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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맥도 모르는 듯 구더기가 움츠리 듯

수로보니게 여인 2013. 3. 29. 11:16

- 이백일곱 번째 이야기
2013년 3월 28일 (목)
숙맥도 모르는 듯 구더기가 움츠리 듯
차라리 숙맥을 구별하지 못할지언정
큰소리치면서 거리낌 없이 굴어서는 안 되며,
차라리 몸가짐을 구더기처럼 할지언정
높은 체 잘난 체해서는 안 된다.

寧不卞菽麥 不宜大言不忌, 寧持身如蛆 不宜自高自伐
녕불변숙맥 불의대언불기, 녕지신여저 불의자고자벌

- 유척기(兪拓基, 1691~1767)
「잡지(雜識)」
『지수재집(知守齋集)』

 

  
  이쯤 되면 옛사람의 신중함도 좀 지나치게 느껴질 법합니다. 숙맥도 구별하지 못하는 듯 입을 다물고, 구더기가 몸을 움츠린 듯 조심하는 것은 요즘처럼 자기 PR이 중시되는 세상에선 좀 과한 듯도 하지요. 그러나 그저 아무 이유 없이 입 닫고 몸조심하자는 것도 이 글의 본의는 아닙니다. 요점은 실답게 하자는 것이지요. 호언장담하고 잰 체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기실 하루 스물네 시간을 돌아보면 큰소리치고 잰 체하고 싶은 욕망 하나가 온몸에 끓고 있지 않습니까? 삼가는 것이 어려울 뿐입니다. 이 글의 작자도 아마 정말로 숙맥도 구별치 못하고 구더기처럼 바짝 굽히라 말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 정도로 경계해야지만 끓는 욕망을 누르고 그나마 허물을 줄일 수 있다는 뜻일 테지요.

  한 가지 일이 있으면 한 가지 이치가 그 안에 있는 것. 이는 고금 천하가 모두 그렇지 않은 법이 없습니다. 일이란 지극히 드러난 것이요 이치란 지극히 은미한 것이니, 지극히 드러난 것은 입을 대기가 쉽고 지극히 은미한 것은 판별해내기가 어렵습니다. 허물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일 속에 숨어 있는 실다운 이치는 말하기가 어렵고, 드러난 일의 일부를 가지고 제 욕심의 근거로 삼으며 큰소리치고 잰 체하면서 이치를 흐리기는 참으로 쉽고 통쾌합니다. 쉬운 것과 욕망하는 것이 만났으니 이 허물에서 벗어나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이겠습니까. 더더구나 요즘처럼 빠른 판단과 성과를 요구하는 세상에서 이 쉬운 것과 이 끓어오르는 욕망을 버려두고 마음을 비운 채 평이한 경지에서 이치를 살필 수 있는 사람이 또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날이 쌓이고 달이 지나 문득 일의 실다운 이치가 환히 드러나는 때가 오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운 마음이 샘솟듯 할 터인데, 이때 가서 후회한들 이미 쏟은 말과 행동을 되돌릴 수 있겠습니까. 비록 자신의 허물이 당장에 드러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이미 그러한 습관을 자기도 모르게 제 몸에 저장한 것이니 오히려 훗날 더 큰 허물로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물론 요즘처럼 빠른 판단과 신속한 결정을 요구하는 시대에 언제까지 이치만 따지고 있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끓어오를수록 그것이 실다운 것인지를 따지고 따지는 것이 이 글의 요체이자 허물을 더는 방법일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저 역시 이 허물에서 벗어나기가 참으로 어려운데, 오늘 또 이 자리에서 큰 소리로 거리낌 없이 굴고 높은 체 잘난 체하고 말았으니, 자신을 그르침이 또한 심하다 하겠습니다.

 

글쓴이 : 이승현(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