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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수로보니게 여인 2013. 9. 28. 18:00

입력 : 2013.09.27 03:18 | 수정 : 2013.09.27 11:07

최인호는 해방둥이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3남 3녀 중 둘째 아들인 그가 열 살 때 부친이 갑자기 병으로 세상을 떴다.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란 최인호는 형이 입던 교복을 늘 줄여 입고 다녔다. 여기저기 기운 옷이라 친구들이 '걸레'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는 "가난이 안긴 열등감을 글쓰기로 이겨냈다"고 했다.

▶최인호는 1961년 서울고 1학년 때 잡지 '학원'에 시를 투고했다. '하늘은 마냥 힘찬 노래를 부르고 새는 퍼런 심연(深淵)을 그리고 앉았는데…'라는 시 '휴식'이었다. 박두진 시인이 우수작으로 뽑으며 "고등학교 1학년의 나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안정된 정신 자세다. 더욱 정진하라"고 극찬했다. 이듬해 최인호는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보낸 단편 '벽구멍으로'가 가작에 뽑혀 문재(文才)를 떨쳤다.

 

▶대학생 최인호는 1966년 여러 신춘문예에 소설을 투고해 놓고 군대에 갔다. 훈련소 연병장에서 단체 기합을 받다가 '당선 축하. 조선일보'라는 전보를 받았다. 제대한 최인호는 1970년부터 산업화와 인간 소외를 다룬 소설을 잇달아 내놓았다. 샤머니즘과 한(恨) 같은 전통 정서에서 벗어난 젊은 작가로 우뚝 섰다. 스물일곱엔 아파트 신풍속도를 다룬 '타인의 방'으로 현대문학상을 받았다.

▶최인호는 1972년 장편 '별들의 고향'을 조선일보에 연재했다. 원래 제목은 '별들의 무덤'이었다. 비련(悲戀)의 여인 '경아'가 겪는 짧은 삶을 그리려 했다. 그러나 조간 신문에 걸맞지 않은 이미지를 준다고 해서 '별들의 고향'으로 바꿨다. 그는 사랑의 세태 변화를 산뜻한 문체로 그려내 폭넓은 인기를 누렸다. 나중에 그는 "경아가 잠깐 호스티스로 산 걸 두고 평론가들이 '호스티스 문학'이라고 낙인찍다니"라며 혀를 찼다.

▶최인호는 1980년대 이후엔 소재 폭을 넓혔다. 역사추리소설과 선(禪)불교 소설, 유교 소설도 썼다. 가톨릭에 귀의하더니 기독교적 사랑을 다룬 소설 '영혼의 새벽'을 냈다. 그는 2008년부터 침샘암으로 투병하면서도 2년 전 마지막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발표했다. 그때 그가 전화를 걸어와 "내가 정말 쓰고 싶었던 소설"이라고 말한 게 마지막 통화였다. 그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신을 원망하지 않았다. 병상에서 마지막 순간엔 "주님이 오셨다"며 반겼다. 그는 딸이 "사랑한다"고 하자 "나도"라면서 웃으며 떠났다. 신과 인간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에 영원히 흐르는 것은 사랑뿐인가 보다. 최인호의 삶과 문학은 그런 진리를 일러주며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