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삼락(君子三樂)
맹자가 말한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득천하영재이교육'(得天下英才而敎育)이다.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시키는' 즐거움이 바로 그것이다.
1906년에 규장각의 직각(直閣) 벼슬을 지낸 고정주(高鼎柱)는 고향 창평에 돌아와 창흥의숙(昌興義塾)을
세웠다. 만석군 부자였던 고정주가 영어선생, 일본어 선생, 수학선생을 초빙하여 자신의 사랑채를 교사로
이용하였다. 물론 수업료는 받지 않는 학교였다.
이 창흥의숙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호남의 대표적인 부자였던 인촌 김성수와 무송 현준호가 창흥의숙을 다녔다. 창흥의숙의 영향을 받은 인촌은 후일 고려대학을 인수하였고, 무송은 전남의과대학(전남대학의 전신)을 세웠다. 인촌이 자주 놀러갔던 집안이 경주 최부잣집이었고, 인촌은 문파 최준을 만날 때마다 교육사업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고 전해진다.
최부잣집은 전해 내려오던 만석군 땅을 모두 대구대학(영남대학의 전신)을 설립하는 데에 썼다. 인촌집안과 사업적으로, 인간적으로 세교(世交)를 나눈 집안이 신안군 암태도(巖泰島)에 조선 제일의 천연 염전을 가지고 있었던 문재철 집안이다. 문재철은 일제시대에 소금, 면화, 쌀을 취급하는 종합무역상사를 운영하던 부자였는데, 고려대학의 본관석조 건물을 모방한 고등학교를 지었다. 목포의 문태고등학교가 그 학교이다. 전주에는 고종황제의 신임을 얻었던 백남신(白南信) 부자가 있었다.
그는 모악산 강증산의 동곡약방(銅谷藥房)을 지어준 후원자이기도 하였다. 경술국치 이후에는 익산에서 농장을 운영하며 숨어 살았고, 그 며느리가 시아버지 재산으로 남성고등학교를 세웠다. 베스트셀러 '수학의 정석' 저자인 홍성대는 남성고를 졸업하였고, 책을 팔아 모은 돈으로 현재 대표적 자립형 사립고라 불리는 상산고등학교를 세웠다.
최근에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하였다는 소식은 구한말 이래로 한국의 부자들이 학교를 세운 맥락과 궤를 같이 한다. '한 말 한 말 쌓아올려 산같이 커진다'는 의미의 두산(斗山)은 1898년에 종로4가 배오개에서 '박승직상점'이라는 포목점으로 출발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기업이 두산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차원에서 학교운영을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8.05.21 22:58 조용헌 goat1356@hanmail.net