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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정성희]학생인권조례가 없앤 日記

수로보니게 여인 2012. 1. 28. 19:43

[오늘과 내일/정성희]학생인권조례가 없앤 日記

 

 

기사입력 2012-01-27 20:00:00 기사수정 2012-01-28 06:07:58

 

개학이 다가오면 아이뿐 아니라 엄마도 덩달아 바빠진다. 밀린 방학숙제며 한 템포 늦춰진 생활리듬을 정상으로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만들기나 실험관찰보고서, 독서록 같은 방학과제들은 아이들도 벼락치기로 해치우는데 일기(日記) 앞에서만 머리를 쥐어뜯는다. 어렸을 적 개학 직전에 몰아서 일기를 써본 어른들도 자녀들을 나무라지만은 못할 것이다.

일기는 글쓰기 훈련과 소통 수단

고백하자면 이것도 다 옛날 얘기다. 아이들이 일기 쓰는 걸 본 게 오래전이다. 경기도에서 지난해 3월부터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면서부터다. 물론 학생인권조례가 일기를 쓰지 말라고 하진 않는다. 교직원이 학생 동의 없이 소지품 검사를 하거나 일기장 개인수첩 같은 학생의 사적 기록물을 열람할 수 없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일기검사를 하지 않으니까 대부분의 학생이 일기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기를 쓰게 하고 싶은 교사는 ‘꼼수’를 동원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일기를 제출하도록 하되 일기검사를 원치 않는 학생은 표지에 “내 일기를 보지 마세요”라는 메모를 붙이게 하도록 한다. 원하는 사람만 일기를 제출하도록 하는 교사도 있다. 물론 대다수 교사들은 이런 일도 하지 않는다. 일기의 효용성을 믿는 나는 아들에게 “일기를 쓰라”고 강요에 가깝게 권고했는데 아들의 반응이 걸작이다. “인권침해라고 (김상곤) 교육감한테 전화할 거야.” 일기검사가 아닌 일기쓰기를 인권침해로 오독(誤讀)해 엄마를 인권침해사범으로 몰아붙일 태세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의 일기장을 검사하는 것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양심의 자유 등 헌법에 보장된 아동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결정했다. 당시에도 이 결정은 뜨거운 논란을 불렀다. 일기검사를 할 경우 일기는 내밀한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잃게 되고 일기 쓰는 일이 ‘하기 싫은 숙제’로 전락하기 쉽다. 그래서 “친구들과 놀았다. 참 재미있었다”는 식의 맹탕 일기가 양산되기도 한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기를 쓰면서 위선적 태도가 길러진다는 주장에도 수긍이 가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일기는 이러한 단점을 뛰어넘는 장점을 갖고 있다. 반성하는 습관, 기록으로서의 가치, 글쓰기 훈련 등 일기의 효용성은 더 언급할 필요도 없겠거니와 요즘 주목할 것은 학생과 교사의 소통수단으로서의 가치다. 최근 얘기를 나눴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일기검사가 없어져 편해졌다. 하지만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알 도리가 없다”고 답답해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일기장에는 대개 담임교사가 간단한 코멘트를 달아준다. 친구와 다툰 얘기를 쓰면 “속상했겠구나”, 할머니가 아프다는 내용이면 “빨리 나으시도록 선생님도 기도할게” 같은 식이다. 이런 피드백을 통해 아이들은 교사와 소통하면서 속내를 털어놓게 된다. 민감한 교우관계나 고민거리도 포착해낼 수 있다.

손발 묶인 교사들 슈퍼맨 아니다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소지품 검사도 마찬가지다. 한 남자고등학교 교장은 “불시에 소지품 검사를 하면 가발부터 콘돔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쇠망치 자전거체인이라고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체벌이 없고 두발 복장이 자유로운 미국 학교에서도 학교 내 금지 물품이 정해져 있고 반입 시 처벌된다.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 나라의 특징을 반영한 결과겠지만 어떤 학교들은 등교시에 책가방을 금속탐지기에 통과시킨다.

나는 두발 복장 자율화 같은 사안은 학교가 수용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걸 꼭 조례로 정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머리 길이나 색깔도 규제하는 학교라니 시대착오적이고 숨 막힌다. 하지만 학생지도를 위한 손발은 다 묶어놓고 교사에게 수업도 잘하고 왕따 폭력까지 예방하라고 하면 슈퍼맨인들 해내겠는가.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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