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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문(文)•사(史)•철(哲)의 몰락

수로보니게 여인 2009. 3. 20. 17:05
 

[만물상] 문(文)•사(史)•철(哲)의 몰락

김태익 논설위원 tikim@chosun.com

 
노교수는 30년 가까이 똑같은 내용만 강의했다. 강의 노트가 너덜너덜할 지경이었다. 조교가 노교수의 해진 강의노트를 타이핑해 정리하다 말했다. "교수님, 이참에 내용도 한번 새로 정리하시죠?" 교수는 제자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이렇게 받았다. "이 녀석아, 진리가 변하냐?" 서울 명문대 국문과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얘기다.

▶그무렵 대학가에 '데칸쇼'라는 말이 유행했다. 근대 유럽을 만든 철학자 데카르트·칸트·쇼펜하우어를 이르는 말이다. 전공이야 어떻든 대학생이면 '데칸쇼'쯤은 알아야 행세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시대 분위기가 읽혀진다. 너덜너덜한 강의록을 고집하며 "진리가 변하냐"고 외치는 교수나, 되든 안 되든 데칸쇼와 맞붙어보겠다고 덤비는 학생들이나 그래도 인문학이 전성기일 때 풍경이었다.

▶문과는 인문대, 이과는 자연대가 대학을 떠받치는 두 기둥이었다. 인문대엔 문학·역사학·철학(文·史·哲), 자연대엔 수학·물리학·화학이 버티고 있었다. 인문학에서 가지를 쳐나간 수많은 학문 분야들이 큰댁에 인사하듯 학문의 대종(大宗) 문·사·철에 경의를 표했다. 지금도 대학 교직원 수첩에서 인문대 교수들 이름이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그때의 흔적이다.

 

▶하버드나 예일 같은 미국 명문대들이 법학·의학·경영학 전공을 대학원 과정에 둔 것은 전문 지식·기술은 학부에서 인문교양을 충분히 섭취한 뒤 배워도 된다는 판단에서다.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의 대통령학 교수 데이비드 거겐은 "시나 소설 같은 문학 강의를 꼭 들어라.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을 만들어준다"고 말한다.

▶국내 대학들이 이번 학기 수강생이 없는 강좌들을 없애면서 폐강의 비운을 맞은 것은 대부분 문·사·철 인문학 강좌들이라고 한다. '동아시아문명사' '문화의 철학적 이해' 같은 것을 가르치고 배우지 못하는 사회가 가는 방향은 어디일까. 이젠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도 사치다. 인간이 뭔지 모르는 판·검사, 정치가와 의사들이 판치는 세상은 우울하다. 세태 탓만 할 것도 아니다. 인문학자들 스스로 인문학의 존재가치를 입증해 보이는 데 실패한 결과 아닌가. 인문학이 교수를 위한 학문이 아니라 소비자를 위한 학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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