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호열
우리가 일방적으로 겪게되는 사랑의 부재와 이별, 이런 것들을 감수해야 하는
고독한 한 사람의 내면 풍경을 그리고 싶은데, 어떤 구체적 정황이 결여 되어 있어
글 쓴이의 발상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하기 때문에 어색하게 보인다.
** 시는 절실한 나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미적으로 승화 시켜야한다.
임보 시인의 글 인용
나는 시도 소설 못지 않게 읽어서 즐거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독자가 시를 외면하는 가장 큰 요인은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들이 읽히기를 바란다면 우선 재미있게 쓸 일이다.
나는 시를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주로 두 가지 장치를 선호한다.
* 첫 째는 가능하다면 운율에 싣고자한다. 가락은 시를 흥겹게한다.
같은 내용이면 가락에 실어 표현하는 쪽이 보다 효과적이다.
운율은 시를 시이게 하는 원초적 자질인데 요즈음의 자유시들 가운데는 아예 운율을 회피하려는
경향도 없지 않다. 이는 운율을 시의 구속으로 잘못 판단 하고 있는 때문으로 보인다.
운율은 시의 장애물이 아니라 독자의 흉금을 흔들 수 있는 무기다.
음악의 가락이 얼마나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는가만 보아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시에는 시의 형식, 곧 시의 질서가 있다. 결코 무질서한 글이 아니다.
자유의 이름으로 질서를 깨뜨린다면 이는 방종에 불과하다.
아무나 시인이 될 수 없는 것은, 시의 질서를 지켜 글을 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운율은 시의 질서를 부여하는 중요한 장치의 하나다.
* 둘 째는 시의 내용을 구상화하는 일이다. 달리 말하면 스토리화 한다.
흥미를 유발하는 소설적 요소를 시에 끌어드린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사건을 담는 시는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오래 기억에 남는다.
산문체의 긴 시에서는 물론이고, 나는 짤막한 단시 속에도 즐겨 이야기를 담는다.
그러면 시가 흥겹고 재미만 있으면 다 되는가. 사실 그렇지 않다.
재미 있는 소설이 다 훌륭한 소설이 될 수 없듯이 시도 마찬가지다. 격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시인의 품격은 사람의 체취처럼 시인의 인품에서 자연히 스며나온 것이므로 억지를 부려
얻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시인을 구도자의 반열에 앉히고자 한다. 사실 시인의 어려움은 여기에 있다.
시인의 파라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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