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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세설신어] [14] 청선(聽蟬)

수로보니게 여인 2009. 7. 31. 23:54

 

[정민의 세설신어] [14] 청선(聽蟬)

한양대교수·고전문학

입력 : 2009.07.30 22:08 / 수정 : 2009.07.30 23:10 

 

퇴계 선생이 주자(朱子)의 편지를 간추려 '회암서절요(晦菴書節要)'란 책을 엮었다. 책에 실린, 주자가 여백공(呂伯恭)에게 답장한 편지는 서두가 이랬다. "수일 이래로 매미 소리가 더욱 맑습니다. 매번 들을 때마다 그대의 높은 풍도를 그리워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남언경(南彦經)과 이담(李湛) 등이 퇴계에게 따져 물었다. 요점을 간추린다고 해놓고 공부에 요긴하지도 않은 이런 표현은 왜 남겨 두었느냐고.

퇴계가 대답했다. "생각하기 따라 다르다. 이런 표현을 통해 두 사람의 정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다. 단지 의리의 무거움만 취하고 나머지는 다 빼면 사우(師友) 간의 도리가 이처럼 중요한 것인 줄 어찌 알겠는가. 나는 여름날 나무 그늘에서 매미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주자와 여백공 두 분 선생의 풍모를 그리워하곤 한다."

나무의 높은 가지에서 우는 매미 소리를 들으면서, 주자는 여백공의 높은 인격을 그렸다. 퇴계는 그 소리를 듣고 두 사람 사이에 오간 그 마음을 떠올렸다. 남언경과 이담은 공부하는 사람의 엄정함을 들어 편지 서두의 의례적 인사말을 왜 삭제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같은 표현에서 읽은 것이 달랐다. 퇴계에게 매미 소리는 높은 인격을 사모하는 촉매였지만, 두 사람에게는 시끄러운 소음이었을 뿐이다.

의리의 무거움만 알아 깊은 정을 배제하는 데서 독선(獨善)이 싹튼다. 뼈대가 중요하지만 살이 없으면 죽은 해골이다. 살을 다 발라 뼈만 남겨놓고 이것만 중요하다고 하면 인간의 체취가 사라진다. 명분만 붙들고 사람 사이의 살가운 마음이 없어지고 보니 세상은 제 주장만 앞세우는 살벌한 싸움터로 변한다. 퇴계 선생의 이 말씀이 더욱 고마운 까닭이다. 윤증(尹拯)도 이 뜻을 새겨, 그의 '청선(聽蟬)'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며칠 새 매미 소리 귀에 가득 해맑아, 고개 돌려 높은 풍도 그리워하게 하네.(數日蟬聲淸滿耳, 令人回首溯高風)"

매미 울음소리가 도처에 낭자하다. 새벽 아파트 베란다 창에 한 마리가 붙어 울면 온 식구 잠이 다 깬다. 학교 숲길은 종일 아이들 합창대회 연습장 같다. 이언진(李彦眞)의 "저녁 볕 들창에 환하고, 매미 소리 나무에 가득타.(斜陽明窓 蟬聲滿樹)"란 구절을 써 붙인다. 무더위에 찌들었던 마음이 환하게 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