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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세설신어] [10]열하일기 완성본기사

수로보니게 여인 2009. 7. 3. 23:40

 

[정민의 세설신어] [10]열하일기 완성본기사
입력 : 2009.07.02 22:44 / 수정 : 2009.07.02 22:44

여행은 낯선 풍물 속에서 자신과 맞대면하는 일이다. 1780년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은 종형인 박명원을 따라 연행길에 동행했다. 그는 여정 도중 곳곳에서 당시 조선의 맨얼굴을 보았다.

망한 지 130년이 더 된 명나라의 연호를 아직도 고집하는 나라. 백이 숙제의 사당을 지날 때면 우정 싸 가지고 간 고사리나물을 먹고 사당에 참배하며 그 절의를 기리는 사람들. 우리를 돕다가 망했으니, 청을 무찔러 명나라에 대한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얼핏 보아 당당한 북벌(北伐)의 논리. 사람들은 그들의 발전한 문물은 오랑캐 냄새가 난다며 굳이 외면한다. 대신 전국시대 연나라 왕이 황금을 쌓아 놓고 천하의 인재를 초빙했다는 황금대(黃金臺)나 범인 줄 알고 활을 쏘았는데 밝은 날 보니 바위에 화살이 깊이 박혀 있더라는 사호석(射虎石) 등 옛 중화의 묵은 자취만 찾아 나선다.

현실은 어떤가 그토록 자랑스러운 북벌의 대의는 한눈에 보아도 턱없는 소리다. 어렵사리 준비해 간 고사리나물은 먹고 배탈이 나서 소동만 일어난다. 물어물어 찾아가 봐도 황금대는 흙무더기에 지나지 않고, 사호석은 덩그런 돌덩어리일 뿐이다. 황제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티베트의 판첸 라마 앞에 예배를 올린다. 한족(漢族) 지식인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오랑캐 머리로 깎고 그 황제를 칭찬한다. 뭔가 이상하다. 우리는 저들을 위해 북벌이라도 하겠다는데, 정작 저들은 지금이 옛날보다 훨씬 낫다고 한다. 오랑캐의 지배를 받는 것이 창피하지 않으냐고 물어도 고개를 내저으며 이쪽을 외려 수상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연암은 묻는다. 왜 우리는 하나로만 줄 세우기를 하는가 이것만 되고, 이것이라야만 하는 경직된 소중화(小中華)의 자긍심은 이것도 좋고 저것도 상관없는 저들의 포용과 융통성 앞에 번번이 무너진다. 그가 보기에 북벌은 허구적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일기 속에다가 괜스레 '허생전'을 끼워 넣어 북벌의 허구를 풍자하고, '호질'을 베껴다가 지식인의 위선을 질타했다.

'열하일기'에는 금기를 해체하는 스릴이 있다. 그의 글에 당대 독자들은 열광했다. 한 편이 나오기 무섭게 베껴 써서 나눠 읽었다. 필사본마다 버전이 조금씩 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박지원의 아들 박종채가 직접 수정 보완한 저본 '열하일기'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안에 담긴 연암의 정신도 새롭게 음미할 때가 되었다.

 

 

호질(虎叱)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범(호랑이)은 모든 일에 뛰어날 뿐만 아니라 착하고 성스러우며, 문채롭고 무인다우며, 인자롭고 효성이 지극하며, 슬기롭고 어질며, 기운차고 날래며, 용맹스럽고 사나워 그야말로 천하에 대적할 이가 없다. 그러나 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격으로 비위( 胃), 죽우(竹牛), 박(駁), 오색사자, 자백, 표현, 황요 등은 호랑이를 잡아먹는 사나운 짐승으로 알려져 있다.

활이란 동물은 뼈가 없는 관계로 호랑이가 꿀떡 삼켜 버리면 뱃속에 들어가서 그 간을 떼어 먹으며, 추이(酋耳)란 짐승은  호랑이를 갈기갈기 찢어서 잡아먹는 습성이 있다. 그리고 호랑이가 맹용을 만나면 무서워서 눈을 감고 보지도 못한다. 그러나 사람은 이와는 반대로 맹용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호랑이를 무서워한다. 어쨌든 그 위엄이란 굉장하다.

