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³οο ı ĿØЦЁ УØЧ/´˝˚³οο ı Łονё 피플

[만물상]/숭례문 소나무

수로보니게 여인 2008. 12. 11. 15:31

[만물상]


숭례문 소나무


"어명(御命)이오." 산 속 정적을 깨뜨리며 외침이 울리자 벌목꾼은 울긋불긋 색띠를 두른 소나무의 밑둥치를 도끼로 내리친다. 외침이 몇 번 되풀이되고 그때마다 도끼질을 한다. 그렇게 벌목의식이 끝나고서야 기계톱 차례가 온다. 수백 년 살아온 아름드리 소나무의 목숨을 뺏는 일엔 그렇게 절차가 있다. "어명"을 반복하는 것엔 임금의 명에 따라 궁궐 재목으로 쓸 나무를 벨 수밖에 없는 사정을 알려 나무의 원혼을 달래주려는 조상들 마음이 담겨있다.


▶어제 강원 삼척 준경묘에서도 "어명이오" 외침이 울려 퍼졌다. 문화재청과 전주 이씨 준경묘봉향회가 소나무를 베어냈다. 키 32m, 줄기 지름 74㎝에 미끈하게 빠진 110세 금강송이었다. 금강소나무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더디게 자라 재질이 단단하고 잘 썩지 않아 부석사 무량수전과 경복궁 복원에 쓰였다. 사람들은 벌채에 앞서 금강송을 떠나 보내는 아쉬움을 고하는 고유제(告由祭)를 지내고 돼지 한 마리를 바쳐 산신제도 지냈다.


▶이날부터 내년 3월까지 베어낼 지름 70~80㎝짜리 금강송 20그루는 새로 짓는 숭례문과 광화문의 기둥과 대들보로 쓰인다. 산림청 헬기로 마을 입구까지 옮긴 뒤 대형 트레일러로 서울로 운송해 1년간 말린다. 이성계 5대조 할아버지 이양무의 무덤 준경묘엔 396만㎡에 금강송 14만그루가 자라고 있다. 지름 60㎝ 넘는 것만 1000그루가 넘고 키 20m 이상인 것도 10여 그루가 있다. 

 

▶준경묘는 1961년 숭례문 해체 복원 때도 가장 큰 소나무였던 '장수 솔'을 대들보로 바쳤다. 문화재청은 2006년과 작년 광화문 복원용으로 이곳 소나무를 쓰려다 지역주민과 전주 이씨 문중의 반대에 부딪혔다. "문화재 보수를 위해 다른 문화재를 망가뜨릴 순 없다" "벌채로 묘역 주변이 황폐해진다"는 반대였다. 이번엔 국보 1호 숭례문을 되살리는 일인 만큼 주민들이 3차례 회의를 거듭한 끝에 벌채를 허락했다.


▶소나무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다. 한때 산림의 60%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25%에 불과하다. 좋은 소나무 군락지는 울진, 봉화, 안면도처럼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고, 지름 60㎝ 넘는 궁궐 재목은 3000여 그루밖에 안 된다. 그나마 준경림이 온전히 보존된 것은 조선 왕실 소유였고 지금은 전주 이씨 문중림으로 관리돼 도벌 같은 사람 손이 덜 탄 덕분이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을 간다는 금강소나무가 숭례문 대들보로 부활한다.

입력 : 2008.12.10 21:59 / 수정 : 2008.12.10 23:09 김동섭 논설위원 ds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