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아들 박종채가 초고본 수정·보완한 것
조선후기 실학자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의 대표작인 《열하일기(熱河日記)》의 저본(底本)이 발견됐다.양승민 선문대 연구교수(고전문학)는 최근 경기도 안산의 성호기념관에 소장된 자료 중에서 연암의 둘째 아들 박종채(朴宗采·1780~1835)가 아버지 사후에 《열하일기》 초고본을 수정·보완해 편집한 새 필사본(筆寫本·활자로 찍지 않고 손으로 베낀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양 교수는 이 필사본이 현재 전하는 열하일기 필사본 10여 종의 정본(正本)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열하일기》는 박지원이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연을 축하하기 위해 1780년 그의 피서지인 열하(熱河·현재 중국 허베이성 청더·河北省 承德)를 다녀온 것을 기록한 여행기이다. 하지만 명확한 정본(正本)이나 판본(版本) 없이 여러 전사본(轉寫本)으로 퍼졌기 때문에 이본(異本)에 따라 편제 차이가 매우 커서 학계가 풀어야 할 과제였다.
- ▲ 경기도 안산의 성호기념관 수장고에서 찾아낸《열하일기》저본. 연암 박지원의 둘째아들 박종채가 편집한 것으로, 붉은 글씨로‘宗侃謹按(종간이 삼가 살피건대)’이라는 주석이 적혀 있다. 종간은 박 종채의 원래 이름이다./양승민 교수 제공
현재 충남대학교 도서관에 연암이 직접 편집한 《열하일기》 수택본(手澤本)이 있지만 정리가 덜 돼 있고 다른 《열하일기》들에 포함된 내용이 많이 빠져 있어서 정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10여 종의 필사본 중에서는 연암 박지원의 집안에서 필사됐다는 뜻인 '연암산방(燕岩山房)'이라고 적혀 있는 전남대 소장본이 가장 인정받고 있는데, 이번에 발견된 박종채 필사본은 이보다 더 많은 수정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새 필사본은 모두 12책 26권(614장)으로 구성됐으며 가로 16.5㎝, 세로 23.8㎝ 크기의 각 책 표지에 '열하일기(熱河日記)'라는 표제가 적혀 있다. 필체가 여럿이지만 모두 반듯한 해서체로 썼고, 여러 번 수정한 흔적이 있어 공동 작업한 교정용 대본으로 추정된다. 매 장 아랫부분에 역시 '연암산방'이라고 선명하게 기록돼 있다. 양 교수는 "이 필사본을 통해 열하일기가 실록 편찬처럼 여러 번에 걸쳐 수정돼 정본으로 완성돼 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새 필사본은 연암이 직접 묶은 초고본을 토대로 박종채가 집안 곳곳에 흩어져 있던 아버지의 방대한 원고를 보완해 새로 목차를 정리하고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완성한 것으로, 《열하일기》의 완성 과정을 둘러싼 의문들을 밝혀줄 것으로 기대된다. 양승민 교수는 27일 성균관대 퇴계인문관에서 열리는 '제250차 한국고전문학회 학술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자료를 검토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는 "《열하일기》를 현재 모습으로 만들어 놓은 첫 완성본이자 평생 아버지의 저작을 정리하는 데 열정을 쏟은 박종채가 편집해서 자료적 신빙성도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왕은 누구의 편도 아닌 왕 자신의 편일 뿐
열하일기 '한글본'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