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환경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58~61
독서를 돕는 여러 가지 자료 활용하기(1)
**사전의 정보를 활용하여 독서의 내용을 심화, 확장하는 방법을 익히고,
**독서와 관련된 안내문, 광고문, 서평을 비판적으로 읽고, 독서 활동에 창조적으로 활용한다.
1.사전
1) 사회가 공인하고 있는 지식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담아 놓음
2) 사전을 유용하게 사용한다면 책에서 접하는 지식들을 다양한 형태로 확장시켜 나갈 수 있다.
독서는 책과 나와의 고독한 대화이다. 왜냐하면 독서라는 행위 자체가 스스로 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내게 책을 읽어주거나 대신 책을 읽어 줄 수는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 자료를 활용한다면 비록 한권의 책을 읽더라도 그 대화는 더욱 풍요로울 수 있다. 먼저 다양한 지식의 도움을 얻어 책의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여러 종류의 사전을 찾아보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단지 모르는 낱말을 알기 위해 사전이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전은 지식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담아 놓았기 때문에 사전을 유용하게 활용한다면 책에서 접하는 지식들을 다양한 형태로 확장시켜 나갈 수 있다.
2.읽고 싶은 책을 선택하는 과정
1)신문의 책 소개란이나 서평을 보고 책을 선택해 읽는다.
2)광고문을 보고 책을 선택해 읽는다.
3)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책을 선택해 읽는다.
4)책을 읽다가 그 속에 언급된 다른 책에 관심이 생겨 읽는다.
5)읽고 있는 책이 마음에 들어 저자의 다른 작품을 읽는다.
6)서점에서 책을 고르다가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른다.
7)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접하고 책을 선택해 읽는다.
독서는 주어진 내용을 수동적으로 받아드리는 과정을 넘어 창조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이다.
「주역, 마음속에 마르지 않는 우물을 파라」
인생이란 그런 이치와 비의(秘意)를 찾아가는 과장은 아닐까. ‘삶의 의미를 파악했다면 괘가 나타나는 상징은 잊어버려라’라며 주역을 해석하는 관점을 뜻과 이치의 문제로 전환했던 왕필(중국의 철학자)을 알고 난 후 나는 무릎을 쳤다.
「주역, 마음속에 마르지 않는 우물을 파라」는 주역의 64괘 가운데 진실, 신뢰, 배려, 사랑, 겸손, 어둠, 은둔, 연대, 회복 등 주제별로 20개의 괘를 골라 셰익스피어의 비극적 인물에서부터 중국 역사와 소설 속 인물을 사례로 들며 삶의 도리와 지혜를 시적으로 풀어낸다.(중략)
공자는 말년에 주역에 심취해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 하여 책을 꽁꽁 묶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나에게 몇 년 만 더 주어져 마침내 주역을 공부한다면 큰 과오는 없을 것이라 했다. 인생의 우여곡절을 모두 겪고 난 삶의 후반기에 이르러 공자는 주역의 풍부한 의미를 깨달았던 모양이다.
책소개
주역에서 찾은 실전 인생 지침을 전해주는 책. 많은 사람들이 주역을 점책으로 알고 있으며, 동양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주역을 엄청나게 어려운 경전으로 기억한다. 실제로 주역은 점을 치기 위해 만들어졌고, 벽돌 같은 괘와 몇 글자 안 되는 괘사는 해독 불가능한 상징처럼 난해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주역을 전공한 저자는 대표적인 의리역학자인 왕필, 정이천, 양만리의 생각을 빌려 주역을 점서가 아닌 '인생의 지혜가 담긴 경전'으로 읽어내고 있다. 주역의 64괘 가운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20개 괘를 골라 그 의미와 원리를 분명히 밝힘으로써 삶의 유용한 지침이 되도록 하였다. 또한 로미오와 줄리엣, 백이, 한신 등 소설과 역사 속의 인물들을 사례로 제시함으로써 풍부한 이해와 읽는 맛을 더했다.
저자소개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숭실대학교 철학과를 다녔다.『장자』를 읽고 중국 고전의 세계에 눈을 떠 중국 철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러다 대학원 시절에『주역』을 만난 뒤, 모호하지만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력에 빠져 '정이천의『주역』해석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동양 철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그 '쓸모'를 밝히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주역과 운명』이 있다. "심의용" 통합검색 결과보기
주역에 대해_마음을 닦는 경전
주역과 셰익스피어
무망괘_진실 진실하더라도 섣불리 행동하면 흉하다
함괘_사랑 예의 없는 사랑이라면 차라리 독신이 낫다
비괘_꾸밈 꾸미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간괘_멈춤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중부괘_신뢰 나를 믿어야 남의 신임도 얻는다
난세의 처세
건괘_난관 어려운 때일수록 마음을 닦는다
비괘_난세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명이괘_어둠 총명함을 감추는 것도 지혜이다
규괘_분열 미운 사람일지라도 만나야 한다
곤괘_곤경 뜻을 굳게 지키되 편협하지 않으면 형통하다
돈괘_은둔 그대가 강호이거늘 어찌 강호를 떠날 수 있겠는가
치세의 처세
이괘_수양 자신에게서 세상으로 향하는 배움
진괘_나아감 나아가야 할 때는 나아가라
정괘_안정 뒤집어엎었으면 바로 세워라
비괘_연대 함께하면 길하다
처신의 덕목
정괘_덕성 마음속에 마르지 않는 우물을 파라
절괘_절개 괴롭고 힘든 절개라면 올바를 수 없다
겸괘_겸손 가득 차면 엎어지고 모두 비우면 설 수가 없다
복괘_회복 근본으로 돌아가라
리괘_배려 예를 따르면 호랑이 꼬리를 밟더라도 물리지 않는다
지은이의 말_주역은 탱고다
주석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주역, 점집을 탈출하다
"주역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라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점이요."라고 대답한다. 보통사람들에게 주역은 곧 점이다. 과연 그런가?
주역은 원래 제사와 점을 치는 일을 관장하는 무당과 사관史官들이 점을 치는 일 또는 역사 자료와 생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를 담은 기록들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주역은 점이다'라는 명제는 타당하다. 하지만 주역이 점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상수역象數易학과 의리역義理易학으로 나뉘어 발전해 온 역학의 역사를 통해 주역이 '우주 운행의 변화'에 관한 점서이면서 동시에 '인간과 역사의 변화'에 관한 경전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우선, 상수역학은 한대에 이르러 꽃을 피운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음양오행, 12간지와 결합한 이해 방식이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그리고 송대에 이르러서는 우주 질서를 수량화하고 체계화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까지 발전한다. 하지만 상수역학의 우주론적 체계와 천문학적 관점은 매우 지루하고 복잡해지면서 점차 그 의미와 기능을 잃어버린다.
