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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의 경지에서 시 쓰면 행복해 내가 쓴 시(詩)에 스스로 감동하기도"

수로보니게 여인 2009. 5. 29. 14:20

"몰입의 경지에서 시 쓰면 행복해 내가 쓴 시(詩)에 스스로 감동하기도"

강인선 LIVE '섬진강 시인' 김용택씨

"공항에서 (출국신고하며) 직업란에 '시인'이라고 썼더니 공항직원이 시인은 직업이 아니래요. 그래서 '무직'이라고 썼는데 '아, 내가 직업이 없구나' 싶어 움찔하더라고요."

초등학교 교사생활 38년 만인 작년에 은퇴한 '섬진강 시인' 김용택(61)씨는 강연과 여행을 하며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디지틀조선일보의 케이블 채널인 '비즈니스앤(Business&)'의 '강인선라이브'에 출연한 김씨는 "그동안 너무 협소하게 살았으니 담대해져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그립다. 초등학교 2학년을 오래 가르치다 보니 마음이 딱 그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김씨는 "1학년은 어설프고 3학년은 닳았는데, 2학년은 충동적이고 폭발적이며 세상을 보는 눈이 늘 새롭다"고 했다. 그러다 3학년이 되면 아이들은 눈치 보고 머뭇거리고 계산하기 시작한다. 그는 "성장이나 성숙은 굉장히 기분 나쁜 것이기도 하다"고 했다.

김용택 시인은 한꺼번에 몰아서 시를 써놓고 나서 문‘그게 아니다’싶은 부분이 생각나면 고쳐 쓴다. 나머지 시간은 재미있게 논다.“ 지금이 좋아야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이란다./비즈니스앤 제공

김씨는 농고를 졸업했다. 감나무도 심어보고 돼지도 키워봤지만 다 실패하고 친구 권유로 우연히 교사가 돼 조그만 분교로 가게 됐다. 오전수업만 마치면 시간이 남아돌아 지루해하던 그를 시의 세계로 이끈 건 도스토옙스키였다. 월부 책 장사에게 도스토옙스키 전집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그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수없이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는 책을 읽으며 새로운 세상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 후 책 읽기에 빠졌고 떠오르는 생각을 주체하지 못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 형식 없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7~8년 쓰다 보니 어느새 시를 쓰고 있었다"고 한다.

1982년 그의 시 '섬진강1' 등 9편이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온 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실렸다. 맨 앞에 박두진 시인의 시가 실린 시집을 받은 김씨는 너무 떨려서 이틀 동안 책을 펼쳐보지도 못했다. 마음을 진정하고 시집을 읽다가 자신이 쓴 시에 스스로 감동했다. 감동은 그 후에도 왔다. 그는 "몰입의 경지에서 시를 쓰는 순간 정말 행복하다. 그렇게 쓴 시를 나중에 보면 내가 어떻게 저런 시를 쓸 수 있을까 싶어 감동한다"며 웃었다.

그가 가진 창의성의 원천은 "시대적 정서"다. 그는 "정치·경제·문화·사회·자연이 모두 중요하다. 그래서 최첨단의 경영 트렌드와 정치의 흐름에 민감하고 그걸 알기 위해 신문을 열심히 본다"고 했다.

섬진강변 초등학교 교사 시절엔 행복했다. 환갑이 될 때까지 그에게 가장 가치 있는 삶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평생을 사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시에 나가 살다가 이혼한 제자의 아들 딸이 다시 시골마을로 돌아오는 걸 볼 땐 마음이 아파 울기도 많이 울었다.

은퇴할 땐 마음속으로 아이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어른으로서,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시인으로서, 마을 어른으로서 잘못한 게 많은 것 같아서"였다. "행복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 김씨에게도 세상살이가 그리 쉬운 건 아니다. "고요와 적막, 느리고 더딘 것을 견디지 못하는 시대라 아무도 시를 읽지 않고 심지어 시인도 시집을 안 살 정도로 시가 외면당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러나 "삶이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워도 거기서 행복과 희망을 뽑아내는 게 시인"이라고 했다.

