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³οο덕일& 정민

사랑(舍廊) 문을 닫으며

수로보니게 여인 2009. 4. 1. 17:24

 

사랑(舍廊) 문을 닫으며


3년 6개월 전 사랑(舍廊)의 첫 원고 '선조들의 강, 대릉하에서'를 보낸 곳은 중국령 내몽골 적봉(赤峯)시였습니다. 세 곳을 전전한 끝에야 겨우 국제 팩스가 되는 호텔을 찾아 볼펜으로 쓴 원고를 보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심양(瀋陽)에서 교포 원로 역사학자와 함께 요하(遼河)와 대릉하를 건너 동이족 홍산(紅山) 문화의 본고장 적봉까지 찾아간 길이었습니다. 그 길은 고조선의 강역을 나타내는 비파형 동검과 그 거푸집의 출토지를 찾아가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중국은 동북공정에 따라 한강 이북까지 자신들의 역사 강역이라고 주장하지만 비파형 동검과 거푸집 출토 사실을 감추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데서 유물이 말해주는 힘을 느꼈습니다. '이덕일 사랑'의 문을 열면서 두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하나는 일제 식민사학이 왜곡한 우리 역사의 본모습을 복원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세기 전의 일제 식민사학과 현재의 중국 동북공정은 일란성 쌍둥이입니다. 둘 다 우리 역사의 시간과 공간을 축소해 가로채려는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양자가 단군조선을 부인하고 고조선의 강역을 평안도 일대로 가두려는 공통점을 갖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렇게 왜곡된 역사를 본모습대로 복원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선조의 눈으로 현재를 바라보려는 것이었습니다. 앞선 수레바퀴란 뜻의 전철(前轍)이란 말을 쓰지 않더라도 선조와 우리는 연속성이란 끈으로 매어져 있습니다. 선조의 시각은 가치관의 혼돈에 신음하는 우리 사회에 성찰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선조가 남긴 글을 직접 인용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가끔 글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사료를 찾느라 애먹기도 했지만 선조의 가치관을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는 분들이 늘어나는 것을 확인하는 기쁨도 누렸습니다. 선조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넓고 깊었으며 또 유장(悠長)했습니다.

선조의 강 대릉하의 푸른 물결과 너른 벌판이 생각납니다. 그 강과 벌판을 함께 누볐던 교포 역사학자, 그 척박한 환경에서 우리 역사에 대한 사랑으로 평생을 싸웠던 그분은 얼마 전 고인(故人)이 되셨습니다. 그분의 명복을 빌면서 사랑의 문을 닫습니다. 독자 여러분, 히 계십시오.

※'이덕일 사랑' 연재를 마칩니다. 2005년 10월 4일 첫 게재 이래 3년 6개월간 우리 역사 이야기를 시사 이슈에 담아 재미있게 풀어낸 필자 이덕일씨와 애독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입력 : 2009.03.30 22:04 / 수정 : 2009.03.30 23:05 이덕일·역사평론가 newhis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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