이러한 상수역학의 복잡한 독해 방식을 뒤엎은 사람이 바로 의리역학의 효시라 부르는 왕필이다. 그는 "삶의 의미를 파악했다면 괘가 나타내는 상징은 잊어버려라."라며 주역을 해석하는 관점을 뜻과 이치의 문제로 전환한다. 그는 괘상을 하나의 구체적 현실 상황으로 이해했고, 효를 괘가 상징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적합한 행위를 할 것인가를 드러내는 상징으로 독해했다. 그리고 이러한 왕필의 관점은 송대에 이르러 정이천에 의해 꽃을 피운다. 그는 주역의 괘효사를 읽고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인간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하늘의 뜻에 따르는 운명론적 관점을 배제하고 능동적인 해석과 판단 그리고 자기 수양을 강조했다. 정주리학의 창시자답게 주역을 신유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정립한 것이다. 정이천의 뒤를 이은 양만리는 역사 속 인물을 예로 들어 각각의 괘효에 나타난 삶의 도리를 설명함으로써 주역이 '마음을 닦는 경전'이라는 점을 보다 분명히 했다.
이처럼 주역은 점에서 비롯되었지만, 유학자들에 의해 거듭 해석되면서 유교 경전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해 왔다. 세상과 삶의 이치에 골몰했던 공자의 "나에게 몇 년 만 더 주어져 마침내 주역을 공부한다면, 큰 과오는 없을 것이다."라는 고백도 이런 태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이다. 주역을 점서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왕필, 정이천, 양만리 _ 대학자들의 다양한 해석을 비교하며 맛보는 재미
텍스트에 대한 해석은 개인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다르다. 주역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다른 경전에 비해 주역은 더 많은 해석의 차이를 보이는 있는데, 이것은 주역이 갖고 있는 고도의 상징성 때문이다. 실제로 주역의 원형을 이루고 있는 벽돌 같은 괘와 몇 글자 안 되는 괘사는 불친절하기 그지없는 상징 덩어리이다. 동양학을 공부했다는 사람들이 주역하면 고개를 숙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찬가지로 같은 의리역학 계열이지만 왕필, 정이천, 양만리, 소동파의 주역 해석도 구체적인 상황에 들어가면 차이가 있다. 이 책을 읽는 맛은 바로 이렇게 여러 선학들의 창조적 해석을 비교하면서 읽는 수 있다는 데 있다.
지기식세知機識勢 _ 주역에서 찾은 실전 인생 지침
주역은 64괘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은 그 가운데 현대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20개 괘를 골라 그 원리와 의미를 분명히 밝혀 삶의 지침이 되도록 했다. 그러나 저자는 각각의 괘의 뜻을 밝히는데 그치지 않는다. 20개 괘를 포함해 주역의 64괘가 말하고 있는 지혜의 핵심을 '지기식세知機識勢'라고 말함으로써 지침의 보편성을 확보한다. 즉 낌새를 알아채고, 세의 흐름을 파악해 치우침 없이 행동하는 것, 바로 이것이 주역의 정수라는 것이다. 이것은 유학의 핵심 개념인 시중·중용과 맞닿아 있는 개념이다. 그래서 주역을 '역경'이라 부르고, 경전 가운데 으뜸 경전이라 하는 것일까?
책속으로
주역의 상징과 언어의 뜻을 이해하는 것은 바로 우리 삶의 실존적 경험을 통해서이다. 그래서 정이천은 주역의 괘효사를 읽고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인간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한다. 정이천은 죽기 바로 전에 문인들에게 자신의 역전을 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해놓은 것은 단지 70퍼센트에 불과하다. 너희는 이것을 바탕으로 살면서 스스로 느껴 얻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주역은 지나온 삶의 역사이며, 우리의 생생한 삶에 대한 기록이다. 주역은 인간의 마음을 깨달아서 현실에서 올바로 실천할 수 있는 지침이 담긴 '삶의 실천적 지혜서'다. 때문에 주역을 '마음을 닦는 경전(洗心經)'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음을 닦는 경전, 13~14쪽)
이런 뜻에서 혼자 지내기로 마음먹은 독신은 독선獨善에서 나온 오만이 아니라, 진실로 감응할 수 있는 상대를 기다리며 진실한 마음과 사랑을 키우는 고독한 선택이다. 그러므로 독신이란 여러 상대와 자유롭게 연애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감응할 남자나 여자를 찾지 못했을 때 자신의 뜻과 사랑을 지키려고 스스로 선택한 고립을 뜻한다.
그러니 여자여, 그대의 소중한 사랑을 구하러 오는 남자가 진정이 담긴 예를 갖추고 오지 않는다면, 모든 미련과 기대를 버리고 거절하라. 차라리 독신을 택하는 것이 길하리라. 시간의 자궁 속에 불행한 씨앗을 잉태하지 않도록.
(예의 없는 사랑이라면 차라리 독신이 낫다, 30~38쪽)
솥을 뒤집어엎는 것은 결코 순탄한 길이 아니다. 그러나 마땅히 뒤집어엎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바로 이때이다. 낡은 것을 바꿀 때는 씻을 것은 깨끗이 씻고 버릴 것은 남김없이 버려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것으로 다시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뒤집어엎었으면 바로 세워라, 201쪽)
독서를 돕는 여러 가지 자료 활용하기(2) /사전활용하기
슈퍼맨의 신화 -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내가 나를 표현하고 발견하고 미래의 꿈을 그려 보는 이 세계는 가능 세계이다. 이 가능 세계는 사람들의 모습이 제각기 다른 만큼 사람에 따라 다르다. 어린아이의 세계는 어른의 세계와 다르고, 예술가의 세계는 과학자의 세계와 다르다. 사람들이 이 가능 세계에 관하여 가지는 생각과 의문이 다양한 만큼 자기 나름대로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가능 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세계 또는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의’ 우주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가능 세계는 무한히 많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가능 세계를 우리 자신의 세계에 한정시킬 필요가 있다. 왜냐 하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가능 세계는 ‘내가 나를 표현하고 발견하고 미래의 꿈을 그려 보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좋은 세상, 좋은 세계에 살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꿈꾸는 공통된 소망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수많은 가능 세계 중에서 과연 어느 것이 최선의 세계인가를 찾는다. 어린아이는 자신의 놀이와 환상의 세계에서 다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낄 것이다. 그에게는 복잡한 어른의 세계가 자신의 세계보다 좋은 세계일 수 없다. 사냥꾼의 세계는 그 나름대로의 고유한 특성과 목적을 지닌 세계일 것이다. 컴퓨터 전문가는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많을 것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가 시간에 어린 시절의 놀이를 회상하며 즐길 수도 있고 사냥을 갈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그의 가능 세계는 어린아이나 사냥꾼의 세계보다 넓다. (중략)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의문을 품는 것은 우리의 가능성을 확장시켜 준다. 어떤 의문은 보다 극적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인다. 우리는 이러한 경우들이 역사상 많이 있었음을 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라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모험적 항해를 한 것이나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한 것 등 그 예는 얼마든지 있다. (중략)
가능 세계는 어린아이가 성장하면서 확장된다. 그가 최초로 하는 경험은 조금 진화된 짐승의 경험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무엇이든지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가져가려는 초기 단계에서 눈으로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시각적 단계로 성장한다.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순수한 물리적 접촉이 가져다주는 호기심은 퇴화해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의 영역은 초기 단계에 비해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확장된다. 이제 어린아이에게 열려진 세계는 보여질 수 있는 세계를 훨씬 넘어서 있다. 더 발전하여 사유의 세계로 진입하면, 그의 세계는 물리적 세계에만 한정되지 않고 훨씬 더 광범위해지고 자유로워진다.
