 작품이다. 설총이 지었다.



7강 한국한문학의 역사적 전개 2

고려후기의 무신정권기와 원간섭기를 거치면서 고려사회는 크게 변화하는데, 말기에 유입된 성리학의 영향으로 변화에 한층 박차를 가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바탕으로 하여 성립한 조선은 성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한문학이 본격적으로 발달하면서 우리 문학사에 가장 화려한 족적을 남긴 시대로 평가받는다.


勳舊派

조선 전기 세조의 집권과 즉위 과정에서 簒位를 도와 공신이 되면서 정치적 실권을 장악한 이후 형성된 집권 정치세력을 가리킨다. 훈구파라는 명칭은 원래 勳舊功臣 · 勳舊大臣 등 오랫동안 臣從하면서 공로를 많이 세웠다는 의미를 지닌 일반 용어였으나, 세조대 이래 기성 집권 정치세력을 지칭하기 위해 편의적으로 붙여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성종대 후반 이후 대두한 신진 정치세력인 이른바 士林派와 대비되는 정치세력을 지칭하는 역사적 용어로 쓰였다.


文衡

조선 시대에 홍문관과 예문관의 으뜸 벼슬인 大提學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에 속한 사람들은 당시 사회에서 文柄을 잡았다 하여 여러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江西詩派

宋代의 시인들은 시형은 당대의 시를 그대로 이어받아 조술했지만, 그들이 완성시킨 시풍은 당의 시와는 약간 다른 것들이었다. 송시는 내용과 형식에서 그 규모가 크게 확대되었는데, 당시와 비교하여 그 특징을 간추리면 철리화 · 산문화 · 평담화 · 통속화를 들 수 있다. 강서시파는 황정견을 중심으로 형성된 시단의 유파로 북송 후기 시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황정견은 소동파의 문하에서 배웠지만, 소동파보다 학구적이고 창작기법에서 더 신비적인 면을 보인다.


文體反正

文體醇正, 文體波動이라고도 한다. 특히 1788년 서학에 대한 문제가 본격화되는 정국 상황 아래에서 이를 능동적으로 헤쳐 나가기 위해 정조에 의해 마련된 일련의 문체 정책을 의미한다.


정조 때 일어난 文體反正에서 배격해야할 서적의 대표로 지목된 것은 무엇인가? 熱河日記 

열하일기는 정조에 의해 시작된 문체반정에서 배격해야할 첫째 서적으로 꼽혔다. 실용에 무익할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방탕하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閭巷文學이 형성되는데, 이것은 어떤 계급에 의해 주도 되었는가? 중인

중인 서리 층은 업무상 학문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조선 후기에 이르러 이들이 함께 모여 시단 활동을 벌이면서 시집까지 출간하게 된다. 이것을 일러 여항문학이라고 한다.


조선조 선조, 인조 년간의 문화적 융성기를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穆陵盛世 

선조, 인조 년간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으로 사회는 어려웠으나 문화적으로는 크게 융성하여 훌륭한 학자 지식인들이 나타난다. 이 시대를 일러 선조의 시호를 따서 목릉성세라고 한다. 


조선 말기 한문학의 쇠퇴기를 장식한 시인으로 絶命詩를 남긴 사람은 누구인가? 黃炫 

황현은 조선 말기의 지식인으로 조선이 일본에 의해 강제 병합되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절명시 네 편을 남긴 채 자살하고 만다.



8강 한국한문학의 문체와 양식

 古體詩

唐나라 때 확립된 한시의 형식에 맞지 않는 시 전체를 가리키는 말. 樂府, 試經, 古詩, 楚辭 등을 가리킨다.


近體詩

唐나라 때 확립된 규칙에 맞도록 지어진 시를 가리킨다.
絶句와 律詩와 排律의 구별이 있으며, 五言와 七言의 구별이 있고, 押韻과 平仄 등의 형식이 있다.


國朝詩刪

조선 중기에 許筠이 엮은 시선집으로 鄭道傳에서부터 權韠에 이르는 35家의 각체시 877수를 수록하고, 편말에 <許門世藁>를 싣고 있다.


海東樂府

우리나라의 역사 · 민요 · 풍속에서 소재를 취한 악부형태의 시가를 지칭한다. 주로 17~19세기의 조선 후기 지식층에 의해 창작되었으며, 당시 선비들의 역사관이 잘 드러나 있다. 제목은 東國樂府 · 해동악부 등 다양하게 붙였다.


조선의 역사와 풍속 등에 대해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에 담아 노래한 것을 가리켜 무엇이라고 하는가? 海東樂府

해설 : 17세기 이후에 선비들에 의해 많이 창작된 詠史樂府 같은 것들을 범칭하는 것으로 악부시로 지어진 것 전체를 통칭하는 말이다.  


