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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학사

수로보니게 여인 2011. 8. 29. 19:27

 

 

1. 한국문학사에서 근대의 기점으로 제시된 견해를 요약하라.

2. 190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발행된 잡지 10종을 제시, 각 특성을 기술하라.

 

1) 근대의 기점론

 

서론

   문학사에서 근대근대의 기점에 대한 본격전인 논의는 197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근대의 기점에 대한 문제는 문학사 서술에서 매우 중요한 쟁점이 되었으며 지속적으로 담론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은 근대의 기점을 설정하는 일이 단지 문학사를 쓰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닌 까닭이다.

근대의 기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문학예술의 전통적 미학관이 확립 될 것이며,

*근대화가 곧 서구화라는 편협 되고 왜곡된 기술방법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현대문학의 세계사적 및 민족사적인 당면과제가 좀 더 명확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본론

   쉽지 않은 근대시점을 밝히기에 앞서 먼저 근대의 특징을 살펴보자.

 

근대의 특징

*시민의 경제적 성장과 이를 바탕으로 한 국가의식의 성립과

*자체 내의 구조적 모순과 갈등을 이해하고 극복하려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사에서 근대의 기점이란 이러한 근대의식이 작품배경에 수용, 적응된 시기를 잡아야 할 것이며, 소수의 선각자가 아닌 다수민중의 근대화의식이 담긴 작품의 등장을 그 기점으로 삼아야 함은 자명한 이치라 하겠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문학사에 제시된 학자들의 기점시기를 살펴보자.

 

   먼저 18세기 후반 영정조 시대의 상인계급의 대두, 실사구시, 서민계급의 성장에 따라 나타난 근대성을 시작으로 사설시조, 판소리, 고소설 등 서민의 감정을 다룬 작품들이 등장한 때를 기점 화 하자는 주장(김윤식김현, 한국문학사, 1973)이 있고

   1860년 동학창시에 따라 인내천 사상을 기반으로 반제, 반봉건의 이념이 확장되고 이에 따라 교세 확장을 목적으로 지어진 용담유사의  등장, 신재효의 판소리 등에 나타난 근대성을 강조하며 이 시기를 근대의 시점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전규태, 한국현대문학사, 1976)이 있으며

   1894년 갑오개혁이 그 시점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들은 1876년 개항 이후 밀려온 외세의 물결에 따라 사회, 경제 분야의 근대화는 촉진되었고, 사상이나 문학 분야에도 근대화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마련되기는 하였었으나, 이로 인해 봉건체제와 미학관은 붕괴되고, 전대와는 다른 문학관이 형성된 것을 이유로 하여 이때를 근대화의 기점으로 잡아야한다는 입장이 있다.(안확, 조선문학사,1922)

   또 다른 견해는 1906년 이인직의 혈의 누에 나타난 신소설의 근대문학적인 성격에 주목하는 의견이 있다. 이 견해는 남녀평등, 독립사상, 조혼 폐지, 신문물의 도입 등을 들어 이시기를 근대문학의 기점으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백철, 국문학전사,1962)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소설이라는 특정갈래에만 국한되어 있는 까닭에 문학사 전체의 기점을 논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주장이라 하겠다.

 

결론

   북한과는 달리, 한국문학사에서 시대구분은 아직 완벽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다. 이는 정치사회사적 변화를 중심으로 시기구분이 이루어진 까닭이다.

이러한 방법은 현실과 거리가 있을 뿐 아니라 문학적 성취가 높은 작품이 배제될 수 있으며, 함량 미달의 작품이 사회적 맥락과 밀접하다는 이유로 고평가 될 수도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결국 고유한 문학적 가치를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으로 사회적 맥락과 함께 문학 자체 내의 특징과 발전을 균형 있게 고려하여 근대의 기점당위성에 한 걸음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기반이 확립되기를 기대한다.

 

2. 190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발행된 잡지 10종을 제시. 각 특성을 기술하라.