- 고등학교 ‘철학’ 교과서에서
[나]
슈퍼맨의 능력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꿈과 관련이 있다. 조직이 개인의 모든 결정을 대신 내려 버려 스포츠로 소비하지 않는 한 막상 개인의 힘을 딴 데 쓸 곳도 없는 사회, 그리고 인간을 위해 움직인다고 하면서도 모든 행동을 사전에 규정해 버리는 메커니즘 앞에서 개인은 우스꽝스럽게 되어 버리고 마는 조직 사회, 그리고 조직을 위해 개인의 특수성을 희생하는 산업 사회, 이러한 사회에서 소시민은 하루에도 생각이 수백 번씩 바뀌고, 덧없는 환상과 씁쓰레한 환멸감을 번갈아 맛보며 매사에 열등감과 열패감을 맛볼 수밖에 없다. 슈퍼맨의 영웅적 모습은 소박한 시민들이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만 있는 자립에의 열망과 권력에 대한 꿈을 한 몸에 체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슈퍼맨은 이러한 시민들에게 딱 들어맞는 신화이다. 슈퍼맨은 결코 이 지구의 존재가 아니다. 그는 어릴 때 크립톤 행성에서 지구로 왔다. 크립톤 행성은 우주의 대파국 때문에 파괴 일보 직전에 있었다. 천부적인 과학자인 슈퍼맨의 아버지는 아들을 구해 우주선에 태운다. 슈퍼맨은 지구에서 성장하기는 하나 초인적인 능력을 타고났다. 광속으로 자유자재로 날아다닐 수 있으며 광속보다 속도를 빨리 해 시공을 넘나들 수도 있다. 산을 뚫고 지나갈 수도 있으며, 증기선을 두 손으로 들어 올릴 수도 있다. 엑스선 투시 능력을 갖고 있는 시력은 거의 무한대의 거리에 있는 사람도 꿰뚫어 볼 수 있으며, 동시에 광선을 쏘아 금속을 녹일 수 있다. 게다가 미남자이고 도덕적이며, 자신을 아끼지 않고 남을 도와준다. 그는 평생을 악에 맞서 싸우는 데 바쳤다. 언제 어디서든지 나타나 도와주는 슈퍼맨은 경찰에게는 둘도 없는 은인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슈퍼맨은 독자들 자신의 모습과 동일시하기에 편리한 모습을 취한다. 즉 현실 속에서 그는 기자 클라크 켄트로서 그저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다. 켄트는 겁 많고 소심하며 지력도 그리 뛰어나지는 않으며, 조금 주책 많아 보이는 행동을 반복하고 게다가 시력조차 근시이다. 그리고 권력 지향적이고 탐욕이 강한 루이 레인의 말이라면 쩔쩔매며, 자신이 열렬히 사랑하는 여자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는 영웅의 모습과 소시민의 모습을 함께 갖고 있다. 이러한 이중의 정체는 신화(神話) 형성을 부추기고 촉구한다. 왜냐하면 클라크 켄트의 모습은 평범한 독자들이 전형적인 영웅으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슈퍼맨은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평범한 독자들은 슈퍼맨을 바라보면서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삶을 옥죄고 있는 모든 사슬을 끊어 버리고 속물적 인간에서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거물이 되고 싶은 꿈을 가슴 속에서 보듬어 보는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
출생: 1932년 1월 5일
출신지: 이탈리아
직업: 소설가, 사회학자
학력: 토리노대학교
경력: 1973년 밀라노에서 제1회 국제기호학 회의 조직
1971년 데달루스라는 필명으로 좌파기관지 일마니페스토에 기고
위키백과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1932년 1월 5일 이탈리아 알레산드리아 - )는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미학자 언어학자 철학자 소설가이다. 현재 볼로...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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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문 -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박지원(朴趾源:1737~1805)의 연행기(燕行記).
열하일기 /〈열하일기〉, 박지원 지음, 〈연암집〉
26권 10책.〈연암집 燕巖集〉에 수록되어 있다. 44세 때인 1780년(정조 4년)에 삼종형 명원(明源)이 청나라 고종 건륭제의 칠순 잔치 진하사로 베이징[北京]에 가게 되자 자제군관의 자격으로 수행하면서 곳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남긴 기록이다. 당시 사회 제도와 양반 사회의 모순을 신랄히 비판하는 내용을 독창적이고 사실적인 문체로 담았기 때문에 위정자들에게 배척당했고, 따라서 필사본으로만 전해져오다가 1901년 김택영에 의해 처음 간행되었다.
1780년 음력 7월, 중국의 동북부를 여행하던 박지원(1737~1805)은, 머리 장식물을 파는 상인과 전당포를 운영하는 사람에게 휘호를 써주었다가 작은 낭패를 겪었다. 그는 길에서 자주 보아 왔던 ‘기상새설(欺霜賽雪, 서리와도 같고 눈보다 더 흼)’이란 글자를 여러 필법을 고려하여 멋지게 썼으나, 정작 두 상점의 주인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박지원은 “장사치들이 자기네들 마음이 깨끗하여 마치 가을 서릿발과 같을 뿐만 아니라, 땅에 내린 희디흰 눈의 빛깔보다도 훨씬 더 희다고 스스로 과시하려고 그런 말을 문에 걸었을 게다”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네 글자는 국수 파는 집에서 거는 편액이었다.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박지원은 머쓱해 하였다.
박지원은 <열하일기(熱河日記)>에 그 일을 그대로 적어 두었다. 자신의 실패담까지도 적을 만큼 <열하일기>는 자기 비판적이고 또 사실적이다. 이 <열하일기>는 문학작품이자, 철학적 수필이요, 또 역사 기록이다.