중국에서 당나라와 송나라 때에 고문을 중심으로 문장을 크게 진흥시킨 사람들인 한유, 유종원, 소순, 소식, 소철, 구양수, 왕안석 등을 가리켜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唐宋八大家

해설 : 당나라와 송나라 시대에 고문체를 계승하고 정착시키면서 발전시킨 여덟 명의 문인들을 가리켜 당송팔대가라고 한다. 이들의 고문체는 고려와 조선 시대 한문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한 편의 작품이 네 개의 句로 이루어진 근체시를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絶句

해설 : 근체시에는 절구와 율시와 배율이 있다. 절구는 네 개의 구절로 되어 있으며, 율시는 여덟 개의 구절로 이루어져 있다. 배율은 10구, 혹은 12구, 혹은 그 이상으로 되어 있는 시를 가리킨다.  


試經, 楚辭, 樂府 등을 일컫는 명칭은 무엇인가? 古體詩

해설 : 시경, 초사, 악부, 고시 등은 근체시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詩體로 근체시와 구별하기 위해 고체시라는 명칭으로 사용한다.


한문학 문체의 분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읽는 글을 통틀어 가리키는 명칭은 무엇인가? 哀祭類 

해설 : 제문, 애사, 조문, 뇌문, 축문 등의 글을 총칭하여 애제류로 분류한다. 이 글들은 모두 사람이 죽었거나 죽은 후의 儀式과 관련을 가지는 것들이다.



9강 한시의 세계 1

魏晉南北朝時代

중국 역사상의 시대 구분의 하나. 조비의 위나라에서 북부 지방을 통일했던 태무제의 북위까지의 시대를 가리킨다. 220년 조조의 아들 曹丕가 魏의 제위에 오를 무렵 오의 孫權, 촉의 劉備와 대립하며 3국 정립의 형세를 이루었다. 265년 司馬懿 손자 司馬炎은 제위를 물려받아 晉을 세웠다. 진은 280년 오를 평정하여 천하 통일을 달성했다.
통일 후 무제 사마염은 자신의 일족을 여러 나라의 왕으로 세웠는데, 이를 封王이라 했다. 황제의 지배를 강화하려는 봉왕제는 오히려 황제의 지배를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316년 흉노의 劉氏에 의해 낙양과 장안이 함락됨으로써 서진은 멸망함으로써 위진남북조시대는 끝난다.


六義

《詩經》에 있는 詩의 여섯 가지 문체을 일컫는다. 외부의 사물현상을 표현하는 賦, 이것으로 저것을 표현하는 比, 화자의 정서를 일으켜 노래하는 興, 민간의 노래인 風, 정악의 노래인 雅, 조상의 공덕을 찬양하는 頌 등을 가리킨다.


離騷

근심을 만나서 지은 노래라는 뜻으로 楚나라 屈原이 지은 賦의 제목이다.
간신배에 의해 조정에서 쫓겨난 후의 시름과 戀君의 정을 노래한 서정적인 長詩이다.
한나라 이후의 詩賦에 영향을 끼쳤다.


小樂府

악부시 중에서 絶句體의 형태를 지키고 있는 詩體를 소악부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말 李齊賢이 지은 소악부가 시작이며, 민사평, 신위 등으로 이어지면서 여러 작품을 남겼다.


仄聲

한자는 음의 高低인 음율의 높낮이와 음의 길이로 平聲, 上聲, 去聲, 入聲의 네 가지로 구분한다.
이 중에서 상성, 거성, 입성을 합하여 仄聲이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자는 크게 平聲과 仄聲으로 나눌 수 있으며 平聲 이외에는 모두 仄聲이 된다. 한시에서는 韻字로 쓸 수 있는 것은 평성 뿐이다.



한시에서 韻으로 쓰는 글자를 가리켜 무엇이라고 하는가? 平聲

해설 : 사성 중에서 평성을 제외한 상성, 거성, 입성을 통틀어서 측성이라고 하는데, 韻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평성만 가능하다.


絶句에서 운을 반드시 넣어야 하는 곳은 어디인가? 둘째와 넷째 구의 마지막 글자

해설 : 절구에서 운은 첫째, 둘째, 넷째 구의 마지막 글자에 넣는다. 그런데, 첫 구의 마지막 글자는 넣어도 되고, 넣지 않아도 된다.


한시에서 큰 것과 작은 것, 높은 것과 낮은 것, 안과 밖 등 서로 마주보는 성질을 가지는 것을 앞뒤로 놓아 시적 아름다움을 느끼도록 하는 장치를 무엇이라고 하는가? 對句

해설 : 한시의 두 구절이 서로 마주보면서 상대되도록 짓는 방법은 對句라고 한다.
하늘과 땅, 안과 밖,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 등이 마주보도록 하면서 짓는 것을 말한다.


시경에서 외부의 사물을 먼저 묘사한 후 그것을 근거로 해서 화자의 정서를 일으켜 노래하는 수법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해설 : 외부 사물에 근거하여 내부의 정서를 일으키는 방법을 흥이라 하고, 저것으로 비유를 삼아 이것을 표현하는 것을 比라 하며, 사물현상을 노래하는 수법을 賦라고 한다. 



10 강한시의 세계 2

全唐詩: 중국 청나라 때 唐詩를 모아 편찬한 책이다.