범이 개를 잡아먹으면 술을 마신 것처럼 취하고 범이 사람을 한번 잡아먹으면 그 창귀가 굴각이 되어 범의 겨드랑이에 붙어 살면서 범을 남의 집 부엌에 인도하여서 솥전을 핥으면 그 집 주인이 갑자기 시장끼를 느껴 한밤중이라도 아내더러 밥을 지으라 하게 되면 두번째로 그 사람을 잡아 먹는다. 그러면 이올이란 귀신이 되어서 호랑이의 볼에 붙어 다니며 모든 것을 잘 살핀다. 만약 산골짜기에 이르러서 함정이 있으면 먼저 가서 위험이 없도록 차귀를 풀어 놓는다. 호랑이가 세번째로 사람을 잡아 먹으면 육혼이란 귀신이 되어서 늘 턱에 붙어서 그가 평소에 잘 알던 친구의 이름을 불러댄다.

어느 날 범이 이 세 귀신을 불러 놓고 하는 말이,

"오늘도 곧 날이 저무는데 어디 가서 먹을 것을 구한단 말이냐."

하니 굴각이 대답하기를,

"제가 전에 점쳐 보았더니 뿔을 가진 짐승도 아니고 날짐승도 아닌 검은 머리를 가진 것이 눈 위에 발자국이 비틀비틀 성긴 걸음, 뒤통수에 꼬리가 붙어 꽁무니를 감추지 못하는 그런 놈입니다."

하고 다음에 이올이 말하기를,

"동문에 먹을 것이 하나 있는데, 그 놈의 이름은 의원(醫員)이라고 합니다. 의원(醫員)은 약초를 다루고 먹으니 그 고기도 별미(別味)인 줄로 아옵니다. 그리고 서문에도 먹음직스러운 것이 있는데 그것은 무당 계집입니다. 그 계집은 천지 신명께 온갖 미태(媚態)를 부리고 매일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하여 깨끗하고 맛있는 계집이오니 의원과 무당 계집 둘 중에서 골라서 잡수시길 바라옵니다."

하니, 범이 화를 내며 하는 말이,

"도대체 의원이란 무엇인가? 의(醫)란 의(疑)가 아니더냐? 저 자신도 의심스러운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시험하여, 해마다 남의 목숨을 끊은 것이 몇 만이 넘는다. 또한 무당이란 것이 무엇이냐. '무(巫)란 무(誣)라고 하지 않더냐? 결국 무당이란 공연히 뭇 귀신을 속이고 사람들에게 거짓말만 하고 있으니 이로 인하여 터무니없이 목숨을 잃는 자가 해마다 수만이 되지 않느냐. 그래서 여러 사람의 노여움은 그들의 뼈 속에까지 스며들어 금잠이란 벌레가 되어서 그들의 뼈 속에서 득실거리고 있단 말이야. 그러한 독기가 있는 것을 어떻게 먹는단 말이냐."

했다. 이에 육혼이 또 말한다.

"어떤 고기가 저 숲속에 있사온데 그는 인자한 염통과 의기로운 쓸개며 충성스런 마음을 지니고 순결한 지조를 품었으며, 악은 머리 위에 이고 예는 신처럼 꿰고 다닌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입으로 제자(諸子)백가(百家)의 말들을 외며, 마음속으로는 만물의 이치를 통했으니 그의 이름은 석덕지유(큰 덕망을 지닌 유학자)라 하옵니다. 등살이 오붓하고 몸집이 기름져서 오미(五味)를 갖추어 지녔답니다."

하였다. 범이 그제야 눈썹을 치켜세우고 침을 내리 흘리며 하늘을 쳐다보고 씽긋 웃으면서 말한다.

"짐(朕)이 이를 좀더 상세히 듣고자 하니 자세히 말하라."