<열하일기>는 여행의 체험을 시간 순으로 서술하기보다, 경험사실과 역사지식을 상상과 결합시켜 두었다. 그 전반부는 날짜별, 노정별로 편찬하고 단형의 수필을 삽입해 두는 방식을 취하였지만, 후반부는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인 판첸 라마에 관한 기록과, 중국인 및 만주족 학자들과 자연과학의 지식, 정통사상과 이단의 문제, 민족문화의 특수성에 대해 담론한 내용, 민족문화와 중국문화의 접점에 대해 논증한 논문들을 실어두었다. 라마교에 대하여 지나칠 정도로 많은 분량을 할당하였는데, 이것이야말로, 그의 공간인식과 역사인식이 지배적 관념과 달랐음을 잘 말해준다. 또한 <열하일기>에서 그는 교조주의적인 사상에 대해 회의하는 정신과 민족의 역사에 대하여 우려하는 감정을 때로는 솔직하게, 때로는 은밀하게 드러내었다.
박지원은, 나의 한학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징그러운’ 사람이다. 그는 남들이 다루기 어려웠거나 다루려고 하지 않았던 문제들을 교묘하게 글의 주제로 삼으면서 갖가지 문체를 실험하고 기교를 부렸다. 그렇기에 그의 가까운 친구조차도 그것을 촛불에 태워버리려 하였다. 정조 대왕은 그 문체가 당시 사람들에게 정통 사고를 부정하는 신사조를 촉발할까봐 염려하였다.
중원으로 향하면서 박지원은, 자객 형가(荊軻)가 연(燕)나라 태자 단(丹)을 위하여 진시황을 죽이기 위해 역수(易水)를 건너려다가 머뭇거렸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태자 단은 형가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나 의심하였다. 그러자 형가는 노하여, “내가 머뭇거리는 까닭은 나의 손님을 기다렸다가 함께 떠나려 함이오”라고 하였다고 한다. 박지원은 “형가가 기다린 사람이란 이름을 지닌 어떤 실재하는 인물은 아닐 것이다”라고 지적하였다. 형가가 기다린 사람이란, 의지를 발동하는 형가 그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박지원은 이렇게 인간의 행동에서 의지의 중요성을 읽었고, 의지를 지닌 인간 주체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의지를 지닌 인간 주체는 갈등하는 존재요, 스스로 행위를 선택하는 존재다. 그의 중국 여행은 곧 그러한 결단의 행위였다.
1780년(정조 4년), 팔촌형인 금성위 박명원(朴明源)이 진하사절로 베이징(북경)에 가게 되자, 박지원은 군관의 직함으로 따라갔다. 나이 44살에 처음으로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기쁨을 맛본 그는, 요동 땅이야말로 한바탕 울어야 할 곳이라고 하였다. 음력 5월25일, 서울을 떠난 일행은 6월24일에 압록강을 건넌 뒤, 요양, 성경, 산해관, 통주를 통과하는 지정된 길을 따라 8월1일 북경에 도착하였다. 마침 청나라 황제(건륭제)가 열하의 별궁에 머무르고 있었으므로, 사행의 일부는 만수절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서둘러 떠났다. 8월9일 열하에 도착한 일행은, 8월11일 피서산장 궁문에서 황제를 알현한 뒤 황명에 따라 티베트 승려 판첸 라마를 예방하였다. 그 뒤 여러 연회와 하례식에 참석하였고, 8월15일 열하를 떠나 20일 북경에 돌아왔다. 그리고 9월17일 북경을 출발하여 10월27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그 후 박지원은 3년에 걸쳐 <열하일기>를 정리하였다. 그런데 그는 압록강을 건넌 이후부터, 열하에 갔다가 다시 북경으로 돌아오기까지만 그나마 노정기 형식으로 적었다. 북경의 일은 아예 남기지 않고, 그곳에서 사색한 내용만 조목조목 적었다. 형식 자체가 매우 파격적이다.
박지원은 젊은 시절 꿈에, 관청 건물 같은 곳에서 화병에 꽂힌 길고 푸른 새의 깃털을 보았다고 한다. 뒷날 그는 그 기억을 회상하고, 또 중국 여행 중에 공작새를 직접 보고서, 공작새 깃털 색깔의 변화무쌍함을 서술하였다. 객관 사물은 인식 주체의 상황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으며, 인식 대상 또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라는 점에 박지원은 주목하였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빛깔을 논하면서 마음에 먼저 색깔을 정해 놓는 것은 올바로 보는 것이 아니다.” 박지원은 여행 중에 그러한 인식태도로 사물과 인간과 역사를 바라보았다.
박지원은 중국인이나 만주인들과 면대(面對, 얼굴을 맞대고 담론함)하였다. 통금 시간 이후에도 몰래 빠져나가 밤새 필담을 나누기도 하였다. 당시 조선의 사신들은 청나라의 예부와의 공식 교섭이나 정세 탐문 등 일체의 외교 업무를 역관들에게 일임하고, 중국 지식인들과 접촉하기를 꺼려하였다. 곧, 조선인들은 자신의 문벌을 내세워 중국의 가문까지 능멸하고, 중국인이 만주 복색을 한 것을 욕하며, 중국인 관원들을 오랑캐 조정의 신하라고 업신여기고, 중국에는 볼 만한 문장이 없다고 속단하며, 중국에는 춘추의리가 쇠퇴해서 올바른 선비를 보기 어렵다고 단정하기 일쑤였다. 박지원은 그러한 태도를 오망(五妄, 다섯 가지 망령)으로 열거하고, 그것이 이미 멸망한 명나라에 대한 맹목적 숭상에서 연유한다고 지적하였다.
박지원은 짧은 여행에서 외국의 실정을 살핀다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도 잘 알았다. 게다가 중국인 가운데 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필첩식이나 서반 따위의 하급 관리들은, 정치상의 잘못이나 변방의 작은 난리, 괴상망측한 이야기 등을 과장하거나 꾸며내어 우리 역관에게 고급 정보라고 속여 팔았다. 박지원은 외국 정세를 올바로 파악하는 올바른 방법을 ‘심세편(審勢編)’에서 제시하였고, 그 스스로 만리장성 부근에서 입수한 정보들을 ‘구외이문(口外異門)’이란 제목으로 묶었다.
중국을 여행하면서 박지원의 시선은 이미 중국을 넘어섰다. 그리고 미몽 속에 헤매는 조선의 일부 지식인들을 계도하고자 하였다. 옥전(玉田)에서 동행인들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옥갑야화’에는 저 유명한 ‘허생’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허생이 이완을 꾸짖는 어조를 빌려, 박지원은 자존자대(自尊自大)에 빠진 조선 사대부들에게 이렇게 일갈하였다. “소위 사대부란 것이 무엇들이냐?