2천 2백여 명에 이르는 시인의 작품 약 4만 8900여 수를 수록한 것으로 1705년 康熙帝의 명령으로 彭定求 등이 편찬하여 그 이듬해에 900권으로 완성하였다.


用事:典故나 사실을 인용하는 한시의 작법이다.

經書나 史書 또는 여러 사람의 시문에서 특징적인 관념이나 事迹을 2,3개의 어휘에 집약시켜 詩意를 배가시키는 방법이다. 중국에서는 宋代의 시풍이 산문의 흥기와 성리학의 발달로 인하여 시의 氣勢를 중히 여기고 道를 위주로 하게 되면서, 원래 문장 수사법의 하나로 이용되었던 용사가 크게 성행하게 되었다. 宋代詩學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고려나 조선에 있어서도 보편화되어 용사를 모르고서는 시를 지을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시작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知貢擧:고려시대에는 과거를 관장한 고시관을 지공거, 부고시관을 同知貢擧라고 하였다.
고시관은 대체로 지공거와 동지공거의 두 사람으로 구성되었으며, 특수한 경우로 殿試와 覆試에는 왕이 지공거가 되고, 文臣으로 讀卷官을 삼아 시행했으나 이런 전시는 자주 실시되지 않았다. 


破閑集: 고려 중기의 문신 李仁老의 시화 · 잡록집이다.

3권 1책의 목판본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저자가 69세로 사망하기 직전에 지은 것이다. 이인로의 사후 40년 뒤인 1260년(원종 1) 3월에 아들 世黃이 수집하고 按廉使 大原王公의 후원으로 초간되었다. 현재 당시의 초간본은 전하지 않는다. 1659년(효종 10)에 嚴鼎耉가 경주부윤 재임 중에 趙涑의 家藏秘本을 가지고 刻板한 중간본이 남아 있다.


竹林高會: 이인로 · 오세재 · 임춘 · 이담지 · 조통 · 황보항 · 함순 등 일곱 사람으로 구성되었다.

중국 진나라 때 자유방임적인 노장사상에 심취하여 시주를 벗삼았던 죽림칠현을 본떠 모임을 가짐으로써 죽림고회라 불렀다. 무신집권기에 정계에서 소외된 문신들은 산야로 들어가 시와 술로 자신들의 처지를 위로했다. 이들이 노장사상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청담적 · 출세간적 · 방종적인 풍모를 흠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모임의 핵심인물은 이인로 · 임춘 · 오세재이다. 이인로는 중국 시인 백낙천의 4우를 모방해 眉叟四友를 맺었는데 임춘을 詩友, 조통을 山林友, 이담지를 酒友, 승려인 종령을 空門友라 칭했다. 이 모임은 시를 쓰는 것 외에도 시에 대한 논의를 활발하게 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인로의 <파한집>은 한국문학사에서 중요한 평론집이다.


瀟湘八景:湖南省 洞庭湖 남쪽의 소수와 상강이 합류하는 곳에 있는 대표적인 8가지 아름다운 풍광을 말한다.
瀟湘夜雨, 洞庭秋月, 遠浦歸帆, 平沙落雁, 烟寺晩鐘, 漁村夕照, 江天暮雪, 山市晴嵐.
우리나라의 팔경은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것을 소재로 한 그림과 한시, 시가 등이 많이 지어졌다.   


新增東國輿地勝覽 :1530년(중종 25) 李荇 · 尹殷輔 · 申公濟 · 洪彦弼 · 李思鈞 등이 『동국여지승람』을 증수하여 새롭게 편찬한 책이다.

1477년에 편찬한 『팔도지리지』에 『동문선』에 수록된 東國文士의 시문을 첨가하였으며, 체재는 南宋 祝穆의 『方輿勝覽』과 명나라의 대표적 통지인 『大明一統志』를 참고하였다. 『동국여지승람』의 1차 수교는 1485년 김종직(金宗直) 등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신분제의 변동으로 인해 중인층에 속한 사람들이 詩社를 조직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이러한 문학은 무엇이라고 하는가? 閭巷文學(여항문학)

해설 : 여항문학은 중인 서리층에 속한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시로 나타내어 표현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문학 운동을 일컫는 말이다. 조선 후기에 송석원시사를 기점으로 크게 약진하였다.       


삼당파 시인의 한 사람으로 허균과 허난설헌의 스승이기도 했던 사람은 누구인가? 李達(이달)

해설 : 손곡 이달은 서얼 출신으로 신분이 낮은 존재였으나 시재가 뛰어나 사대부들과 교류를 할 정도였다.
그의 시재를 인정한 허봉이 자신의 동생인 허균과 허난설헌의 스승으로 모실 정도였다.    


조선 전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평생을 떠돌면서 삶을 살았고, 이러한 정서를 시로 남긴 문인으로는 김시습을 들 수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方外人(방외인)

해설 : 일정한 테두리나 경계 안에 들지 못하고 밖으로 떠돌면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조선 전기 수양대군이 조카를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자 세상을 등지고 산천경개를 유람하며 평생을 마친 김시습 같은 인물을 방외인이라고 한다.