했다. 그러자 모든 창귀들이 서로 다투어 가며 범에게 말하였다.

"음·양을 도(道)라 하옵는데, 저 유가 이를 꿰뚫으며 오행(五行)이 서로 얽혀서 낳고 육기(六氣)가 서로 이끌어 주는데, 저 유가 이를 조화시킨다고 합니다. 그러니 먹어서 맛이 있는 것이 이보다 더한 것이 없으리라."

범이 이 말을 듣고 문득 추연히 낯빛을 붉히며 기쁘지 않은 어조로 말한다.

"아니야, 저 음·양이란 것은 한 기운의 생성과 소멸에 불과하다거늘 그들이 두 가지를 겸했으니 그 고기가 잡될 것이며, 오행이 각기 제 자리에 있어서 애당초 서로 낳는 것은 아니거늘 이제 그들이 구태여 자·모로 갈라서 심지어는 짜고 신맛을 들여서까지 분배시켰으니 그 맛이 순하지 못할 것이며, 육기는 스스로 행하는 것이어서 남이 이끌어줌을 기다릴 것이 없거늘 이제 그들이 망녕되어 재성·보상이라 일컬어서 사사로이 제 공을 세우려 하니, 그것을 먹는다면 어찌 딱딱하여 가슴에 체하거나 목구멍에 구역질이 나서 순하게 소화가 되지 못할 것이 아니냐고."

하였다.

 정(鄭)나라 어느 고을에 벼슬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학자가 살았으니 '북곽 선생(北郭先生)'이었다. 그는 나이 마흔에 손수 교정(校訂)해 낸 책이 만 권이었고, 또 육경(六經)의 뜻을 부연해서 다시 저술한 책이 일만 오천 권이었다. 천자(天子)가 그의 행의(行義)를 가상히 여기고 제후(諸侯)가 그 명망을 존경하고 있었다.

 그 고장 동쪽에는 동리자(東里子)라는 미모의 과부가 있었다. 천자가 그 절개를 가상히 여기고 제후가 그 현숙함을 사모하여, 그 마을의 둘레를 봉(封)해서 '동리과부지려'(東里寡婦之閭)라고 정표(旌表)해 주기도 했다. 이처럼 동리자가 수절을 잘 하는 부인이라 했는데, 실은 슬하의 다섯 아들이 저마다 성을 달리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다섯 놈의 아들들이 서로 지껄이기를,

  "강 건너 마을에서 닭이 울고 강 저편 하늘에 샛별이 반짝이는데, 방안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는 어찌도 그리 북곽 선생의 목청을 닮았을까."

하고 다섯 놈이 차례로 문틈으로 들여다보았다. 동리자가 북곽 선생에게,

  "오랫동안 선생님의 덕을 사모했는데, 오늘밤은 선생님 글 읽는 소리를 듣고자 하옵니다."

하고 간청하매, 북곽 선생은 옷깃을 바로 잡고 점잖게 앉아서 시(詩)를 읊는 것이 아닌가.

鴛鴦在屛(원앙재병) 원앙새는 병풍에 그려 있고,
耿耿流螢(경경유형) 반딧불이 흐르는데 잠 못 이뤄
維 維錡(유심유기) 저기 저 가마솥 세발 솥은
云維之型(운유지형) 무엇을 본떠서 만들었나.
興也(흥야)         흥야랴

  다섯 놈이 서로 소곤대기를,

  "북곽 선생과 같은 점잖은 어른이 과부의 방에 들어올 리가 있겠나? 우리 고을의 성문이 무너져서 여우 구멍이 생겼대. 여우란 놈은 천 년을 묵으면 사람 모양으로 둔갑할 수 있대. 저건 틀림없이 그 여우란 놈이 북곽 선생으로 둔갑한 것이다."

하고 함께 의논했다.