오랑캐인 맥족의 땅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사대부라 자칭하니 이 어찌 어리석지 않으랴 ! 바지저고리는 순전히 흰색이니 이는 초상이 났을 때 입는 옷이요, 머리털은 한데 모아 송곳처럼 만든 것은 남만의 상투와 다름없는데, 무엇을 일러 예법이라는 거냐?” 조선인들이 중화문화의 유풍이라고 믿었던 것이 주변 이민족의 풍속과 다를 바 없다고 함으로써, 중국 중심의 사고방식을 넘어선 것이다. <열하일기>는 사실의 기록이자, 그 전체가 우언(寓言)이기도 하다. 박지원은 자신이 지닌 상대주의적인 시각을, 중국인이나 만주인의 대화를 옮기는 속에다 집어넣어 두었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이나 문화적 사실을 고증하는 글 속에도 그러한 관념을 숨겨 두었다. 그러한 독특한 수법과 진보적 사상 때문에 <열하일기>는 우리의 영원한 고전이 된 것이다.
광고문 - 「에이젠쉬쩨인의 ‘이미지의 모험’」
영화론과 영화 작품. 전양준 편역
우리가 광고를 볼 때 주의할 점이 있다. 광고는 새로운 책을 소개하는 기능도 하지만 동시에 출판사의 상업적 이익 추구와 관련된 기능도 있다. 우리는 광고를 볼 때 이러한 점에 주의하여 광고 내용을 분석, 비판 할 수 있어야 하며, 특히 광고의 시각적 이미지가 주는 특성과 과장된 언어 등에 주목해야 한다.
소비에트 예술의 대가 에이젠쉬쩨인!
채플린, 브레히트 등 당대 최고의 지성들과 교유하면서 미래의 예술 세계를 주도하였던 그는 실험 정신에 넘치는 영화 작품들을 통하여 혁명이라는 위대한 테마를 완벽하게 실연해 내었다.
천부적인 미의식과 영감, 비상한 지성이 살아 꿈틀대는 그의 영화 ‘전함 뾰쫌낀’, ‘시월’ 등은 세계 영화사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에게서 비롯된 다양한 영화 이론과 연출 기법은 현대의 수많은 영화 작가들에게 하나의 전범으로 완벽한 예술성에 대한 찬탄을 자아내게도 한다.
서평 - 「붕새의 날개 - 장자(장자)의 ‘장자」
서평은 책의 내용을 자신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글이다. 서평을 읽을 때는 글쓴이가 장자를 바라보고 있는 시각을 어떤지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한다.
소요와 방황의 삶-장자(莊子)의 <장자(莊子)>
1. 절대자유의 경지
상식적인 생각과 세속적인 가치를 큰 소리로 비웃는 사상가가 있었다. 이 사상가의 책 <장자>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은 곤이다. 곤의 크기는 몇 천리인지 알지 못한다.”
이 세상 북쪽 끝 검푸른 물결 일렁이는 북극의 바다에 곤이라는 이름의 물고기가 있는데 이 곤의 크기는 몇 천리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 수 천리나 되는 이 거대한 물고기 곤이 어느 때이던가 크게 변신하여 그 등의 크기가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 없는 거대한 새로 변화한다. 이 거대한 새, 그 이름은 ‘鵬’이라 한다.
이 터무니없이 큰 붕새가 한 번 온몸의 힘을 떨쳐 하늘로 날면 그 날개가 어찌나 큰지 하늘을 덮은 구름인가 착각할 정도이다. 이 붕새는 이제 남쪽 바다로 떠나가려 한다. 남쪽 바다란 다름 아닌 하늘의 못, ‘천지(天池)’이다.
이처럼 장자는 상식을 뛰어 넘은 무한의 시간과 무한의 공간으로 날아가는 붕새를 통해 절대자유의 경지를 우리에게 제시한다. 그가 제시하는 절대자유는 만물은 모두 평등하다는 만물제동(萬物齊同)의 사상을 근거로 삼아 어떠한 세속적인 편견이나 억압적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소요유(逍遙遊)의 경지이며, 이 소요유는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삶이다.
2. <장자>는 독백이다.
공자나 맹자와는 달리 당시의 권력자들과 직접 접촉할 수 있었던 통로를 전혀 갖지 못했던 사상가 장자는 ‘군주와의 대화나 간언’이라는 기존의 진부한 스타일을 벗어 던지고 스스로 만인과 대화하는 수단으로 ‘우화(寓話)’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여 자신의 이상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그려냈다. 그 때문에 그의 책 <장자>는 스스로 추구하는 이상의 크기만큼이나 황당하기까지 하다. 때로 곤이나 붕같이 터무니없는 커다란 스케일로 읽는 이를 장대한 가공의 시공간으로 안내하는가 하면, 때로는 삶을 해치는 어떤 억압도 없는 무하유의 고을 광막한 들판이라는 유토피아를 그려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곱사등이, 언청이, 형용불가의 기형인을 내세워 그들이야 말로 지고의 가치인 도를 아는 사람들이라고 세속인들의 저열한 가치관을 신랄하게 비웃는가 하면, 때로는 꿈이라는 가상의 디오라마를 통해 어떤 현실적 구속도 간단히 부숴버리는 해방공간을 창조한다.
이처럼 <장자>는 진부한 형식을 깨트리고 완전히 새로운 형식을 창안해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그런 형식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담아냈다는 점에서 고대 중국사상, 그 중에서도 특히 도가사상의 개막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저술이라고 할 만하며 동시에 가장 난해하고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 차 있기도 하다.
이처럼 <장자>는 대단히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적 문제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의 상징과 비유로 인해 아름답지만 모호한 표현이 넘쳐나는 책이다.
3. 장자의 삶
장자 개인의 신상에 관한 기록은 분명치 않다. 그에 대한 가장 오래된 전기는 사마천(司馬遷)이 저술한 <사기(史記)>의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이지만, 「자객열전(刺客列傳)」에서 위나라 출신의 칼잡이 형가(荊軻)에 대해 무려 3,212자를 할애한 사마천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장자에 대해서는 235자의 간단한 기록만 남기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이 짧은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장자의 신상과 관련된 사실은 거의 없다. 그는 몽(蒙)땅 사람으로 이름은 주(周)이고 자가 자휴(子休)라는 것, 일찍이 칠원(漆園)의 관리가 된 적이 있으며, 양(梁)나라 혜왕, 제나라 선왕과 동시대의 인물이라는 것, 또 그의 주장은 노자의 주장과 같다는 것, 십여만언(十餘萬言)의 저술을 남겼고 내용의 대부분이 우언(寓言)이며 공자의 무리를 비판하고 노자의 학술을 밝혔다는 것이 신상과 관련된 기록의 전부이며, 초나라 위왕이 천금을 보내 재상으로 초빙하려 했지만 희생소의 비유를 들어 거절했다는 <장자> 「열어구」편에 기록된 것과 동일한 내용의 짤막한 일화가 말미에 붙어 있을 뿐이다.
