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정감록과 인터넷 조선왕조를 괴롭혔던 모든 유언비어의 저수지는 '정감록(鄭鑑錄)'이었다. 주자학(朱子學)이 이씨 왕조를 지키는 정파(正派)의 용천검이었다면, 정감록은 이씨가 망하고 정씨 왕조를 고대했던 사파(邪派)의 장풍과 같은 것이었다. 용천검과 장풍의 한판 대결. 장풍은 모래바람을 일으킨다. '정씨왕조설'에 노이로제가 걸린 조선왕실에서는 19세기 후반에 사파의 책동을 원천봉쇄하기 위하여 부득이 사파의 전매특허인 풍수도참을 역으로 동원했다. 정씨의 홈그라운드인 계룡산에 압정사(壓鄭寺)라고 하는 이름의 절을 세웠던 것이다. 사파의 장풍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정씨를 누르는 절'까지 세웠겠는가! 입력 : 2009.01.13 22:24 / 수정 : 2009.01.13 23:02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여러부 뚜렷한 벌이가 없는 300만 명이 넘는 백수들의 장풍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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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미네르바'를 다시 생각해 본다
인터넷 속의 '미네르바' 박대성씨는 "나는 나의 개인 시각을 온라인으로 알리는 블로거(blogger·인터넷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일 뿐이다. 나는 정치인도 아니고 연쇄살인범도 아니다. 정치적 사건으로 만들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씨의 변호사가 13일 인터넷에 올린 접견록 내용이다. 박씨는 "IMF사태 때 친구 부모님이 자살을 해 친구와 동생이 어려움을 겪는 걸 봤다. 내 가정은 내가 지킨다는 취지의 선제 방어적 차원에서 (2007년부터 경제) 공부를 시작했다"며 "서울대 이준구 교수의 '경제학 원론'을 이론적 토대로 삼았고 실물경제는 잡지·서적, 인터넷사이트와 블로그 등을 통해 습득했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경제학 원론을 한 권 읽고 잡지·책 그리고 인터넷 속의 경제기사와 해설을 읽고 익힌 뒤 그걸 토대로 2008년 4월부터 12월까지 280편가량의 글을 썼다는 것이다. 박씨가 썼다는 280편의 글은 인터넷에서 모음집으로 묶여 마치 무슨 성전(聖典) 같은 대접을 받고 있다. 그의 글은 '가진 자들'이란 표현이 수도 없이 등장하는 데서 드러나듯 이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나 대기업에 대한 욕설과 저주, 증오로 가득하다.
박씨가 30대 무직의 비(非)경제전문가라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만 해도 그를 국민 경제의 스승으로 떠받들어 왔던 좌파 경제학자, 좌파 언론인 등이 박씨의 '예언'이 맞았던 사례(事例)라고 호들갑을 떨며 들먹이는 지난해 7월 19일의 환율 관련 글만 봐도 "개 사기극을 하는구나" "또 돈 지랄" 같은 욕설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쥐×× 정부'라는 표현을 자주 썼고 대한민국을 "이 개 ××× 놈의 나라" "이 나라는 완전 돌았어"라고 했다. 걸핏하면 "살기 위해서라도 나가야 해"라며 '이민' 타령을 했다. 좌파 지식인들은 박씨의 논리나 예측의 정확성 여부보다 그가 구사하는 이 나라와 가진 자들을 향한 저주(詛呪)의 수사학에 더 끌렸다고 할 수 있다.
박씨를 숭배했던 사람들은 그가 작년 9월 15일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신청을 닷새 전쯤 예측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시엔 이미 리먼브러더스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잇달아 나오고 있었고 자신의 주장이 틀렸다 해서 잃을 게 아무것도 없는 박씨가 눈 감고 내지른 말이 운 좋게 맞아 떨어진 것이다. 박씨 글의 특징은 이 나라 경제 상황이 무조건 최악의 상황으로 몰릴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박씨는 지난해 7월 물가 폭등을 예고하면서 "각자 쌀이나 참치통조림 휴지 생수 비누 라면 등 생필품을 반년치 사서 보관하라"고 했다. 그러나 물가상승률은 8월 이후 꺾였다. 8월 말 글에서 "국제원자재 가격이 오를 것이니 원자재 펀드에 투자하면 최소 25% 이상 수익률이 보장된다"고 했다. 그러나 원유 값은 4분의 1로 떨어지고 원자재 펀드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큰 손실을 봤다. 그는 "이스라엘이 이란을 7월 하순에서 8월 초 선제공격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박씨는 영국계 은행 HSBC의 이름에 '홍콩 상하이'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중국계 은행'으로 오해하고는 "HSBC의 외환은행 인수는 (중국자본 침투의) 시발점"이라고 했다. 그가 인용한 수치들은 어디가 출처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박씨는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파생상품이라는 시한폭탄에 발을 담근 인간" "30세 넘어 미국에 건너가 학사·석사 과정을 밟았다"는 식으로 자신의 경력을 속였지만, 냉철한 지적(知的) 판단 능력을 갖춘 진짜 경제학자, 진짜 언론인, 진짜 지식인이라면 박씨가 구사하는 허점투성이의 논리, 말세론(末世論)적 극단주의, 부정확한 경제 지식과 경제 상식을 뚫어 봤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드물었다. 특히 좌파 지식인이나 언론인, 경제학자 중엔 한 사람도 박씨에게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경제 지식이 부족해서 그랬다면 경제학 선생을 접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그리고 그 나라의 그래도 성공한 사람이나 기업들이 막판에 몰려 몰락하리라는 박씨의 저주에 홀렸던 것이다.
정치권은 미네르바를 정권 반대 투쟁의 불쏘시개로 삼아보려는 욕심에 눈이 멀었고, 박씨 구속 이후에는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아마도 정부가 경제 문제에 대해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 정도로 유능했더라면 미네르바라는 눈먼 동물은 애초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태어나선 안 될 것을 태어나게 한 것은 정부다.
입력 : 2009.01.13 22:31 / 수정 : 2009.01.13 23:02
미네르바의 장풍에 정치판이 쓰나미つなみ[津波]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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