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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당선은 ‘작가 면허증’일 뿐… 10명 중 4명 자기 책 못내

수로보니게 여인 2011. 11. 28. 22:31

신춘문예 당선은 ‘작가 면허증’일 뿐… 10명 중 4명 자기 책 못내

 

기사입력 2011-11-23 03:00:00 기사수정 2011-11-23 05:34:38

 

2000∼2002년 8개 일간지 신춘문예 당선자 50명, 10년 후 삶의 주소

 

 

2012년 신춘문예의 막이 올랐다. 신춘문예를 주관하는 신문사들은 이달 나란히 공고를 내고 다음 달까지 작품을 접수한다. 마감을 앞둔 문청(文靑·문학청년)들의 가슴이 설레고 조바심이 나는 것도 이때쯤. 1925년 동아일보가 처음 시작한 신춘문예는 80년 넘게 흘렀지만 여전히 가장 화려한 등단 코스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신춘문예 당선은 작가 라이선스를 받은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당선자가 문단에서 입지를 다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본보는 2000∼2002년 3년간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한국일보, 문화일보, 세계일보, 서울신문 등 8개 중앙 일간지가 주최한 신춘문예 시, 소설 부문 당선자 50명을 대상으로 등단 후 약 10년이 흐른 지금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추적했다. 10명 가운데 4명은 아직 자신의 책(소설, 시집 등 작품집)을 출간하지 못했으며 3권 이상 책을 내며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는 5명에 한 명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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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가 되지 못한 작가’ 열 가운데 넷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주위에서 축하 인사에 이어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은 “책은 언제 나오나”다. 매년 봄 신춘문예 시, 소설 수상작품집이 출간되지만 자신의 이름을 건 작품집을 내기까지는 보통 수년이 걸린다. 신춘문예 심사위원들은 응모자들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뽑기도 하지만 출판사는 현실적인 경쟁력을 중점적으로 보기 때문에 출간은 당선자들이 넘어야 할 또 다른 벽이다.

본보가 조사한 결과 2000∼2002년 일간지 8곳이 배출한 시, 소설 부문 당선자 50명 가운데 단행본 시집이나 소설책(동시, 동화 포함)을 한 권 이상 낸 작가는 29명(58%)이었다. 나머지 21명(42%)은 등단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책을 내지 못했다. 한 권 낸 작가는 12명(24%), 두 권 낸 작가는 6명(12%)이었다. 10여 년 동안 책을 내지 못했거나 두 권 이하의 책을 내며 활발히 활동하지 못한 작가가 전체의 78%에 달했다. 4권을 낸 작가는 4명(6%), 5권 이상은 5명(10%)에 그쳤다.

○ “당선된 해 가을부터 청탁 딱 끊겨”

신춘문예에 당선되면 새해 첫날 아침 신문 1면에 이름이 실리고, 당선 작품이 신문에 게재된다. 언론 매체나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고, 이름 뒤에 꼬리표처럼 ‘OO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라는 수식어가 달려 당선자의 어깨가 으쓱해진다. 하지만 주위의 관심은 금세 시들고, 당선자는 홀로 남게 된다. 이때부터 첫 책을 내기까지 2, 3년이 가장 버티기 힘들다고 당선 작가들은 입을 모았다.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출신인 소설가 백가흠 씨(37)는 “당선되고 반짝 일했는데 그해 가을부터 청탁이 딱 끊기더라. 2년여 동안 청탁이라는 게 산문이든 소설이든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짐작보다 훨씬 힘들었다. 갓 데뷔했을 때 화려함에 비하면 그 다음은 정말 소설과 나의 싸움이었다. 이전에는 학원 강사도 하고 여러 아르바이트도 했는데 당선되고 나니 그런 일을 못하겠더라. 결국 나를 안쓰럽게 생각한 출판계 선배들이 (문예지에) 지면을 만들어줬는데 그게 굉장히 소중했다.”

2000년 중앙일보 시 부문 당선자인 박성우 씨(40)는 “당선된 직후에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구나 싶었는데 그 환상이 딱 석 달 지나니까 깨지더라. 다른 동료나 선배 시인들의 시를 보면 내 시는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때부터 2, 3년 버티면서 시를 쓸 수 있느냐, 그것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느냐가 작가로 살아남는 갈림길 같다”고 말했다.

낯선 문단 활동도 갓 등단한 신인작가에게는 부담이다. 2001년 동아일보 시 부문 당선자인 김지혜 씨(35)는 “신춘문예 당선자들은 청탁하거나 책을 내주는 문예지의 후원이 없어 본인 실력으로만 살아남아야 한다. 문단에서 안면을 익히는 게 중요한데 거기에 관심이 없거나 서툴면 소외되기 쉬운 점도 있다. 자기 PR를 해야만 살아남는 구조”라고 말했다.