'강인선라이브' 김용택 시인 편은 29일 오후 9시50분 '비즈니스앤'에서 방영된다.

 

 

  강인선 기자 insu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09.05.29 03:18 


 

 

[現] 시인
홈페이지 : www.poet.or.kr/yt
출생 : 1948년 09월 28일 (전북 임실)
직업 : 문화예술인(문학인)
학력 : 순창농림고 임학과 졸업
경력 : 전주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전북작가회의 제4대 회장
덕치초등학교 교사

 

 

▲ 고향 집 앞에 선 김용택 시인. 서재의 편액에 쓰인 관란헌(觀瀾軒)이란 글이 보인다. 시인은“여기서 섬진강의 물결을 본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임실=김태훈 기자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여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여. 높은 자리에 올라 사람 부리는 게 체질에 맞질 않여. 그보다는 아이들과 지내는 게 더 좋아. 38년을 평교사로만 지낸 것도 그래서였는디…. 하지만 이제 떠나야 할 때가 온 것 같어."

'섬진강 시인' 김용택(60)이 교단을 떠난다. 모교이자 교사 생활의 대부분을 바친 직장이었던 전북 임실 덕치초등학교에서 이달 말 백묵을 내려놓는다. 교직을 시작한 뒤 얼마 안 돼 심은 집 앞의 느티나무는 그 사이 부지런히 자라 높고 시원한 그늘을 드리웠다.

나무 그늘 아래 앉아 그는 신작 동시집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창비)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학교를 떠나지만 아이들 곁을 영 떠나는 건 아녀. 이것들이 다 그 다짐으로 쓴 시들이여." 수록된 51편의 시는 손주 같은 제자들을 향한 사랑 고백이다. 그런데 맨 앞에 실린 시부터 아이들 걱정이다.

'밤 새워 기어왔나 봐요./ 산 아래 풀잎 위에 달팽이가 쉬고 있네요./ 산은 높지요./ 그러나 저 산을 넘어야 해,// 달팽이가 기어갑니다.'(〈달팽이〉)

◆애들도 울고, 선생님도 울고


포기하지 말라는 당부부터 한 것은 아이들이 견뎌야 할 현실의 무게가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시인은 1980년대 초 발표한, 〈섬진강〉 연작시에서 이미 농촌의 피폐한 현실을 기록했었다. 그때 가르쳤던 제자들이 자라서 도시로 나가 결혼했지만, 아이를 키우지 못하고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보내는 안타까운 일들이 이어졌다. 45명 전교생 가운데 7~8명은 그런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산다. 시인은 "그런 애들 생각하며 시 쓰다가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오늘은 밤에 학예회를 했다./ 그런데,/ 할머니도 아빠도 안 왔다./…/ 혼자 울었다./…/ 선생님이 나를 꼭 껴안았다./ 선생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다가/ 눈물을 닦으며 선생님을 봤더니,/ 선생님도 운다./…'(〈선생님도 울었다〉)

◆섬진강을 제 집안 도랑처럼 여긴 사람


시인이 동시집으로 교단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사이, 문단에서는 그의 퇴임을 기념하는 《철없는 어른 아이》(문학동네)라는 문집을 만들고 있다. 안도현 시인이 제안했고, 곽재구 정호승 도종환 시인과 이해인 수녀, 소설가 임철우 박범신 성석제, 화가 김병종 이철수, 가수 장사익 등 30여명이 참여했다.

소설가 성석제는 누구를 만나든 곧장 말을 놓아버리는 시인의 타고난 붙임성을 '용택이 형'론으로 풀었다. '그는 술을 마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성을 생략한 채 이름을 마구 불러대고는 형이 말이여, 하는 식으로 노골적으로 형 노릇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판화가 이철수는 '김용택이 섬진강을 제 집 안에 흐르는 도랑처럼 여기고 사는 것 보면, 국가 하천은 얼마든지 문학적으로 사유화할 수 있는 것이구나 싶다. (중략) 터주 노릇을 제대로 하니 촌 동네 초등학교 교사가 국민시인이 되는 거구나'라고 썼다.


 입력 : 2008.08.11 0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