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儒)'의 뜻
20세기에 들어와 한자(漢字) 연구는 중국이나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평생에 걸쳐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을 편찬한 모로하시 데쓰지(諸橋轍次·1883~1982)와 갑골문에 정통한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1910 ~2006)가 이 분야 대가들이다. 이런 연구는 장수(長壽)해야 업적이 남는다. 두 사람 모두 100세 가까운 장수를 누렸다. 다른 데 신경 안 쓰고 무욕담박한 태도로 차분하게 연구만 하고 살면 오래 사는 모양이다.
최근 시라카와 시즈카의 저술 중에서 국내에 번역된 '주술의 사상'을 흥미롭게 읽었다. 책의 내용 가운데 '유(儒)'자에 대한 해석이 필자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었다. 시라카와의 갑골문 해석에 따르면 원래 유가(儒家)는 시체를 처리하는 장례(葬禮)와 비가 오지 않을 때 지내는 기우제(祈雨祭)를 담당하는 집단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유(儒)'자에서 사람 인(人)을 떼어놓고 보면 윗글자가 비 우(雨)이다. 그 아래에는 '이(而)'가 있다. '이(而)'자는 머리카락을 묶지 않고 풀어헤친 모습을 상징한다고 한다. 가뭄이 들어 비가 오도록 제사를 지낼 때는 머리를 풀어헤쳤다. 따라서 유(儒)의 본래 의미는 '비를 기원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비가 계속해서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낸 유(儒), 즉 무당이 대신 책임을 지고 죽어야만 하였다. 어떤 경우에는 왕이 가뭄에 대한 무한 책임을 지고 장작더미 위에 올라가 불에 타 죽어야만 했다. 유(儒)는 이처럼 비가 오지 않으면 화형당하는 처지에 있었으므로, 장례식도 아울러 주관하게 되었다는 것이 시라카와의 해석이다.
유교 경전인 '예기(禮記)'의 전체 49편 가운데 3분의 2에 해당하는 부분이 장례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 이유도 유가의 본래 역할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유가의 라이벌 집단이었던 묵가(墨家)의 사람들이 유가를 가리켜 '부잣집 장례식에 허겁지겁 모여든다'고 야유를 보냈던 배경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 시절이 하 수상할 때는 수천 년 전의 옛날 생활상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래야 마음에 평정심이 생긴다.
2008.09.30 22:59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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