고려 말의 李崇仁(이숭인)은 중국 田橫의 고사를 소재로 하여 지은 시가 아주 뛰어나다. 그 작품은 무엇인가? 鳴呼島(오호도)

해설 : 오호도는 중국 동쪽 바다 한가운데 있는 작은 섬인데, 한나라에 복속하기를 거부한 전횡과 그 부하 오백 명이 죽어서 묻힌 곳이라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이를 소재로 해서 지은 이숭인의 작품은 매우 뛰어나서 중국 사람들도 찬탄할 정도였다.


고려 말 益齋 李齊賢(이제현)은 민간의 사연을 악부시의 형태로 지었다. 그 뒤로도 閔思平, 申緯 등이 이런 류의 작품을 지었다.
이것을 가리켜 무엇이라고 하는가? 小樂府(소악부) 

해설 : 해동의 악부시라는 뜻으로 불리는 명칭이다.
이제현이 고려 말에 민간의 사연들을 골라 그것을 소재로 해서 악부시를 지은 다음 소악부라고 했다.


신라 시대에 중국의 한시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인 계층에 속한 사람들로 중국에 유학한 부류를 가리켜 무엇이라고 하는가?

宿衛學生, 入唐留學生(숙위학생, 입당유학생) 

해설 : 육두품을 중심으로 중국의 당나라에 가서 賓貢科에 급제했던 사람들이 숙위학생에 속하는 부류들이었다.
그 중에서 최치원은 중국에서도 문명을 떨쳤다.



11강 한국산문의 세계 1

碑와 碣

方碑圓碣이라고 한다. 돌로 된 비의 머리 부분이 네모 난 모양으로 된 것은 碑라는 명칭으로 쓰고, 둥근 모양으로 된 것은 碣이라는 명칭으로 쓴다.


假傳

사람의 이야기를 함에 있어서 다른 사물현상에 빗대어서 전개하는 방식의 傳양식의 문학.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때 花王戒로부터 시작하여 고려 후기에 林椿의 공방전, 국순전 등을 거치면서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桂苑筆耕

신라 말기의 학자이며, 문장가인 崔致遠의 시문집. 885년(헌강왕 11) 중국 淮南에서 귀국하여 그 이듬해인 886년(정강왕 1) 그의 나이 서른 살이 되던 해에 당나라에 있을 때의 작품을 간추려 정강왕에게 바친 문집이다.
우리나라 문집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四六騈儷文

한문문체의 하나로 ‘騈體文’, ‘騈儷文’ 또는 ‘四六文’이라고도 한다. ‘騈’은 두 마리의 말을 나란히 마차에다 이은 것을 말하고, ‘儷’는 두 사람이 나란히 밭을 간다는 뜻이다. ‘하나의 對를 이루는 것’으로 轉義된 것이다. 이 글에서는 對句의 존중, 너자 또는 여섯 자의 句를 많이 씀, 平仄과 押韻을 존중, 음조의 아름다움을 살림 등의 특징이 있다.


唐宋八大家

당나라와 송나라 때 문장으로 이름을 날린 대가 여덟명을 지칭하는 말. 韓愈, 柳宗元, 歐陽修, 蘇洵, 蘇軾, 蘇轍, 曾鞏, 王安石으로 앞의 두 명은 당나라 때 사람이고, 나머지 여섯 명은 송나라 때 사람이다.


假傳體 문학의 첫 작품으로 꼽는 것은 누가 지은 어떤 작품인가? 薛聰, 花王戒

해설 : 승려인 원효와 왕족인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설총은 신라 10현의 한 사람으로 군왕의 정치적 덕목을 말함에 있어서 꽃을 의인화하여 설파한 화왕계를 지었다.       


우리나라 문집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누구의 것이며, 그 이름은 무엇인가? 최치원, 계원필경

해설 : 중국에서 돌아온 최치원은 자신이 당나라에서 저술한 것을 모아 엮어서 왕에게 진상하는 문집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계원필경이었다. 이 문집은 후대에 여러 번 간행되었다.


당나라에 유학했던 최치원이 文名을 떨친 산문 작품은 무엇인가? 討黃巢檄 혹은 檄黃巢書

해설 : 반란을 일으켰던 황소라는 인물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최치원이 지은 문장이 토황소격, 혹은 격황소서이다.
황소는 이 글을 읽다가 저도 모르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고 한다. 


고려 시대 박인량이 지은 것으로 傳奇小說의 초기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殊異傳

해설 : 고려 때 문인 박인량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수이전은 신라 이래 여러 설화를 모아서 엮은 일종의 傳奇이다. 전기소설의 초기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고려시대에 근간을 이루는 산문 문체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가? 四六騈儷文 

해설 : 네 개와 여섯 개의 句를 對句의 형태로 하여 짓는 사륙변려문은 화려함을 특징으로 하는데, 고려 시대 귀족문화의 성격과 맞물리면서 성행했다.