또 그나마 기록된 내용도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출신지가 몽(蒙)이라고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가 宋나라 사람이라는 주장, 梁나라 사람이라는 주장, 楚나라 사람이라는 주장 등 이론이 분분하며, 학술 연원에 대한 이해도 저마다 달라 노자의 제자라는 주장(초횡), 列子의 제자라는 주장, 장상공자의 제자로 그로부터 남화선인이라는 호칭을 받았다는 주장, 공자의 제자였던 안회의 제자라는 주장, 본래 유자로서 전자방의 문하에서 배웠다는 주장 등 이런저런 가설이 난무하고 있다.
다만 그가 활동했던 시대가 양나라 혜왕, 제나라 선왕의 시대, 곧 맹자와 동시대의 인물이라고 기록한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장자의 신상과 관련된 사항은 도리어 <장자> 본문의 기록을 따르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장자> 본문에는 장자의 신상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몇 가지 있기 때문이다. 우선 그가 양나라의 재상을 지낸 적이 있는 혜시와 절친한 사이였다는 것만은 거의 분명한 것 같다. <장자> 내 외편 및 잡편의 전편에 걸쳐 혜시만큼 장자와 가까운 인물로 나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또 「지락」편에는 장자의 아내가 죽었을 때 혜시가 조문간 내용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장자는 결혼해서 아내를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산목」편이나 「열어구」편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여러 명의 제자를 두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또 그가 경제적으로 그다지 윤택하지 못하여 자주 곡식을 빌리러 다녔으며(「산목」편, 「외물」편), 때로는 조나라 태자 등과 같은 당시의 권력자에게 나아가 유세를 하기도 했지만(「설검」편), 제후가 보낸 사신을 물리치고, 천지를 관곽으로 삼아 사치스런 장례를 거부했던(「열어구」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장자 본문의 내용 또한 대부분이 우언이기 때문에 기록된 내용 모두를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결국 장자의 신상과 관련된 자세한 사항은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으며, 다만 장자 본문 속의 기록을 통해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 이런 저런 추측을 해 보는 것이 가능할 뿐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4. 장자의 사상 - 자유의식과 인순주의
<장자>는 자유의식의 소유자인 장자의 저술이다. 그는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는 절대 자유를 꿈꾼다. 그 때문에 세상에서 지고의 가치로 떠받들어지는 이타적인 행위의 실천자들, 곧 남의 고역을 자기 일처럼 열심히 수고하고 남의 즐거움을 자기 즐거움처럼 만족하는 사람들을 두고 자기 자신의 즐거움을 스스로 즐거워할 줄 모르는, 자유의식의 결여자라고 비판한다.
그 때문에 그는 대붕(大鵬)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첫 번째 편의 명칭을 소요유(逍遙遊)라고 이름 붙였다. 소요유는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이라는 뜻으로 목적의식이 없는 무위자연의 행위이고 인위를 버리고 작위를 잊는 행위이다.
장자의 사상을 규정하는 또 다른 중요한 개념은 만물제동(萬物齊同)과 인순(因循)이다. 만물의 근본원리를 도라고 본 장자는, 이 도의 견지에서 보면 현실세계의 모든 대립과 차별은 허망한 것이 되어 만물에는 아무런 구별도 없다고 규정한다. 「제물론」편의 천균(天鈞)과 양행(兩行)은 이와 같은 만물제동의 사상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개념이다. 천균이란 세속의 시비와 편견을 넘어 是도 없고 非도 없는 제일(齊一)의 世界에 조화하고 心志의 분별을 방기하는 절대의 시(是)를 말하며, 양행이란 모든 모순과 대립을 동시에 성립시키는 혼돈(混沌)의 상태를 긍정하는 태도이다. 이것이 만물제동의 철학이다.
만물제동의 철학에서는 극소(極小)가 오히려 극대(極大)가 되고 큰 것이 오히려 작은 것이 된다. 천하에 가을 털끝보다도 큰 것이 없고 태산은 작다는 「제물론」의 명제는 이러한 만물제동의 철학에서 가능해진다.
이 만물제동의 철학을 근거로 도와의 일체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장자는 노자보다 한층 더 철저하다. 노자의 무위나 장자의 무위가 인위를 배척하는 점에서는 같지만 노자의 무위가 외향적인데 비해 장자의 무위는 더욱 내면화 되어 무심에까지 이른다.
노자와 장자의 무위자연의 근저에는 현실세계의 대립과 차별상에 대한 철저한 비판의식이 깔려 있다. 동양사상 속에서 부정의 논리와 부정의 정신은 노자와 장자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무심의 경지로까지 철저화된 장자의 무위는 도와 일체가 됨으로써 대립차별의 현실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것이 바로 인순(因循)이다. <사기> 「노자한비열전」에서는 도가의 사상을 “허무를 근본으로 삼고 인순을 용(用)으로 삼았다.”고 했는데 인순은 말미암아(因) 따른다(循)는 뜻으로 무위자연의 또 다른 표현이며, 모든 대립상과 차별상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자유로운 삶을 획득할 수 있다고 장자는 말한다. 어쩔 수 없는 현실, 부득이한 현실을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오히려 자유로운 삶을 획득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장자의 철학을 고답적 현실순응주의라고 까지 평가절하하는 학자도 있지만, 장자의 인순주의는 단순한 현실순응의 논리는 아니다. 부자유한 현실로부터 절대 자유로의 초월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고 현실 속을 돌파해 나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안고 뛰어넘는 초월의 논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장자가 추구하는 정신적 절대자유의 경지는 이와 같은 논리를 따를 때 그 모습이 드러난다. 이 논리를 따를 때 약자가 강자로 전환되고, 죽음이 삶으로 전환되고, 부자유가 자유로 전환된다. 이것이 바로 인순주의의 효용이다.
도와 일체가 되는, 무심의 경지에 들기 위한 수양의 방법으로 장자는 심재(心齋)와 좌망(坐忘)을 들고 있다. 심재는 마음의 허무화를 의미하며, 좌망은 수족이나 신체의 작위를 물리치고 이목의 감각작용을 제거하여 육체를 떠나고 심지까지 버리고 모든 사물과 자유로이 소통하는 도와 일체가 되는 것을 말한다.
