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衣從軍
조선시대 관리들이 의식에 참가할 때 복장은 금관조복(金冠朝服)이었다.
검은색과 금색으로 된 금량관(金梁冠)을 쓰고 붉은 비단으로 만든 조복을 입었다.
집무 때는 소매가 넓고 깃이 둥근 단령(團領)을 입고 직급에 따라 색깔이 다른 도포를 걸쳤다.
무관이 입는 천릭 협수 전복(戰服) 등 군복은 다양한 문양을 넣어 화려함이 더했다.
그러나 일반 백성은 대개 흰옷을 입었다. 그래서 '백의(白衣)' 는 벼슬하지 않은 사람의 상징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두 차례 백의종군(白衣從軍. 벼슬 없이 군대를 따라감) 했다.
첫 째는 함경도 녹둔도 둔전 관이었던 1587년 여진족의 기습을 막지 못한데 책임을 지고서였다.
그는 이듬해 여진족 정벌전에서 공을 세워 사면됐다.
충무공은 10년 뒤 임진왜란 때 또 한 번 白衣從軍하게 된다.
부산에 있던 가토 기요사마의 倭軍을 공격 하라는 조정의 명령을 전략상 판단으로 따르지 않아 파직된 것이다.
그는 후임인 원균이 칠 천량에 해전에서 대패하고 전사한 뒤 다시 수군(水軍)총 지휘관이 됐다.
백의종군은 이처럼 대부분 패전과 관련된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중종 7년 5월 7일 부제학 권민수가 쓴 상소에는 "예로부터 변방의 백성이 한 사람이라도 오랑케에게 납치되면 주장(主將)은 백의종군하였다" 는 내용이 나온다. 임진왜란 발발 직후에는 임금의 피란 행렬을 호위하는 무사들이 너무 적다고 하여 책임자들을 백의종군시키기도 했다.
白衣從軍하는 장수의 신분에 대해서 '병졸 강등' '보직 해임' 등으로 해석이 엇갈린다.
소설에선 白衣從軍하는 장수들이 매우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순신이 첫 백의종군 때 참가한 여진족 정벌전을 그린 전투도에는 그가 장수의 한 사람으로 돼 있다. 백의종군은 잘못에 대한 처벌인 동시에 명예회복의 기회이기도 했던 것이다.
요즘 백의종군을 말하는 사람은 군인이 아니라 주로 정치기다. 대통령이나 당 대표,
단체장 등에 출마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보통 "白衣從軍하겠다" 고 한다.
2005년 줄기세포 조작 놀란 때 황우석 서울대 교수도 '백의종군' 을 말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대통령후보 경선 패배 후 '백의종군' 의사를 밝히자 그 해석이 분분하다.
박 전 대표가 '白衣' 와 '從軍' 중 어느 쪽에 뜻을 더 두고 있는지 얼마 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2007년 조선일보: 이선민 논설위원
萬物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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