12강 한국산문의 세계 2


麗韓十家文抄

조선 말기에 金澤榮이 편한 고문선집. 11권 1책의 신활자본으로 되어 있다.
본래는 김택영이 고려시대부터 김택영 당대까지의 문장가 9인을 정하고 그들의 문장 가운데 우아하고 바른 것 95편을 가려뽑아 ≪여한구가문초≫를 만들었다. 그의 제자 王性淳이 ≪여한구가문초≫ 가운데 보탤 것은 보태고 뺄 것은 뺀 뒤 김택영의 문장을 뽑아 이 책에 합편하여 여한십가문초로 개제하여 1921년 翰墨林書局에서 발행했다.


小品文

고대 산문의 일종으로 寫生 · 隨想 등의 짧은 문장을 가리킴. 소품이란 명칭은 4세기경 鳩摩羅什이 『반야경』을 10권으로 간략하게 번역한 것을 小品般若라고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 나중에 길이가 짧은 雜記와 隨筆, 雜感등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소품은 六朝 시대에 시작되었는데, 서경과 서정이 다양하게 점철된 山水小品이나 抒情小品이 주류를 이루었다. 우리나라 소품문은 16세기 허균 등에게서 싹을 보이다가 18-19세기에 폭발적인 신장세를 보였다. 소품문 작가로는 연암 박지원과 박제가, 이덕무, 李用休, 盧兢, 李鈺, 趙熙龍 등을 들 수 있다.


碑誌傳狀

죽은 이의 업적을 기리거나 죽은 이의 신원을 밝히기 위하여 碑에 새긴 글을 碑誌라 하고, 일정한 인물의 傳記나 行狀에 대한 글을 傳狀이라고 한다. 이것들은 주로 사마천의 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歷史輯略 

1905년에 金澤榮이 저술한 역사서. 11권 3책의 한문본이다. 단군조선부터 고려 멸망까지의 통사를 서술한 책이다. 김택영은 학부 편집국에서 1895년과 1899년에 역사교과서 편찬을 주관한 바 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1902년에 『東史輯略』을 저술하였는데 이 책은 그의 증보판이다. 당시 교과서 외에 볼 만한 역사책이 없었는데 교과서보다 체계적이고 상세한 내용으로 편집된 『동사집략』과 『역사집략』이 저술되어 한말 지식인에게 널리 읽혔다.


1905년에 金澤榮이 저술한 역사서. 11권 3책의 한문본이다. 단군조선부터 고려 멸망까지의 통사를 서술한 책이다. 김택영은 학부 편집국에서 1895년과 1899년에 역사교과서 편찬을 주관한 바 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1902년에 『東史輯略』을 저술하였는데 이 책은 그의 증보판이다. 당시 교과서 외에 볼 만한 역사책이 없었는데 교과서보다 체계적이고 상세한 내용으로 편집된 『동사집략』과 『역사집략』이 저술되어 한말 지식인에게 널리 읽혔다.

文體反正

조선 正祖 때에 유행한 한문문체를 개혁하여 醇正古文으로 환원시키려고 한 일련의 사건 및 그 정책을 가리킨다. 文體醇正, 文體波動이라고도 한다. 특히 1788년 서학에 대한 문제가 본격화되는 정국 상황 아래에서 이를 능동적으로 헤쳐 나가기 위해 정조에 의해 마련된 일련의 문체 정책을 의미한다. 정조 당시는 패관잡기나 明末淸初 중국 문인들의 문집에 영향을 받아 개성주의에 입각한 참신한 문체가 크게 유행하였다.
이에 대해 정조는 서양학, 패관잡기, 명말청초의 문집을 邪로 규정하고, 이를 배격함으로써 순정한 고문의 문풍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문체반정’은 그 성격에 있어서 1792년에 일어난 일련의 문체관련 사건을 지칭하며 동시에 정조가 추진한 문체 정책을 일컫는 복합적 성격을 띤다.


고려와 조선의 걸출한 문장가 10명의 문장을 뽑아 구한말에 김택영과 왕성순이 편찬한 문헌은 무엇인가? 여한십가문초

해설 : 구한말에 김택영이 고려와 조선의 걸출한 문인의 문장을 뽑아 여한구가문초를 만들었는데, 그의 제자 왕성순이 김택영의 문장을 넣어 여한십가문초를 완성했다.


이른바 月象溪澤으로 불리는 조선 후기 한문사대가는 누구인가? 신흠, 이정귀, 장유, 이식

해설 : 단련되고 깨끗한 글을 써내는 신흠, 순조롭고 익숙하게 문장을 지어내는 이정귀, 타고난 재주가 넉넉하다는 평을 들은 장유, 인위적인 공을 많이 들인 글을 잘쓰는 이식을 후기 한문사대가로 꼽는다.


정조 때 일어난 文體反正에서 순화해야 할 가장 대표적인 문장으로 정조가 지목한 문인은 누구인가? 박지원

해설 : 박지원의 문장은 고문에서 상당히 멀어진 것으로 개성이 넘쳤기 때문에 정조가 볼 때는 타도의 대상 제1호가 바로 연암의 문체였던 것으로 보인다.