「소요유」편, 「인간세」편, 「산목」편에는 목재로서 쓸모가 없기 때문에 벌목될 염려 없이 도리어 천수를 다하는 나무의 예를 들어 무용지용(無用之用)의 유용성을 말하고 있으며, 「덕충부」편에서는 세속의 사람들이 가장 추하다고 하는 발 잘린 절름발이나, 꼽추, 언청이 같은 불구자를 들어 그들의 입을 빌어 도를 말한다. 신분이 낮고, 권력이나 재물이 없으며, 매력적인 외모는 물론 뛰어난 언변도 없는 그로테스크한 畸形不具의 인간들이야말로 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는 역설적 우언을 통해 장자는 외형적인 모습을 넘어 절대의 자유를 누리는 도인의 경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5. <莊子>의 우화(寓話)
5-1. 북쪽 바다의 물고기
곤붕(鯤鵬)이야기-북쪽 하늘의 바다에서 남쪽의 천지로 6개월 동안 날아가는 붕새 이야기를 각각 다른 방식의 표현 양식을 통해 세 차례에 걸쳐 들려주는 한편 붕새의 장정을 비웃는 매미와 작은 새를 통해 세속적 관점의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북녘 검푸른 바다에 물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을 鯤이라고 한다. 곤의 크기는 몇 천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어느 날 이 물고기가 변신을 해서 새가 되니 그 이름을 鵬이라고 한다. 이 붕새의 등 넓이는 이 또한 몇 천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온 몸의 힘을 다해 날면 그 활짝 편 날개는 하늘 한쪽에 가득히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가 움직이면 남쪽 끝의 검푸른 바다로 날아가려고 한다. 남쪽 바다란 하늘의 못, 천지(天池)이다.
鵬이 남쪽 바다로 날아 옮겨 갈 때에는 <그 큰 날개로> 바다의 水面을 3천리나 치고서 회오리바람을 타고서 구만리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그리하여 여기 북쪽 바다 상공을 떠나서 6개월을 계속 난 뒤에 비로소 한 번 크게 숨을 내쉰다.
매미나 작은 새들은 이것을 비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후닥닥 있는 힘을 다해 날아올라 느릅나무나 다목나무에 머무르되, 때로는 거기에도 이르지 못하고 땅바닥에 동댕이쳐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붕새는> 구만리 꼭대기까지 올라가 남쪽으로 갈 필요가 있겠는가?”
가까운 郊外의 들판에 나가는 사람은 세 끼니의 밥만 먹고 돌아와도 배가 아직 부르고, 백 리 길을 가는 사람은 전날 밤에 식량을 방아 찧어 준비해야 하고, 천 리 길을 가는 사람은 3개월 전부터 식량을 모은다. 저 두 버러지가 또 무엇을 알겠는가.
5-2. 소년(小年)과 대년(大年), 소지(小知)와 대지(大知)
하루살이는 한 달의 길이를 알 수 없고 한철 사는 매미는 일 년의 길이를 알지 못한다. 짧게 사는 것들과 길게 사는 것들의 대비를 통해 하루살이의 짧은 생각과 320만년의 장구한 세월을 사는 대춘나무의 긴 지혜를 들려주면서 700년을 산 팽조의 삶을 부러워하는 세상 사람들의 짧은 생각을 비판한다.
작은 지혜는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 짧은 수명은 긴 수명에 미치지 못한다. 무엇으로 그러함을 알 수 있는가. 조균(朝菌)은 한 달을 알지 못하고 쓰르라미는 봄 가을을 알지 못하니 이것이 짧은 수명의 예이다. 초나라 남쪽에 명령(冥靈)이라는 나무가 있으니 5백 년을 봄으로 하고 5백 년을 가을로 삼는다. 옛날 상고시대에 대춘(大椿)이라는 나무가 있었으니 8천년을 봄으로 하고 8천년을 가을로 삼았다. 그런데 팽조(彭祖)는 지금 장수로 유독 유명하여 세상 사람들이 그와 비슷하기를 바라니 또한 슬프지 아니한가.
5-3. 무용(無用)이야말로 대용(大用)이다.
장자의 친구 혜시는 장자의 사상이 크기만 하지 쓸모가 없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장자는 무용한 것이야말로 대용이라고 주장한다.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나에게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가죽나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큰 줄기는 울퉁불퉁하여 직선을 그릴 수가 없고 그 잔가지는 비비 꼬이고 구부러져 동그라미나 네모꼴을 그릴 수가 없다. 그래서 이 나무가 길옆에 서 있기는 하지만 목수가 쳐다보지도 않는다. 지금 그대의 말이 크기만 하고 쓸모가 없는지라 뭇 사람들이 모두 버리고 떠나 버리는 것이다.”
장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그대에게 큰 나무가 있으면서도 그 나무의 쓸모없음이 걱정이 된다면 그것을 아무것도 없는 허무의 고을,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들판에 심어 놓고 그 옆에서 자유롭게 거닐면서 아무 하는 일 없이 지내고 그 아래에서 유유자적하면서 낮잠이라도 자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도끼에 잘릴 염려도 없고 아무도 해칠 자가 없을 것이니 세속적인 쓸모가 없긴 하지만 괴롭게 여길 것 하나도 없다.”
5-4. 삶의 도리를 아는 자는 누구인가?
장자는 곱사등이, 언청이, 기형인 같은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이야말로 도를 아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인기지리 무신이 위령공에게 유세하자 영공이 기뻐하였는데 그 이후로 온전한 사람들을 보면 목이 가늘고 길어 이상하게 느껴졌다. 옹앙대영이 제환공에게 유세하자 환공이 기뻐하였는데 그 이후로 온전한 사람을 보면 목이 가늘고 길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 때문에 덕이 뛰어나면 외형 따위는 잊어버리는데 세상 사람들은 잊어버려야 할 것은 잊지 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어버리니 이것을 일러 정말 잊어버렸다고 한다.
그 때문에 성인은 자유롭게 노닐어서 지식을 부산물로 여기며, 사람을 구속하는 예의를 아교풀로 여기며, 세속의 덕을 기워 붙이는 것으로 여기며, 기술을 장삿속이라고 생각한다. 성인은 억지로 도모하지 않으니 어디에 지식을 쓰겠으며, 깎아 장식하지 않으니 어디에 아교풀을 쓰겠으며, 본래의 자기[道]를 잃어버리지 않으니 어디에 세간의 덕을 쓰겠으며, 팔지 않으니 어디에 장삿속을 쓰겠는가. 이 네 가지는 자연이 길러주는 것이니, 자연이 길러준다는 것은 하늘이 먹여주는 것이다. 이미 자연에서 먹을 것을 받았으니 또 어디에다 인위적인 것을 쓰겠는가.
5-5. 도를 아는 백정의 소잡는 이야기
일국의 군주인 문혜군이 소잡는 백정에게서 양생의 도리를 배운다.
