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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이 아프다] [3] 이 옷 예쁘십니다, 세일 가격이세요… 길 잃은 높임말

수로보니게 여인 2013. 10. 9. 13:50

[한글이 아프다] [3] 이 옷 예쁘십니다, 세일 가격이세요… 길 잃은 높임말

유석재 기자

입력 : 2013.10.09 02:59

[잘못된 존대어와 호칭]

상대방 아닌 자기 자신 높이고, 사물에 존칭 쓰는 경우도
점원을 "언니"라 부르고 손님에게는 "어머님·아버님"
불분명한 정체성… 타인과의 관계 속에 묻어가려는 심리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란 종업원의 말에 회사원 신영미(38)씨는 말문이 막혔다. "커피가 '나오셨다'고요? 왜 커피를 높이세요?" 신씨의 이 말에 당황한 종업원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죄송하세요~." 이번엔 자기 자신을 높이는 말이었다.

마트에선 "그 상품은 품절이세요", 병원에선 "주사 맞으실게요", 여행사에선 "비수기 할인 가격이세요"…. 대한민국이 어법에 맞지 않는 말투로 '높임말 인플레' 현상을 겪고 있다. 식당에선 손님이 종업원을 '이모'라 부르고, 상점에선 손님을 '아버님' '어머님'이라 부르는 게 당연한 것처럼 인식될 정도다. 별생각 없이 틀린 높임말과 호칭을 쓰는 동안 한국어 어법(語法)이 뒤틀리고 있는 것이다.

"이 옷 예쁘시죠?"라니

최근 KBS2의 '개그콘서트'에는 느닷없는 석 줄짜리 자막이 삽입됐다. '뿜엔터테인먼트' 코너에 등장하는 '~하실게요' '~하고 가실게요'라는 유행어가 어법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고 가실게요〉는 주체 높임형 선어말어미 '-시'와 약속형 종결어미 '-ㄹ게'가 함께 쓰인 잘못된 표현으로, 〈~할게요/~하겠습니다〉가 바른 표현입니다"란 이 자막에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먹겠다" "자막이 개그 아니냐"는 반응이 뒤따랐다.

 

잘못된 존대 사례
그래픽=박상훈 기자

"보라 언니 들어가실게요"라는 문장이 말이 되지 않는 이유를 쉽게 말하자면, '남의 행동을 높이는 표현'과 '자신의 의지를 나타내는 표현'은 한 어절에서 동시에 쓰일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보라 언니 들어가세요"나 "제가 들어갈게요"라고 해야 맞는 표현이다. 하지만 "번호표 받고 기다리실게요" "환자분 돌아누우실게요"처럼 사회 곳곳에서 잘못된 표현을 볼 수 있다.

국립국어원의 분석에 따르면 이 밖에도 존대어를 잘못 쓰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다. ①"저희는 아이스 카푸치노도 제공하세요"는 상대방이 아니라 말하는 '자신'을 높이는 말이고 ②"이 옷 색상 예쁘시죠?" "요즘에는 이런 옷이 트렌드세요"라는 말은 어처구니없게도 상품인 '옷'을 높이고 있다. ③"현금으로 결제하시면 할인이 되세요"처럼 마치 '할인'을 높이는 것 같은 문장도 있는데, '(고객님께서) 할인받게 되세요'라는 말을 멋대로 줄이다 보니 잘못된 표현이 나온다는 것이다.

식당 종업원이 왜 '이모'인가

'단골집 이모가 제발 싸움은/ 밖에 나가 하라고 하기에….'(가요 '광석이에게') '식당 이모들을 위한 판촉물인 이모 키트는….'(단행본 'CEO에게 생존을 묻다') 식당 종업원을 가족 호칭인 '이모'라고 부르는 최근의 관행은 이제 대중가요 가사와 책에도 그 용례가 나타나고 있다. "식당에서 아줌마라고 불렀더니 화를 벌컥 내더라"는 경험담도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젊은 여성 종업원에게는 나이와 상관없이 '언니'라 부르고, 반대로 종업원이 손님에게 '아버님' '어머님'이라 부르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

이 문제에 대해 국립국어원이 '교통정리'를 한 것이 있다. 지난해 발간한 '표준 언어 예절'에서는 ▲손님이 여성 종업원을 부를 때 '아주머니' '아가씨' '여기요' '여보세요'를 상황에 따라 적절히 사용하며 ▲'아줌마' '언니' '이모'는 피해야 할 말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미 '호칭 인플레'가 상당히 이뤄진 상황에서 섣불리 '아주머니'나 '여기요'라고 불렀다가 서비스를 제대로 받을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없지 않다.

'소통 부재'가 잘못된 표현 불러

이처럼 잘못된 높임말과 호칭은 어법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사회적 소통의 부재(不在)에서 기인한다는 시각이 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인식하기보다는 타인과 맺은 관계 속에 묻어가려는 한국인의 심리 때문"이라고 했다.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다 보니 언어 표현에서 모든 대상을 높이게 되고, 식당에서도 마땅히 받아야 할 서비스를 미안해하는 심리가 '가족 관계 호칭'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박종성 서원대 정치사회학과 교수는 "정상적인 대화 없이 자라난 젊은 세대가 왜곡된 표현에서 오히려 쾌감을 느끼는 면도 없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