18~19세기에 한문산문의 새로운 유행으로 등장하여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의 고문과 대결한 것은 무엇이라고 하는가? 소품문

해설 : 소품문은 짧은 글로 글쓴이의 성향을 잘 나타내는 산문인데, 문체에 있어서는 고문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주제와 소재, 풍격 면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박지원이 고문과 소품문의 창작을 개성 있게 해석하여 창작하려는 입장을 잘 보여주는 말은 무엇인가? 法古創新

해설 : 연암 박지원은 고문의 전범에 그대로 얽매여 새로운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보아 그것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새로운 글을 써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것을 법고창신이라고 한다. 



13 강한문소설과 야담의 세계

野談

야담은 중국이나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는 한국식 한자어이기 때문에 이것의 갈래적 성격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야담이 민간전승 과정을 거친 데다 민간전승의 골격을 유지하므로 모두 설화로 규정하는 견해도 있고, 야담 안에 전설, 민담, 소화, 일화, 야사 등 설화적인 작품이 있는가 하면 ‘소설’적인 것도 있으니 복합 갈래로 보자는 주장도 제기되어 있다. 어떤 이는 야담 중에서 ‘소설’에 가까운 작품들만 따로 골라내어 漢文短篇이라 명명하기도 했다. 한문으로 기록되다 보니 稗史, 稗說 등 한문학 갈래와의 관계도 문제가 되는데, 대등하다는 의견과 필기의 하위 범주로 보자는 주장이 대립된다. 기존의 특정 갈래에 대한 선입견을 배제하고, 다양한 야담집들의 실상을 두루 포괄하려 할 경우, 복합 갈래로 보는 것이 온당하다.


莊子

4세기의 유명한 도가 사상가 莊子의 이름을 딴 중국 고전. 南華眞經이라고도 한다. 중국의 철학과 종교사상(특히 불교 禪宗)의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의 중요성은 道를 그 이전 노자의 道德經에서 천명한 無爲自然에 의한 조화보다 더 복잡하고 계몽된 형이상학적 '숙명주의'로 해석한 데 있다. 장자에서는 끊임없는 변화가 주된 주제이다. 비록 이 변화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지만 현명한 사람은 생활을 존재의 흐름에 맞춤으로써 평안을 얻는다고 했다.


漢書 藝文志

漢書는 후한의 班固에 의하여 쓰인 중국 기전체 사서로 사마천의 사기 다음으로 중요시되는 문헌이며, 문장이 좋기로도 정평이 나 있는 역사서이다. 한서의 30권에 들어 있는 예문지는 한대에 있었던 전적을 알려주는 자료로서 뿐만 아니라 중국학이 어떻게 체계화되었는가를 이해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虛構

영어로는 픽션(fiction)이라고도 하는데,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구성하는 것을 가리킨다.
있을 수 있는 가공적인 사건이나 인물을 상상력에 의해서 진실인 것처럼 꾸며내는 이야기를 총칭하며, 주로 산문으로 된 소설을 가리킨다. 이에 반해 실제의 사실을 기록한 역사·전기는 논픽션(nonfiction)이라 하여 구별한다.


白雲小說

조선 중기의 한 문인이 李奎報(1168~1241)의 『東國李相國集』에서 시평, 시화, 시론을 拔萃하고 거기에 몇 가지 다른 기사를 포함하여 편찬한 시화집이다. 이규보의 글이기는 하지만 고려시대에 이규보가 직접 편찬한 것은 아니다. 洪萬宗(1643~1725)이 『詩話叢林』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백운소설』을 그 첫머리에 넣고, 李奎報 撰이라고 한 것이 撰者에 대한 최초의 문헌기록이다.


우리나라에서 소설이란 명칭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문헌으로 이규보의 글을 모아 편한 것은 무엇인가? 백운소설

해설 : 조선 중기의 한 문인이 李奎報(1168~1241)의 『東國李相國集』에서 시평, 시화, 시론을 拔萃하고 거기에 몇 가지 다른 기사를 포함하여 편찬한 시화집이다.       


사물현상을 빌려다가 사람의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寓言의 첫 작품은 무엇인가? 花王戒

해설 : 신라의 설총은 신문왕 때의 학자로 갈등구조를 가지고 있는 화왕계라는 이야기를 지어 왕도정치의 덕목에 대해 설파했다. 우언의 첫 작품으로 꼽는다.


한문소설의 성격으로 첫째, ( 교훈성 ), 둘째, 갈등구조, 셋째, 허구성, 넷째, 이념성, 다섯째, 풍자성 등을 꼽을 수 있다.
괄호 안에 들어갈 말로 가장 합당한 것은 무엇인가? 교훈성

해설 : 교훈성은 거의 모든 산문문학에 등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한문소설에 강하게 나타난다.
소설은 민담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민담의 교훈성이 한문소설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에서 야담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최초의 문헌은 무엇인가? 於于野談

해설 : 조선 후기 유몽인이 자신의 호를 앞에 붙이고, 뒤에 야담이란 명칭을 붙여서 만든 어우야담이 최초의 야담집이다. 여기서는 임진왜란을 전후한 조선사회상을 담아내고 있다.


