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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수로보니게 여인 2009. 6. 28. 23:05

 

[만물상] 가지 않은 길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tjoh@chosun.com

입력 : 2009.06.26 21:48 / 수정 : 2009.06.26 23:18

 

 

"나이 쉰 이전의 나는 한 마리 개에 불과했다. 앞에 있는 개가 자기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같이 따라 짖었다." 명나라 말기, 공맹유가(孔孟儒家) 사상을 거부했던 괴짜 철학자 이탁오(李卓吾)는 공자의 그늘을 벗어나 자신만의 사유(思惟)를 펼친 때가 쉰을 넘어서였다고 했다. 가족을 부양하느라 하급 관직을 전전하다 53세에 벼슬길에서 물러난 뒤에야 독자적 사상을 담은 '분서(焚書)'와 '장서(藏書)'를 쓰기 시작했다.

▶처칠은 노년을 그림 그리기에 빠져 보냈다. "하늘나라에 가서 내 첫번째 100만년은 그림 그리는 데 다 써버리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집은 물론 프랑스, 북아프리카, 멀리 미국 로키산에도 이젤을 세워둔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그는 "캔버스는 시간의 시샘, 서서히 밀려오는 쇠락으로부터 지켜주는 보호막이다. 그림을 그리면 빛과 색, 평화와 희망이 마지막 날까지 함께한다"고 했다. 그의 그림은 6억원대에 거래될 만큼 인정받는다.

▶나이 들어 생활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게 되면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을 위해 하고 싶은 일에 눈을 돌린다. 오래 묻어뒀던 꿈을 되살린다. 김준성은 63세에 경제부총리를 끝으로 관직을 떠난 뒤 소설 쓰기에 몰두해 장·단편 수십 편을 발표했다. 그는 38세 때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지만 잇따라 은행 요직을 맡게 되면서 문학의 열망을 접어뒀었다. 그는 재작년 87세로 타계하기 두 달 전 인터뷰에서 "소설가 김준성으로 오래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서울지법원장을 지낸 강봉수 변호사가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었던 소년 시절 꿈을 이루려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는 얘기가 어제 조선일보에 실렸다. 수억대 연봉을 받는 대형 로펌 고문변호사 자리를 던지고 나이 66세에 선택한 길이다. 그는 고교시절 노벨 물리학상을 꿈꾸던 이과반 수재였지만 아버지가 법관이 되기를 원해 서울대 법대로 진학했다고 한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봤습니다….' 프로스트의 시처럼 누구나 가슴에 '가지 않은 길' 하나쯤 품고 살아간다. 그러나 대개는 그 길을 평생 바라보기만 하다 떠나고 만다. 여건이 안 된다고들 하겠지만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물리학도의 꿈을 찾아 떠나는 노(老)변호사의 용기가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