포정이 문혜군을 위해서 소를 잡는데, 손으로 쇠뿔을 잡고, 어깨에 소를 기대게 하고, 발로 소를 밟고, 무릎을 세워 소를 누르면, <칼질하는 소리가 처음에는> 획획하고 울리며, 칼을 움직여 나가면 쐐쐐 소리가 나는데 모두 음률에 맞지 않음이 없었다. 문혜군이 말했다.
“아! 훌륭하구나. 기술이 어찌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는가!”
포정이 칼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道)인데, 이것은 기술에서 더 나아간 것입니다. 처음 제가 소를 해부하던 때에는 눈에 비치는 것이 온전한 소 아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뒤에는 온전한 소는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神을 통해 소를 대하고,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감각기관의 지각 능력이 활동을 멈추고, 대신 신묘한 작용이 움직이면 자연의 결을 따라 커다란 틈새를 치며, 커다란 공간에서 칼을 움직이되 본시 그러한 바를 따를 뿐인지라, 경락(經絡)과 긍경(肯綮)이 <칼의 움직임을> 조금도 방해하지 않는데 하물며 큰 뼈이겠습니까?”
“솜씨 좋은 백정은 일 년에 한 번 칼을 바꾸는데 살코기를 베기 때문이고, 보통의 백정은 한 달에 한 번씩 칼을 바꾸는데 뼈를 치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칼은 19년이 되었고, 그동안 잡은 소가 수천 마리인데도 칼날이 마치 숫돌에서 막 새로 갈아낸 듯합니다. 뼈마디에는 틈이 있고 칼날 끝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가 없는 것을 가지고 틈이 있는 사이로 들어가기 때문에 넓고 넓어서 칼날을 놀리는 데 반드시 남는 공간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 때문에 19년이 되었는데도 칼날이 마치 숫돌에서 막 새로 갈아낸 듯합니다.”
5-6. 기타
하늘의 음악 천뢰(天籟), 숙홀(儵忽)의 과잉친절과 혼돈(混沌)의 죽음, 장자와 혜시의 말싸움, 마른 도랑의 붕어들, 나비의 꿈, 초왕의 초빙 등.
출처 [인터넷-논문]
「장자」에게 중요한 주제는 자유이다.
「장자」의 자유는 현실 도피나 초월이 아니며, 오히려 현실적이라 할 수 있다.
진정한 방황은, 성공적인 삶보다는 올바른 삶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데 바쳐져야 한다.
책 소개문 두 편 -「가족,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모계사회는 초창기 인류의 일반적 가족 형태이다. 지배 계층은 당연히 여자였다. 이후 남자가 지배계층이 되면서 가족과 씨족 개념이 생겨났다. 지금의 문명 사학자들은 대체로 12,000년경을 신석기 모계사회로 분류하고 있다. 그래서 B.C. 2000년을 전후하여 신석기 모계 중심 사회에서 청동기 부계중심 고대부족 국가로 바뀌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의 직립 보행과 더불어 육아 기간이 늘어난 여자는 남자보다 수렵이나 채집 등이 어려웠고, 보다 얻기 쉬운 식량을 찾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여자들은 무리를 형성하면서 먹을 수 있는 열매나 곡식 같은 식물의 재배, 증산과 저장을 통해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기 위하여 정착 생활, 농경생활이 이루어지며, 일정한 무리들은 어느 정도의 질서를 갖춘 모계사회가 출현한다. 모계사회는 엄격한 복종적 사회형태보다는 상호 도모적인 사회 형태로 공동적인 육아와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초기에 남자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자기 어머니로부터 떠나 남자들의 소무리에 속하여 수렵, 채집에 의존을 하게 되지만, 그들은 모계로부터 힘들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식량의 조달 방법을 알게 되면서 힘이 센 남자들은 어느 정도의 모계사회에 저항함으로써 힘으로 제압하게 된다. 남자 중심의 통제 사회의 약탈적 위치에서 또 다른 남자 중심의 모계무리로부터 자기 영역의 모계무리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로 부계중심사회가 출현한다.
주목되는 것은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명제가 모계사회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여성의 사회진출확대, 남아 선호사상 약화, 평등한 부부관계가 확산 되면서 우리 사회 전반에 모계사회로서의 회귀 현상이 짙어가고 있다. 특히, 호주제가 폐지될 정도로 부계중심의 가족 구성이 모계중심으로 뚜렷이 이동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지 인터넷판이 ‘사람들이 친밀감을 느끼는 순위는 1위 이종사촌, 2위 외사촌, 3위 고종사촌, 4위는 친사촌’이라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모계사회로의 회귀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버지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부성(부성) 불확실성 이론과도 부합된다.
중국 윈난성 고산지대에 살고 있는 모소족(族)은 아버지와 남편 개념이 없다. 13세 때 성인식을 치른 여자는 마음에 드는 남자를 골라 교제할 수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여자의 성을 따르고 양육권 역시 여자에게 있다. 남자는 잠은 애인 집에서 자고, 낮이 되면 어머니 집으로 돌아가 노동을 한다. 집안일의 결정권자는 어머니이고 어머니가 죽으면 딸이 재산을 물려받는다. 전형적인 모계사회를 유지하면서 지극히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이경자 저 '이경자, 모계 사회를 찾다'에서).
1) 가족의 기원을 명확하게 단정 짓기에는 현재 연구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
2) 문자가 사용되기 시작한 수메르 시대에 들어서야 고대 가족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난다.
3) 로마시대에 이르면 가부장주의가 법률적으로 체계화되고 강화된다.
4) 공동 생계의 공간으로서 가정이 윤리적인 공간으로 바뀐 것도 바로 이때다.
「‘피’ 이전의 이익 집단, 사회적 필요의 산물」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족을 당연한 것, 자연적인 것으로 받아드린다. 그런데 ‘가족의 역사 1’은 우리가 당연하고 절대적인 대상으로 받아드리는 가족을 구조 혹은 제도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선사 시대 이래 가족이 없었던 사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가족은 사회가 존재하기 위해 있는 것이며 세대를 거듭하며 같은 형태로 재생산된다. 가족은 피를 나누었으므로 숭고한 집단니 아니라 일종의 이익 집단으로서 사회적 필요에 의해 가족이 규정된다는 근거를 역사적으로 추적하여 제시한다. 선사시대, 수메르, 바빌론, 이집트, 그리스, 로마, 히브리 등의 가족 모델을 분석하면서 가족이 환경과 필요에 의해 생긴 집단임을 보여준다.
1) ‘피’ 이전의 이익 집단, 사회적 필요의 산물
2) 가족은 일종의 이익 집단으로서 사회적 필요에 의해 가족이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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