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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검은 백악관'

수로보니게 여인 2008. 11. 11. 14:57

 

눈물의 '검은 백악관'

 

● 흑인 노예들이 지었던 곳, 주인 되기까지…
링컨의 노예해방 후에도 흑인손님은 정문서 퇴짜
1973년 초청가수 데이비스 흑인으론 첫 하룻밤 묵어



1965년 6월 전설적인 흑인 재즈가수 사라 본(Vaughan)은 백악관 화장실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린든 존슨(Johnson) 대통령의 초청으로 많은 귀빈들 앞에서 노래 몇 가락을 멋지게 뽑은 직후였다. 그녀를 발견한 백악관 직원이 깜짝 놀라 괜찮냐고 묻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기요, 제가 20년 전 워싱턴에 처음 왔을 땐 (인종차별 탓에) 호텔방도 못 잡았거든요. 근데 오늘밤 백악관에서 미합중국의 대통령을 위해 노래했잖아요. (대통령께서) 제게 춤까지 청하셨어요. 이런 감격스러운 일이…."

1990년 사망한 사라 본이 지금도 살아있다면 43년 전 느낀 것보다 더 큰 격세지감에 전율했을지 모른다.
흑인이 백악관 건설에 노예 신분으로 강제 동원돼야 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미국이 사상 첫 흑인 대통령의 백악관 입주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얀 집'이라는 이름처럼 백인을 위해 존재해온 백악관과 흑인의 굴곡진 인연을 뉴욕타임스가 10일 소개했다.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Jefferson)은 1801년 자신 소유의 노예 10여명을 사저에서 백악관으로 데려와 허드렛일을 시켰다. 이 중 마지막까지 남은 재커리 테일러(Taylor)가 숨진 1850년까지 흑인들은 백인 대통령을 위해 수발을 들었다.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Lincoln) 대통령이 노예 해방을 선언한 뒤에도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저명한 노예 폐지론자로 링컨과 우정을 나눴던 흑인 프레데릭 더글러스(Douglas)는 1865년 링컨의 재선 축하 연회 참석차 백악관 정문을 들어서려다 경비에게 퇴짜를 맞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전해들은 링컨은 "이 나라에 더글러스보다 내가 존중하는 이는 없다"며 그를 불러들였다.

1929년 허버트 후버(Hoover) 대통령의 부인 루 후버 여사는 고민에 빠졌다. 대통령 부인들은 전통에 따라 의원 부인들에게 백악관 초청 행사를 베풀어왔는데, 그해 오스카 드 프리스트(De Priest)가 첫 흑인 하원의원으로 뽑히자 그의 부인을 초청하지 말라는 주변의 압력이 거셌기 때문이다. 고육지책으로 루 여사는 드 프리스트의 부인만 따로 불러 다과회를 가졌지만, 이를 두고도 텍사스주에서 규탄 결의안이 나오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사라 본이 감격에 겨워 운 지 8년 만인 1973년엔 리처드 닉슨(Nixon)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가수 겸 연주자인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Davis Jr)가 흑인 최초로 백악관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포드 대통령 때는 배우 겸 가수 펄 베일리(Bailey)가 그랬고, 클린턴 행정부 때는 유명 팝송 프로듀서 퀸시 존스(Jones), 영화배우 윌 스미스(Smith) 부부 등이 백악관 투숙의 영광을 누렸다.

버락 오바마(Obama)의 대통령 당선은 불평등했던 백악관과 흑인의 관계에 비로소 균형점을 찾았다는 의미가 있다. 흑인이 백악관에서 정말 평등하다는 기분을 느끼기까지 노예해방 선언 이후로 145년이 더 필요했다는 얘기다.

입력 : 2008.11.11 03:12 이용수 기자 hejsue@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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