박지원이 지은 것으로 야담에 가까운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熱河로부터 北京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행한 裨將들과 주고받은 이야기를 모아 엮은 것은 무엇인가? 玉匣夜話

해설 : 연행 사절을 따라 열하를 다녀온 박지원은 여행 과정에서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하여 열하일기를 짓는다. 여기에는 열하에서 북경으로 오는 도중 비장들과 주고 받은 이야기를 기록한 옥갑야화도 남긴다.    



14강 한문수필과 필기의 세계

櫟翁稗說

고려 말기에 李齊賢이 지은 시화 · 잡록집. 4권 1책의 목판본으로 되어 있다.
1342년(충혜왕 복위 3) 56세에 宦路에서 은퇴하여 자기 집에 거처하면서 저술한 책이다.
고려시대에 이 책이 간행되었을 것이나 전하는 것이 없고, 다만 현재 온전한 모습으로 열람할 수 있는 것으로는 1814년(순조 14) 경주에 거주하는 후손들에 의하여 간행된 『益齋亂藁』에 붙어 있는 것이 있다.


漂海錄

바다에서 표하면서 겪었던 여러 일들을 잡록이나 일기 등의 방식으로 서술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바다로 나갔다가 표류하여 외국으로 간 경험을 적은 표해록과 외국인이 표류하여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것을 기록한 표착록으로 구분한다. 15세기에 崔溥가 지은 금남표해록이 처음이다.


星湖僿說

조선 후기의 학자 李瀷이 쓴 책이다. 星湖는 이익의 호이며, ‘사설은 細碎(매우 가늘고 작음)한 논설’ 이라는 뜻으로 이는 저자가 겸사로 붙인 서명이다. 저자가 40세 전후부터 책을 읽다가 느낀 점이 있거나 흥미 있는 사실이 있으면 그때그때 기록해 둔 것들을 그의 나이 80에 이르렀을 때에 집안 조카들이 정리한 책이다. 여기에는 제자들의 질문에 답변한 내용을 기록해 둔 것도 포함되었다. 이를 그의 제자 安鼎福이 다시 정리한 것이 『星湖僿說類選』이다.


燕行錄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겪고 보았던 견문과 경험을 기록한 것이다.
명나라에 使行으로 가는 것은 朝天이라 했고, 청나라 때 사행으로 가는 것은 燕行이라고 했다.

연행록은 16세기 후반부터 지어지기 시작하여 여러 사람이 책으로 만들었다.


詩話

한문학에서 시나 시인, 혹은 詩派 등에 대한 평론이나 시인들의 詩作과 관련된 故事, 특이한 행적 등을 기록한 글을 가리킨다. 시화라는 이름 외에도 詩評 · 詩談 · 詩說 · 詩品 등의 순수한 시비평집들이 있다.
그리고 소설 · 稗說 · 類說 · 軟談 등과 같이 雜錄 형태로 시화가 삽입된 것들도 모두 시화로 통칭한다.
시화란 명칭은 송나라의 歐陽修의 六一詩話에서 비롯된다. 시론을 전개함에 있어 閑談을 삽입함으로써 종래 전문저서의 문체와 다른 수필체의 서술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필기류 시화집은 무엇인가? 破閑集

해설 : 고려 후기 이인로가 지은 것으로 한가로움을 깨치는 이야기를 모은 것이란 뜻을 가진 파한집이 최초다.
최자는 파한집을 보충한다는 뜻의 補閑集을 짓기도 했다.  


조선 후기의 필기는 인문, 사회, 자연과학의 전분야에 걸쳐 서술하는 것이 특징인데, 晝永編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무엇에 대한 서술인가? 국어학

해설 : 202개 항목으로 나누어 사회 전분야에 걸쳐 서술하고 있는 주영편에서 특히 돋보이는 것은 훈민정음의 창제에서부터 국어학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발달했는가를 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일을 근거로 하여 기록한 것을 일반적으로 무엇이라고 하는가? 燕行錄

해설 : 조선 전기에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것을 朝天이라고 했으나 16세기부터는 연행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청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것을 소재로 하여 지은 것을 연행록이라고 한다.     


오늘날의 독서후기나 비망록에 해당하는 것으로 필기로 가는 중간단계에 있는 것을 무엇이라고 하는가?箚記

해설 : 차록, 혹은 차기는 사대부가 독서를 하거나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때그때 기록해 놓은 것을 가리킨다. 이것을 근거로 해서 나중에 필기를 작성한다.     


18세기 이후 조선 지식인의 학문 경향에 가장 두드러진 경향은 무엇인가? 博物學的 경향

해설 : 조선 후기에 들어오면서 사회가 변화하고, 고증학의 한 줄기인 실학이 성행하면서 지식인의 관심 폭이 크게 넓어져서 박물관학적 경향을 강하게 띠었다.   