  "들으니 여우의 갓을 얻으면 큰 부자가 될 수 있고, 여우의 신발을 얻으면 대낮에 그림자를 감출 수 있고, 여우의 꼬리를 얻으면 애교를 잘 부려서 남의 꾐을 받을 수 있다더라. 우리 저 놈의 여우를 때려잡아서 나눠 갖도록 하자."

  다섯 놈들이 방을 둘러싸고 우루루 쳐들어 갔다. 북곽 선생은 크게 당황하여 도망쳤다.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볼까 겁이 나서 모가지를 두 다리 사이로 들이박고 귀신처럼 춤추고 낄낄거리며 문을 나가서 내닫다가 그만 들판의 구덩이 속에 빠져 버렸다. 그 구덩이에는 똥이 가득 차 있었다. 간신히 기어올라 머리를 들고 바라보니 뜻밖에 범이 길목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범은 북곽 선생을 보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구역질을 하며 코를 싸쥐고 외면을 했다.

  "어허, 유자(儒者)여! 더럽다."

  북곽 선생은 머리를 조아리고 범 앞으로 기어 가서 세 번 절하고 꿇어앉아 우러러 아뢴다.

  "호랑님의 덕은 지극하시지요. 대인(大人)은 그 변화를 본받고, 제왕(帝王)은 그 걸음을 배우며, 자식된 자는 그 효성을 본받고, 장수는 그 위엄을 취하며, 거룩하신 이름은 신령스런 용(龍)의 짝이 되는지라, 풍운이 조화를 부리시매 하토(下土)의 천신(賤臣)은 감히 아랫바람에 서옵나이다."

  범은 북곽 선생을 여지없이 꾸짖었다.