○ 강사 겸직 많아, 동화로 부문 바꾸기도
당선 10년 뒤 이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조사 대상자 50명 가운데 연락이 닿은 29명을 전화 설문한 결과 전업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이 10명(34.5%)으로 가장 많았고 대학이나 문화센터 강사(6명·20.7%), 문학관이나 출판사 직원(5명·17.2%) 순이었다. 당선 이후 문학과 관련된 일을 하는 비율은 72.4%였다. 나머지는 대기업 홍보팀 직원, 주부, 군인, 카페 운영, 연극배우 등으로 다양했다. 전업 작가 가운데 절반이 동화나 동시를 쓰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어린이 책 시장이 성장한 데다가 신인 작가가 입지를 다지기에 상대적으로 손쉬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조선일보 희곡 당선자인 강석호 씨(40)는 “2006년 이후로 희곡을 무대에 올리지는 못했다. 지금은 동화와 희곡이 결합된 형태의 책을 쓰고 있고, 지난해 6권을 냈다”고 말했다.

○ “여전히 가장 매력적인 등단 코스”
2000∼2002년 시, 소설 부문 당선자 가운데 각종 문학상을 받으며 왕성히 활동하는 작가는 한 손으로 꼽을 만큼 적지만 조사에 응한 사람들 대부분은 신춘문예를 여전히 가장 매력적인 등단 코스로 꼽았다. 2000년 동아일보 중편소설 당선자인 조민희 씨(37)는 “당선 이후 출간 제의뿐만 아니라 광고회사와 영화사 쪽에서 여러 제의를 받았고 많은 기회가 있었다. 인생에서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 자체가 혜택이었다”고 말했다.

2000년 문화일보 시 부문 당선자인 김규진 씨(52)는 이렇게 말했다. “문학의 시대도 아닐뿐더러 시의 시대는 더욱 아니다. 시인들이 천연기념물이 된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시를 쓰고, 읽는다. 그들에게 신춘문예는 여전히 평생 한 번은 달성하고픈 꿈이 아닐까.”

▼신춘문예의 계절… 선배들의 조언 ▼
문단 데뷔를 노리는 문청 ‘글쟁이’들에게 요즘은 ‘수험의 계절’이다.

신춘문예로 등단한 선배 작가들은 대개 “비방은 없다”면서도 “안정된 실력과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기본기 탄탄한 작품을 내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원고 분량이 적지 않은 소설과 희곡의 경우, 첫 페이지와 첫 장면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게 좋다. 지난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는 2505명의 응모자가 7110편에 이르는 응모작을 쏟아냈다. 심사위원도 문학인이기에 앞서 사람이다. 전체적 짜임새가 탄탄하거나 후반부 독창적 반전을 품고 있다고 해도 독자나 관객을 5분 만에 졸음에 빠뜨릴 수 있는 도입부는 위험하다.

소재와 주제에 있어 자유롭게 접근하되 ‘현실적 소재를 현실감 없게’ 다루면 곤란하다. 지난해의 동아 신춘문예의 경우 “실제 체험보다는 인터넷 댓글을 확대한 데 머물거나 소재만 신기한 데 그치는 작품이 적지 않다”는 심사위원의 지적이 있었다. 골방에서 폐쇄적인 글쓰기를 했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은 득이 되지 못한다. 같은 소재를 다루더라도 시각에서 참신함을 드러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문장력에 자신이 있다면 신인다운 실험적인 작품으로 승부를 걸어볼 수 있다. 희곡의 경우, 문학성을 높이 쳤던 예전과 달리 최근에는 트렌디하고 젊은 감각의 작품이 당선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신춘문예는 ‘겉늙은이’ 같은 노회함보다는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신인의 패기 어린 도전을 높이 평가한다. 다만, 문장력과 작품을 관통하는 철학이 동반돼야 한다는 게 당선자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시 부문의 경우, 너무 많은 작품을 출품하는 것은 득 아닌 독이 될 수 있다. 심사위원들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덜 좋은 작품들이 좋은 작품들의 평균을 깎아 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쟁이 치열한 본심으로 갈수록 심사자들이 ‘옥의 티’를 찾아 좁혀가므로 작품의 안정성은 기본이다.

불같은 목표의식과 치밀한 전략이 능사는 아니다. 당선자 가운데는 마음속에 떠오르는 단상을 담담히 써내려가다 맘에 차는 시가 세 편 나왔을 때 비로소 신춘문예를 생각했다는 이도 있었다.

당선작이 새해 첫 신문에 게재된다는 점도 감안할 만하다. 지난해에는 잉여, 실직, 생활고 등을 우울하게 토로하는 자기고백적 작품이 범람했다.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자인 김정훈 씨(42)는 “자살 등 지나치게 어두운 이야기보다 새해에 신문을 펼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밝은 이야기를 쓰는 것도 좋다”고 조언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blog_icon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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