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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시대에 퍼지는 청명한 '대지(大地)의 노래'

수로보니게 여인 2009. 6. 23. 18:38

[박해현 기자의 '우리시대 작가 열전'] 인터넷 시대에 퍼지는 청명한 '대지(大地)의 노래'

시인 문태준
농촌의 자연 풍경과 고된 생활에 대한 추억 절제된 언어로 그려내

사이버 유목민이 각광받는 21세기에도 대지에 뿌리 박은 자연 서정시는 젊은 피를 수혈받아 진화하고 있다. 오늘의 젊은 서정시인들 중에서 문태준(39) 시인은 절제된 감성의 언어로 자연과의 소통을 세련되게 노래한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남다르게 상복(賞福)과 독자들의 사랑을 누리고 있다. 본격 시집이 안 읽히는 시대에 그는 2만5000부나 찍은 시집 《가재미》(2006)를 비롯해 《수런거리는 뒤란》(2000) 《맨발》(2004) 《그늘의 발달》(2008)을 펴냈고, 동서문학상(2004)·노작문학상(2004)·유심작품상(2005)·미당문학상(2005)·소월시문학상(2006)을 잇달아 수상했다.

경북 김천에서 농민의 아들로 자란 문태준의 시집을 펼치면 산수유 열매 먹는 새, 가을 들판에서 흔들리는 코스모스에 날아와 앉은 잠자리, 동산에서 암소와 염소와 까마귀와 벌과 함께 노는 시골 아이들, 산죽(山竹) 사이에 앉아 우는 장닭, 소 뜨물 켜듯이 별을 들이켜는 옥수수 등등 농촌의 자연이 시인의 내면 풍경에서 압축된 언어를 통해 떠오른다. 가난과 노동, 가족의 질병 등으로 구성된 고된 추억에 내재된 삶의 뿌리깊은 슬픔을 정제되고 담백한 언어로 그려내는 문태준은 "모호한 언어나 의미의 과잉을 불러올 것 같은 언어는 되도록 시에 쓰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초여름 밤에/ 미끄러운/ 산개구리 내려와/ 연못은 울퉁불퉁하고/ 산개구리는 청포도알을 낳고/ 청포도알을 낳고/ 나의 연못은/ 청포도잎처럼 커져'(시 〈귀·1〉전문)

농촌에서 자란 문태준 시인은 도시에 살면서도 풀과 벌레, 나무 그늘에 깃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추억과 일상의 풍경을 구성한다./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시인은 초여름 밤 연못에 뛰어든 개구리가 알 낳는 소리를 마치 귀로 세밀하게 들은 것같다. 시인은 미끄러운 청포도알 같은 생생한 언어감각을 동원해 흡사 눈으로 본 듯이 전통 회화풍(繪畵風) 서정시를 써냈다. 울퉁불퉁한 생활에서 잘 들리지 않던 자연의 매끄러운 소리에 귀를 기울인 시인은 청포도잎처럼 커진 내면의 연못에 상상의 개구리 일가(一家)를 풀어놓고 마음의 풍요로움을 만끽하는 것이다.

현재 불교방송에서 남해 용문사 주지 성천 스님이 진행하는 '행복한 미소'(오전 9시5분)와 '영화음악실'(밤 10시5분) 담당 PD로 일하는 문태준 시인은 1997년부터
경기도 고양시 행신동에 살고 있다. "아직도 산을 끼고 살지 않으면 불안하다"는 그는 집 부근에서 한때 채마밭을 가꾸기도 했다.

'시인이랍시고 종일 하얀 종이만 갉아 먹던 나에게/ 작은 채마밭을 가꾸는 행복이 생겼다/ 내가 찾고 왕왕 벌레가 찾아/ 밭은 나와 벌레가 함께 쓰는 밥상이요 모임이 되었다'(시 〈벌레시사(詩社)〉부분)

벌레와 소통하는 시인의 방에는 새벽녘 귀뚜라미 한 마리가 찾아와 한참 울기도 한다. 시인과 귀뚜라미는 '서로에게 마치 엉성하게 쌓인 돌담이라도 되어, 서로에게 받힌 돌처럼 앉아서' 위로하고, 새벽에 주로 종이를 갉아먹는 시인은 한편의 시를 완성한다. 그는 "내 시는 자연과의 합일이 아니라 자연과의 관계를 노래한다"고 말했다.

문태준의 시는 전통자연이라는 '가상공간'에 갇혀 있고, 구태의연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문학평론가 오생근은 "전통 서정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눈물과 슬픔의 감정들은 문태준의 시에서 사물화되거나 객관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원인과 관련된 개인적인 사연도 절대로 노출되지 않는다"고 문태준 시의 새로움을 평가했다.

문태준 시인에게 "시가 찾아올 때의 느낌은 어떤가"라고 물었다. 시인은 "쿵, 하고 가슴에 물건이 떨어지는 느낌 혹은 나의 등 뒤로 누군가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답했다.

박해현 기자 hhpark@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09.06.23 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