  "내 앞에 가까이 오지 말아라. 내 듣건대 유(儒)는 유(諛)라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 네가 평소에 천하의 악명을 죄다 나에게 덮어씌우더니, 이제 사정이 급해지자 면전에서 아첨을 떠니 누가 곧이듣겠느냐? 천하의 원리는 하나뿐이다. 범의 본성(本性)이 악한 것이라면 인간의 본성도 악할 것이요, 인간의 본성이 선(善)한 것이라면 범의 본성도 선할 것이다. 너희들의 떠드는 천 소리 만 소리는 오륜(五倫)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고, 경계하고 권면하는 말은 내내 사강(四綱)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도회지에 코 베이고, 발꿈치 짤리고, 얼굴에다 자자(刺字)질하고 다니는 것들은 다 오륜을 지키지 못한 자들이 아니냐? 포승줄과 먹실, 도끼, 톱 같은 형구(刑具)를 매일 쓰기에 바빠 겨를이 나지 않는데도 죄악을 중지시키지 못하는구나. 범의 세계에서는 원래 그런 형벌이 없으니 이로 보면 범의 본성이 인간의 본성보다 어질지 않느냐? 범은 초목을 먹지 않고, 벌레나 물고기를 먹지 않고, 술 같은 좋지 못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으며, 순종 굴복하는 하찮은 것들을 차마 잡아먹지 않는다. 산에 들어가면 노루나 사슴 따위를 사냥하고, 들로 나가면 말이나 소를 잡아먹되 먹기 위해 비굴해진다거나 음식 따위로 다투는 일이 없다. 범의 도리가 어찌 광명 정대(光明正大)하지 않은가. 범이 노루나 사슴을 잡아먹을 때는 사람들이 미워하지 않다가, 말이나 소를 잡아먹을 때는 사람들이 원수로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노루나 사슴은 은공이 없고 소나 말은 유공(有功)하기 때문이 아니냐? 그런데 너희들은 소나 말들이 태워 주고 일해 주는 공로와 따르고 충성하는 정성을 다 저버리고 날마다 푸줏간을 채워 뿔과 갈기도 남기지 않고, 다시 우리의 노루와 사슴을 침노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산에도 들에도 먹을 것이 없게 만든단 말이냐? 하늘이 정사를 공평하게 한다면 너희가 죽어서 나의 밥이 되어야 하겠느냐, 그렇지 말아야 할 것이겠느냐? 대체 제 것이 아닌데 취하는 것을 도(盜)라 하고, 생(生)을 빼앗고 물(物)을 해치는 것을 적(賊)이라 하나니, 너희가 밤낮으로 쏘다니며 팔을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뜨고 노략질하면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심한 놈은 돈을 불러 형님이라 부르고, 장수가 되기 위해서 제 아내를 살해하였은즉 다시 윤리 도덕을 논할 수도 없다. 뿐 아니라 메뚜기에게서 먹이를 빼앗아 먹고, 누에에게서 옷을 빼앗아 입고, 벌을 막고 꿀을 따며, 심한 놈은 개미 새끼를 젖담아서 조상에게 바치니 잔인 무도한 것이 무엇이 너희보다 더 하겠느냐? 너희가 이(理)를 말하고 성(性)을 논할 적에 걸핏하면 하늘을 들먹이지만, 하늘의 소명(所命)으로 보자면 범이나 사람이나 다같이 만물 중의 하나이다. 천지가 만물을 낳은 인(仁)으로 논하자면 범과 메뚜기·누에·벌·개미 및 사람이 다같이 땅에서 길러지는 것으로 서로 해칠 수 없는 것이다. 그 선악을 분별해 보자면 벌과 개미의 집을 공공연히 노략질하는 것은 홀로 천지간의 거대한 도둑이 되지 않겠는가? 메뚜기와 누에의 밑천을 약탈하는 것은 홀로 인의(仁義)의 대적(大賊)이 아니겠는가? 범이 일찍이 표범을 안 잡아먹는 것은 동류를 차마 그럴 수 없어서이다. 그런데 범이 노루와 사슴을 잡아먹은 것이 사람이 노루와 사슴을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 않으며, 범이 사람을 잡아먹은 것이 사람이 서로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 않다. 지난해 관중(關中)이 크게 가물자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은 것이 수만이었고, 전해에는 산동(山東)에 홍수가 나자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은 것이 수만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서로 많이 잡아먹기로야 춘추(春秋) 시대 같은 때가 있었을까? 춘추 시대에 공덕을 세우기 위한 싸움이 열에 일곱이었고, 원수를 갚기 위한 싸움이 열에 셋이었는데, 그래서 흘린 피가 천 리에 물들었고, 버려진 시체가 백만이나 되었더니라. 범의 세계는 큰 물과 가뭄의 걱정을 모르기 때문에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원수도 공덕도 다 잊어버리기 때문에 누구를 미워하지 않으며, 운명을 알아서 따르기 때문에 무(巫)와 의(醫)의 간사에 속지 않고, 타고난 그대로 천성을 다하기 때문에 세속의 이해에 병들지 않으니, 이것이 곧 범이 예성(睿聖)한 것이다. 우리 몸의 얼룩 무늬 한 점만 엿보더라도 족히 문채(文彩)를 천하에 자랑할 수 있으며, 한 자 한 치의 칼날도 빌리지 않고 다만 발톱과 이빨의 날카로움을 가지고 무용(武勇)을 천하에 떨치고 있다. 종이(宗彛)와 유준( 尊)은 효(孝)를 천하에 넓힌 것이며, 하루 한 번 사냥을 해서 까마귀나 솔개·청마구리·개미 따위에게까지 대궁을 남겨 주니 그 인(仁)한 것이 이루 말할 수 없고, 굶주린 자를 잡아먹지 않고, 병든 자를 잡아먹지 않고, 상복(喪服) 입은 자를 잡아먹지 않으니 그 의로운 것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불인(不仁)하기 짝이 없다, 너희들의 먹이를 얻는 것이여! 덫이나 함정을 놓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모자라서 새 그물·노루 망(網)·큰 그물·고기 그물·수레 그물·삼태 그물 따위의 온갖 그물을 만들어 냈으니, 처음 그것을 만들어 낸 놈이야말로 세상에 가장 재앙을 끼친 자이다. 그 위에 또 가지각색의 창이며 칼 등속에다 화포(火砲)란 것이 있어서, 이것을 한번 터뜨리면 소리는 산을 무너뜨리고 천지에 불꽃을 쏟아 벼락치는 것보다 무섭다. 그래도 아직 잔학(殘虐)을 부린 것이 부족하여, 이에 부드러운 털을 쪽 빨아서 아교에 붙여 붓이라는 뾰족한 물건을 만들어 냈으니, 그 모양은 대추씨 같고 길이는 한 치도 못 되는 것이다. 이것을 오징어의 시커먼 물에 적셔서 종횡으로 치고 찔러 대는데, 구불텅한 것은 세모창 같고, 예리한 것은 칼날 같고, 두 갈래 길이 진 것은 가시창 같고, 곧은 것은 화살 같고, 팽팽한 것은 활 같아서, 이 병기(兵器)를 한번 휘두르면 온갖 귀신이 밤에 곡(哭)을 한다. 서로 잔혹하게 잡아먹기를 너희들보다 심히 하는 것이 어디 있겠느냐?"