15강 여성 한문학의 이해

중국 周나라 때 戶口의 편제로 다섯 집은 비라 하고, 열 집은 연이라(五家爲比 十家爲聯)고 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이 詩文에 들어와서는 서로 마주보는 두 개의 句를 聯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것은 내용적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형태적 특성만을 강조하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雲英傳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1책으로 한문 · 한글 필사본 등의 판본이 전한다.
‘壽城宮夢遊錄’ 또는 ‘柳泳傳’이라고도 한다. 한문본과 한글본이 있는데, 부분적인 차이는 있으나 대체의 줄거리는 동일하다. 한문본이 원본이고 한글본은 한문본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이본이라 여겨진다.
이 작품은 安平大君의 사궁 수성궁을 배경으로 궁녀 운영과 소년 선비 김진사와의 사랑을 다룬 艶情小說이다. 고전소설에서 보기 드문 비극적 성격의 작품으로 주목되고 있다.


士禍

조선 중기에 新進士類들이 勳臣 · 戚臣들로부터 받은 정치적인 탄압을 가리킨다.
‘士林의 禍’의 준말로서, 1498년(연산군 4)의 무오사화, 1504년의 갑자사화, 1519년(중종 14)의 기묘사화,
1545년(명종 즉위년)의 을사사화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사화는 당초 일으킨 쪽인 훈척 계열에서 난으로 규정했으나, 당한 쪽인 사림 측은 正人 · 賢士들이 죄 없이 당한 화라고 주장하여 사림의 화란 표현을 썼다.
그러다가 사림계가 정치적으로 우세해진 선조 초반 무렵부터 사화라는 표현이 직접 쓰여지기 시작하였다.


三從之道

전통사회에서 여성의 예속적인 지위와 구실을 표시한 규범. 여자가 어릴 때는 부모를 따르고, 출가해서는 남편을 따르고, 노후에는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道德律이다. 이 말의 근원은 ≪儀禮≫ 상복편에서 볼 수 있다.


妓生, 혹은 妓女

전통사회에서 잔치나 술자리에서 노래 · 춤 및 풍류로 참석자들의 흥을 돋우는 일을 업으로 삼았던 여자.
일종의 奢侈奴隷라고 할 수 있으며, 말을 할 줄 아는 꽃이라는 뜻에서 ‘解語花’, 또는 ‘花柳界女子’라고도 하였다. 李瀷은 『성호사설』에서 기생이 揚水尺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양수척은 곧 柳器匠으로서, 고려가 후백제를 칠 때 가장 다스리기 힘들었던 집단이었다. 이들은 원래 소속도 없고 부역에 종사하지도 않고,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버드나무로 키 · 소쿠리 등을 만들어 팔고 다녔다.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외방에 나가 있는 군관들을 위로하기 위한 조직으로 되었다가 점차 궁중의 禮樂을 맡아 口演하는 조직으로 바뀌었다.


조선조 최고의 기생으로 朴淵瀑布, 詠半月, 松都, 登滿月臺懷古 등의 한시를 남긴 사람은 누구인가?  황진이

해설 :황진이는 조선 중기 최고의 기생으로 백호 임제가 그녀의 무덤에 술을 따르고 울면서 시조를 짓기도 했다는 일화가 있고, 한 시 한 편으로 소세양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는 일화도 있는 명기다.    


사회적 제약의 질곡에서 살았던 여성들이 선계를 동경하는 한시를 남기기도 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游仙詞

해설 : 조선시대의 여성은 현실이 너무나 힘들고 외롭기 때문에 신선의 세계를 많이 동경했다.
글쓰기가 가능했던 여성들은 선계에서 노닐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유선사를 지어 스스로를 위로했다. 


조선 후기 金錦園이란 기생이 중심을 이루어 여성만의 詩會를 열었던 일도 있었다.
이 시회를 무엇이라고 하는가? 三湖亭詩會

해설 : 원주 출신으로 14세 이후에 기녀가 되었다가 奎堂學士 金德喜의 소실이 되었던 金錦園(1817~1850년 이후)은 서울의 용산에 있는 삼호정이란 곳에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여성인 연천 김이양의 소실인 운초, 송호 서태수의 소실인 박죽서, 주천 홍태수의 소실이며 김금원의 동생인 김경춘, 화사 이상서의 소실인 경산 등과 시회를 열었는데, 이것은 삼호정시회라고 했다.      


전라도 부안의 기생으로 천민출신 시인인 유희경과 연인사이였으며, 허균과도 교분이 두터웠던 여류 시인은 누구인가? 梅窓

해설 : 매창은 전라도 부안의 기생으로 한시를 잘 지어서 지역 사람들이 그녀의 시를 외우고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사람들이 기억하는 한시를 모아 시집을 발간하니 그것이 바로 매창집이다.
여기에는 58편의 한시가 실려 있다. 그녀는 시조도 지었다.     


중국에서는 조선인 마을에 사는 사대부가의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주고 받은 시를 모은 문집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것의 명칭은 무엇인가? 姑婦奇談

해설 : 고부기담은 1912년에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시집인데, 그곳에서 생활하는 조선인 사대부가 고부가 시를 주고받은 작품을 모아 만든 것이다. 여성이 한시를 주고 받는 것은 중국인들도 신기해할 정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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