 

   1894년 갑오개혁에 의해 반상제도가 철폐되고 근대적 제도개혁이 이루어지게 됨에 따라 국문연구와 국문사용 운동, 인쇄술의 발달, 시장경제의 개념도입 등의 변화가 필연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고, 우리 문학 역시 중세문학에서 근대문학으로의 이행기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내용과 형식의 신소설, 신체시, 신연극, 개화가사, 창가 등이 산출되었다.

 

년대별 작품집과 특성을 살펴보면

 

   근대 잡지의 효시로 평가되는 소년(1908)191410월에는 종합지 체제를 갖춘 청춘지가 창간되었다. 최남선은 두 잡지를 통해 선진문명의 흡수를 통한 주권회복, 곧 계몽에 목적을 두었으며, 이들 잡지를 통해 언문일치가 뿌리내리게 되는 성과를 획득했다. 또한 현상모집을 통해 신진작가들을 발굴하는데 기여를 하기도 했다.

   3·1운동 이후 신문과 잡지, 동인지의 발간이 활발해지며 문단형성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최초의 주간문예지태서문예신보를 비롯해, 최초의 문예월간지 창조, 조선의 현실을 퇴폐주의적인 정조로 표현한 폐허를 통해 김억, 염상섭의 평론활동이 시작되었으며, 박영희, 나도향, 이상화 등의 낭만적이고, 유미주의적 경향의 작품이 백조를 통해 발간되었는데 이는 3·1운동실패에서 온 절망감이 반영된 것에서 기인한다.

   『창조를 비롯해 단호 발행에 그치는 등 불안정 수준의 그간의 잡지들은 폐쇄적이고 비대중적인 속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개벽의 창간은 문단활동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고 사회주의 문학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위 해외문학파라 불리는 이들의 출현이 있었으니 이들은 민족문학파프로문학파의 대립 속에 제3의 집단으로 서구문학을 연구 소개하고 저조한 조선 문단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귀국한 이들이다. 이들은 해외문학, 시문학, 문예월간등을 통해 순수문학을 전개하고 극예술 연구회를 중심으로 연극운동을 펼치던 이들이다.

   이후 1930년대 중반에는 삶 자체를 치열하게 탐구하고 형상화하는 '생명파'라 통칭되는 이들이 나타나 인간의 육성과 본능적 울림에서 생명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이태준, 박태원, 이효석, 정지용, 김기림, 김유정 등이 중심이 되어 '구인회'를 결성, 순연한 연구의 입장에서 서로의 작품을 비판, 다독다작을 목적으로 한다는 기치아래 한국근대문학양식을 구축해나갔다. 1936년 동인지 시와 소설을 발간했으나 동인간의 작품성 불일치와 분열을 이유로 애초의 뜻에 이르지 못한 채 공적 없는 이름으로 해체되고 말았다. 그렇기는 해도 구인회의 문학은 "문학이란 언어예술"이라는 인식위에, 문장의 형식미에 주력 단독정부 수립이후 남한문학의 주도적인 흐름을 형성, ‘순수문학을 문학적 주류로 끌어올린 중심세력으로 평가된다.

 

   구인회의 해체와 함께 이태준 정지용은 문장을 통하여 다시 일제 말기의 신세대 문인들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문화의 자주적 창조의식은 매우 고조되었으나 광복의 감격과 이념 분열의 혼란은 문단도 지나치지 않았다. 작가들은 좌우로 양분되고 작품도 이데올로기에 편향되는 경향을 보였다.

 

   6. 25를 전후 좌경작가의 월북과 잠적, 좌우의 사상적 대립은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의 문예지로는 신문예를 비롯해서 신문학, 문학등이 있었고, 신천지1950년대 전반을 대표하는 종합문예지로 주요 문인들의 작품을 매호3/1의 지면을 할애해주기에까지 이른다. 전위적인 시인들과 신진비평가들의 논쟁적 평문은 광복 후 한국문단 형성기의 문학 분단 권력에 치중된 복잡한 잡지가 되고 말았다.

 

결론

   21세기의 다원적 구도 속에서 역사속의 주체인 인간을 역사적 인식과 심미적 인식, 이 둘을 만족시킬 수 있는 촉진제로서의 작품이, 다양한 매체만큼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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