  북곽 선생은 자리를 옮겨 부복(俯伏)해서 머리를 새삼 조아리고 아뢰었다.

  "맹자(孟子)에 일렀으되 '비록 악인(惡人)이라도 목욕 재계(齋戒)하면 상제(上帝)를 섬길 수 있다.' 하였습니다. 하토의 천신은 감히 아랫바람에 서옵니다."

  북곽 선생이 숨을 죽이고 명령을 기다렸으나 오랫동안 아무 동정이 없기에 참으로 황공해서 절하고 조아리다가 머리를 들어 우러러보니, 이미 먼동이 터 주위가 밝아오는데 범은 간 곳이 없었다. 그 때 새벽 일찍 밭 갈러 나온 농부가 있었다.

  "선생님, 이른 새벽에 들판에서 무슨 기도를 드리고 계십니까?"

  북곽 선생은 엄숙히 말했다.

  "성현(聖賢)의 말씀에 '하늘이 높다 해도 머리를 아니 굽힐 수 없고, 땅이 두텁다 해도 조심스럽게 딛지 않을 수 없다.'하셨느니라."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요점 정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연대 : 조선 영조 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작자 : 박지원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갈래 : 한문 소설, 단편 소설, 풍자 소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성격 : 풍자적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주제 : 양반 계급의 허위적이고, 이중적인 도덕관을 통렬하게 풍자적으로 비판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특징 : 인간의 부정적 모습을 희화화하고 있고, 등장 인물의 대화를 통해 주제를 전달하고 있고, 서술자의 개입을 통해 등장 인물

            을 소개하고 있으며, 가상의 존재를 등장시키는 환상적 수법을 사용하공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줄거리 : 대호(大虎)가 사람을 잡아 먹으려 하는데 마땅한 것이 없었다. 의사를 잡아먹자니 의심이 나고 무당의 고기는 불결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청렴한 선비의 고기를 먹기로 하였다. 이 때 고을에 도학 ( 道學 )으로 이름이 있는 북곽선생(北郭先生)이라는 선비가 동리자(東里子)라는 젊은 과부와 정을 통하였다. 그녀의 아들들이 북곽선생을 여우로 의심을 하여 몽둥이를 들고 어머니의 방을 습격하였다. 그러자 북곽선생은 허겁지겁 도망쳐 달아나다가 그만 어두운 밤이라 분뇨구덩이에 빠졌다. 겨우 머리만 내놓고 발버둥치다가 기어나오니 이번에는 큰 호랑이가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호랑이는 더러운 선비라 탄식하며 유학자의 위선과 아첨, 이중인격  등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북곽선생은 정신없이 머리를 조아리고 목숨만 살려주기를 빌다가 머리를 들어보니 호랑이는 보이지 않고 아침에 농사일을 하러 가던 농부들만 주위에 서서 그의 행동에 대하여 물었다. 그러자 그는 농부에게, 자신의 행동이 하늘을 공경하고 땅을 조심하는 것이라고 변명하였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출처 : '연암외전(燕巖外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