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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상상은 연인의 '감옥'

수로보니게 여인 2008. 6. 26. 17:18

 


                   
    나는 누구인가

       

      [김태훈의 러브토크]


                                            지나친 상상은 연인의 '감옥'



      사람들을 사랑에 빠뜨리는 첫 번째 요소는 상상력이다. 누군가를 느닷없이 만나고, 잠깐 쳐다보고, 그렇게 손에 넣은 작은 힌트에 상상을 덧칠해 허구의 인물을 사랑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아름다운 마음씨와 숙녀의 사려 깊음을 떠올리고, 그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신뢰와 충실함을 느끼는 것은 모두 상상이 부여한 허상일 뿐이다.

      우린 그것을 사랑의 시작이라고 부른다. 인간에게 상상력이 없다면, '첫눈에 반했다' 혹은 '완벽한 이상형' 따위의 표현은 애초에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들은 단 몇 초의 만남에도 장편 서사시에 가까운 사랑의 시를 쏟아냈고, 수줍은 남학생은 말 한 번 걸어 본 적 없는 여고생을 위해 셀 수 없는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연애편지를 쓴다. 이성에 대한 상상이란 신이 큐피드를 올림푸스 산으로 다시 데려가며 인간에게 남겨준 선물인 셈이다. 만약 사람들의 머릿속에 상상력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사촌 여동생을 연인으로 얻기 위해 촛불에 자신의 손을 지진 고흐의 광기나 '레일라(Layla)'라는 곡을 쓰면서 친구의 아내를 갖지 못해 몸부림 쳤던 에릭 클랩튼의 불온한 열정은 전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열렬한 사랑의 초입이 허무하게 지나가고 나면 상상은 전혀 다른 얼굴로 연애에 개입한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싶어하는 집착이 사랑을 지배하면서 상상력이 그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단 몇 분의 연락 두절에도 불길한 영상이 떠오르고 심드렁한 상대의 표정만으로도 파국을 전하는 예언이 들려오는 듯하다. 동화책의 마지막 페이지처럼 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 삶이 멈춰버린다면 좋겠지만 현실의 사랑은 시작되는 순간부터 예기치 않은 변수와의 끝없는 투쟁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행복한 현재가 영원히 계속되기 원하는 욕망은 자칫 한순간에 잃어버릴지도 모를 사랑에 대한 불안감을 만들어 낸다. 그리곤 귓가에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섣불리 속삭여 댄다.

      "그는 지금쯤 다른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질펀한 술자리를 벌이고 있을 거야."

      "그녀가 친구들과 놀러 가는 곳엔 음탕한 남성들이 1m 간격으로 길게 늘어서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사랑을 막 시작한 사람들에게 이런 충고를 하곤 한다.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선 아무 것도 상상하지 말라고. 소위 안정권에 들어섰다는 연인들이 일으키는 싸움의 많은 부분은 상상이 만들어 낸, 다시 말하면 실재론 존재하지 않았던 일들에 대한 오해가 시발점이 된 경우가 종종 있다. 나쁜 상상력은 의심을 불러내고, 의심은 상대의 자존심에 흠집을 낸다. 이건 치명적이다.

      예전 군대 시절을 떠올려보면 부대라는 갇힌 공간에서 혼자서 만들어 낸 악몽에 시달린 나머지 여자 친구를 무척이나 괴롭혔던 것 같다. 한 시간 간격의 알리바이를 요구했고, 일상의 평범한 동선에도 색안경을 쓰고 쳐다봤었다. 결과가 좋았을 리 없다. 여자 친구는 견디지 못했고, 더불어 나 역시 힘겨웠었다.

      나쁜 상상력은 스스로에게 감옥을 선사하는 것이다. 꼬리를 물고 덤벼오는 생각에 잡혀버리면 길을 찾긴 갈수록 어려워진다. 싯다르타의 해탈까지는 아니더라도 때로는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는 것도 있는 것이다. 한 통계 조사에 따르면 지금 걱정하고 있는 일들의 97%가 현실화되지 않을 일들이라고 한다. 운 나쁜 3%에 자신이 속할 것이라고 여기는 비관론보단 97%라는 낙천적인 통계를 믿어보는 것이 현명하다.

      세르반테스의 명작 '돈키호테'는 상상이 사랑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려주는 완벽한 텍스트다. 시골 농갓집의 보잘것없는 여성을 '둘시네아'라고 호칭하며 단번에 사랑에 빠진 돈키호테의 몽상은 풍차를 괴물로 바꾸어 어리석은 싸움을 자초한다. 피로한 긴 여정 끝에 그에게 돌아 온 것은 다시 찾은 고향에서 쓸쓸히 눈을 감는 것뿐이었다.

      때때로 상상력이 자신의 사랑에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세상 사람들이 모두 평범하다고 평한 누군가를 '둘시네아'라고 부르며 사랑하는 것은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 사랑의 본질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하지만, 평화롭게 바람을 맞는 풍차를 향해 창을 들고 덤벼드는 우둔함은 경계하는 것이 좋다. 말을 탄 채 풍차에 말려 들어가 건너편으로 내동댕이쳐진 돈키호테 꼴이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